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늦겨울 1 :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강남의 늦겨울 1 :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봄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

 

 

날씨가 많이 풀렸다. 지난 목요일은 개구리가 나온다는 경첩이었는데,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겨울동안 움추렸던 몸을 이제는 활짝펴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따사로운 날씨에 운동하기도 좋은 날씨다. 나무마다 새순이 움트기 시작하고 양지바른 곳에는 성급한 잡초의 새순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삶과 마음은 아직 동토지만 이 땅의 봄은 여김없이 찿아오고 있다.

 

새벽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보면 김밥집에는 남여노소를 불문하고 아침 식사로 김밥이나 라면 등 분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삶이 힘들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서울에 집 마련은 커녕 단칸방도 구하기 힘든게 오늘의 현실이다. 아파트는 수억씩 전세금이 필요하고 원룸도 어지간한 직장인은 비싸서 얻기도 힘들다. 대학가에는 혼자 원룸을 얻기 힘들어 불편하지만 친구들과 같이 방을 사용하며 절약해야 하는 입장이다.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김밥 한 줄을 먹고 학교를 가는 대학생, 직장인이 부지기 수다. 수도권 근교나 지방에서 출근하는 사람은 교통비가 엄청나게 들고 지방 대학으로 가는 학생은 새벽같이 고속터미널, 강남, 교대, 사당, 양재역 근방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학비를 대기 위해 노예처럼 살아야 하고 새벽같이 출퇴근하고 자녀들은 학교를 가지만 과연 우리들에게 미래가 있는 것인가? 

 

옛날에는 권력이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요즘은 권력과 부가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듯하다. 물론 조선시대 숙종시절만 해도 환국정치로 인해 부가 권력 유지에 이용되었고 희빈 장씨가 왕후가 되는 과정에서도 남인들의 재물이 많은 역활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권력과 부는 뗄수 없는 관계이기에 오늘날 가진자들이 권력자가 되고 권력자가 되면 부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시절이다. 정치권 실세들이 책을 만들어 출판기념회를 하면 합법적인 정치헌금이 무더기로 들어온다. 돈이 권력을 만들고 권력이 돈을 만든다. 돈은 법에 우선하며 어쩌면 권력에도 우선한다. 그래서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재물이 모든 것에 우선하므로 재물이 없는 사람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재물은 재물을 낳고 가난은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심각하게 병들은 자본주의 말기 시대다.

 

 

 

새벽달

 

지난 이야기지만, 진급을 하는 데 돈은 필요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것은 사관학교 교육을 통해서 배운 것은 오로지 부대와 병사들을 강하게 훈련시켜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만 군인의 길이라 생각했고 진급은 때가되면 자동적으로 진급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충성.명예만이 나의 삶의 길이었고 불의와 타협하는 것은 군인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황금을 돌같이 생각하라' 최영 장군의 어록과 이순신 장군처럼 마지막 전장터에서 영광스럽게 죽는 것이 군인의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교육과 정신은 다 허황된 이상과 구호, 거짖에 불과했다.

 

그래서 임관후 시간이 지난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당시 임관 후 10년이 지나면 유신사무관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나도 신청을 했지만 동기생 대부분이 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어느정도 세월이 지나자 일부이지만 보벼옵다 특수병과가 심했는데, 주변에서 경쟁자들이 진급을 위해 상급자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가족이 식모살이를 하고 생일 때면 부부가 새벽같이 찿아가서 케이크와 봉투를 전달하면서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또 군 생활을 하면서 지휘관은 대부분 부대운영비를 착복하고 경리는 수의계약으로 업자로부터 봉투를 받고 병참 병과는 피복.장비를 포함 병사 주.부식을 빼돌리고 병기는 차량 부속과 엔진을 빼돌리고 공병은 시멘트.철근.합판을 팔아먹고 공사업자로부터 봉투를 받고 인건비를 거짖 정리하여 착복하지만 대부분은 지휘관에게 상납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놀랐다. 일부 약삭빠른 동기생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자신만 물랐다는 사실이다.

선배들 중에는 일부 부정을 저지르는 선배도 많았고 통상 사단장을 거친 보병 장군은 사단 직할대장에 의해 돈맛을 보게 되는 데 나중에는 노골적로 상납을 요구했다. 특히 청렴하게 살아오던 군인 남편보다 돈이 필요한 부인이 돈맛을 한 번 보면 생각과 태도가 달라진다. 부인은 상납 정도에 따라 서열을 매겨 부하 남편의 평정을 주도록하고 상납하지 않는 간부 부인에게는 모임에서 은근히 조롱하며 왕따를 시킨다. 나중에는 진급 때가 되면 노골적으로 선배가 더 돈을 밝히며 요구하였고 육본 출장이나 외박갈 때면 측근 참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또 헌병.기무 등 기관원들이 수시로 용돈을 요구했고 그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갖가지 부대비리를 조사하여 부풀려서 보고하고 기관원들의 비리와 현지 사정을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하는 육본, 군사령부 등 상급부대에서는 짜증을 내면서 망신시키지 말라며 상급자 전화가 오고 징계 압력을 행사하고 순식간에 소문을 퍼뜨린다. 자신들도 그랬고 이웃 부대는 조용한데 너만 왜 그렇게 말썽을 부리고 소문이 나는냐며 질책했다. 그래서 더러워서 더이상 진급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군복을 벗었다. 물론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70~90년대만 해도 그랬다.

 

이처럼 재물의 소중함을 일찍 알았더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 모았을 것인데...... 돈의 소중함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집을 몇 번만 굴리고 서울 변두리에 조그만한 땅이라도 사 두었다면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재물복이 없는 것인가? 지혜롭지 못한 삶을 살아온 자신을 원망해봐야 소용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재물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인 방안을 모색하면 늦은 것일까?

 

내가 가난한 것은 경제를 등한시 했고 무지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부동산 시장, 화폐경제, 실물경제, 주식, 증권 등에 무지하고 나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주가지수, 경제성장율, 국제원자재가격 동향, 원유가격 동향, 구리.금.무역거래량, 채권금리, 선물옵션, 중국증시, 미국증시, 일본 증시, 한국증시, 원/달러, 달러/엔, 유로/달러 환율, 콜금리, 3년국고채 금리 동향, 3년 회사채 금리 동향 등이 모두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너무나 무지했던 자신이 한 스럽고 이제부터라도 경제 공부를 좀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에 난관에 봉착한 처지, 내가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는 병신처럼 살아온 우둔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세화여고 앞 종합운동장 사이

 

 

돈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무리가 바로 대부분 군대 장교들이다. 오로지 국가에 충성한다는 일념으로 명령나는대로 전출부대로 가서 오지의 열악한 환경과 박봉에도 열심히 근무하지만 어차피 군대는 피라미트 구조로 나중에 동기생들과 경쟁에서 진급에 떨어지면 결국 군복을 벗어야 한다. 청운의 꿈을 품고 전후방 각부대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의 미래가 안쓰럽기만 하다. 융통성이 없고 바른말만하고 불의와 비타협하고 상급자 개인사에 무관심하고 아부할줄 모르고 원칙만 고집한다면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근무해도 상급자에게 미움받고 왕따당하며 평정을 잘못받고 진급에 밀리거나 떨어지면 결국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군복을 벗어야 한다. 바른말만 하다가는 대부분 상급자에게 폭행을 당하며 앞잇빨이 뿌러지거나 인간적인 묘멸감을 받고 왕따를 당하며 평정을 등급 '하'로 받고 군복을 벗고 사회로 나오면 사회의 미아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어중간한 나이 40대 중반에 사회로 나오면 가장 사회를 모르는 최고의 바보가 위관.영관급 군장교 출신들이다. 위관급과 소령 출신까지는 그래도 아직 나이가 젊은 관계로 아파트경비, 공사장 막일 등 무엇이던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령.대령, 장군을 달고 나온 영관급 이상 장교들은 체면과 장기간 군생활이 몸에 베인 관계로 자세가 꼿꼿함은 물론 고개를 잘 숙이지도 못하고 말씨도 단답형이다. 사회 규범과 관련 법률을 잘 모르니 무지하기 그지없다.

 

미리 사회에 나오기 전에 취업을 위해 자격증이라도 따고 전문분야로 진출하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대부분 방산업체, 군용 장비 납품 브로커나 이름없는 지방대 교수, 다단계, 사기꾼이 되기 쉽다. 또 요즘처럼 취업도 어려운 시절에 중년 나이에 전문성도 없는 보병출신이라면 직장 구하기란 더더욱 하늘에 별따기다. 경비용역, 청소대행, 인력송출, 건설, 통신, 향군 자회사, 군인공제회 자회사, 보훈청 지원회사, 공공기관, 용역업체 등에 겨우 취업하면 다행이다. 또 연금이라도 받으면 모르겠으나 연금을 받지 못하면 가장 하층민으로 전락하기 쉽다. 또 퇴직금을 몽땅 투자하여 차린 자영업을 하다 망하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바지사장을 하다가 알거지가 된 사람도 많다. 그만큼 사회를 모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엇그제 국방부에서 군개혁 방향이 발표되었지만 군인들이 미래가 불안하다. 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군인은 국가의 세금을 투자하여 양성한 인재들이다. 그들을 국가를 위해서 평생 끝까지 봉사하도록 제도화되지 못하고 군 구조 특성상 중간에 도태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빠르면 30대, 늦으면 50대에 사회로 진출한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군에서 교육.훈련을 받지만 대부분 형식적이고 구식 전술과 교리가 대부분이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민간에 비해 주먹구구식이다. 그래서 군 인력을 지속적으로 외국 군대 교류는 물론 국내외 대학, 대학원 등에 진학시켜 분야별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현대전과 미래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신기술을 습득하고 고급 두뇌를 양성해야 한다. 장군이 되려면 병과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최소한 한가지 이상 박사학위를 받아야 하고 다수의 논문도 제출해야 한다. 관련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고급인력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그래야 군 간부가 인정받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보병 위주의 장성진급 구조와 제도를 개혁하고 전문성 있는 자격증과 학위를 가진 인력으로 양성해야 한다. 오로지 진급에만 목을 메는 현재와 같은 풍토에서는 정치군인만을 양성하게 되어 있고 평생을 놀고 먹는 직업에 불과하다. 군대 군무원 자리를 진급못한 군인을 전역시켜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군무원 정도면 대부분 석박사 이상 고급 두뇌가 근무하고 전문성도 있어야 한다. 이어도까지 전투기가 날아가도 5분도 채공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공군전투기 실상, 공중급유기 한 대 없는 한국 공군이다. 해군의 군사력도 항공모함 한 대 없는 상태에서 대양해군으로 자리메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래의 전쟁 양상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 같은 군대전력과 문화가 유지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신촌 사거리

 

 

재물과 군인, 남군과 여군 그리고 전방 술집과 접대부 생태계

전방 지역은 기상도 변화무쌍한데, 지역마다 고개마다 날씨가 시시각각 다르다. 서울이 맑은 하늘이면 그곳은 눈이나 비가 내리고 서울에 비가 내리면 그곳은 청명하거나 눈이 내리거나 강풍에 한설이 내린다. 고개를 넘으면 비가 내리고 저녁에는 눈이 내린다. 고개길은 한번 내린 눈으로 차량이 다니기 힘들고 서울에서 오는 정기 버스도 중단된다. 그래서 찿아오는 사람도 드물다. 전방 15사단 다목리, 삼거리 같은 곳은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저녁이면 수피령 고개를 넘어다니던 버스가 끝기고 면회온 사람들이 나갈 수도 없다. 친구를 데리고 면회 온 아가씨가 저녁에 남친을 만나 같이 저녁을 먹고 나면 둘이서 여관으로 가고 남은 친구는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경우도 많다.

 

군복을 입고 근무하는 장교들은 돈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가는 곳마다 관사가 있고 지급되는 군복 몇 벌이면 옷을 살 필요도 없다. 전방 오지에 근무한다면 밖에서 만날 사람도 없고 식사도 부대내 식당에서 해결하고 오로지 저녁회식이 유일한 모임이다. 그래서 돈 쓸 일이 없고 그렇다고 악착같이 모으지도 못하고 가는 곳마다 회식비, 술값으로 펑펑 써버린다. 또 부대내에는 행사가 많다. 간부 전.출입, 지휘관 교체, 검열, 훈련 등은 물론 매년 진급 승진/낙마, 각종 대회 수상, 대규모 훈련후, 부대 체육대회, 각종 시범후, 간부 생일, 설.추석 등 명절, 테니스.축구 등 식사 내기운동, 부대창설일, 년말년시 등등을 핑계대고 간부들이 회식이 잦다. 옛날에는 지휘관이 주관하는 회식자리에서 지휘관이 주는 냉면 그릇의 폭탄주를 무조건 마셔야 되었고 그것이 충성도를 가늠하던 시절이었고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면서 비몽사몽간에 헤메다가 회식이 끝났다. 회식이 끝나면 고스톱이 유행이었고 나중에는 간부들끼리 월남뽕도 유행했다. 년말 종무식, 신년 하례식, 지휘관 생일 등 그날은 회식후 고스톱을 쳤고 지휘관에게 은근히 돈을 잃어 주어야 했다.

 

 

요즘은 여군이 많아 말썽이 자주 나는데, 오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거나 총각 간부가 젊은 여군을 보면 누구나 침을 흘리는 것이 정상이다. 어떤 놈이 채가도 채가는 것이 그당시 여군이었다. 칭피한 이야기지만 장군이 부속실 여군 부사관과 적절한 관계, 부하 장교/부사관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 숙소 당번병이나 운전병이 여군이나 지휘관 부인과의 사건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여자를 특히 밝히는 지휘관은 회식도 반드시 부하 부인들은 동석시킨다. 그러면서 좀 반반하고 끼가 있어 보이는 부인을 숙소 손님접대시 자주 불러서 일을 시키면서 정을 붙인다. 또 남편은 은근히 진급과 평정을 위해서 부인을 지휘관에게 붙여주는 놈도 있다. 남녀관계는 가까이서 자주 만나고 접촉하다보면 정이들고 그러다가 한순간에 둘이 불꽃이 튀어 한몸이 된다. 남편을 장기간 타지역으로 출장을 보내거나 파견보내 버리면 혼자 지내는 부인은 지휘관 숙소로 자주 불려가고 숙소에서 일을 하다가는 결국 사고가 난다. 남녀관계는 육사, 3사, 학사, 학군단 등 출신성분과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관계없이 벌어진다. 또 과거에는 반반하게 잘 생긴 여군을 포함 여자 군무원까지도 퇴근 후 저녁에는 시내 술집으로 야간 알바를 나가서 밤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낮에는 영관급.장군급 등 여러 명에게 꼬리를 치면서 유혹하면 이핑계 저핑계로 같이 저녁 식사를 자주하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사고를 저지르게 되고 그후 여자가 사실을 공개하겠다며 은근히 협박하면서 돈을 요구하면 남자 군인은 꼼짝없이 당하는 꽃뱀사고 같은 경우도 많았다.

 

요즘은 정규사관학교 출신 여군 장교들이 많지만 옛날에는 사회적으로 좀 등급이 낮은 여군들이 주를 이루었다. 남녀가 같이 근무하는 어떠한 직장이라도 항상 남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 전방에서 6개월 이상 철책경계 부대생활을 하다가 후방으로 외출이나 휴가를 나오면 남자 군인들 눈에는 전봇대에 치마만 들러 놓아도 여자처럼 보이는 것이 통상이다. 그래서 과거에 전방 지역 휴가병사들이 대부분 내리고 타고 가던 청량리역 근방 588집창촌이 그토록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이유가 그렇다. 

 

 

 

 

또 군인들은 오지 근무지의 외로움을 주로 회식으로 달래는데 군 회식문화가 사라지지 않는한 군대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 또 요즘 간부들은 퇴근후 모임은 반기지 않는다고 하고 불러도 잘 가지 않는다고 하고 폭탄주도 단호하게 거절한다고 하니 세상도 많이 변했다. 또 문산, 연천, 전곡,운천, 동송, 문혜리, 와수리, 사창리, 다목리, 삼거리, 화천, 양구, 인제, 원통, 고성, 속초, 양양 등 전방 지역 중소도시는 주말이면 병사들이 외출을 하고 수시로 휴가병사들이 들락거리면서 뿌린 돈으로 성장해온 도시들이다. 이제는 군인들을 무시하고 나가라고 한다. 육본에서 관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단체로 구입한 아파트도 군인들이 입주하면 입주민들이 데모하면서 입주를 거부한다고 한다. 대대, 연대급 이상 주둔하는 곳 근방에는 대부분 술집, 식당, 여관이 즐비하다. 전방 좁은 소읍내에 술집과 식당, 여관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전방 사단급 신병교육대, 후방 훈련소, 학교 등 근방에는 다방, 술집이 즐비하고 면회오거나 퇴소하는 신병들이 마구 돈을 뿌리기 때문에 술집 아가씨들이 집단적으로 진을 치고 있다. 이런 곳에는 장교, 부사관들은 별로 대접받지 못한다.

 

그녀들은 통상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생활하다가 직장을 구할 수 없거나, 이혼, 자녀 양육, 가족 부양, 가출, 집창촌 경험, 매춘 등의 이유로 돈을 벌 방법이 없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소개소를 통해 선금을 받고 의정부, 동두천, 포천, 춘천, 화천 등지로 팔려간다. 그리고 다시 3~6개월 정도 지내다가  그 지역 손님이 바닥이 나면 더 전방으로 올라가는 데 바로 앞에 언급한 지역들이다. 그녀들은 다방, 술집에서 기무.헌병, 군청, 파출소, 공사업체간부, 소방서, 산립조합, 지방유지 등 각종 회식장소에 불려가고 노래방, 2차까지도 나간다. 또 손님이 떨어져 있어도 야간 출장도 나가고 며칠씩 동반 여행을 일당을 받고 다니기도 하며 계약결혼을 하여 단기간 동거하기도 한다. 또는 외진 전원주택이나 농촌주택에 혼자 사는 나이든 농촌 지역 홀아비나 독신 남자가 차배달로 부르면 유혹하여 장롱속 목돈을 챙기게 되는 데 여자 구경을 오랫동안 하지 못한 홀아비는 장롱 속에서 100만원 뭉치돈을 꺼내 놓고 섹스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처럼 돈만 주면 못할 게 없는 그녀들은 그곳에서 몇 개월 동안 하던 영업이 한계에 도달하면 손님이 떨어진다.

 

그래서 철책이 처진 관계로 더 이상 북으로 갈 곳이 없어지면 주로 동해안 쪽으로 넘어가는데 동해안에서 다시 남쪽인 속초, 양양, 강릉, 삼척, 정선, 평창, 원주, 포항, 울산, 경주, 부산, 마산 , 창원 방향으로 팔려간다. 그러다가 30대 초.중반이 되어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거나 아니면 눈먼 남자를 만나면 동거를 하거나 과거를 감추고 결혼을 하기도 한다. 아니면 술집 포주가 되거나 젊고 반반한 아가씨 몇 명 데리고 새끼 마담이 되어 다시 대도시 술집으로 진출한다. 서울 강남의 대규모 술집의 새끼마담이 대부분 이런 경우다. 또는 몸매와 얼굴이 좀 아까운 여자는 어디를 가던 남자들이 달려들기 때문에 돈 좀 있는 남자를 잘 골라 만나면 조그만한 카페, 커피전문점, 분식점, 미장원, 맛사지 업소, 술집, 노래방, 식당을 개업하여 그 남자의 애첩이 되거나 아니면 혼자 살면서 식당일을 하거나 청소, 파출부, 주방일, 지방 농어촌 다방.술집, 외진 섬인 낙도 술집, 노숙자 등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4년이 아니라 40년을 교육받아도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대부분 탐욕과 부도덕성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현실에 순응하는 자로 만든다. 이상은 꿈에 불과하고 현실은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이다. 여배우보다 더 잘생긴 수많은 여자들이 전방, 해외, 집창촌에서 매춘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그녀들의 꿈을 이 사회가 무너뜨렸고 가정이 버렸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심한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상아탑에서는 이상을 교육하고 탐구하지만 막상 현실로 나오면 그런 이상을 실현하기에 이 사회는 너무나 장벽이 많고 함정이 많고 쉽게 허락하지 않는 점에 모두가 실망한다. 젊음이들이 미래가 촉망받는 이유는 가능성이 많고 시간이 많고 무엇이던지 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꿈도 많고 희망도 크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꿈을 하나 둘 무너뜨리고 이상은 허물어지며 현실에 적응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가져다준 양극화, 금용경제가 실물경제를 15배 이상 앞지르며 거대해졌고, 개인 및 정부의 부채가 늘어났고, 불안전한 화폐경제가 버블을 불러왔고 실물경제는 결국 거품경제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케인즈의 재정정책과 프리드만의 금용이론, 하이테크의 신자유주의, 종이화페의 불안정성 등이 오늘날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왔으나 지금은 심각하게 병들게 만들고 말았다. 또 인터넷, 스마트폰 등 통신의 급속한 발전으로 정보확산 속도가 실시간으로 빨라졌고 경제유통속도도 극초단파로 변하여 돈과 정보를 보유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알거지로 전락하기 쉬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금융집단이 한 국가 경제를 휘청이게 만들고 연쇄국가부도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달러와 유로화의 싸움에 그리스가 휘청거렸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외환사태도 그러한 금융집단의 횡포로 심각한 국가부도사태를 야기하였다. 세계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며 정부에 이해 움직이는데, 바로 미국의 월가 금융지배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들은 대부분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가진자는 더욱 배불리고 가난한 자는 한방에 무너지는 현대 말기 자본주의 병폐를 우리는 개혁하지 않으면 영원히 가난의 굴례를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시장 자율에 맡기고 방치한 신자유주의 경제는 헤지펀드, 파생상품 등 이미 다양한 심각한 문제점으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과도한 부의 편중 현상은 사회적 역동성을 상실시키고 상대적 빈곤감에 국민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 대기업이 태반이 외국자본에 의해 잠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그런 대기업이 이룩한 순이익이 대부분 외국기업에 배당소득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삼성과 현대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우리 국민들에게 체감되지 않는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비자가 봉이요 국민들이 마루타가 된 지금의 현실을 개인의 이상으로 극복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정부가 적극적인 사회자본주의로 전환하여 국가통제가 어느정도 이루져야 한다. 사회적 기업 육성과 상생, 노사제도 혁신, 유통구조 혁신, 금융제도 혁신 등을 통해 과도한 부의 편중을 막고 복지제도를 확산시키며 균형성장과 자율에서 통제로 시장개입을 주도하고 불합리한 사회시스템을 과감하게 극복하지 못하면 젊은이들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직업 군인들이 불안하다

 



소령서 중령 진급 때 절반은 계급장 못 달고

평균 43세에 전역

6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2014 장교 합동임관식에서 5,860명이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이들 대부분은 야전에 투입된다. 이후로도 주된 거처는 백화점도 학원도 없는 오지이고, 잦은 이사도 불가피할 것이다.

군이 장기(長期) 자원, 즉 직업 군인으로 분류하는 장교는 사관학교 출신들. 이들 2,000여명은 3년여 뒤 모두 대위가 된다. 하지만 소령부터는 경쟁이다. 1,300여명은 중령 계급장을 못 달고 '옷'을 벗어야 한다. 평균 연령 43.2세. 그 중 절반은 실업자로 전락한다.

한국 사회는 2012 대선 후유증을 앓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 탓이다. 그리고, 국정원의 든든한 조력자로 지목된 곳이 바로 군(국군사이버사령부)이었다. 군은 일부'정치군인'의 일탈이라 해명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전역 이후의 전망이 부재한 한국의 군대 조직에서 진급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인사권자의 사욕을 실현하기에 한국 군대만큼 안전한 구조는 없다. 그 구조는 군대로서도 사회로서도 반드시 벗어나야 할 굴레다.

그 굴레에 갇혀, 피 말리는 진급 경쟁의 복마전에 치이면서, 고생만 하다 한창 나이에 퇴출되는 대다수 선량한 직업 군인들….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 봤다.

푸른 옷에 실려간 청춘 뒤 잿빛 자욱한 '취업 전선'

■ 대한민국 직업군인 불안한 사회복귀

군사정권기 유신사무관 특채 등

신분상승·출세 보장 막강 위세

90년대 문민정부 이후 쇠락의 길

한반도 불안에 軍전성기 재연?

"극히 일부일뿐" 가시돋힌 항변

오지근무·가족희생 감내했지만

"명예·자부심은 옛이야기" 한숨만


지난 해 말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박근혜 사퇴' 등을 요구하며 분신한 고 이남종(당시 41세)씨는 2001년 육군 대위로 예편했다. 그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며 부업으로 택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당했고, '편의점 매니저'에 퀵서비스 배달부로 일했다.

학사장교 출신인 이씨가 군 생활 6년 만에 전역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 결정이 자의였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불확실하다. 현행 군 인사시스템상 대위 100명 가운데 30명은 승진 경쟁에서 구조적으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의 사회 복귀 계획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이다.

이씨의 죽음은 얼마간의 정치적 파문을 일으켰지만 파문은 더 큰 파도와 함께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의 불운이 남 일 같지 않은 이들 즉 절대다수의 대한민국 직업군인에게는, 그가 목숨을 걸고 던진 요구 이면의 물음을 던졌다. 그것은 정치적 요구 이전의 존재론적 질문, 본인과 가족의 생계와 관련된 질문이었다.

유신사무관의 추억

"소령님은 군대가 좋으세요?"

"뭬 좋겠니, 발 들여 놨으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거지."

"군인의 꿈은 뭐죠? 장군이 목표인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 별을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건 소수일 게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똑똑한 상관 하나 잘 골라 모시다가, 그 양반 사회에 나가 한 자리 하면 따라 나가는 거란다. 잘 보이기만 하면 그 밑에 한 자리 줄 거 아니냐."

1970년대가 배경인 이기윤의 장편소설 <군인의 딸>에 등장하는 병장과 소령의 대화다. 당시에는 정말 그랬다. 5ㆍ16 쿠데타가 일어난 1961년부터 문민정부가 들어선 93년까지 군대의 위상은 굳건했다. 국방은 국가 최우선 과업이었고, 국방부는 국가 예산의 30%안팎을 독식했다(2014년은 14.4%). 70년대 초반까지 군 장교는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었다. 미국 유학생이 6,000여명에 불과하던 50년대에만 무려 9,000여명의 장교가 미국의 각종 군사학교에서 유학했다. 무장력과 첨단 통신ㆍ수송 수단을 장악한 데다 기업보다 먼저 조직 관리와 경영학 개념을 도입한 것도 군이었다.

군사정권이라는 든든한 배경도 있었다. 장교 임관은 신분 상승과 출세의 가장 안전한 사다리였고, 실제로 예편 군인에게는 초법적 특혜가 주어졌다. 대표적 사례가 '유신 사무관'이다. 사관학교를 나와 대위까지 복무한 장교를 5급(당시 3급) 사무관으로 특채하는 이 제도는 77~87년 총 784명의 유신 사무관을 배출했고, 아직 50여명이 공직에 남아 있다. 당시 승진을 기다리던 주사(6급)들은 그 자리를 '군부정권의 전리품'이라 불렀다.

군의 위상과 영향력은 90년대 문민정부 이후 표나게 하락했다.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 등 영향이었다. 동시에 잠재했던 반감은 커졌다. 올해 초 발표된 김병조 국방대 교수 등의 논문 '군에 대한 인식격차 연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군을 별로 노력하지 않는 권력 집단으로 여기며, 군이 정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4년 전 제대한 한 예비역 해군 중령은 "80년대 위관 장교 시절엔 군복을 입는 게 자랑스러웠지만 영관 때부터는 자연스럽게 군복 차림으로 외출하는 법이 없게 됐다"?말했다.

되돌아온 군 전성시대?

지난해 초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과 불안한 한반도 정세 등 영향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경호실, 국가정보원, 국방부 등 권력 핵심부를 육사 출신들이 장악하면서 말들이 많았다. 은근히 호시절을 기대하는 세력도 있었고, 새로운 군 전성시대를 우려하는 세력도 있었다.

한 군 관계자는 군부가 특권집단도 아닐뿐더러 일부가 군 전체를 대표할 수도 없다고 항변했다. 그는 현 정부 첫 국방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로비스트 활동 의혹으로 낙마한 예비역대장 김병관씨의 예를 들었다. "당시 후보자였던 황교안 현 법무부장관이 2011년 검찰에서 퇴임한 뒤 그 해 9월부터 17개월 동안 로펌 고문변호사로 받은 돈이 16억원인데, 군 최고위 계급 예편자인 김씨가 무기중개업체에서 받은 연봉은 7,000만원이었다. 그게 대한민국 군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비상계획관' 확대도 군의 위세 강화가 아니라 전역 장교들의 취업난 경감책이라는 게 국방부 측 반박이다. 비상계획관은 전시 업무 수행이나 직장민방위대 및 예비군 업무의 협조ㆍ조정에 관한 일 등을 하는 자리로 예비역 군 간부가 주로 간다. 휴전선 접경 지역인 서울ㆍ경기ㆍ인천ㆍ강원에만 있었으나 2012년 8월 개정된 비상대비자원관리법 시행 이후 다른 광역시ㆍ도들로 확대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심증적 비판에 앞서 직업군인들의 현실과 전역자 재취업 실태를 먼저 살펴봐 달라"고 말했다.

군 가족까지 희생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78년 군부정권은 가수 김민기가 짓고 동료 가수 양희은이 부른 '늙은 군인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한다. 퇴행적이고 패배주의적인 가사가 군인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노래 가사처럼 오지를 전전해야 하는 군인과 군인 가족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하다. 자초한 일이든 아니든, 늙은 군인(가족)의 명예와 자부도 까마득한 옛 이야기다.

야전 부대 생활은 사실상 상시 근무 태세다. 전방 근무를 하다 후방 참모직으로 옮긴 이모(36) 소령의 말. "군의 존재 목적 중 가장 큰 게 대기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도발 상황 때 한 발이라도 먼저 나가기 위해 네 인생을, 네 시간을 국가에 바치는 대가로 봉급을 받는 거다. 부하들에게 또 저 자신에게 수없이 되뇌던 말입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들죠." 30년 간 군 복무를 마치고 7년 전 예편한 한 예비역 육군 중령은 "책임감 강한 어떤 장교는 5년 간 집에 못 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희생도 불가피하다. 육군의 경우 10가구 중 3가구는 인구 밀집 지역과 떨어진 외딴 곳에서 지내야 한다. 자녀 교육이나 의료, 주거 등이 모두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수시로 옮겨 다녀야 한다. 국방부 최근 조사에 따르면 육군 중령 33.6%와 대령 61.8%가 10회 이상 거처를 옮겼고, 영관급 장교의 주택 보유율도 20%가 채 안 됐다. 부부 별거율이나 주말부부 비율도 일반 가정과 비교가 안 된다.

진급 못하면 퇴출… 전역 군인 절반이 실업자 '암울한 현실의 벽'

대령 56세·중령 53세·소령 45세

피라미드식 계급별 정년에 압박

두 차례 정년 연장 인사적체 심화도

"승전보다 승진이 중요" 자조까지

직업 교육기간도 복무연한별 차등

정작 필요한 사람은 혜택 못 받아

"전직 지원 체계화하고 배려 시급"


지나친 진급 경쟁 왜

직업 군인에게 진급은 생존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승전보다 중요한 게 승진이라 자조하기도 한다. 일반 기업에도 승진 경쟁이 있고, '직급 정년제'도 있지만 군의 경쟁은 구조적으로 훨씬 치열할 수밖에 없다. 추저분한 아부, 크고 작은 비리의 네트워크, 효율보다는 상급자 심기가 우선시되는 전근대성…, 군의 진급지상주의 폐해는 그만큼 깊고 심각하다

한국군의 계급별 정년 연령은 엄격한 피라미드식, 한 마디로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이다. 대령이 56세, 중령이 53세, 소령은 45세…. 나이 많은 부하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전근대적 위계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 군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소령과 대령의 정년은 50대 중반으로 같거나 거의 차이가 없다. 중령과 소령의 급간 정년연령 편차때문에 장성 진급만큼 간절한 게 중령 진급이다. 진급 누락은 퇴출이다. 소령 전역 평균 연령은 약 43세. 그들 가운데 약 절반은 실업이라는 현실과 대면해야 한다.

거기에는 역사적 배경도 있다. 육군의 진급 경쟁은 육사 38기 이후 더 치열해졌다. 78년 입교해 82년 임관한 육사 38기는 유신 사무관 특채 모집 요강을 보고 입교한 첫 기수다. 37기 정원보다 20% 이상 확대된 377명의 생도를 선발했는데, 그들 차례였던 88년 유신 사무관제도가 폐지되면서, 70~80명의 인사 적체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89년, 93년 두 차례 군 인사법 개정으로 대령 정년이 50세에서 56세, 중령 정년이 47세에서 53세로 연장되면서 군에 남는 선배들이 늘었다. 한 군 당국자는 "지나친 진급 경쟁과 인사 적체는 군 내 세력 간 상호 비방과 보신주의, 불필요한 조직 확대 등으로 이어져 전력 약화까지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갈 곳 없는 전역자

28년 간 복무하고 2010년 해군 중령으로 제대한 홍모(56)씨는 전역 후 현재까지 대리운전 기사와 병원ㆍ법무사 사무장, 식당 매니저 등을 전전하고 있다. 수입은 월 100만원 안팎이다. 월 320만원의 연금을 수령하고 있지만 아내와 대학생 두 아들까지 네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빠듯하다. 얼마 전 홍씨의 아내는 백화점 판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취업지원기관이 권하는 경비지도사나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딴다 해도 군 이력과는 무관한 일을 해야 하는 데다 경력을 쌓기에도 이미 늦은 나이죠. 국가 훈장과 미국 훈장까지 받았는데도 사회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네요. 군 업무에 매진하느라 사회에서 통할 만한 전문 자격증 하나 따두지 못한 게 후회됩니다." 전역자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선택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보험 영업이다. 2011년 육군 대위로 전역한 김모(33)씨도 현재 월세 4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기거하며 보험설계사로 일한다. 월 수입은 100만~200만원선. 그는"제대 직후부터 이 일을 해왔는데 벌써 세 번째 직장이다. 실적 저조가 이직 이유다. 이제 인맥도 거의 바닥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군 장교의 평균 전역 연령은 45.6세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 연령인 53세보다 7~8살 젊다. 자녀 교육과 결혼, 내집 마련 등 큰 돈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20년 이상 복무해야 받는 연금(소령 기준 170만원 안팎)으로는 생계 유지하기도 빠듯하다. 전역 군인 4명 중 1명은 연금 혜택도 없다.

군 전역 간부의 재취업률은 날로 하락세다. 군에서 5년 이상 복무한 뒤 2012년 제대한 장교 및 부사관 중 그 해 취업자는 34.9%로 전년에 비해 6.4%포인트 줄었다. 전체 제대 군인 6,191명 중 2,158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2008년 이후 2012년까지 5년 간 전역한 군 간부의 누적 취업률도 52.6%였다. 제대한 지 5년이 지난 군 전역 간부 중에서도 10명 중 4명은 실업자 신세다. 오한두 국방부 전직지원정책과장은 "10년 이상 장기 복무한 전역 간부의 나이가 40대 전후임을 감안할 때 같은 연령대의 사회 경제활동 비율에 비해 취업률이 30~40% 낮은 수준이다. 군 간부 특기 중 대다수가 사회 직업과 맞지 않아 재취업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직업안정성 보장해야"

정부는 5년마다 중기 군인복지기본계획을 세운다. 군인이 임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전역 후 대책도 있다. 현재 직업 군인 전직 지원 업무는 이원화돼 있다. 제대 1년 전을 직업보도 기간으로 정하고 전직기본교육과 전직컨설팅, 심화교육 등을 받게 한다. 제대 이후에는 국가보훈처 산하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통해 취ㆍ창업 워크숍과 교육 과정을 수강할 수 있고 구직 상담 및 취업 정보도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복무 기간이 길수록 직업보도반 교육 기간도 길어지는 식이어서 정작 준비가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덜 돌아간다. 국방부는 2009년부터 병력 부족 등을 이유로 복무 연한에 따라 교육 기간을 5~12개월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은 "장기 복무 후 제대하는 군인 중 가장 취약한 계층은 2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도 못 받고 취업률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상사와 대위"라며 "직업보도반 교육 기간을 예전처럼 10년 이상 장기 복무자 모두에게 1년씩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년 조정 방안을 제안했다. 정주성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은 "현행의 지나치게 차별화된 계급별 정년 연령에서 계급 간 차이를 대폭 줄이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영진 KIDA 국방운영연구센터장은 "군인 정년 연장은 단기적으로는 군인 인건비 부담을 늘리겠지만 장기 복무 제대 군인의 연금 부담은 감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지원도 체계화해야 한다. 송인주 가족세대통합연구소 공동소장은 "제대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인턴십 제도를 시행하고 이를 군 복무 기간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역 예정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전직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군이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홍선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제대 군인의 전직이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 정책 지원과 제대 군인 개개인의 노력 및 의지, 제대 군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 등 공동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민과 군의 상호 교류를 늘리고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현역 군인의 지역 주민화, 군 시설의 개방, 인적ㆍ물적 교류의 생활화 등이 그 예"라고 했다.

한편 주요 선진국의 경우 군인이 전역 후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군 복무 시작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직업 역량 개발을 돕는 한편 민간 기업 등과의 협력 체계도 잘 갖춰놓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군 가산점제 등 직접적 지원 외에도 경험ㆍ훈련 인증서를 개발해 군 경력이 사회에서 연장되도록 했고, 프랑스는 군 복무 중 사회 자격증 취득을 장려하고 있다. 일본도 군 훈련성과를 평가해 인증하는 비즈니스ㆍ커리어 검정제도를 시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