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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한국의 역사 1,032 : 일제강점기 77 (태평양 전쟁과 일제의 패망 3)

 

 

 

한국의 역사 1,032 : 일제강점기 77 (태평양 전쟁과 일제의 패망 3)

 

           

 

 

 

 

미드웨이 해전

 

미드웨이 해전(영어: Battle of Midway, 일본어: ミッドウェー海戦 (かいせん))은 1942년 6월 5일(미국 시간 6월 4일) 태평양 전략 요충지인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려던 일본 제국 항모전단이 벌떼처럼 달려든 미국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궤멸되어 참패를 당한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바꾼 해전으로 흔히 회자되는 전투이다.

 

미드웨이 해전은 산호해 해전에 이어서 처음부터 전투함의 포격전 없이 항공모함 함재기로 치러진 두 번째 전투였다. 서로 직접 보는 일 없이 오직 항공기만으로 승부를 냈다. 이 전투에서 미국은 일본의 항공모함 4척을 격침시켜 태평양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반격으로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미드웨이 해전
(태평양 전쟁의 일부)
SBDs and Mikuma.jpg
날짜 1942년 6월 4일 ~ 1942년 6월 7일
장소 미드웨이 섬
결과 미국의 결정적 승리.
교전국
US Naval Jack 48 stars.svg
미국
Naval Ensign of Japan.svg
일본 제국
지휘관
US Naval Jack 48 stars.svg 체스터 니미츠
US Naval Jack 48 stars.svg 프랭크 플레처
US Naval Jack 48 stars.svg 레이먼드 A. 스프루언스
Naval Ensign of Japan.svg 야마모토 이소로쿠
Naval Ensign of Japan.svg 나구모 주이치
Naval Ensign of Japan.svg 야마구치 다몬
Naval Ensign of Japan.svg 야나기모토 류사쿠
병력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7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5척
함재기 233기
지상전투기 127기
항공모함 4척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8척
함재기 248기
수상기 16기
피해 규모
항공모함 1척,
구축함 1척,
307명 사망
항공모함 4척,
순양함 1척,
3,057명 사망
지도
미드웨이 해전 전체 상황도
미드웨이 해전 전체 상황도

 

 

배경

 

일본이 산호해 해전에 이어 미드웨이 공략을 결심하게 된 것은 둘리틀 폭격대의 일본 본토 공습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의 군 지휘부는 괴링의 큰 소리 못지않게 감히 외국군이 일본 본토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 자신감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태풍 같은 자연 현상이나 일왕에 대한 미신적인 신봉 때문이 아니라, 당시 일본과 전쟁 중이던 교전국 중에 일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일한 두려움이었던 소련은 일본이 건드리지 않는 한 일본에 대해 적대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근해와 태평양의 제해권은 일본이 쥐고 있었고,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의 연합군 해군(주로 영국군)은 인도 방어에만 급급한 상황이었으며, 미국도 진주만 공격의 여파에서 회복이 덜 되었을 뿐 아니라, 항공모함도 적었다. 또한 태평양을 가로질러 날아올 수 있는 대형 폭격기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둘리틀 공습이 감행되었고, 이 공습이 일본에 준 충격은 매우 컸다. 13세기 고려의 공격 이후 한 번도 외국군에게 본토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던 일본은 적군의 항공모함이 그렇게 가까운 곳까지 들어와 공격 부대를 날려 폭격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혹했고, 외해의 방어선을 더 멀리 확장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최전방 기지는 미드웨이 섬에 있었고, 야마모토 제독은 이곳을 지목했다. 미드웨이 섬에는 이미 해병대해병 항공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미국은 이곳의 무장을 확충하는 중이었다.

 

야마모토 제독은 이곳을 점령하여 일본의 최전방 기지로 삼아 예상되는 미국의 일본 본토 공격을 저지할 거점으로 삼고자 했다.

 

 

계획과 준비

 

일본의 작전 계획

일본은 미드웨이를 공격하기 위해서 알류산 열도를 함께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다. 야마모토 제독은 이 계획에 “M1 계획”이라는 암호명을 부여했고,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었다.

  1. 알류샨 열도의 애투 섬키스카 섬을 점령함으로써 알래스카를 거쳐 북쪽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시선을 북쪽으로 돌려 주목표인 미드웨이 섬에는 신경을 못 쓰게 하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알류샨 열도에 대한 공격은 미드웨이에 대한 공격보다 앞서 이뤄지게 했다.
  2. 미드웨이 점령 : 미드웨이 섬을 점령하여 하와이 및 미국 본토 공격의 발진 기지로 삼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의도했던 대로 미국 해군의 작전 거점을 미국 본토로 철수시킴으로써 일본 본토에 대한 위협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3. 잔존 미국 태평양 함대의 격멸 : 이번 공격에서 야마모토는 지난 번 진주만 공격 당시 놓쳤던 미국의 항공모함들을 잡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미드웨이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물론, 미국 태평양 함대가 출동하지 않으면 손쉽게 미드웨이 섬을 점령할 계획이었다.

자신감에 찬 일본군은 미드웨이 점령 이후의 작전 계획도 수립했다. 미드웨이를 점령하면 전함 부대는 일본으로 복귀하고, 나머지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으로 구성된 기동 함대를 그대로 남태평양으로 보내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 섬피지 제도를 점령하고 오스트레일리아시드니멜버른을 폭격하고, 8월에는 하와이를 점령한다는 계획까지 수립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일본이 요구하는 협상안에 서명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야마모토의 생각이었다.

 

이 작전은 본래 일본 대본영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반대한 작전으로, 둘리틀 공습 이전에 수립된 계획이었다. 야마모토는 진주만 기습이 성공한 후에도 태평양의 미국 항공모함들이 늘 신경 쓰였고, 이들을 찾아내어 모두 침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본영은 진주만 기습 이후 계속 “남방,” 즉 동남아시아와 남서 태평양 공격에 가용한 모든 자원을 투입했다. 애초 전쟁 목적이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에 대한 대안으로 동남아시아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확보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레이시아 반도싱가포르, 파푸아 뉴기니, 필리핀, 인도네시아관동군 및 중국 침략군을 제외한 병력을 모두 남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위협적인 배후를 남겨둔 채 계속 남쪽으로 진격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차였다. 이런 상황에서 둘리틀 공습이 벌어졌고, 미국의 항공모함들이 건재함을 과시하는 듯한 산호해 해전을 치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파들도 작전 결행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게 되었다.

 

 

 

전투가 있기 몇 달 전에 찍힌 미드웨이 섬의 사진. 보통 미드웨이 섬 사진으로 이 사진이 많이 알려져 있다. 정면에 보이는 활주로가 있는 섬이 이스턴 섬이다.

 

 

일본군의 암호, 해독되다.

1942년 4월, 하와이 주둔 미국 해군 정보부의 암호 해독반 블랙 쳄버는 일본군의 무전이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미 일본 해군의 암호 체계인 JN-25를 해독하고 있던 해독반은 ‘AF’라는 문자가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AH는 진주만을 뜻했었다. 암호 해독반의 지휘관이었던 44세의 조제프 로슈포르(Joseph Rochefort) 중령은 ‘AF’를 ‘미드웨이 섬’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정찰기가 “AF 근처를 지나고 있다.”라는 내용의 무선 보고를 해독한 적이 있었던 로슈포르 중령은 정찰기의 비행경로를 추정한 결과 AF가 미드웨이 섬이라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

 

로슈포르 중령은 체스터 니미츠 제독에게 일본군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것과 AF가 자주 언급된다는 점, 그리고 AF가 미드웨이 섬일 것이라는 보고를 한 후, 미드웨이 섬의 담수 시설이 고장 났다는 내용의 가짜 전문을 하와이로 평문 송신하게 하자고 건의했다. 3월에 미드웨이 섬 근처에 일본 해군의 비행정이 정찰 왔던 것을 알고 있던 니미츠 제독은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사실 미드웨이 섬의 정수 시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틀 후, 도청된 일본군 암호 중 “AF에 물 부족”이라는 내용이 해독되었다. 이로써 일본군의 다음 공격 목표가 미드웨이 섬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미국의 전략

암호 해독으로 일본의 작전 목표를 알게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니미츠 제독은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인 상황이 고민이었다. 전함도 한 척도 없이 항공모함을 제외하면 중순양함이 최대 전투함이었던 미국 태평양 함대가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던 야마토호를 비롯한 11척의 전함과 항공모함 6척을 주축으로 한 일본군 함대와 포격전을 벌이면 미국은 전멸할 수도 있었다. 전체 함정 숫자에서 3 :1의 열세였던 니미츠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미드웨이로 접근하는 일본군 함대를 먼저 찾아내어 함재기로 기습하는 것뿐이었다. 여기에는 미드웨이 섬에 증강 파견된 해병 항공대도 동참해야 했다. 니미츠 제독은 함대의 집결지를 미드웨이 섬 북동쪽으로 지정하고, 일본군의 위치를 찾기 위해 미드웨이 북서쪽에서 남서쪽에 이르는 해역을 부챗살 모양으로 장시간 비행이 가능한 PBY 카타리나 비행정을 동원하여 찾도록 했다. 이 비행정들은 미드웨이 섬에서 발진했으며, 암호명을 “Strawberry”(딸기)라고 했다. 일본군은 미드웨이 섬 북서쪽에 집결할 예정이었다.

 

 

양측의 전력

 

 

 

일본 해군 항공모함 아카기

 

미드웨이 공략은 역시 나구모 주이치 제독의 항모 기동 부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주변 해역에 대한 제공권을 장악하고, 미드웨이 섬의 항공 전력을 파괴하면, 이어서 중순양함대가 지상군을 상륙시켜 미드웨이 섬을 점령한다는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작전에 투입된 일본군의 전력은 다음과 같다.

  • 제1기동 부대 (나구모 주이치 중장) :
    • 항모 아카기호
    • 항모 카가호
    • 항모 히류호
    • 항모 소류호
    • 전함 기리시마호
    • 전함 하루나호
    • 순양함 3척, 구축함 12척, 급유선 5척
  • 알류산 공략대인 제5함대 (호소가야 보시로 중장)
    • 항모 류조호
    • 항모 준요호
    • 순양함 3척, 구축함 5척
 

 

야마모토 제독의 기함, 전함 야마토
  • 야마모토 제독의 주력 함대 및 상륙 부대
    • 항모 즈이호호
    • 항모 호쇼호
    • 전함 야마토호
    • 전함 나가토호
    • 전함 이세호
    • 전함 무츠호
    • 전함 휴가호
    • 전함 후소호
    • 전함 야마시로호
    • 전함 공고호
    • 전함 히에이호
    • 기타 순양함 3척, 구축함 21척, 병력 수송선 12척

기타 잠수함 21척을 비롯한 대략 150여 척의 대함대였고, 항공모함 함재기 조종사들은 진주만 기습 공격을 겪은 경험 많은 베테랑이었다. 이밖에 미드웨이 섬에 상륙할 병력으로는 일본 해군 육전대 2,800명과 육군 3,000명 등 5,800명을 준비했다.

 

5월 27일, 나구모 제독의 함대가 순양함 나가라호를 선두로 히로시마 남쪽 하시라지마에서 출발했다. 이틀 뒤인 5월 29일에 야마모토 제독의 함대가 출발했다. 함대는 공격 예정일로 잡힌 6월 4일까지 작전 개시 예정 지역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었고, 무선 침묵을 유지하며 항해했다. 이 무선 침묵이 나중에 일본군 패배의 한 요인이 되었다.

 

 

미국

 

 

 

산호해 해전의 피해를 급히 수리 중인 미 해군 항공모함 요크타운호

 

암호 해독반의 활약으로 일본의 다음 공격 목표를 알게 된 니미츠 제독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미국 태평양 함대의 전력은 누가 봐도 일본 함대를 상대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미국 태평양 함대는 진주만 기습의 여파로 전함이 한 척도 없었고, 항공모함은 3척에 불과했다. 더욱 당시 사용할 수있는 항공모함이 엔터프라이즈호넷이 전부였다는 점이다. USS 요크타운 (CV-5)은 3주 전 산호해 전투에서 일본의 폭격으로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니미츠 제독은 산호해 해전의 피해를 수리하기 위해 진주만으로 입항한 요크타운에 3일간 핵심적인 부분만 수리하라고 지시해야 했다. 요크타운호는 원래대로라면 3개월이 걸릴 수리 일정을 단 이틀 동안 1,400여 명을 동원하여 항해와 전투기 발진 등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핵심 부분만을 수리한 채 플레처 소장의 17기동 함대(Task Force 17, TF 17)에 배속되어 5월 31일 진주만을 떠났다. 이밖에 순양함 8척, 구축함 14척, 잠수함 19척이 가용한 전력이었다. 그밖에 새러토가가 있었지만, 1월 초에 일본군 잠수함에 피격된 뒤 줄곧 샌디에이고에서 수리 중이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6월 1일 샌디에이고 항을 떠나 전속력으로 항해했지만, 미드웨이 전투가 끝난 후인 6월 8일에나 하와이에 도착하여 이번 전투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나머지 미국 항공모함들은 대서양에서 작전 중이었다.

 

 

 

일본 해군 항공모함 카가를 공격하고 귀환한 SBD-3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니미츠 제독은 함대를 크게 2개 함대로 나누었다.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윌리엄 홀시 제독을 대신하여 레이먼드 A. 스프루언스 소장이 엔터프라이즈넷으로 편성된 16 기동 함대(TF 16)의 사령관이 되어 5월 29일 진주만을 떠났다. 니미츠 제독이 일본 잠수함의 정찰을 우려해서였다. 잭 플레처 소장은 응급 수리한 요크타운호를 중심으로 한 17 기동 함대(TF 17)를 이끌고 5월 31일 진주만을 떠났다. 요크타운호에는 수리 작업을 맡고 있던 기술자 상당수가 그대로 탑승하여 항해 중에도 계속 배의 이곳저곳을 고쳤다. 니미츠의 우려대로 일본군 잠수함들은 6월 1일 진주만에 침투했으나, 항공모함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전체 지휘는 선임인 플레처 소장이 맡았다. 무선 침묵을 유지해야 했고, 멀리 떨어진 함대와 작전의 지휘는 역시 현지의 지휘관이 맡아야 했으므로 니미츠 제독은 함대가 하와이를 떠난 뒤에는 사후 보고만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모든 것은 플레처와 스프루언스 두 제독에게 달려 있었다.

 

한편, 미드웨이 섬 자체의 방어력도 강화되었다. 브루스터 F2A 버팔로 전투기 26대, SB2U 빈디게이터더글러스 SBD 돈틀레스 급강하폭격기 50대, 그러먼 F4F 와일드캣, 보잉 B-17 플라잉 포트리스, B-26 머로더 등으로 구성되었고, 수비대는 미국 해병대 2,138명, 해군 및 조종사 1,494명 등 총계 3,632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미드웨이 섬의 수비대 전력을 해병대 750명과 항공기 56대 정도로 알고 있었다. 미드웨이 섬은 이스턴 섬과 샌드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드웨이 전투 당시에는 이스턴 섬에만 활주로가 있었다. 샌드 섬에는 전투 후에 활주로가 건설되었고, 현재도 사용 중이지만, 이스턴 섬의 활주로는 현재 사용하고 있지 않다. 항공대 전력은 증강되었지만, 미군 조종사의 숙련도는 일본군에 비해 떨어졌고, 태평양 전쟁 초기 미군의 전투기 역시 제로센을 필두로 한 일본군 전투기보다 성능이 떨어졌으므로 큰 전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암호 해독으로 알류산 열도도 일본의 공격 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니미츠 제독은 순양함 5척, 구축함 14척으로 구성된 8 기동 함대(TF 8)를 파견했다. 항공모함은 파견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알류샨 열도는 양동 작전에 가까운 조공이었으므로 니미츠 제독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워싱턴의 해군 수뇌부는 알류샨 열도가 주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 섬임을 확신하고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전투 경과

 

5월 26일 ~ 6월 3일

5월 26일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호넷호가 산호해 해전을 마치고 진주만에 도착했다. 니미츠 제독은 이들에게는 재보급을 마친 후 즉시 미드웨이 섬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5월 27일 (일본 시간)
일본 시간으로 5월 27일에 나구모 제독의 함대가 일본을 출발했다. 이 날, 미국 항모 요크타운호가 진주만의 건선거(乾船渠)에 들어왔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술자 1,400여 명이 즉시 응급 수리를 시작했다.
5월 28일
2척의 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 및 호넷)과 순양함 6척, 구축함 9척으로 이루어진 스프루언스 제독의 16 기동 함대(TF 16)가 진주만을 떠나 미드웨이로 향했다. 예상되는 일본군 함대는 90여 척이었다. 속도가 느린 구식 전함은 미국 서해안을 경계하도록 뒤에 남겨졌다. 니미츠는 그의 상대인 야마모토로부터 현대 해전에서 항공력의 우위를 잘 배운 터였다.
5월 30일
도쿄의 해군 본부는 진주만에서 미드웨이로 미국 항공모함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미군 조종사들의 교신을 청취했다. 즉시 도쿄의 해군 본부는 이 사실을 야마모토 제독에게 무전으로 알렸다. 야마모토는 구로시마 가마히토 소장에게 이 사실을 나구모 중장에게 알리라고 했으나, 무선 봉쇄를 풀면 미군이 아군의 존재를 알게 된다는 이유로 구로시마 소장은 반대했다. 나구모 함대와 야마모토 함대는 대략 555킬로미터가량 떨어져서 항해 중이었다. 구로시마 소장은 나구모 제독도 그 전문을 수신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마모토가 결국 무전을 강행할 것을 지시했지만, 구로시마 소장은 독단적 판단으로 이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구로시마 소장의 추측과 달리 나구모 중장은 도쿄로부터 오는 무전을 전혀 수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구모 중장은 미군 항공모함들이 산호해 근처에 있으며 요크타운은 피해가 너무 커서 수리 중일 것이라는 출항 전의 불분명한 정보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5월 31일
미국 함대가 진주만을 출항했고, 미드웨이 섬에서는 새벽에 PBY 카탈리나 비행정을 서쪽으로 최대 행동반경인 1,100킬로미터까지 정찰 비행을 하면서 일본군 함대를 찾았다. 최대 38대가 동원되었고, 일정한 비행경로를 따라 부챗살 모양으로 동시에 정찰 비행을 했다. 미군은 일본군 함대가 6월 2일에서 3일 사이에 미드웨이 인근에 도착한다고 알고 있었고, 먼저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6월 1일
일본 해군 잠수함들이 진주만을 정찰했다. 그러나 미국 항공모함 기동 함대들은 전날 이미 출항한 상태여서 일본군 잠수함들은 항공모함을 비롯한 미군 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 해군 지휘부는 이 때문에 미국 해군이 미드웨이 동북쪽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6월 2일
나구모는 기함 아카기 호에서 참모들과 전략 회의를 열었다.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과 겐다 미노루 중령 등 진주만 공격을 입안하고 지휘했던 쟁쟁한 이력의 참모들이 나구모를 보좌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정보로 분석해 보건대 나구모와 참모들은 미군 항공모함 기동 부대는 없다는 전제 하에 공격 계획을 세웠다. 나구모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를 세웠다.
  1. 미국은 일본의 계획을 모르며, 아군의 위치를 모른다.
  2. 근처에 미국 항모 기동 부대는 없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 나구모와 참모들은 다음과 같이 작전 계획을 세웠다.
  1. 미드웨이를 기습 공격해서 항공기와 활주로를 대파하고 상륙 작전을 상공에서 엄호한다.
  2. 이후 미드웨이로 접근할는지 모를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격파한다.
6월 3일
6월 3일 아침, 잭 레이드(Jack Reid) 소위가 조종하는 카탈리나 정찰기가 일본군 함대를 발견했다. 첫 번째 보고는 정확한 함종(艦種)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지 적의 함대를 발견했다고만 보고하여 지휘부의 애를 태우게 했고, 추가 정찰 보고를 통해 함대 구성이 알려졌다. 레이드 소위가 발견한 일본군 함대는 곤도 노부나케 중장이 지휘하는 상륙 전대였다. 이치기 키요나오 대좌가 지휘하는 28 보병 연대를 주축으로 한 5,800여 명의 상륙 부대를 태운 수송선 12척과 수송선을 호위하는 순양함 6척으로 이루어진 함대였다. 미드웨이 동북쪽 500킬로미터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플레처 제독과 스프루언스 제독의 16, 17 기동 함대는 침묵을 유지하며 나구모 제독의 항공모함 함대를 끈기 있게 기다렸다. 이날 저녁, 샌드 섬의 비행정 기지에서 이륙한 카틸리나 비행정 편대가 어둠을 이용하여 엔진을 끈 채 활강하여 바다에 착수한 다음, 곤도 함대에 어뢰 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2척의 수송선에 약간의 피해를 주었으나 항해에는 지장이 없었다.
 
 

6월 4일 : 전투 당일

 
2시 45분
나구모 함대는 미드웨이 서북쪽 460킬로미터 해상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각 항공모함은 함재기 발진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공격대가 출격 준비를 하는 동안, 나구모 제독은 공격대 발진에 앞서 정찰기를 보내 미드웨이와 인근 해역을 수색하기로 했다. 항모 아카기와 가가에서 각 1기, 순양함 도네와 지쿠마에서 영식 수상 정찰기 2대, 전함 하루나에서 1대 등 총 7대를 오전 4시 30분에 출격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순양함 도네에서 발진 예정이던 정찰기는 사출기 고장으로 30분 지연되어 오전 5시 정각에 출발했고, 지쿠마에서 출발한 정찰기 1대는 엔진 고장으로 중도에 귀환했다. 나머지 정찰기들도 날씨가 좋지 않아 원래 예정했던 것에서 절반 정도만 정찰하고 복귀해야 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순양함 지쿠마 호에서 출발했다가 엔진 고장으로 돌아온 정찰기가 예정 경로로 정찰 비행을 했으면 미국 항공모함 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나구모 제독은 공격받기 전까지 미국 항공모함의 존재를 모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가장 큰 패인이 되었다.
4시 45분
일본군 항공모함 4척으로부터 1차 공격대가 출발했다. 나구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절반인 108대만 출격시키고 나머지는 항모에 잔류시켰다. 공격대 지휘관은 진주만 공격에도 참가한 도모나가 죠이치 대위였다. 1차 공격대는 항공 엄호를 위한 미쓰비시 A6M 영식 함상 전투기 36대, 수평 폭격 임무를 담당하는 97식 함상 공격기(“함공”으로 약칭했다) 36대, 99식 함상 폭격기(급강하 폭격기) 36대로 구성되었다. 원래는 항모 아카기의 비행대장은 진주만 공격을 지휘한 후치다 미츠오 중좌였으나, 그가 출항 직전인 5월 27일에 맹장염으로 함을 떠나면서 도모나가 대위가 지휘를 대신하게 되었다. 1차 공격대의 임무는 미드웨이 폭격이었다.
5시 45분
도모나가 대위가 지휘하는 공격대가 미드웨이 섬으로 향하고 있던 중, 미드웨이 섬에서 새벽에 출발한 정찰기 1대가 이 공격대를 발견했다(05시 20분). 공격대를 호위하던 일본군 전투기가 이 비행정을 발견하여 추격했고, 카탈리나 정찰기는 즉시 구름 속으로 숨어 이른바 “고양이와 쥐” 게임(game of cat and mouse), 즉 숨고 쫓는 숨바꼭질을 벌였다. 이 정찰기가 미드웨이 섬에 일본군 공격대를 보고한 것이 5시 45분이었다. 보고가 있은 후 10분 뒤인 5시 55분에 미드웨이 섬에 설치된 레이더에서도 이 공격대의 접근을 포착했고, 즉시 모든 전투기에 발진 명령이 떨어졌다. B-17 폭격기 편대는 일본 전투기가 접근할 수 없는 고공으로 대피했다. 5시 57분에는 처음 도모나가 공격대를 발견한 정찰정이 다시 일본군 항공모함 함대를 미드웨이 서쪽 250킬로미터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다.
6시 05분
정찰정으로부터 상세한 보고가 미국 항공모함 함대로 보내졌다. 항모 요크타운과 호넷, 엔터프라이즈 등에서 드디어 정찰기를 발진시켰다.
6시 15분
미드웨이 섬에 주둔하고 있던 VMF 221 소속 브루스터 F2A 버팔로 전투기와 그러먼 F4F 와일드캣 전투기가 완전히 출격을 마치고 미드웨이 섬 상공에서 대기했다. 최초로 도모나가 공격대를 발견한 비행정은 일본군 편대 후방에서 어둠을 이용하여 추격하고 있었다. 아직 미드웨이 섬 주변은 동트기 전이라 어두웠다. 일본군 편대가 미드웨이 섬 55킬로미터 상공까지 접근하자 카탈리나 비행정이 조명탄을 투하해 도모나가 공격대의 위치를 알렸다. 이 조명탄을 신호로 고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팍스 소령이 지휘하는 미군 전투기 27대가 일본군 편대를 덮쳤다. 이 기습으로 일본군 공격 편대 2대가 격추되고 여러 대가 피탄되었으나, 즉시 호위 임무를 수행하던 제로 전투기 편대가 반격에 나섰다. 나머지 폭격대는 계속 미드웨이로 향했다. 미군기 27대 중에서 팍스 소령을 비롯한 17대가 격추되고, 귀환한 10대 중 8대는 파손이 심해 폐기 처분되어야 했다. 남은 전투기는 겨우 2대였다.
6시 35분 ~ 7시 00분
제로 전투기와 미군 전투기가 공중전을 벌이는 동안 나머지 폭격기 편대는 미드웨이 섬을 폭격했다. 격납고 및 발전소를 비롯한 여러 부대시설을 폭격했으나 도모나가 대위는 나구모 제독에게 추가 공격이 필요하다고 타전했다. 1차 공격대의 피해는 수평 폭격기 2대, 급강하 폭격기 1대, 제로 전투기 2대가 전부였다. 도모나가 공격대는 방향을 돌려 항모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7시 05분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출격 준비에 들어갔다. 어뢰 공격기 29대, 급강하 폭격기 67대, 호위 전투기 20대가 1시간 내에 출격할 예정이었다. 이때 미군 함대와 일본군 함대 간 거리는 280킬로미터였다. 준비가 끝난 호넷부터 VT-8 어뢰 공격 비행대(VT-8) 소속 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 15대,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35대 및 전투기 10대를 발진시켰고, 엔터프라이드도 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 14대,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35대, 전투기 10대를 발진시켰다. 모두 119대였다.
7시 10분
나구모 제독은 도모나가 대위의 보고를 읽고 있었고, 상공에는 함대를 엄호할 제로 전투기가 비행 중이었으며, 갑판에는 무라다 시게하루 소좌가 지휘할 2차 공격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무라다 소좌의 편대는 혹시 모를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이나 전함에 대비해 어뢰를 장착한 상태였다. 이때 폭탄 대신 어뢰를 장착한 B-26 폭격기와 해병 항공대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들이 일본군 항공모함에 공격을 가해왔다. 이들은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항공기였다. 이들의 공격은 대기 중이던 제로 전투기들에게 쉽게 격퇴되어 모두 격추되었고, 어뢰는 쏴보지도 못했지만, 나구모 제독은 도모나가 대위의 보고가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7시 15분
나구모 제독이 결정적인 명령을 내렸다. 2차 공격을 위해 무라다 소좌의 공격대가 장비하고 있던 어뢰를 빼고 다시 폭탄을 달라고 명령한 것이다. 아직 정찰기들로부터는 어떠한 보고도 없는 상태였다. 재무장은 30분이 소요되었다. 이 무렵에 미군 항공모함들은 모든 함재기를 출동시키고 있었다.
7시 30분
도네에서 30분 늦게 출발했던 정찰기가 미군 함대의 존재를 보고해 왔다. 그러나 보고는 불확실해서 항공모함이 있는지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나구모 제독은 즉시 항공모함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무전으로 내렸다.
7시 55분
미드웨이 섬에서 출동한 로프톤 핸더슨(Lofton R. Henderson) 소령이 지휘하는 해병 항공대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항모 히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핸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16대의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전투기 호위도 없이 히류에 돌진했으나 아카기, 히류 그리고 전함 기리시마 등 주위 함정에서 쏴대는 대공 포화와 전투기 편대에 의해 10대가 격추되고 6대가 겨우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핸더슨 소령은 피탄되자 항모 가가에 충돌을 시도했으나 가가에 못 미쳐 바다에 추락했다.
8시 10분
도네의 정찰기가 순양함 5척, 구축함 5척으로 이루어진 미군 함대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8시 15분
고도 20,000 피트 상공에서 비행하던 B-17 폭격기 편대가 일본군 항모를 공격했지만, 폭탄을 명중시킨 폭격기는 하나도 없었다.
8시 20분
도네 정찰기가 다시 미군 항모로 보이는 함정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때 미드웨이에서 날아온 해병 항공대 소속의 11대 폭격기가 다시 일본군 항공모함을 공격했지만 역시 소득은 없었다.
8시 25분
미국 해군 잠수함 노틸러스 호 가 일본군 전함을 목표로 어뢰를 발사했다. 그러나 속도가 느린 미군 어뢰를 일본 함대는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와중에 도모나가 대위의 1차 공격대가 함대로 돌아왔다. 연료가 떨어져가던 도모나가 대위의 공격대는 항모에 착함해야 했다. 나구모 제독과 겐다 미노루 중좌,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은 고민에 빠졌다. 현재 일본군 항공모함 비행갑판에 대기 중인 전투기들은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도모나가 공격대를 착함시키려면 갑판에 현재 대기 중이던 전투기들은 모두 갑판 아래 격납고로 내려 보내야 했고, 미드웨이 공격도 당연히 늦춰질 수밖에 없다. 착함한 전투기 대신 공격대를 내보내려면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 항공모함들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폭탄을 빼고 어뢰 등으로 무장을 교체해야 했다. 히류에 탑승하고 있던 야마구치 제독은 갑판에 대기 중인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이륙시켜 장착 중인 폭탄으로 항공모함을 공격하자는 의견을 보내왔다.

 

결국 나구모 제독은 기존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하고 갑판에 대기 중이던 폭격기들을 도로 격납고로 내려 보내고 도모나가 대위의 공격대를 착함시킬 것을 결정했다(08시 35분). 도모나가 대위의 공격대가 착함하고 연료를 재보급 받는 동안 기존 공격대는 다시 어뢰로 바꾸어 다는 작업을 하고 항공모함 공격을 준비하도록 했다. 연료 재보급과 어뢰 재장착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다시 모두 출격시켜 미국 항공모함을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함상 공격기는 800킬로그램짜리 육상 공격용 폭탄을 빼고 833킬로그램짜리 어뢰를 다시 장착하고, 함상 폭격기는 250킬로그램짜리 함선 공격용 폭탄을 다시 장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도모나가 대위의 공격대가 항모에 착함하기 시작한 것은 08시 37분이었다.

8시 30분
플레처 제독이 지휘하는 TF17의 요크타운호에서 급강하 폭격기 17대와 어뢰 공격기 12대가 출격했다.
8시 40분
미국의 공격 편대가 일본군 항공모함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해상에 도착했을 때 바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격대 지휘관들은 몰랐지만, 나구모 함대는 요크타운 쪽으로 북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호넷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미드웨이 방향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2개 어뢰 공격기 편대는 북쪽 수평선에서 연기를 발견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 방향은 일본 항공모함들의 항로 후방에 해당했다. 미군의 공격은 전혀 협력이 되지 않았다.
9시 10분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어뢰 공격대가 나구모 함대를 발견했다.
9시 20분
일본군은 항공기들이 갑판에서 폭탄 재장착과 연료 보급을 받는 도중 공격해오는 미군 폭격기들을 발견했다.
9시 25분
CV-8 호넷에서 발진한 TBD 디베스터 어뢰 공격기로 구성된 VT-8 어뢰 공격 비행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전투기의 호위를 전혀 받지 못했으며, 저속·저공으로 일본군 항공모함에 접근했다. 상공에서 초계 비행 중이던 일본의 전투기들에게 그들은 아주 쉬운 목표였으며, 미군 어뢰 공격기들은 한 대씩 격추되었다. 15대의 공격기와 30명으로 구성된 이 공격대에서 조지 H. 게이(George H. Gay) 소위(Ensign)만 살아남았다. 게이 소위는 그날 구명조끼에 의존하여 바다에서 일본 해군 항공모함들이 격침당하는 광경을 목도했으며 30시간 뒤 미군 PBY 정찰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9시 40분
호넷에 이어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VT-6 어뢰 공격 비행대가 일본군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 역시 앞서의 VT-8의 전철을 밟았다.
9시 45분
CV-6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일본군의 구축함 아라시를 발견했다. 비록 공격대는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찾지 못하고, 연료가 떨어져가던 중이었지만 편대장 웨이드 매클러스키 중령과 맥스 레자일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뒤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이 일본군 구축함은 전함 기리시마 공격에 실패한 SS-168 노틸러스와 추격전을 벌이다가 끝내 격침시키지 못하고 최고 속도로 나구모 제독의 항모 기동 함대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미군 비행대는 일본군 구축함을 뒤따라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비행하기 시작했고, 얼마 뒤에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발견했다.
10시 00분
CV-5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VT-3 어뢰 공격 비행대가 세 번째 공격에 나섰다. 이들 역시 초계 비행 중이던 일본군 제로 전투기와 대공 화력에 VT-8, VT-6과 똑같은 결과를 빚었다. 그러나 이들의 등장으로 전투 초계 중이던 일본군 전투기들은 전투 초계를 항모 기동 함대의 남동쪽으로 옮겼고, 높은 하늘을 무방비 상태로 남겨두었다.
10시 25분 ~ 10시 30분
일본군 항공기들이 자리를 비운 틈에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대와 요크타운의 급강하 폭격대가 일본군 항공모함 중 아카기, 가가, 소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웨이드 매클러스키(Wade McClusky) 해군 소령이 공격에 나서 약 4419미터 상공에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의 항공모함에는 재급유 및 재무장을 위해 항공기, 정비 요원, 연료와 어뢰, 공격기에서 떼어낸 폭탄이 즐비했다. 제일 먼저 나구모 제독이 탑승하고 있던 아카기가 공격을 당해 폭탄 한 발이 어뢰 창고를 직격했다. 가가는 폭탄 4발이 연료 창고에 맞아 폭발을 일으켰고, 소류는 화재가 발생하여 엔진이 멈춘 후에 미국 잠수함이 격침시켰다.

전투가 이렇게 전개되고 있을 때 야마모토 제독이 이끄는 주력 함대는 항공모함 기동 함대로부터 대략 55킬로미터 떨어진 후방에서 미드웨이로 향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야마모토 제독은 후퇴냐 전진이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오전 11시, 회의를 소집한 야마모토는 공격을 계속할 것을 결심했다. 아직 일본군에는 2척의 항공모함이 있었으며, 야마모토의 주력 함대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또, 알류샨 열도로 파견된 공격 함대에도 항공모함 2척(류조준요)이 남아 있었다. 이들 항공모함으로 공격을 계속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10시 40분, 히류의 1차 반격
 

 

일본군 어뢰 공격기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요크타운
이 공격에서 항모 히류는 공격을 받지 않고 홀로 살아남았다. 히류가 소속된 2항공 전대는 야마구치 다몬 소장이 지휘하고 있었다. 공격을 피한 일본군 함대는 히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야마구치 소장은 10시 40분, 고바야시 미치오 대위에게 급강하 폭격기 18대와 호위 전투기 6대를 이끌고 미국 항공모함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들 히류에서 발진한 급강하 폭격기들은 요크타운을 발견하여 공격을 시작했다. 공격이 시작될 무렵 요크타운은 급강하 폭격기들을 착함시키면서 전투기들에게는 연료 등을 급유하고 있었다. 일본 비행기들의 접근을 레이더로 알아낸 요크타운은 즉시 전투기들을 이함하고 급강하 폭격기들은 다른 배로 보내고 대공 전투를 준비했다.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에서도 전투기 28대가 요크타운을 지원하기 날아왔다. 항공모함 3척에서 발진한 전투기들과 수상함들의 대공 사격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급강하 폭격기들은 요크타운에 2발의 폭탄을 명중시키며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요크타운은 아직 함을 조종할 수 있었다. 오후 2시까지 기관실 등의 응급 수리가 마무리되어 18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비행갑판도 수리된 상태였다. 일본군 급강하 폭격기 18대 중 13대는 격추되었으며, 공격대 지휘관 고바야시 대위도 전사했다.
12시 45분 ~ , 히류의 2차 반격과 두 항공모함의 최후
이 무렵 항모 소류에서 발진했던 정찰기가 불타고 있는 소류를 대신하여 항모 히류에 착함하면서 상황을 보고 했다. 야마구치 소장은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지휘했던 도모나가 대위에게 어뢰 공격기 10대와 전투기 6대를 이끌고 미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도모나가 대위는 12시 45분에 히류를 출발했다. 도모나가 대위의 어뢰 공격기는 왼쪽 연료 탱크가 파손되어 오른쪽 연료 탱크에만 급유를 받은 뒤 이륙했다. 미국 항공모함을 찾던 일본군은 요크타운을 발견했으나, 수리가 끝나 호위함에 둘러싸인 요크타운을 다른 항공모함으로 착각했다. 폭탄 명중으로 야마구치 소장은 요크타운이 대파되었다고 추측했지만, 요크타운 수리반의 능력은 야마구치 소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도모나가 대위는 공격을 명령했고, 어뢰 2발이 요크타운에 명중했다. 폭탄에 이은 어뢰 2발이 요크타운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도모나가 대위 자신은 요크타운의 갑판에 충돌했다. 도모나가 공격대가 요크타운에서 물러갈 즈음, 미군 정찰기가 히류를 발견했다. 플레처는 즉시 히류 공격을 명령하여 오후 4시에 엔터프라이즈에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 20대, 호넷에서 16대가 이륙했다.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20대 중 10대는 원래 요크타운의 함재기였다. 도모나가 공격대의 생존기들이 히류에 착함한 것은 4시 30분이었다. 야마구치 제독이 재공격을 명령하여 일본군은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남은 전력은 전투기 6대, 어뢰 공격기 4대, 급강하 폭격기 5대가 전부였다. 오후 5시,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히류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폭탄 4발이 갑판에 명중했고, 히류는 폭발과 함께 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공격 대기 중이던 나머지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목표를 바꿔 전함 하루나를 공격했다. 5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한 호넷 공격대는 하루나와 순양함 지쿠마를 공격했다. 더 이상 공격을 할 필요가 없다고 미군은 판단했던 것이다. 6월 5일 새벽 2시 30분, 야마구치 소장은 퇴함을 명령하고 자신과 히류의 함장 가쿠 도메오는 침몰하는 히류에 남았다. 8시 20분, 히류는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한편, 왼쪽으로 26도 기울여진 요크타운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엘리엇 벅마스터 함장이 6월 5일 오후 2시 55분에 퇴함을 명령했다. 요크타운은 6월 6일에도 그 상태로 바다에 떠 있었고, 니미츠 제독은 요크타운을 진주만으로 예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 척의 항공모함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 일본군 잠수함 이-168이 요크타운을 공격했고, 6월 7일 아침에 배가 뒤집히며 침몰했다.

 

결과

 

일본의 미드웨이 공략 실패는 미군 함공모함을 유인하여 격멸하려던 아먀모토의 전략과는 달리 미군 항공모함의 존재를 발견하는 데 실패하였고 불필요한 무선침묵으로 명령전달이 제대로 되지 못했던 점, 그리고 미드웨이 섬 상륙에 치중하여 함재기들의 포격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미드웨이 북동쪽에 대기하던 미군 함대는 끈질기게 일본 함대의 발견에 공을 들였고 미드웨에 주둔하던 항공기들이 상공에 대피하여 대기하면서 일본군을 공격하는 동안 일본 함대 발견과 공격에 전력투구하였다. 일본군이 미드위에 섬 폭격에 관심을 둔 가운데 미군은 일본 함대 위치 파악에 노력하였다. 한마디로 미드웨이 섬이나 알류산 열도 두 섬은 일본 항모를 발견하여 공격하기 위한 희생양이 된 셈이다.

 

미군은 이러한 가운데 일본 함모를 발견하자 즉시 공격 제대별 함재기를 축차적으로 투입하여 일본 함공모함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막대한 항공기 피해에도 불구하고 집중적인 함모 공격으로 침몰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해전에서 미군은 열악한 전투력과 부족한 항공모함 수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집중한 결과 막대한 전과를 거둘 수가 있었지만 일본군은 미군의 이목을 집중시킬 요량으로 조공으로 알류산 열도 섬 공략에 항모를 두 척이나 분산 투입하였던 점에서 전투력 집중을 가하지 못했던 점이 패인으로 보인다.

 

미드웨이 해전은 산호해 해전에 이어서 처음부터 전투함의 포격전 없이 항공모함 함재기로 치러진 두 번째 전투였다. 서로 직접 보는 일 없이 오직 항공기만으로 승부를 냈다. 이 전투 결과 미국은 일본의 항공모함 4척을 격침시켜 태평양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반격으로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알류샨 열도 공략전

 

알류샨 열도로 향한 호소가야 중장의 일본군 북방 함대는 예정대로 알류샨 열도 공략 작전(AL 작전)을 개시했다. 6월 3일, 1차 공격을 시도했으나 안개 때문에 일본 해군 함재기들은 일부는 귀환하고, 일부는 더치하버의 미군 시설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6월 4일 오후, 호소가야 중장은 야마모토 제독으로부터 항공모함 함대를 미드웨이로 급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차 공격에 나섰던 함재기들이 돌아오자 호소가야 제독이 알류샨 공격을 중단하고 미드웨이로 항로를 변경하려던 순간, 야마모토 제독으로부터 미드웨이로 오지 말고 계속 알류샨 열도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의미가 없다고 야마모토는 판단한 것이다. 호소가야 제독은 6월 6일에 공격을 재개하여 이투 섬키스카 섬일본 해군 육전대(해병대) 12,250명을 상륙시켜 두 섬을 점령했다. 일본은 이 두 섬의 점령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를 일반 국민들에게는 숨겼다.

 

하지만 알류샨 열도 전투 중 일본군의 제로센 1기가 더치하버 동쪽 아쿠탄 섬에 불시착했다. 조종사는 착륙 과정에서 사망했다. 미국이 이 불시착한 전투기를 수거해가 철저히 분석했고, 전쟁 후반 일본군 전투기들을 압도하는 성능을 가진 그러먼 F6F 헬켓 같은 전투기들을 만들어냈지만, 일본은 이 사실을 몰랐다.

 

 

 

*                          *                                  *                                 *

 


태평양해전의 분수령인 미드웨이해전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가가 쓴 쉽게 설명된 내용을 첨가한다. 참고하시길...... 

 

 

 

미드웨이 해전 해설

 

* 야마모토 태평양을 넘보다.

1942년 5월, 둘리틀 특공대의 일본 본토 기습 폭격에 이은 산호해 해전의 결과 일본 해군은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이 점점 큰 위협이 되고있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거의 무승부로 끝난 산호해해전에서 일본해군은 포트 모레스비를 점령하지 못하는 전략적인 과오를 범했으며 이 사건은 그렇다 치더라도 둘리틀 폭격대에 의해서 일본의 수도 도쿄에 폭탄이 떨어진 것에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해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대체 우리해군은 어떻게 일본 본토 가까이까지 미항모가 접근해서 폭격기를 발진시키도록 아무것도 몰랐느냐?'고 비난했다. 결국 일본해군이 이룩한 진주만 공습의 영광이 살아남은 미항공모함들 때문에 빛이 바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일본해군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는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시 연합함대의 정예기동부대를 태평양 한복판으로 출동시켜 눈엣가시같은 미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들을 수장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구에게는 바라던 상황과도 같았다. 야마모토는 미국의 저력을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주만 기습 이후에 5개월 가까이 일본해군이 남방작전에 치중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한번 대규모 함대를 출동시켜 진주만의 대승을 재현해서 미해군에게 돌이킬수 없는 타격을 입혀야 전쟁에 이길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미해군의 항공모함이 태평양에서 활동 하는한 일본해군에게는 계속 위협이 된다는 야마모토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야마모토의 이러한 생각은 남방작전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계속되는 승전보가 날아들어 일본군내에 전승무드가 지배하게되면서 가려지게 되었고, 그 자신조차 이 작전을 언제 결행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둘리틀 특공대의 본토 공습과 산호해 해전이라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 것이다. 일본군부는 특히 둘리틀 특공대의 공습에 크게 동요하고 있었으며 미태평양 함대가 아직 일본해군에게 위협이 된다는 야마모토의 주장을 상기했다. 결국 야마모토의 새로운 대규모 작전이 표면에 떠올랐고, 아무도 그가 주장하는 태평양함대의 격멸작전에 토를 달지 않았다.

* 연합함대 다시 태평양으로

야마모토가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던 미항공모함 격멸작전이 결행될 곳은 바로 미드웨이라는 작은 산호섬이었다. 이곳은 하와이에서 북서쪽으로 1150마일(약2,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섬으로서 미군이 웨이크도를 일본해군에게 빼았긴후에는 미군의 최서단에 위치한 거점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작은 섬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두함대가 정면대결하는 대해전의 배경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이 작은 섬은 훗날 태평양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 될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해군 미드웨이 공략도 

 

야마모토와 그의 심복들이 구상하고 있었던 미해군 격멸작전인 'MI 작전'의 개요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일본해군이 동원가능한 전투함을 총출동시키되 이를 크게 3개의 부대로 나누어 전 태평양을 무대로 작전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잠수함 여러 척이 미드웨이와 진주만의 중간지점에 미리 포진하여 미해군의 동태를 시시각각 보고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진주만에서 미드웨이로 향하는 미함선들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MI 작전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 부대는 진주만 공습을 성공시킨 나구모 주이찌 중장이 지휘하는 제 1 기동부대로서 정예 항공모함 4척을 이끌고 태평양으로 진출한 후 미드웨이섬을 공습하여 이 섬에 배치된 미군의 항공전력과 해병대를 무력화시켜 일본 상륙부대가 성공적으로 미드웨이를 점령하도록 지원해야 하며 후에 미드웨이를 탈환하기 위해서 접근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항공모함들을 공격해서 격멸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서 호소가야 중장이 지휘하는 부대가 북방에 위치한 알류션열도를 점령하기 위해서 출동할 계획이었다. 이것은 알류션 열도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얻는 데에 더해서 미해군이 일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양동작전의 의미가 있었다. 얄류션 열도 공략은 미드웨이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결행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만일 미태평양 함대가 이 양동작전에 속아서 얄류션 열도쪽으로 출격하면 나구모의 기동부대는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미드웨이로 접근하는 미함대를 요격할 예정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대는 다나까 소장이 지휘하는 미드웨이 상륙부대로서 상륙병력을 싣고서 남쪽으로부터 미드웨이로 접근한 후 나구모의 기동부대가 미드웨이를 공습하여 무력화 시키면 즉시 상륙병력을 상륙시켜 미드웨이를 손에 넣을 예정이었다.

또한 이러한 주요 역할을 맡은 부대의 후미에서 전함 야마또를 기함으로하는 야마모토 자신이 지휘하는 연합함대 본대가 모든 작전을 지원하면서 전투가 일본의 승리로 기울기 시작할 경우 즉시 전면에 나서서 모든 것을 마무리한다는 광대한 계획이었다. 작전회의에 참가한 일본해군의 장성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만일 작전이 생각대로만 진행된다면 일본해군의 연합함대는 드넓은 태평양을 무대로 미해군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을 것이며, 태평양 전쟁의 승기가 완전히 일본해군에게 넘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신중한 몇몇 참모들은 이 작전의 규모가 너무 광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과연 시간표대로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었고, 완전하게 미군의 정보망을 기만했던 진주만 기습 때와는 달리 미해군이 어떻게 대응해올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연합함대를 너무 분산시켜 작전에 투입하는 것은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제기했지만, 진주만기습의 성공 이후에 전일본국민의 칭송을 한 몸에 받으며, 일본군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 된 야마모토에게는 감히 반기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야마모토가 모르는 것도 있었다. 얼마전의 산호해 해전에서 미항모 렉싱턴이 격침되고 요크타운도 침몰했거나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결국 야마모토는 태평양에서 작전하는 미항모는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2척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 2척의 항공모함들도 일본 정보부의 자료에 의하면 현재 미드웨이에서 멀리 떨어진 솔로몬 제도 근처에서 작전중인 것으로 되어 있었다.
 

산호해에서 돌아오는 항모 요크타운으로부터 몇 개월간은 작전이 불가능하며 대규모 수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 미태평양 함대에게 남은 항공모함은 항모 호넷과 엔터프라이즈 두 척밖에는 없었다. 사실 미군은 항공모함 와스프와 레인저를 더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 항공모함들은 대서양에서 독일군에 대항해 작전 중이었으므로 태평양쪽으로 돌릴 여력이 없었다. 또하나의 항공모함 사라토가는 42년 1월에 일본 잠수함으로부터 어뢰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는 센디에고 해군기지에서 수리 중이었는데 거의 수리는 끝나가고 있었지만 6월초까지는 도저히 진주만으로 도착하기 힘들었다.

이 시점에서는 일본해군의 항모들이 4배이상의 수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일본해군이 다시 전력으로 덤벼들 경우 과연 미태평양 함대가 이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는 불확실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니미츠는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군정보부가 일본해군의 암호인 JN-25를 완벽하게 해독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은 정보력에서는 일본해군을 앞서고 있었다. 특히 산호해 해전에서 이 암호해독 능력이 얼마나 정확한지가 증명되어 전투에 참가한 일본해군의 모든 함선들의 명단이 예측한 그대로였으며, 일본해군의 작전의도를 완전히 파악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니미츠는 이후 암호해독반의 보고서가 날아올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본해군의 움직임을 간파하고자 했다.

한편, 미해군의 정보부에는 블랙챔버라는 별명을 가진 암호해독팀이 있었는데 이 팀의 팀장은 암호해독의 귀재라고 불리는 해군 소령 요셉 로시로프였다. 그는 암호와 정보처리에 관해서는 둘째라가면 서러워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바로 이사람 요셉 로시로프 소령이 이끄는 블랙챔버가 일본해군의 의도를 바로 감지했다. 그는 일본해군의 무선교신량이 5월 중순이후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본해군이 뭔가 또 다른 대규모 작전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특히 무선 교신의 내용에 자주 나타나는 AF라는 곳에 대해 주목했다. 암호해독반의 분석에 의하면 AF라는 지점에 일본해군이 대규모 공습을 감행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었다. 로시로프는 고민에 빠졌다.

'일본놈들이 뭔가 음모를 꾸미는 모양인데... AF는 과연 어디란 말인가? 분명히 미군이 주둔하고있는 전략적 요충지중 하나일텐데...'

로시로프는 지난 수개월간의 일본해군의 무선통신내용을 모두 가져오도록 한 후 부하들과 함께 A자로 시작하는 지명들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A는 태평양의 섬들에 붙여지는 기호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섬인데... 하와이인가? 놈들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하와이로 쳐들어 올모양인가? 그게 아니라면 최서단의 미드웨이일지도 모른다. 이를 어떻게 알아낸다?'

로시로프는 개전이래의 모든 일본군의 무선통신에 나오는 지명을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진주만을 가리키는 AH와 프렌치프리게이트 숄을 가리키는 AG는 알아냈지만 여전히 AF는 생소한 기호였다. 로시로프는 얼마전 일본의 한 정찰기가 'AF 근처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라는 무선보고 내용에 주목하고 이 정찰기의 비행경로를 추론해본 결과 아마도 AF는 미드웨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로시로프는 일본해군이 조만간 대규모 침공작전을 개시할 것이라는 내용과 AF라는 곳이 공격목표가 틀림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를 받은 해군 수뇌부에서도 AF라는 곳이 과연 어디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AF가 미드웨이나 하와이 둘중에 하나라는 것까지는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었다. 로시로프는 아무래도 미드웨이쪽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쪽을 동시에 방어할만한 여력이 없었던 미해군에게는 일본해군의 공격목표지점을 확실하게 알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정보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전력을 미드웨이쪽으로 집중했다가 일본해군이 다른 곳을 공격해온다면 큰 낭패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 솔로몬의 지혜

이때 로시로프의 뇌리에 한가지 묘책이 떠올랐고, 로시로프는 상기된 얼굴로 즉시 니미츠 제독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즉시 니미츠의 허가를 받아 작전을 시작했다.

로시로프는 원래부터 미드웨이의 식수사정이 여의치 않아 해병대병사들이 자주 무선을 통해서 불평했던 점을 떠올리고 이를 이용해서 일본군을 기만하려고 했다. 그는 일본군의 감청을 피하기 위해서 해저통신 케이블을 이용해서 미드웨이에 주둔중인 해병대에게 '미드웨이의 식수공급 시설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무전을 암호가 아닌 평문으로 여러차례 발신하도록 명령했다. 이 명령을 받은 해병대 무전수는 영문도 모르고 명령에 따랐다. 사실 식수공급 시설은 별탈없이 잘 가동되고 있었다.

이후 로시로프의 정보팀은 온신경을 집중하여 일본군의 통신을 감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암호문이 탐지될 때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날무렵 로시로프의 부하 중 한명이 일본군의 무선을 도청하다 말고 갑자기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울렸다.

"소령님! 축하드립니다. AF는 미드웨이가 맞습니다. 소령님이 정확하게 맞추셨군요!"

그의 손에는 미군의 무전을 도청하고 있던 일본군의 야전 무선통신소에서 본국사령부로 보고하는 암호문의 내용이 해독되어 있었다. 그 암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해군기지에 보고함, 현재 AF는 식수시설이 고장을 일으켜 식수가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로시로프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는 즉시 니미츠 제독을 찾아가 의기양양하게 보고했다. 드디어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일본해군의 공격목표는 바로 미드웨이였던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도

                           

 

* 출정

드디어 일본해군의 의도를 감지해내고 있던 미해군 정보팀 블랙챔버는 1942년 5월 말경이 되자 수많은 정보를 종합해서 이번 침공작전에 참가하는 일본해군 함선들의 목록과 함대의 세력, 그리고 공격 개시일이 6월 4일 이라는 것까지 거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본해군이 알류션 열도를 동시에 공격해서 미드웨이 침공의도를 감추려는 양동작전을 구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도 드러났다.

한편, 미해군이 침공의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일본해군은 야마모토의 명령으로 항공모함 4척을 주축으로한 모든 공격함대 소속의 함선들을 1942년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속속 출항시켰다. 이들은 출항하는 즉시 일본근해에서 합류해 공격목표인 미드웨이를 향해서 항진했다. 공격개시일로 예정된 6월 4일까지 모든 공격함대는 공격위치를 확보해야 했으므로 무선침묵을 유지한채로 미드웨이를 향해 직진항로를 택했다.

* 손자병법

군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하는 명서 손자병법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다.' 이 문구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고대 이래의 전쟁에서 대부분의 승인과 패인을 단순명쾌하게 설명하는 문구일 것이다. 20세기 태평양의 제해권을 좌우할 미드웨이의 대결전을 앞두고 있는 미해군과 일본해군의 상황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선 미해군은 일본해군에 비해서 열세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적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있었다. 뛰어난 정보팀의 능력으로 정보전에서 미해군은 일본해군을 앞서고 있었던 것이다.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은 알류션 열도에 대한 공격이 미드웨이를 가리기위한 위장공격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되자 순양함 5척과 구축함 14척으로 구성된 제 8 기동부대를 알류션 근처로 파견해서 일본해군의 공격에 대응하게 했다. 물론 이 함대는 항공모함이 없기 때문에 만일 항모를 수반한 일본함대와 마주친다면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주공이 미드웨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던 니미츠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니미츠의 고민은 오히려 미드웨이에서의 전략이었다. 일본해군의 주공이 미드웨이로 오고 있는 것을 알지만 미해군의 전력이 일본함대와 정면대결을 벌이기에는 아무래도 열세였기 때문이었다. 얼마전의 산호해 해전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양측의 함대가 마주쳐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진다면 양측이 모두 큰 피해를 입게될 것이지만 결국은 수적으로 우세한 일본함대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항공모함이었다. 산호해 해전에서 증명된 것처럼 일본해군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실력이 미해군의 전력에 비해서 대등하거나 우세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크타운까지 참전시켜도 항공모함의 수는 3척, 이는 일본의 4척에 비해서 열세였다. 만일 일본항공모함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더라도 서로 접전을 벌이다가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이 전멸한다면 항공모함이 없는 상태에서는 미해군의 함선들이 일본해군 함대와 근접에서 맞서서 포격전을 전개해야 했는데 전함이 단 한척도 없이 중순양함을 주축으로하는 미 태평양 함대가 11척의 전함을 투입한 일본함대와 교전하게되면 아마도 태평양은 미 태평양 함대의 공동묘지로 변하게 될 것은 자명했다. 결국 니미츠는 이 전투에서 미해군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본해군이 오는 길목을 기다리고 있다가 전격적으로 기습해서 우선 일본해군의 항공모함들을 먼저 잡아내는 방법만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다.

니미츠는 우선 미드웨이의 방어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는 부족한 항모를 대신하여 미드웨이에 항공기를 배치함으로써 불침항공모함 역활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다. 일본군의 공격목표가 미드웨이라는 것이 확실해지자마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드웨이로 운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즉시 26기의 F2A 버팔로 전투기와 7기의 와일드캣 전투기가 수송선에 실려 미드웨이로 향했고 그뒤를 이어 일본함대를 공격하기 위한 B-17 폭격기 18기와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 뇌격기들이 미드웨이 섬으로 날아갔다. 이로서 미드웨이섬은 150여기의 항공기들로 가득찼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충원된 전력이어서 조종사들은 경험이 부족한 신참들이 대부분이었다. 섬은 온통 참호와 철조망으로 둘러쳐졌고 해병대원들은 일본군의 상륙작전에 대항할 수 있도록 벙커와 개인호를 여기저기에 만들어 두었다.
 

다음단계로 니미츠는 항모 호네트와 엔터프라이즈를 추축으로하는 제 16 기동부대를 급히 진주만으로 불러들였다. 둘리틀 폭격대의 작전을 지원하고 돌아오던 제 16 기동부대는 5월 26일 진주만으로 입항하여 다급하게 전투물자를 보급받은 뒤에 5월 29일 미드웨이 방면으로 황급하게 출동했다. 그러나 이때 제 16 기동부대의 사령관 할지 제독이 갑작스럽게 발병한 피부병이 악화되어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였으므로 할지 제독의 추천을 받은 레이먼드 스플루언스 소장이 지휘권을 넘겨받아 미드웨이 작전을 지휘하게 되었다. 사실 스플루언스는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지휘해본 적이 없는 순양함대의 지휘관이었으나 할지 제독은 평소부터 그의 능력을 높이사서 이번 작전에 자신을 대신해서 나서도록 추천했던 것이다.

 

 



한편 미드웨이 작전에 투입할 비장의 카드인 제 17 기동부대의 항공모함 요크타운은 산호해해전에서 일본군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상태로 5월 27일 간신히 진주만에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다. 요크타운의 피해는 누가봐도 2-3개월간의 수리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러나 니미츠는 항모 2척만 가지고는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요크타운이 돌아오기 전부터 3일안에 전투가 가능한 정도로 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해군의 기술자 1500여명이 진주만에 소집되에 요크타운이 입항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요크타운이 닻을 내리자마자 일제히 함내로 승선하여 대대적인 수리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기적이 일어났다. 3일밤낮을 뜬눈을 지새워가면서 수리작업에 몰두한 기술자들은 함재기 운용이 가능한 상태까지 요크타운을 보수해낸 것이다. 결국 요크타운은 제 16 기동부대가 진주만을 떠난 하루뒤인 5월 30일 진주만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제 16 기동부대와 합류하기 위해서 중순양함 2척과 구축함 5척을 거느리고 전속력으로 미드웨이를 향해 항진했다. 물론 항진하는 중에도 많은 수의 기술자들이 함내에서 수리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작전에 참가하는 모든 미해군의 장교들과 수병들은 이번에 조국의 운명이 걸린 대전투가 벌어질 것이며, 기필코 진주만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결의가 가득했다. 장교들은 부하들을 모아놓고 결전의지를 다졌고, 조종사들은 일본항공모함들을 수장시키겠다는 각오로 전술을 토의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많은 조종사들이 희생될 것이라는 것이라는 니미츠 제독의 훈시에 모두들 비장한 각오로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한편 일본해군의 상황은 미해군과는 정반대였다. 사실상 미해군에 비해서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던 일본해군은 6개월전의 그 신중함이 사라진 상태였다. 싸우기만 하면 승리를 했던 무적의 연합함대 제 1 항공함대의 항공모함 아까기, 가가, 소류, 히류의 승조원들은 들떠 있었다. 사실 야마모토를 위시한 제독들은 이번 작전이 공격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일체 비밀로 하라는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지만, 장교들부터 수병들까지 모두들 '미드웨이를 공격하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모이기만 하면 화제거리였다. 진주만을 기습할 때의 그 완벽한 통제와 기밀유지는 찾아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우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또다시 이룩할 대승전에 대해서 도취된 상태였다.

더구나 일본해군의 정보부는 미해군의 전력에 대해서 잘모르고 있었던 데다가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상신했다. 그들의 정보에 의하면 미해군의 기동 가능한 항공모함은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2척이었다. 산호해 해전에서 항공모함 렉싱턴을 침몰시켰고 요크타운도 침몰했거나 아니면 간신히 항해만 가능할 정도로 대파시켰다는 보고를 그대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위치에 대한 정보도 틀려있어서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현시점에서 남태평양 솔로몬제도 쪽에서 작전중이기 때문에 진주만으로 돌아올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올려진 상태였다.

 

또한 미드웨이의 방어력이 강화된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이전의 정보에 의존하여 약 50여기의 구식 항공기들만 배치되어 있고 방어 병력도 얼마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일본해군은 객관적인 전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적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사실 일본해군은 잠수함들을 미드웨이와 진주만의 중간 지점에 파견하여 만일 미해군의 항공모함이나 함대가 미드웨이로 향해 접근하는 경우 즉시 보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양측의 항공모함들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항하여 미드웨이로 출발했기 때문에 일본의 잠수함들이 목표 지점에 도착한 6월 1일에는 이미 미해군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이 지점을 지난서 미드웨이의 북동쪽에서 항진중이었다. 따라서 일본 잠수함들은 미함대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미해군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무선보고를 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요인이 일본해군의 지휘부에게 미해군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 일본함대 접근중

출항한 지 이틀째인 6월 1일, 나구모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미드웨이로 항진중이었다. 신중하기로 소문난 나구모는 아까기의 함교에서 참모들을 모아놓고 전략을 토의했다. 나구모는 미항모들의 위치에 대해서 매우 신경질적이었다. 그는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이 정말로 근처에 없을 것인가를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참모회의에서 여러 가지 정황을 분석해볼 때 아무래도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은 이번 전투에 참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나구모는 마음속으로 공격방침을 굳혔다. 나구모가 구상하고 있던 공격 작전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예정대로 미드웨이를 기습공격해서 항공기들과 활주로를 대파하고 일본해군의 상륙작전을 상공에서 엄호하도록 한후에, 미드웨이로 접근할지 모르는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격파하도록 한다.

아까기의 함교에는 진주만 기습작전을 입안하고 작전에 참가했던 해군 참모부의 핵심 인물들인 구사까 류노스께와 겐다 미노루가 나구모를 보좌하고 있었다. 이들도 진주만에서의 그 신중했던 모습과는 달리 약간은 들떠있는 상태로 모든 것을 낙관하고 있었다.

결국 작전일을 2일 남겨놓은 상태에서 일본함대는 미드웨이를 향해서 질주했고,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은 그들의 작전대로 일본함대가 걸려들기만을 바라면서 매복위치로 접근중이었다.
 

 

* 적을 먼저 찾아라! *

1942년 6월 2일, 바다에 깔린 짙은 안개속을 뚫고서 일본해군의 최정예 항공모함 4척이 동쪽을 향해서 항진하고 있었다. 기함 아까기의 함교에서는 나구모 제독이 참모들을 불러모아 놓고 미드웨이 침공을 위한 세부작전을 토의중이었다. 신중한 나구모는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의 정확한 위치를 보고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함대를 책임지고 있는 제독으로서 미항공모함들은 아마도 남태평양에서 작전중일 것이라는 추정만으로는 아무래도 불안했던 것이다.


"도대체 미해군의 항모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답답하군... 겐다 중령,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현재 가장 믿을 수 있는 첩보에 의하면 진주만에는 미항모들이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 잠수함들도 진주만과 미드웨이 사이에서 미해군의 함정은 한 척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가 미드웨이를 공격하고 난 뒤에야 서둘러서 접근할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답답하구만, 본대와 무선교신도 할 수 없고... 도대체 야마모토 제독의 본대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별다른 위험한 정보가 없으니 우리에게 연락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미함대에 대한 정보중에 특별한 변동사항이 있다면 연락이 왔을 것입니다."

나구모 함대의 참모들인 구사까 류노스께 소장과 겐다 미노루 중령은 나구모의 우려에 대해서 잠시 고민을 하면서도 어차피 미드웨이 공략작전은 일본군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한편, 나구모의 항모 기동부대의 550km 후방에서는 야마모토 제독이 전함 야마또의 함교에서 미드웨이 작전을 총 지휘하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진주만에서 발신되는 미해군의 무선교신량이 갑자기 증가했다는 내용의 보고를 요꼬스까 해군기지로부터 받았다. 그는 혹시 미해군이 일본해군의 의도를 눈치챈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고 즉시 엄중한 무선침묵을 깨고 나구모 함대에게 이런 사실을 경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참모진들은 만일 이런 내용을 나구모의 함대에 무전으로 알릴 경우 오히려 미군에게 감청당할 위험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결국 참모회의 결과 아무래도 미해군이 일본해군의 작전을 예측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져 결국 나구모 함대에게는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일본해군 사령부의 생각과 달리 일본해군의 공격작전일을 알고 있었던 미해군은 일본함대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6월 2일에서 3일 사이에 일본해군의 함대가 미드웨이 근처 1000km 이내로 접근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므로 미드웨이에서 속속 발진한 카탈리나 비행정들이 미드웨이를 중심으로 부채살 모양으로 퍼지면서 정찰을 시작했다. 그들은 니미츠로부터 다음과 같은 명령을 받고 있었다.

'일본함대는 분명히 올 것이다. 가능한 먼거리에서 그들을 발견해야 한다. 모든 정찰기 조종사들은 항속거리가 혀용하는 한까지 날아야 하며, 일기가 좋지 않더라도 돌아오지 말고 정찰을 계속 할 것!'

이 필사적인 정찰작전에 동원된 카타리나 비행정은 무려 38기나 되는 숫자였다. 카타리나 비행정은 속도는 느리지만 하방을 감시하기에는 시야가 좋고 정찰가능 거리가 1000km를 넘었기 때문에 고공에서 해상을 관찰하는데는 최적의 항공기였다.

한편, 스플루언스 제독이 지휘하는 제 16 기동부대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와 호네트는 미드웨이 동북쪽 500km 지점에 도달한후 하루 늦게 따라온 제 17 기동부대의 항모 요크타운과 합류했다. 이들이 합류한 지점은 운이 따라주어야 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미해군의 속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행운의 지점 (point luck)'이라고 명명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라도 함재기를 발진시킬 준비를 갖춘 상태로 카타리나 비행정으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 17 기동부대를 지휘하는 플래쳐 제독은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으로부터 일본해군의 항공모함들의 위치가 확인될때까지는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말라는 당부를 받은 상태였다. 니미츠는 일본해군이 미드웨이를 공습할때까지 기다렸다가 미드웨이를 공습한 일본함재기들이 항공모함으로 귀환할 무렵이 최적의 공격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런 생각을 플래쳐와 스플루언스에게 전달했다. 니미츠에게 있어서 미드웨이야말로 일본해군을 교란시킬 미끼였던 것이다.

 

 

▲ 니미츠, 야마모토 (왼쪽부터)
 
엔터프라이즈 호
엔터프라이즈 호의 뇌격기, 미드웨이 섬 (왼쪽부터)


 

소류, 불타는 히류, 아카기 (왼쪽부터 차례로)



* 일본 함대 발견 *

6월 3일 오전 8시 드디어 일본해군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호소가야 중장이 지휘하는 제 2 기동부대의 항공모함 류조와 준요에서 이륙한 함재기들이 알류션 열도의 더치하버를 공습했다.


알류션 방어를 명받은 미해군의 제 8 기동부대는 일본함대가 알류션 열도를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알래스카를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로버트 디어볼드 제독의 지시로 알래스카 앞바다에 배치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함대를 막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사실 항공모함이 없는 제 8 기동부대는 일본함대와 접전을 벌이기에는 열세였으므로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알류션 열도에 대한 공습은 일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미군의 저항이 약간 있었지만, 일본해군은 예정대로 알류션 열도의 서쪽 끝단인 아투와 키스카 섬에 상륙하여 손쉽게 점령함으로써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알류션 침공 작전은 미드웨이 해전의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쓸데 없는 것이 되버리고 있었다. 미해군이 일본의 작전을 전혀 몰랐다면 진주만의 사령부는 크게 당황했을지도 몰랐지만 이미 일본의 의도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알고 있던 미해군은 알류선 열도가 공격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오히려 좋아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해군이 계획했던 양동작전은 처음부터 빗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진주만에서 숨을 죽이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니미츠는 알류션 열도가 공습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기뻐하면서 말했다.

"드디어 놈들이 걸려들었군, 알류션 열도는 신경쓸 것 없다. 미드웨이 방면으로 접근하는 일본의 항공모함들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전 정찰기들은 전력을 다해서 적을 찾아라!"

미군의 필사적인 정찰 작전은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알류션 열도가 공습받고 있다는 보고가 있은 지 한 시간여가 지난 6월 3일 오전 9시, 카탈리나 비행정 6번기가 드디어 일본의 수송선 2척을 발견했으며 곧이어 카탈리나 8번기도 여러척의 수송선을 수반한 일본함대를 발견했다. 8번기의 조종사였던 제웰 레이드 소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방위 262도, 거리 700마일 지점에 중순양함의 호위를 받는 일본함대가 정확하게 미드웨이로 향하고 있음을 보고했다. 그러나 카탈리나가 발견한 일본 함대는 나구모의 기동부대가 아니라 남쪽에서 미드웨이에 상륙하기 위한 병력을 싣고 달려오던 다나까 제독이 지휘하는 미드웨이 상륙부대였다.

플래쳐 제독은 이 보고를 받고서 기뻐하면서도 아직 일본 항모를 발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초조해 했다. 그는 적의 항공모함의 위치가 정확하게 파악될 때까지는 절대 위치를 노출시키지 말라는 니미츠의 신신 당부를 받고 있었으므로, 다나까의 미드웨이 상륙함대는 건드리지 않고 그냥 놔두기로 했다. 미해군의 항모들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때까지 위치를 숨기기위해서 철저하게 일본해군의 항모가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미군의 정찰기들이 일본항모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플래쳐는 초긴장 상태였다. 훗날 플래쳐는 이순간부터 일본 항모가 발견될 때까지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긴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카탈리나 비행정이 상공을 통과하자 다나까 제독은 즉시 무선침묵을 깨고 나구모와 야마모토에게 무전으로 미군기에게 자신의 함대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나구모와 참모들은 함대가 미드웨이 근처로 접근했기 때문에 통상 정찰을 하던 미드웨이의 정찰기에게 발견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구모와 참모들은 이것은 이미 예견되었던 상황이며 결국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이 근처에 없는 이상 이 지점에서 발견된 것은 미드웨이의 미항공전력이 미미하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무선침묵을 해제하고 최대한 빨리 미드웨이로 접근하여 작전 예정표대로 6월 4일 새벽에 공습을 결행하기로 했다.

이날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B-17 폭격기들이 고공에서 다나까 함대를 조준하고 수평폭격을 실시했다. 조종사들은 함대의 주위에 흰 물기둥이 이는 것을 보고는 귀환해서 4척이상의 순양함과 수송선을 명중시켰다고 보고했지만, 사실 폭탄은 단 한발도 일본 함대 근처로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B-17과 같은 고공 폭격기들이 함선 공격을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것이었다. 다나까 소장도 이런 공습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오죽했으면 저런 폭격기들이 날아올까... 하면서 미드웨이 공략작전을 낙관하고 있었다.

 

* 운명의 날 *

드디어 1942년 6월 4일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3시, 미드웨이의 서북방 460km까지 접근한 일본의 항공모함에는 진주만 공습 당일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날부터 안개가 겉히기 시작한 안개가 모두 사라져 시야는 매우 양호했다. 더구나 함대의 상공에는 구름이 넓게 드리워져 있었다.

함교에서 초조하게 하늘을 바라보던 나구모는 미소를 지었다. 상공의 구름은 자신의 함대를 미군의 정찰기로부터 감춰줄 것이고 공격기들은 구름위로 올라가 적의 눈에 띄지 않고 미드웨이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중한 나구모는 만에 하나라도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이 근처에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서 미드웨이에 대한 제 1차 공격에는 비교적 신참 조종사들이 조종하는 108기의 함재기들을 투입하고 나머지 경험 많은 정예 조종사들은 함재기과 함께 함상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미함대를 발견하는 경우 즉시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항공모함 4척의 갑판에 정렬한 제 1파 공격부대 108기의 함재기들에 차례차례 시동이 걸리고 있었고,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엔진 폭음과 함께 나구모 제독으로부터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하라'는 훈시를 받은 조종사들은 일제히 자신의 기체에 올라타서 발진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구모의 지시에 따라 1차공격에는 경험이 적은 조종사들을 우선 투입하기로 결정되면서 선발된 혈기왕성한 젊은 조종사들은 모두들 마음이 들뜬 상태로 큰 전공을 세우고 돌아오리라는 결의를 다졌다.

항모의 승조원들은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무장과 연료를 점검했다. 원래 공습작전은 진주만 기습을 지휘했던 일본 최고의 항공부대장 후지다 중령이 맡을 예정이었으나 몇 일전에 급성맹장염으로 급히 응급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비행기 탑승이 곤란하게 되자 그는 자신을 대신해서 공격부대를 지휘할 장교로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부하인 도모나가 대위를 추천했다. 후지다는 아까기의 갑판에서 도모나가를 격려했고, 그의 부하들이 출격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봐 도모나가! 큰 전공을 세우고 돌아오게, 나는 자네를 믿네. 자네는 내가아는 최고 지휘관중의 한명아닌가? 미드웨이를 박살내 버리도록 하게!"

"네 중령님! 믿어 주십시요.. 절대 기대를 저 버리지 않겠습니다."


새벽 4시 30분, 드디어 출격명령이 떨어졌다. 97식 함상공격기들이 요란한 엔진 폭음을 울리면서 먼저 이함하기 시작했다. 뒤를이어 99식 함상폭격기들과 제로 전투기들이 차례로 새벽의 여명속으로 날아올랐다. 하늘로 날아오른 함재기들은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미드웨이를 향해 멀어지고 있었다.

공격부대가 이륙한 직후 나구모는 혹시나 근처에 미해군 함대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찰기들을 발진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즉시 중순양함 도네, 지쿠마, 전함 하루나, 항모 아까기, 가가에서 총 7기의 정찰기들이 발진했다. 이들은 부채살 모양으로 산개하여 각각 맡은 구역을 향해 정찰비행을 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러나 중순양함 도네의 캐터펄트가 고장을 일으켜 도네에서 발함할 예정이던 2기의 정찰기 중 두 번째 정찰기인 정찰 4호기는 예정보다 30분 늦게 발함 했다. .......모두들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이 30분이라는 시간의 지연이 얼마 뒤에 일본해군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운명의 시간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장대한 미드웨이 해전이 시작된 것이다. 

 

 

 

 

* 일본함대 발견

1942년 6월 4일 새벽 5시, 30분전에 항모를 떠난 일본 공격기 부대가 일제히 미드웨이를 향하고 있었다. 이 공격을 지휘하는 고참대위 도모나가 죠이찌는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공격대형을 유지하고 미드웨이로 진로를 유지했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고, 저 멀리 수평선에는 태양이 막 떠오르려는 듯한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99식 함상폭격기 36기, 97식 함상공격기 36기 그리고 제로 전투기 36기로 이루어진 총 108기의 일본 공격기부대는 옅게 깔린 구름을 헤치면서 삼각대형을 이루고 힘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무렵 미드웨이를 떠난 PBY 카타리나 비행정들도 필사적으로 일본함대를 찾고 있었다. 로시로프의 정보에 의하면 일본군의 공격개시일이 바로 오늘이라고 했으므로 조종사들은 일본 함대가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위치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비행정들은 어두운 새벽하늘을 뚫고 필사적으로 바다를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한 대의 비행정이 드디어 일본군의 공격징후를 발견했다. 구름 위에서 비행 중이던 한 비행정의 초계병이 구름 속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많은 수의 일본기들을 목격한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카탈리나의 초계병이 흥분해서 소리쳤고 기장은 즉시 미드웨이 섬에 공격기들이 접근하고 있다는 경보를 보냈다. 이때가 일본기들이 이함한지 한 시간정도 되는 무렵인 새벽 5시 30분이었다.

"세상에 일본기들이다! 수 백대는 되겠어... 정확하게 미드웨이로 향하고 있다. 지금 적기들은 미드웨이로부터 280km 지점에서 날아가고 있다."

이 무전을 들은 다른 카타리나 비행정의 조종사들도 근처에 분명히 일본항모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눈을 부릅뜨고 해상을 계속 살피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편, 일본항모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오기만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미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플래쳐 제독과 스플루언스 제독은 이 무전을 보고 받고는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초조한 플래쳐가 답답한 듯이 부관에게 중얼거렸다.

"적기 다수, 미드웨이쪽으로 접근중.... 이라니... 도대체 어느 방향에서 어느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는가? 더 자세한 정보는 없는가?"

"네 제독님, 현재로서는 이 이상의 연락은 없습니다."

"답답해 죽겠군, 적기들이 미드웨이로 접근하고 있는데 우리는 적 항모를 찾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공격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지 모르겠군."

"일단, 기다려 보는 것이 최선책인 것 같습니다. 아마 곧 연락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20여분의 시간이 지난 뒤 카타리나 58번기의 초계병이 저멀리서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여러 개의 흰 항적을 발견하고는 망원경으로 다시 확인했다. 드디어 나구모의 기동부대를 찾아낸 것이다.

"기장님, 저 아래를 보십시오! 여러척의 함선들이 보입니다. 일본놈들인 것 같은데요...저기 길쭉한 배들은 항공모함 같습니다."

"아... 드디어 일본함대를 찾은 것인가! 좋아 가까이 접근해서 확인하기로 한다. 일단 일본함대를 발견한 사실을 즉시 본부에 알려라."

조종사인 하워드 에디 대위는 구름속으로 숨어들어가면서 일본 함대의 상공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타리나의 승무원들은 일본함대의 외곽에서 항공모함으로 보이는 2척의 함선을 확인했고, 동시에 일본의 대공 초계병들도 이 카타리나를 발견했다. 즉시 구축함과 순양함에서 대공포화가 작열했고, 항모 가가에서 요격을 위해 제로 전투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카타리나 비행정은 더 이상의 접근을 포기하고 상승하면서 상공의 구름속으로 숨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파악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무전으로 알렸다.

"여기는 카탈리나 58번기, 미드웨이 섬으로부터 서북쪽 해상 방위 320도, 거리 330km 지점에 항공모함 2척과 전함 2척을 수반하고 있는 일본 함선 다수가 미드웨이를 향해서 25노트의 속도로 접근중이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미드웨이섬은 온통 북새통으로 변했다. 사방에서 비상 싸이렌이 울리고, 조종사들과 정비원들, 그리고 해병대원들이 자신의 위치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미드웨이에 설치된 레이더 스크린에도 일본공격기들이 잡혔다. 즉시 미드웨이에 배치된 모든 전투기들과 급강하 폭격기, 뇌격기, B-26, B-17 폭격기들이 엔진 폭음을 울리면서 이륙하기 시작했다. 이중 파크 소령이 지휘하는 제 221 해병전투비행대의 F2A 버팔로 전투기 20기와 F4F 와일드캣 전투기 7기로 이루어진 혼성편대는 내습해오는 일본기들을 요격하기 위해서 상공으로 날아올라 매복했고, 다른 비행기들은 모두 이륙하자마자 카타리나 비행정이 보고한 일본 함대의 발견지점으로 향했다.

 

* 미드웨이 공습

오전 6시가 넘어서면서 미드웨이의 병사들은 서쪽 하늘의 수평선에 나타나기 시작한 수십 개의 점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점들은 바로 도모나가의 공격부대였다. 상공에 매복중인 미해병대의 전투기들은 미리 고도를 확보한 후 상공에서 급강하하면서 일본기들을 요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일본기 들이 바로 아래를 통과할 무렵, 파크 소령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전원 공격하라! 저 일본놈들 단 한대도 통과시키지 마라!"

굉음과 함께 27기의 미군 전투기들이 급강하 하면서 일본 공격기 부대에게 돌진했다. 하늘에는 순식간에 급강하하는 전투기들이 일으키는 굉음과 기관총의 속사음이 가득했다. 곧 2기의 일본 공격기가 총탄을 맞고 불길에 쌓여 추락했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미드웨이의 미군 병사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공격패스 후에 미군기들이 두 번째의 공격을 위해서 선회하기 시작할 무렵, 일본 공격기부대의 호위 전투기로 따라온 제로 전투기들이 신속하게 미군 전투기들의 배후로 돌아들었다. 흰 날개에 붉은 원을 그린 제로 전투기들은 둔중한 버팔로와 와일드캣을 농락하듯이 날렵하게 창공을 가르면서 공격위치를 잡았다. 이 제로 전투기의 조종사들은 진주만 공습이후 일본해군이 참가했던 모든 전투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이었다. 당황한 미군 조종사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에 제로 전투기들의 총구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사방에서 제로 전투기들에게 꼬리를 물린 미군기들이 총탄을 피하기 위해서 필사적인 몸부림을 쳤지만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미군기들이 한 대 한 대 검은 연기를 끌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공중전이 시작된 지 몇 분만에 미군 전투기들은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패했다. 총 출격기 27기 중 지휘관인 파크 소령을 포함한 17기가 격추 당했으며 간신히 도주한 10기 중 8기는 온통 구멍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반면, 제로전투기의 손실은 2기에 불과했다. 이 공중전 장면을 지켜보던 도모나가 대위가 만족한 듯이 말했다.

"역시 우리 조종사들이 실력이 한 수 위였군, 자 전 공격대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미드웨이를 공격하라! 진입하는 순서대로 활주로와 적의 항공기, 그리고 대공포진지를 집중폭격하라!"

일본기들이 미드웨이섬의 상공으로 날아들면서 마치 진주만 기습당시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사방에서 공격해오는 일본기들이 미드웨이를 마치 바다에 가라앉혀 버릴듯한 기세로 달려들어 곳곳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섬의 연료 저장고는 직격탄을 맞아 검은 연기를 피워올렸고, 많은 방어진지에 커다란 구멍이 여러개 뚫렸다. 미군기들을 모두 물리친 제로 전투기들은 공격에 가세하여 기총소사를 퍼부어 댔다.

그러나 해병대원들은 일방적인 공습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대공포를 쏴대면서 대응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목표물이었던 미드웨이섬의 항공기들이 대부분 이륙한 후였으므로 일본기들이 의도한 기습공격의 효과는 반감된 상태였다. 일본 조종사들은 폭격할만한 먹음직스런 표적이 없자 임의의 표적에 폭탄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모든 공격기들이 폭탄을 다 써버리자 일본기들은 차례로 귀환 코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공격을 지휘하던 도모나가 대위는 미드웨이섬의 피해상황을 살피기 위해 마지막까지 섬의 상공에 머물러 있었다. 이때 그의 97식 폭격기의 날개에 대공포화가 피탄되어 연료가 새기 시작했다. 그는 미드웨이섬이 일본기들의 집중 공습에도 불구하고 활주로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아서 아직 항공기지로서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연료가 새고 있군, 함대에 돌아갈 수는 있겠는가?"

"아, 돌아갈 만한 연료는 충분합니다. 피탄된 쪽은 거의 다 써버린 연료탱크입니다."

"그나저나, 이거 활주로가 아직 건재해 보이는군, 해안의 방어선도 아직 완벽히 파괴되지도 않은 것 같고... 즉시 미드웨이에 2차 공격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함대에 연락하도록!"

 

* 반격

한편, 카타리나 비행정이 일본함대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전해진 새벽 5시 40분, 플래쳐와 스플루언스는 참모들과 함께 섬광신호를 통해서 일본함대를 공격할 작전을 상의 중이었다.

"스플루언스 소장, 지금 일본 함대와의 거리는 아마도 대강 300km 정도 될텐데... 잠시후면 우리 함재기들의 최대 행동반경에 들어올 것일세, 나는 즉시 일본함대를 공격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동감입니다. 잠시후면 일본공격기들이 미드웨이를 공습할 것입니다. 그들이 돌아갈 무렵에 맞추어 우리가 일제히 모든 함재기들을 날려보내면 아마도 최선의 공격시점을 잡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좋아, 그렇다면 오전 7시 정각에 일제히 공격하기로 하세, 나는 요크타운의 정찰기들이 돌아오는데로 모든 기체들을 발진 시킬테니,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가능한 빨리 서쪽으로 항진한 후 오전 7시가 되면 모든 기체들을 이륙시키도록 하게."

플래쳐와 스플루언스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최선의 공격시점은 일본 공격기들이 항모에 귀함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 순간에는 일본항공모함들이 돌아오는 함재기들을 모두 수용한 후 다시 발진 준비를 하기 위해서 가장 복잡한 작업을 해야하는 때이므로 가장 이상적인 공격시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플루언스의 참모 한 명이 보다 신중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견을 냈다.

"제독님, 로시로프 소령의 정보에 의하면 이번 작전에 참가하는 일본 항모의 수는 4척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찰기들은 2척의 항모를 발견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공격한다면 나머지 2척의 항공모함들에게 우리 위치를 완전히 노출시킬 위험이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앉아있는 오리꼴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우리가 공격하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일본의 항공모함 2척의 위치를 분명히 알고있지 않은가... 우리 함재기들이 다다를 때쯤은 아마도 그놈들의 갑판은 귀함한 항공기들로 온통 북새통일거야.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지. 만일 지금 이 시점을 놓치면 우리는 선제공격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네... 일본놈들도 정찰기를 발진시켜 우리를 찾으려는 중일지도 모르고... 일단 모든 기체들을 발진시키도록! 운이 좋으면 나머지 항모들도 발견할지 모르지... 운이 좋으면 말이야...."

그리하여 미해군은 절반은 운에 모든 것을 맞긴 상태로 총력을 다하여 공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제 16 기동부대의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먼저 함재기들을 이륙시킬 지점을 향해서 전속으로 항진하기 시작했고, 제 17 기동부대의 항모 요크타운은 정찰기들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제 16 기동부대를 따라갈 예정이었다.

일본기들이 미드웨이섬을 공략한 후 귀환하기 시작할 무렵인 오전 7시 정각이 되자, 맞바람을 맞으면서 함재기들의 출격 준비를 완료한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갑판에서는 엔진시동을 걸어놓고 대기 중이던 모든 함재기들이 한 대 한 대 갑판을 박차고 이함했다. 이 두 척의 항공모함에서는 총 70기의 SBD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들과 29기의 TBD 디베스테이터 뇌격기, 그리고 호위 전투기로서 20기의 F4F 와일드캣 전투기들이 발진했다.

호넷과 엔터프라이즈가 일본함대를 공격할 함재기들을 모두 떠나보낸 지 30여분이 지나자 항모 요크타운에서도 발진준비가 시작되었다. 요크타운은 새벽 정찰을 나갔던 정찰기들이 모두 귀함하자 즉시 발진 대기중이던 SBD 돈트리 17기, TBD 데바스테이터 12기, F4F 와일드캣 6기를 발진시켜 일본 항모의 공격에 합류하도록 했다.

 

* 미드웨이의 투사들

한편, 일본기들이 공격해오기 전에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뇌격기들과 급강하 폭격기들은 카타리나 비행정이 보고한 지점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 속에는 어뢰를 장비한 육군항공대 소속의 B-26 폭격기도 4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보다 훨씬 높은 고공에서는 B-17 폭격기들도 공격에 합류할 예정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사실, 미드웨이에 배치된 항공기들은 일본군의 작전을 간파한 후 매우 다급하게 급파된 기체들로서 조종사들도 대부분 비행학교를 막 졸업한 신참들이었고 대부분 전투경험도 전혀 없었다. 더구나 미드웨이의 전투기들이 모두 일본기들을 요격하기 위한 임무에 투입되면서 이들은 전투기의 호위가 전혀 없이 일본함대를 공격해야 했다.

속도가 느린 뇌격기들과 급강하 폭격기들이 전투기의 호위도 없이 제로전투기들이 방어하고 있는 일본 함대의 상공으로 진입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던 SBD부대의 지휘관 로프톤 핸더슨 소령은 이번의 출격이 그의 마지막 임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젊은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게 될 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일본 함대를 공격해서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동료들이 공격해 올때까지 시간을 끌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출격하기 전에 혈기가 넘치는 젊은 조종사들은 모아놓고 모두들 하나되어 일본함대에게 진주만의 복수를 하자는 결의를 다지고 모두들 하나되어 일본군과 맞서 싸우리라고 맹세를 한 바가 있었다.

 

* 운명의 선택

오전 7시, 항모 아까기의 함교에서는 공격을 마치고 귀환중인 도모나가로부터 전과 보고가 들어왔다. 전과를 보고받은 겐다중령은 기쁜 목소리로 나구모에게 보고했다.

"대승입니다. 제독님! 우리는 하늘과 땅에서 적기 40기 이상을 파괴했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공격기 3기와 전투기 2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도모나가는 두 번째 공습을 요청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적의 항공기들도 대부분 비행장에 없었다고 하는데,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서 출동한 것이 아닌가? 미군의 대응도 생각보다 빠르군. 이번에는 기습이 완전히 효과를 보지 못한 것 같네."

"그래서 도모나가 대위가 2차 공습을 요청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우리 함대에게 최대의 위협이 되는 것은 미드웨이 섬으로부터 출동하는 미군기들입니다. 따라서 지금 대기중인 함재기들을 모두 발진시켜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여 항공기들의 작전이 불가능하도록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기중인 우리 함재기들은 적 함대 출현에 대비해서 어뢰를 장비하고 대기중인 상태인데, 이것을 가지고 미드웨이를 폭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장을 폭탄으로 바꾸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텐데... 그나저나 우리 정찰기들로부터 적함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없는가?"

"네, 지금쯤 모든 정찰기들이 최대 정찰거리까지 진출했을 시간입니다. 현재까지는 적함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우리 예상대로 미함대는 근처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찰기 한 대가 30분 늦게 출발했다는 사실을 잊지말게, 그 정찰기는 아직 한계지점까지 날아가지 못했을 거야."


바로 이때 공습경보 싸이렌이 울리기 시작했고 대공상황실의 장교가 소리쳤다.

"적기들이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함대의 포문쪽으로부터 적기 10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미드웨이에서 출동한 뇌격기 들입니다."

이 기체들은 미드웨이에서 출동한 최초의 미군기들이었다. 총 6기의 신형 TBF 어벤저 뇌격기들이 4기의 B-26 폭격기들과 함께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항모 히류의 함교에서 망원경을 들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히류와 소류의 사령관인 야마구치 다몽제독은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전투기의 호위도 없이 불과 10여기의 뇌격기들이 공격해오다니, 저건 자살행위야! 미국인들도 사무라이 정신을 아는 것 같군."

야마구치의 말대로였다. 함대 상공을 방어하기 위해서 초계중이던 제로 전투기 편대는 이 먹음직스런 미군 뇌격기들이 함대로 접근하도록 얌전하게 놔두지 않았다. 공격해오는 미군기들보다 요격하기 위해서 덤벼드는 제로 전투기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뇌격기 1기에 제로전투기 2-3기가 달려들었을 정도였다.

날렵한 제로기들은 마치 매가 병아리를 덥치듯이 미군기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벤저 뇌격기들은 연기를 뿜으면서 한 대씩 바다로 쳐밖혔다. 몇대의 뇌격기들이 제로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어뢰를 투하하기는 했지만 모두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 버렸다. 6기의 아벤저 뇌격기 중 1기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간신히 미드웨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뢰공격에 같이 참가했던 B-26 폭격기도 제로전투기의 요격으로 2기가 격추되었다. 함상에서 이런 멋진 광경을 구경하던 일본해군의 승조원들은 환호성을 울리면서 기뻐했다. 그들 함대의 근처에서 공중전이 벌어진 것은 개전이래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공습경보 싸이렌이 울렸다. 이번에는 로프톤 핸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미드웨이의 급강하 폭격기대가 시야에 나타났다. 함대 외곽에 포진한 구축함에서 격렬하게 대공포가 발사되었고 뇌격기들을 처리한 제로 전투기들이 급박하게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을 향해서 벌떼같이 날아가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번에도 미군기들은 전투기의 호위가 없다는 대공실의 보고를 받은 나구모는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드웨이의 항공전력이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이런 상황이 되자 나구모는 일본함대를 노리는 미해군의 항공모함들이 함재기들을 발진시키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운명의 결정을 내렸다.

"또 공습이라니...역시 미드웨이의 항공전력이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군, 우리 정찰기들로부터도 적함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없다. 겐다중령의 의견대로 미드웨이에 2차 공습을 실시하도록 하겠다. 모든 함재기들의 무장을 어뢰에서 폭탄으로 바꿔 달도록 하라!"

나구모의 명령이 떨어지자 항모 4척의 갑판에서 발진 대기중인 함재기들이 다시 격납고로 내려져 항공어뢰와 함정 공격용 철갑탄을 지상 공격용 폭탄으로 바꿔다는 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99식 함상폭격기의 250kg 철갑탄은 일반폭탄으로 바꿔다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97식 함상공격기에 장비된 800kg짜리 어뢰를 폭탄으로 교체하는 작업은 정비사들에게는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많은 정비사들이 필사적으로 탄약고에서 폭탄을 운반해와 어뢰와 교체하는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한편, 로프톤 핸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미드웨이 폭격대는 전방창에 가득하게 덤벼드는 제로전투기들을 보면서도 일본 항모 아까기와 가가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 공격에 참가한 대부분의 미군 조종사들이 비행학교를 막 졸업한 신참들이어서 폭탄 투하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핸더슨 소령은 최대한 적의 항모에 가까이 날아가서 폭탄을 떨어뜨리라는 명령을 내렸고 아무도 기수를 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조국을 위해서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 핸더슨 폭격대

로프턴 핸더슨 소령 지휘하의 미해병대 제241 폭격대대의 대원들은 격렬한 대공포화의 저항을 정면으로 뚫으려는 듯이 저돌적으로 돌격해왔다. 그러나 그들이 일본함대의 상공에 다다르기도전에 벌떼같이 몰려온 제로전투기의 요격이 시작되었고 일본함대의 대공포화도 더욱 거세졌다. 여러 대의 폭격기들이 차례로 제로의 밥이되거나 대공포화에 명중되어 바다로 쳐밖혔다.

이런 와중에 3기의 폭격기들이 항모 히류를 목표로 덤벼들어 폭탄을 투하했지만 제로전투기의 요격과 거센 대공포화에 맞닥뜨려 폭탄을 제대로 조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히류가 원을 그리면서 회피기동에 들어가면서 폭탄들은 히류 근처의 바다에 흰 물기둥만 여러개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 와중에 핸더슨 소령이 조종하던 SBD 돈트리스도 대공포화에 명중되었으며 그는 화염에 휩쌓인 기체를 조종하여 항모 가가를 향해 돌진하여 충돌공격을 하려다가 조종성을 상실한 기체가 갑자기 방향을 틀면서 가가의 옆으로 빗나가 바다로 추락했다. 그야말로 장렬한 최후였다.

하지만 지휘관을 잃은 미해병대의 용사들은 여전히 맹렬하게 공격을 계속했다. 미군기들이 접근해 올때마다 일본 항모들은 모두들 원을 그리면서 선회기동에 들어가야 했다. 핸더슨 폭격대의 공격은 무려 30분이 넘게 지속되었으며 총 16기의 SBD 중에서 8기가 격추되고 나머지 기체들은 대부분 구멍이 숭숭뚫린 상태로 간신히 미드웨이를 향해서 기수를 돌릴 수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습에 놀란 나구모가 어뢰를 폭탄으로 바꾸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으므로 핸더슨 폭격대의 희생은 헛된은 아니었다.

 

* 미함대 발견

미군 폭격기들이 물러가기 시작하자 한숨돌린 나구모는 피해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이때까지 미군폭격기와 뇌격기 20여기를 격추시킨 반면에 아군의 피해는 제로전투기 1기가 약간의 손상을 입은 정도라는 구사까 소장의 보고를 들으면서 나구모는 자신감이 생긴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핸더슨 폭격대가 물러가기 시작한 오전 7시 28분, 겐다 중령이 급박하게 함교로 뛰어들어왔다.

"제독님 미함대를 발견했다는 보고입니다. 미드웨이로부터 방위 10도 거리 240마일 지점에 10여척의 적함이 있다고 합니다."

"뭐야! 어떤 정찰기에서 보고가 들어왔는가? 미 함대라니... 벌써 적함대가 미드웨이 근처로 출동했을리는 없을텐데... 혹시 적함대에 항공모함은 있는가?"

"30분 늦게 출발한 정찰기 4호에서 들어온 연락입니다. 하지만 적함대에 항공모함이 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나구모는 잠시 멍하니 서서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함대라니...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함선들인가? 만일 항공모함이 있다면... 아니야 적에게 항공모함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만일 항공모함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지금 어뢰를 막 대지공격용 폭탄으로 바꾸는 중인데... 이것으로 적 함대를 공격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갑자기 나구모의 머리속은 여러 가지 가정으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겐다 중령, 지금 어뢰를 폭탄으로 바꾸는 작업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가?"

"네, 거의 절반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일단 작업을 중지하고 대기하도록! 그리고 정찰기에게 적함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보고하라고 지시하게! 정보가 확실해질때까지 일단 무장 교체작업은 중지하도록 한다!"

"네 제독님..."


나구모와 참모장 구사까 소장, 그리고 겐다 중령은 모두들 갑자기 침묵속에 빠져들었고 불확실한 한때가 흘러갔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전술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대공 상황실에서 공습경보가 울렸다.

"적기들입니다. 미군의 중폭격기들이 고도 2만피트에서 접근중입니다!"

나구모를 포함한 지휘부가 모두들 망원경을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러개의 작은점들이 구름사이로 보이고 있었다. 일본함대의 상공으로 접어들고 있는 기체들은 미드웨이에서 긴급하게 출발한 19기의 B-17 폭격기들이었다.

"아니 저렇게 높은데서 우리를 명중시키겠다는 것인가? 미군놈들... 이거 해도 너무하는 구만 저런고도에서 폭탄을 떨어뜨려봤자 명중될 리가 없을텐데... 그래도 엄청난 양의 폭탄이 쏟아질 것이다. 즉시 회피기동에 들어가도록 전함대에 지시하라!"

B-17 폭격기들은 제로전투기의 요격을 피하기 위해서 2만피트라는 고공으로 접근중이었다. 폭격기 조종사들은 구름사이로 보일 듯 말듯하는 일본함대의 머리위에 다다르자 일제히 대량의 폭탄을 쏟아보었다.

하늘에는 폭탄이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날카로운 소음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이런 고공에서 해상의 함선을 맞추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옅게깔린 구름으로 인해서 미육군항공대가 자랑하는 노던 조준기를 사용한 정밀 조준도 제대로 시행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투하된 폭탄들은 S자로 회피기동을 하는 일본 항모들의 주위에 거대한 물기둥만 여러개 만들어버렸고 단 한발도 명중되지 않았다.

 

* 적은 항모를 수반한 것으로 보인다!

오전 8시 30분, 미군 폭격기들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나구모와 참모들은 모두들 한숨을 돌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전략을 토의했다. 바로 이때 날벼락같은 연락이 들어왔다.

"여기는 정찰 4호기, 미함대의 후미에 요크타운으로 보이는 항공모함 1척을 발견했음."

갑자기 나구모는 자신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느꼈다. 항공모함이라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일이란 말인가? 함교는 갑자기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구사까 소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적이 항공모함을 가지고 있다니... 큰일입니다. 제독님! 즉시 적항모를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요크타운은 산호해해전에서 크게 파손되었을텐데...다른 항공모함을 잘못 본 것이 아닐까요? 벌써 작전이 가능하도록 수리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 항모가 요크타운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구사까 소장, 분명 우리에게 적의 항모는 위협적이다. 그렇다면 미드웨이의 항공전력을 무시해도 좋겠는가?"

"적의 항모가 나타난 이상 최대의 위협은 항모입니다. 미드웨이는 일단 적 항모를 공격한 후에 나중에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어뢰를 폭탄으로 바꾸는 중이 아닌가? 지상공격용 폭탄으로 적함대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더구나 지금 우리 전투기들의 과반수는 1차공습을 엄호하고 돌아오는 중이고 나머지는 모두 함대 방공임무에 투입된 상태인데.. 적항모를 공격할 때 엄호할 전투기들이 충분히 있는가?"

"... 거의 충분치 못합니다."

"나구모 제독님, 히류의 야마구찌 다몽 제독님으로부터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즉시 어떤 무장을 했던 간에 상관하지말고 전투기의 엄호가 없더라도 모든 공격기들을 발진시켜 적항모를 공격하자고 합니다."


항모 소류와 히류를 지휘하는 제2 항공함대 사령관인 야마구찌 제독은 적항모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이미 미함재기들이 출동했을지도 모르므로 비록 엄호전투기가 없어 아군기들의 희생이 크게 되더라도 주저없이 미항모를 공격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 과감한 전술을 구사하기로 소문난 야마구찌가 이런 의견을 진언하자 나구모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나구모가 고민하는 사이에 도모나가의 공격대가 함대의 상공으로 접근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상황이 더욱 복잡해 진 것이다. 나구모는 지금 즉시 공격을 할것인가... 아니면 일단 함재기들을 받아들여야 할것인가 딜레마에 빠져든 상태였다. 이때 나구모의 옆에서 계속 말없이 서있던 겐다 중령이 말문을 열었다.

"제독님, 지금 우리가 공격기들을 발진시킨다면, 우리 1차 공격대의 함재기들이 착륙할 수가 없습니다. 도모나가의 기체들은 대부분 연료가 바닥난 상태입니다. 일단 함재기들을 받아들인 후에 귀환한 전투기들에 연료를 재보급하고 엄호를 붙여서 적항모를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함재기들이 착함하는 동안 나머지 기체의 지상공격용 폭탄을 다시 어뢰로 바꿀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러나 나구모는 선뜻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함교를 서성대고 있었다. 미항모를 즉시 공격하자니 도모나가의 공격기들이 모두 바다에 쳐밖힐 판이고, 도모나가를 받아들이자니 시간을 너무 지체할 우려도 있었다. 함교를 왔다갔다 하면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구모에게 구사까 소장이 빨리 결단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자 결국 나구모는 운명의 결단을 내렸다.

"일단 도모나가의 공격대를 착함시켜라! 적항모는 1척이라고 했다. 여기서 함재기들이 날아온다고 해도 수적으로 우세한 우리 제로전투기들의 방어망을 뚫기는 어려울테지... 겐다 중령의 의견대로 그동안 무장을 폭탄에서 어뢰로 바꾸도록 하고, 귀함하는 전투기들에게 즉시 연료와 무장을 재보급하고 적항모의 공습에 엄호로 따라 나설 수 있도록 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일본 항모들의 갑판에서는 모든 함재기들이 격납고로 내려지고 함대의 상공에서 선회하면서 대기중이던 도모나가의 공격기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오전 8시 40분부터 갑판에는 돌아오는 함재기들을 수용하는 작업으로 전 승조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격납고에서는 무장을 다시 어뢰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정비사들은 빨리 무장을 어뢰로 바꿔야한다는 독촉하에서 800kg이나 되는 무거운 어뢰를 빨리 운반하여 장착하기 위해서 광분했고, 기체에서 분리한 무거운 지상공격용 폭탄들을 다시 탄약고로 운반할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게되자 폭탄들을 그냥 격납고 귀퉁이 여기저기에 되는데로 쌓아두었다. 그러나 나구모의 예측과 달리 일본해군이 지연시킨 이 소중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미항모에서 발진한 함재기들이 시시각각 일본 함대를 향해서 접근하고 있었다.

 

* 운명의 시간

나구모가 결단을 내린지 1시간여가 흐른 오전 9시 15분, 드디어 도모나가의 모든 공격기들이 착함을 완료했으며, 함대 상공을 방어하던 제로 전투기들이 교대로 착함한 후 재급유와 재무장을 받고 다시 함대 방공 임무를 위해서 이륙하기 시작했다. 이러는 동안에도 미드웨이에서 날아온 TBD 데바스테이터 뇌격기 여러 대가 공격을 해왔지만 역시 대부분의 뇌격기들은 제로전투기의 요격에 걸려들어 격추되고 어뢰도 모두 빗나가는 일방적인 전투로 끝이났다. 일본 함대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함재기들을 받아들이는 착함 작업까지 완료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럭저럭 별 손실없이 도모나가 공격대의 모든 함재기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구사까로부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나구모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지시를 내렸다.

"구사까 소장, 우리 함재기들이 완전히 공격준비를 갖추는데는 얼마나 걸리겠는가?"

"네, 현재 착함한 함재기들을 격납고로 내리고 무장을 교체한 함재기들을 다시 갑판으로 이동시켜 공격준비를 완료하려면 앞으로 1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1시간이라...좋아! 발진 준비가 완료되는 즉시 적항모를 잡고 싶다. 일단 전함대는 침로를 북동쪽으로 돌리고 전투속도로 적항모를 향해 접근하도록!"


나구모와 참모들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1시간이 일본함대의 목줄을 죄게 될것이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한편, 미해군기들은 2시간전부터 차례로 항모에서 발진하자마자 각 중대별로 대형만 갖춘채로 일본 항모의 발견지점을 향해서 날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플래쳐나 스플루언스는 모든 함재기들을 이함시킨 다음 함대의 상공에서 대형을 갖춘 후에 대 편대를 구성하여 일본 함대를 공습할 예정이었으나 이렇게 되면 제일 먼저 이륙한 함재기들이 쓸데없이 연료를 소모할 우려가 있고 공격시간도 늦어지게 될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각 비행중대별로 편대가 구성되면 곧장 일본 함대를 찾아서 날아가라는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미함재기들이 이함한 후 얼마후에 일본 정찰기 한 대가 요크타운 상공에 나타남에 따라서 일본군이 대응해올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미군측도 더욱 다급한 입장이 되어 최대한 빨리 일본함대를 공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본함대를 공격하게 되면 먼저 발진한 뇌격기나 급강하 폭격기들이 나중에 따라오는 전투기 중대의 엄호를 제대로 받지 못할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각 비행중대들이 너무 분산되어 최대한의 공격효과를 얻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본함대가 함대의 방향을 북동쪽으로 돌리기 시작할 무렵 제일먼저 출동했던 항모 호넷 소속의 35기의 SBD 급강하 폭격기대와 F4F 전투기대는 애초에 정찰기가 일본 항모가 있다고 보고한 지점으로 거의 도착했으나 항로를 북동쪽으로 변경한 일본함대를 찾지 못했고 결국은 연료를 소모하면서 애타게 바다를 헤메다가 결국 연료부족으로 공격을 포기하고 귀환해야 했다. 더구나 함대까지의 거리가 멀어 미드웨이 섬으로 돌아가야 했다. 정말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만일 이대로 진행된다면 잘못하다가는 일본함대를 선제 공격하려는 미해군의 의도가 좌절될 판이었다.

그러나 항모 호넷 소속의 제8 뇌격중대 (VT-8)을 지휘하는 수우족 인디언의 후손인 월드론 소령은 예상지점에 일본함대가 보이지 않자 일본 함대가 항로를 북동쪽으로 변경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즉시 방향을 틀어 일본함대를 추격했다. 그리고 얼마 뒤 드디어 흰 꼬리를 끌고 북동쪽으로 항진하는 일본함대를 발견한 것이다. 제 8 뇌격기대의 대원들은 전원 돌격 준비를 완료한 상태로 일본함대를 추격했다. 그리고 월드론 소령은 일본 항모를 공격하기에 앞서 미 항모에 마지막 교신을 했다.

"여기는 제8 뇌격기 대대, 일본 함대를 발견했다. 항모 4척이 보인다! 놈들은 방향을 북동쪽으로 틀고 있다. 우리는 전원 공격에 들어가겠다. 이상!"

"자! 이제 우리는 전원 공격에 들어간다. 우리 전투기들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기다릴 수는 없다. 전원 적의 항모를 향해서 돌격하라!"


월드론의 명령이 떨어지자 제8 뇌격기대대의 TBD 데바스테이터 뇌격기 15대가 일제히 강하하면서 일본항모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이때가 일본항모들이 항로를 변경한지 약 15분여가 흐른 9시 30분 경이었다.

 

* 이렇게 많은 비행기가 한척의 항모에서 왔을리 없다!

일본 함대 외곽에서 대공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구축함들의 대공실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많은 수의 적기들을 목격했다. 그리고 즉시 공습경보 싸이렌을 울리면서 격렬하게 대공포화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제독님 적기들입니다. 적의 뇌격기들이 대규모로 내습해오고 있습니다!"

"즉시 전 제로전투기를 투입하여 적을 분쇄하라! 각 항모들은 어뢰를 피할 수 있도록 회피기동에 들어가도록 하라!"


월드론 소령이 이끄는 제8 뇌격기대대의 용사들은 제로 전투기들이 가득한 일본함대의 상공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러나 속도가 느린 TBD는 제로 전투기에게는 만만한 먹이에 불과했다. 사방에서 벌떼처럼 달려드는 제로전투기들이 맹렬한 사격을 가하자 순식간에 4기의 뇌격기가 검은 연기와 함께 바다로 쳐밖혔다.

모든 뇌격기의 후미에 제로 전투기가 2-3대씩 따라붙어 노도와 같이 공격했다. 뇌격기대의 조종사들로서는 거의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더구나 어뢰를 투하하기 위해서 저공으로 낮게 날아야하는 뇌격기의 특성상 일본해군의 구축함이나 순양함에서 발사하는 대공화기에도 매우 취약했다. 일본함대의 상공은 온통 대공포의 탄막으로 뒤덮였으며 기관총과 기관포탄이 붉은 섬광을 휘날리면서 미군 뇌격기들을 향해서 사정없이 날아갔다. 결국 제8 뇌격기대의 기체들은 한 대씩 검은 연기와 함께 바다로 쳐밖혔다. 그러나 살아남은 뇌격기들이 죽음을 각오한 듯이 일본 항모들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날아오자 일본 항모 4척은 어뢰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긴급하게 대피 선회를 실시해야 했다.

제8 뇌격기대의 기체는 계속 한 대 한 대 격추되었고 결국 비행대장 월드론 소령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체가 일본 항모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바다에 수장 되었다. 하지만 제 8뇌격기대의 마지막 생존기체였던 조지 게이 소위가 조종하는 TBD는 제로 전투기의 일군에 쫒기면서도 필사적으로 항모 아까기의 근처에까지 날아가 어뢰를 투하했다.

이 한발이 제8 뇌격기대가 투하한 어뢰의 전부였지만 이나마 빗나가고 말았고 조지 게이 소위는 아까기의 상공을 통과하는 순간에 피격되어 그대로 바다에 추락했지만 바다에 가라앉기 시작하는 기체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와 조종석에서 떨어져나온 방석을 껴안고 바다에 표류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머지 동료들은 이미 전원 전사한 상태였다. 제8 뇌격기대는 말 그대로 전멸하고 말았다.

처량한 신세가 되버렸지만 이제 죠지 게이 소위의 눈앞에서 장대한 미드웨이 해전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지게 될 것이고 그는 대해전의 전부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하게될 유일한 미군이었다.

"적기 모두 격추했고 아군 함선에는 전혀 피해가 없습니다."

자신있는 목소리로 구사까가 보고하자 나구모는 고개를 저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우리 항모들은 회피기동을 하느라고 발함준비가 지체되고 있지 않은가? 이번 공격은 마치 사무라이들의 돌격을 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미군 조종사들은 우리가 알고있는 미군과는 다르지 않은가...적이지만 정말로 용감한 병사들이로군."

이순간 또다시 공습 경보가 울렸으며 겐다중령이 긴박하게 함교로 뛰어들어와 적기 접근을 보고했고 다급해진 나구모도 당황했다.

"제독님! 또 적기들입니다. 이번에도 뇌격기 들입니다. 총 14기의 뇌격기들이 진입해들어오고 있습니다."

"뭐야? 이렇게 많은 적기들이 항모 한척에서 왔을 리가 없다! 적의 항모가 혹시 2척이상이 아닌가?"

"우리 정찰기로부터의 보고는 미 항모 1척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미드웨이에서 공격해오는 뇌격기들로 생각됩니다."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정확하게 확인을 하는 게 좋겠다. 즉시 소류의 고속 정찰기를 발진시켜 정찰기 4호가 보고한 지점을 중심으로 미 함대의 정확한 위치와 항모의 숫자를 확인하도록 하라!"


비록 속절없이 전멸 하기는 했으나 제8 뇌격기대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제8 뇌격기대로부터의 일본 함대의 발견 무전을 수신한 다른 비행중대들이 계속 몰려왔던 것이다. 일본함대가 숨을 돌린지 몇분도 되지 않은 9시 58분, 이번에는 유진 린시 중령이 지휘하는 엔터프라이즈의 제6 뇌격기대가 돌격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호위 전투기들이 없었다. 뇌격기들보다 훨씬 높은 고도 4천피트에서 엄호를 위해 따라온 미 해군의 F4F 전투기들은 일본함대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지점에서 선회를 하면서 헛된 연료만 낭비했던 것이다.

미군기들을 목격한 제로 전투기들이 상공에서 급강하하면서 또다시 미해군의 뇌격기들을 일방적으로 사냥했다. 제6 뇌격기대의 조종사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돌진하면서 항모 히류를 향해서 7발의 어뢰를 발사했지만 너무 먼 거리에서 발사되거나 방향이 어긋나서 명중탄은 한 발도 없었다. 특히 미군의 공중 어뢰는 일본의 어뢰보다 속도가 느려서 제대로 조준이 되더라도 일본 항모들은 어뢰를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다. 10여분간의 공중전끝에 오히려 비행대장 린시 중령을 포함한 12기의 TBD가 격추되고 구멍투성이가된 2기만이 간신히 생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공격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 함대가 숨돌릴 틈도 없이 랜스 마씨 대령이 지휘하는 요크타운의 제3 뇌격기대대가 공격해왔다. 미군의 뇌격기대는 그야말로 파상공격으로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이들의 상공에 존 태치 소령이 지휘하는 F4F 와일드캣 6기가 따라오고 있었다. 일본 함대의 상공에서는 필사적으로 항모를 향해 돌입하려는 뇌격기들과 이를 요격하려는 제로 전투기 그리고 뇌격기를 보호하려는 와일드캣 전투기들이 뒤엉켜 싸우는 난전이 벌어졌다. 함대를 보호하고자 했던 제로기들은 뇌격기의 후미로 돌아들어갔고 이를 지켜보던 와일드캣 전투기들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기관총을 퍼부어댔다.

이번에는 엄호전투기로 따라온 와일드캣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들은 뇌격기를 공격중인 제로기들의 후미에 따라붙어 많은 명중탄을 퍼부어 10기의 제로기를 바다에 쳐밖았다. 특히 지휘관 지미 태치 소령은 제로기보다 기동성에서 떨어지는 와일드캣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반드시 2기가 1조를 이루어 공격하고 만일 제로의 공격을 받는 경우 우군기가 있는 쪽으로 제로를 유인하여 동료기에게 공격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이른바 태치 위브 (Thach weave)전술을 예전부터 편대원들에게 가르쳐서 실전에서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와일드캣의 손실은 4기였다. 그러나 방어에 나선 제로 전투기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이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제3 뇌격기대의 기체들도 차례로 불덩어리로 변하면서 바다로 추락했다. 결국 어뢰 5발이 투하되었으나 모두 턱없이 빗나가 버렸고 제3 뇌격기대대도 총 12기의 출격기중 대대장 마씨 중령을 포함한 10기를 잃고 2기만이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미군 뇌격기들이 물러가기 시작한 오전 10시 20분, 1시간여동안 계속되는 미군 뇌격기들의 공습에 시달리다가 한숨을 돌린 나구모는 구사까 소장으로부터 전과를 보고 받으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지금까지 일본함대는 8차례가 넘는 공격을 받았지만 단 한발의 폭탄이나 어뢰도 명중되지 않았고, 오히려 공격해오는 미군기들의 대다수를 격추시켰다. 특히 바로 앞에서 벌어진 공중전에서 수많은 미군기들이 속절없이 바다에 쳐밖히는 장면을 목격한 많은 승조원들의 사기도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제 미드웨이 작전은 예정대로 일본해군의 승리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감돌고 있었다.

"좋아! 지금대로라면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겐다 중령, 미함대를 공격할 준비는 완료 되었는가?"

"네 몇분후면 발진 준비가 끝납니다. 곧 정예조종사들이 탑승한 우리의 함재기들이 미항모를 공격하기위해서 이함할 것입니다."

"준비가 되는대로 즉시 발진시키도록, 이제는 우리가 공격할 차례다!"

"네, 제독님... 그런데..."

"뭔가?"

"지금 우리 함대의 방어 임무를 수행하던 제로 전투기들의 피해가 큽니다. 제로전투기 10기가 손실되었고 공중전중에 피탄당한 기체들이 많아서 편대가 와해된 상태입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전투기들은 연료도 떨어져가고 있고 적의 뇌격기를 요격하느라 수면 가까운 저공까지 내려왔습니다."

"뭐야? 그렇다면 지금 우리 머리위에 상공을 방어할 엄호 전투기대가 없다는 말인가? 지금 미군기들의 공격이 없는 것이 다행이군... 여하간에 즉시 잔존기들을 불러모아 편대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전투기들을 발진시켜 함대의 상공을 지키도록 하라!"


다시 한번 일본 항모의 갑판에서는 승조원들이 함재기를 발함위치에 배치하고 무장을 점검하고 연료를 보급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몇 분만 있으면 일본 함재기들이 출동하여 미 함대를 격멸할 것이다. 갑판에는 발함 위치로 정렬한 97식 함상공격기들과 99식 함상폭격기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들 고성능 어뢰와 폭탄을 장비하고 연료를 만재한 상태로 한 대씩 시동을 걸고 있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이함준비를 갖춘 일본 항모 4척의 갑판에는 우렁찬 함재기들의 시동음이 울려퍼졌다.

 

* 결정적 순간

하지만 일본함대의 운은 여기까지였다. 사실 미항모 3척에서 발진한 41기의 뇌격기들이 단 한발의 어뢰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90%에 달하는 37기가 격추당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루었지만 이들의 죽음은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었다. 뇌격기 조종사들이 시간을 끌면서 일본함재기들의 출격준비를 지연시키고 상공을 방어하던 제로 전투기들을 저공으로 유인하는 사이에, 어느샌가 하늘의 저 높은곳에서는 35기의 SBD 급강하 폭격기들이 바로 일본 함대의 머리 위까지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군 뇌격기들이 필사적으로 일본항모를 공격하는 사이에 뇌격기들보다 조금 늦게 항모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35기의 SBD 들은 지휘관인 웨이드 매클러스키 대령을 따라서 일본함대를 찾아 헤메고 있었다. 이들은 앞의 다른 비행대와 마찬가지로 예정된 지점에서 일본 함대를 발견하는데 실패했으나 연료가 부족해서 바다에 착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일본함대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매클러스키 대령의 결단에 따라서 연료계가 거의 절반을 가리키는 아슬아슬한 상태에서도 계속 비행하고 있었다.

매클러스키는 직감적으로 일본 항모들이 미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북동쪽으로 이동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지 몇 분이 지난 오전 10시 정각에 일본 함대의 맨 후미에서 미 잠수함을 경계중인 일본 구축함 한 척을 발견하고는 이 구축함의 방향을 따라서 계속 비행한 후 결국 일본함대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들이 구름위로 숨어서 일본 함대로 접근하는 동안 일본 함대 주위에서는 미군의 마지막 뇌격기 들이 제로기들에게 쫒기면서 불덩어리로 변하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매클러스키는 항모 아까기, 가가, 소류의 3척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주위에 포진한 2척의 전함과 중순양함 그리고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대 함대의 원형진을 발견했다. 나머지 항모 히류는 항로를 가장 먼저 변경하여 미군기들의 접근방향에서 멀리 위치해 있었던 데다가 짙은 구름에 가려져있었으므로 미군 조종사들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SBD의 조종사들은 눈앞에 놓여진 일본 함대를 보고는 긴장과 흥분으로 들떠있었다.

"소령님, 일본 항모 3척이 틀림없습니다. 저놈들 지금 막 함재기들을 발진시키려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아주 제시간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지금 갑판에는 적기들이 꽉 차있습니다."

"적의 전투기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전부 거의 수면 근처까지 내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입니다."

"좋아! 즉시 공격에 들어간다. 전원 돌격하라! 이번에야말로 진주만의 원수를 갚아주겠다!"
 

 

드디어 미드웨이 해전의 전세를 결정지을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웨이드 매클러스키를 선두로 하는 미해군 SBD 급강하 폭격기들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SBD들은 한 대씩 편대를 벗어나 일본 항모들을 목표로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급강하를 시작했다.

 

 

 

 
*일본해군의 절망

오전 10시 24분, 일본 항모 아까기에는 드디어 발진 명령이 떨어졌다. 목청이 터져라 반자이를 외쳐대면서 모자를 흔드는 승조원들에게 화답이라도 하듯이 호위 임무를 맡은 제로 전투기 한 대가 제일 먼저 힘차게 이륙한 후 상승하고 있었고 이어서 두 번째의 제로전투기가 갑판을 질주했다. 다른 조종사들도 전방을 응시하면서 자신의 발진 순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기의 갑판에서서 이 장면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던 후지다 중령은 웬지 불안한 느낌이들어 잠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장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갑자기 여러 개의 검은 점들이 구름을 뚫고 귀청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동시에 대공 초계병들이 여기저기서 고함을 질러댔다.

"적기다! 적의 급강하 폭격기들이 공격해오고 있다!"

"으아악! 이쪽으로 똑바로 떨어져온다! 전원 대피! 전원 대피!"


이때까지 제로 전투기대와 일본함대의 방공병들은 모든 신경을 계속 공격해오는 뇌격기에 빼았기고 있었던 데다가 하늘에 깔린 구름위로 접근해오는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SBD들이 바로 머리위까지 오도록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함대는 위기가 코앞에 와서야 대공포를 난사하면서 절망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게다가 일본 해군이 그토록 자랑하던 제로 전투기들은 단 한 대도 급강하 폭격기들을 막을 수 있는 고도에 올라가 있지 못했다.

나구모를 비롯한 참모들은 혼비백산하여 일제히 함교의 창문에 달라붙어 상공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절망 바로 그것이었다.

 

 

 

 

 

* 절망의 5분 *

그것은 그야말로 완전한 재앙 그 자체였다. 일본 함대에게는 구름위에서부터 요란한 소리를 울리면서 고속으로 떨어져 내려오는 SBD 급강하 폭격기들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전혀 없었다.

가장 먼저 폭탄에 두들겨 맞은 것은 일본 항모 중에서 가장 큰 항모 가가였다. 이날 가가를 공격했던 한 SBD 조종사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일본 항모들이 분명하게 보였다. 더구나 갑판에는 비행기들이 가득하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급강하에 들어갔고 일본항모의 노란색 갑판과 선수쪽에 그려진 붉은 원을 뚜렸하게 볼 수 있었다. 마치 여기에 폭탄을 떨어뜨려 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몇 발의 대공포화가 주위에서 작열했으나 나는 거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붉은 원을 향해 똑바로 급강하하면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급강하에서 회복할 무렵 엄청난 굉음이 들렸고, 기체가 흔들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 거대한 일본 항모에서는 검은 버섯구름이 올라오고 있었다."

가가는 30초도 안되는 사이에 상부 갑판에 직격탄 4발을 연속으로 정확하게 얻어맞았다. 순식간에 갑판에서 어뢰와 폭탄을 장비하고 연료를 만재한 상태로 발함대기 중이던 수십기의 함재기들이 폭발에 곧바로 휘말렸고 마치 도미노처럼 엄청난 연쇄 폭발과 대형 화재를 일으켰다.

일본 해군이 자랑하던 최정예 조종사들이 단 한번의 출격도 못해보고 조종석에 앉아 있는 채로 불에 타죽거나 폭발에 휘말려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져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곧이어 갑판을 뚫고 들어온 폭탄이 격납고에서 폭발하자, 격납고 여기저기에 방치되어 있던 고성능 폭탄 (무장을 어뢰로 교체하면서 탄약고로 옮겨 놓지 못한 지상 공격용 폭탄)들이 엄청난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가가의 갑판과 함내에서 연이어 불기둥과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이 지옥의 불길은 비명을 지르면서 어쩔줄 몰라하는 승조원들을 순식간에 삼켜버렸으며 사방에서 불에 타서 죽어가는 승조원들이 질러대는 비명과 함께 파괴된 보일러에서 새어나오는 수증기의 굉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4번째 폭탄은 가가의 함교에 정통으로 명중하여 오까다 제독을 포함한 모든 장성과 장교들이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거대항모 가가는 말그대로 바다위에 떠있는 지옥도로 돌변한 것이다.

아까기도 가가와 거의 동시에 매클러스키 휘하의 SBD 급강하 폭격기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일본제국 연합함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제1 항공함대의 기함인 거대항모 아까기에게도 연이어 폭탄세례가 퍼부어졌다. 아까기가 필사적으로 회피기동을 하면서 처음의 몇 발은 빗나가 항모주위에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켰지만 SBD들은 계속 덤벼들었으며 결국 폭탄 2발이 갑판에 정확하게 명중되었고 이것으로 끝장이었다.

아까기 역시 갑판에 늘어서있던 함재기들이 폭발에 휘말려 함재기들의 연료, 폭탄 그리고 어뢰들이 순식간에 차례로 유폭을 일으켰다. 발함대기 중이던 조종사들이 갑작스런 사태에 놀라서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려 하였으나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던지라 대부분은 조종석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애기와 함께 폭발에 휘말렸다. 함재기들의 연쇄폭발로 사방으로 파편이 튀어날면서 갑판에 있던 많은 승조원들이 그 자리에서 전사했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승조원들도 사지가 잘린채로 비명을 질러대는 참상이 연출되었다. 잠시후에는 아까기의 격납고에 방치되어 있던 폭탄들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아까기도 가가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였다. 이 와중에 간신히 살아남은 나구모와 구사까, 겐다와 같은 참모진은 폭발의 충격에 모두들 함교에 쓰러진 상태로 마치 넋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멍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숨막히는 검은 연기가 함교를 뒤덮기 시작하면서 살아남은 승조원들이 필사적으로 이들을 탈출시키고자 했고, 결국 나구모와 참모들은 함교의 창을 깨고 밧줄을 타고 간신히 탈출한 후 순양함 나가라로 옮겨 타야 했다.

순식간에 공격을 성공시킨 매클러스키는 제로 전투기의 반격을 의식해 폭탄을 투하하는 즉시 일본 함대 상공을 이탈해서 일직선으로 귀환할 것을 명령했고 공격을 마친 SBD들은 속속 귀환코스로 기수를 돌렸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매클러스키 휘하의 SBD들이 아까기와 가가를 맹폭하는 사이에 가장 늦게 출발한 항모 요크타운의 SBD 17기가 전투 공역에 도달했다. 지휘관인 맥스 레슬리 소령은 아까기와 가가가 불타오르는 것을 보자 곧장 항모 소류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곧 17기의 SBD들은 차례로 소류를 향해 떨어져갔다. 격렬한 대공포화가 이들을 맞이했으나 이것은 이미 고속으로 급강하에 돌입한 SBD들에게는 환영의 축포나 다름없었다. 소류도 폭격을 피하기 위해서 격렬하게 대피 선회를 했지만 헛된 일이었다. 소류의 갑판에도 연달아 3발의 폭탄이 정확하게 명중했다. 그리고 소류에서도 아까기와 가가에서 벌어졌던 참상이 재현되었다.

공격이 성공하자 SBD 폭격기들은 일제히 귀환경로에 올랐다. 일본 함대의 피해를 살핀후 마지막으로 상공을 이탈하던 맥스 래슬리 소령은 흥분된 목소리로 함대에 작전 성공을 보고했다.

"여기는 제3 급강하 폭격기대의 맥스 레슬리이다. 지금 적항모 3척이 대 폭발을 일으킨 후 불타고 있다. 다시 한번 보고한다. 우리는 일본 항모 3척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최초의 공격이 시작된지 5분여 만에 갑자기 노도처럼 밀려오던 SBD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5분동안 일본 함대에게 극복하기 힘든 극심한 큰 타격을 준 상태였다. 3시간이 넘게 분전하면서 반격을 준비하던 일본 함대는 불과 5분만에 최정예 항모 3척을 잃고 궁지에 몰린 쥐 신세가 된 것이다.

미군기들이 물러간 후 공격을 받은 항모 3척은 불길에 휩쌓여 있었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을 듯이 솟아올랐지만 아직 침몰은 모면하고 간신히 바다위에 떠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함내에서는 계속 크고 작은 폭발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그 사이 사이에 죽어가는 승조원들이 고통을 못이기고 질러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주위의 바다에는 항모에서 튕겨나간 항공기들의 잔해와 새어나온 기름이 섞여 있었고 팔다리가 잘려진 승조원들의 시체가 바다를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중국과의 전쟁이 시작된이래 전투를 지휘하면서 단 한척의 함선도 상실해 본적이 없는 나구모는 큰 충격을 받았고 모든 자신감을 잃었다. 이제 일본 함대는 최후의 잔존 항모 히류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나구모는 순양함 나가라의 병실에 누워 넋을 잃은 사람처럼 중얼 거렸다.

"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일이란 말인가? 우리 항모들이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고 말다니.... 이후의 모든 작전은 야마구찌 다몽제독과 상의하도록 하라."

 

* 히류의 고군분투

오전 10시 50분, 짙은 구름에 가려있어 다행히 SBD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던 히류의 함교에서는 야마구찌 제독이 침울한 표정으로 눈앞에 벌어진 참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과 20분전 만해도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의 일본 항모 3척이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속에 휩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냉철한 야마구찌 제독은 나구모로부터 작전권을 이양받자마자 곧바로 미함대에 대한 반격을 준비했고 일본 함대는 큰 충격에 휩쌓였지만 야마구찌의 명령으로 히류를 중심으로 다시 원형진을 구성하면서 전열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아마구찌는 즉시 히류의 비행대장 고바야시 대위를 불렀다.

"고바야시 대위, 너무나 원통하지만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 우리는 당장 반격을 해야 한다. 지금 곧장 미함대를 공격하면 공격을 마치고 돌아가는 적기들이 착함할 무렵에 공격이 가능할거야. 그러나 문제는 적의 항모의 위치를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아까 소류로부터 발진한 정찰기로부터는 소식이 없습니까? 시간상으로는 이미 적항모를 발견했을 텐데요?"

"무슨일이 생긴게 틀림없네. 적기들에게 격추당했다거나..."

"그러면 어떻게 하지요? 적 항모를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우리에겐 망설일 시간이 없다. 일단 오전에 정찰 4호기가 미항모의 위치를 보고한 방향으로 날아가도록 하게. 그 다음에는 운에 맞기는 수밖에는 없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즉시 출동하겠습니다."



고바야시 대위는 진주만 기습에도 참가한 적이 있는 베테랑 지휘관이었다. 그는 즉시 99식 함폭 18기를 이끌고 제로 전투기 6기의 호위를 받으면서 미 항모를 찾아 출격했다. 이들은 정확한 적항모의 위치도 모르는채 무작정 정찰기 4호가 2시간전에 보고했던 미항모 발견지점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바야시 공격대가 구름위로 솟아오른 후 20여분이 지나자 저 멀리 수평선에 작은 점 몇 개가 보였다.

"대위님! 적기들입니다. 놈들은 지금 항모로 돌아가나 봅니다."

"좋아! 적기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구름에 숨어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따라붙어라. 적 항모를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때 고바야시가 발견한 미군기들은 요크타운으로 돌아가던 급강하 폭격기들이었고 고바야시는 불길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동료들의 복수를 다짐하면서 몰래 미군기들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 요크타운의 시련

제17 기동부대의 항모 요크타운은 정오가 되면서부터 돌아오기 시작한 전투기들과 SBD 급강하 폭격기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적 항모 3척이 불타고 있다는 낭보를 전해들은 모든 승조원들은 사기 충천하여 귀환하는 조종사들을 맞아들이면서 환호했다. 함재기들이 한 대씩 착함 할 때마다 갑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려퍼졌고, 연료가 거의 떨어져서 먼저 착륙한 전투기들은 곧바로 재무장과 재급유를 받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요크타운의 레이더 스코프에 여러개의 점이 나타났다.

이것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나타난 양측 함대의 차이중 하나였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미 함대는 일본 함대에게는 없는 레이더가 있었기 때문에 기습에 가까운 공격을 미리 발견하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기들을 탐지한 요크타운의 레이더 장교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즉시 플래쳐 제독에게 일본기의 접근을 보고했다.

"제독님! 적기 들입니다. 지금 약 50마일 지점에서 20기 이상의 적기들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즉시 대공 경계태세로 돌입하라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전투기들을 날려보내라! 즉시 제16 기동부대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라."


요크타운의 갑판에는 즉시 공습 경보가 울려퍼졌고 아직 착함하지 못한 SBD 폭격기들은 모두 제16 기동부대의 항모 호넷과 엔터프라이즈로 날아가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급유를 받던 전투기들은 제대로 급유를 마치지도 못하고 즉시 비상 출격을 해야했으며 동시에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에서도 F4F 전투기들이 날아올라 일본 공격기들을 요격하기 위해서 요크타운이 있는 해역으로 급행했다. 요크타운과 이를 둘러싼 순양함들과 구축함들로 이루어진 호위함대의 수병들은 즉시 대공경계태세로 들어갔다.

잠시 후 수평선 저쪽에서 일본기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시야에 요크타운이 들어옴과 동시에 요격에 나선 F4F 와일드캣의 방어망에 걸려들었다. 제로 전투기 6기가 와일드캣을 막아고자 이리저리 선회하면서 덤벼들었지만 항모 3척에서 날아든 30여기의 와일드캣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와일드캣 조종사들은 아군의 대공포화에 맞을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일본기들을 물고늘어졌고 속도가 느린 99식 함상폭격기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이내 명중탄에 맞은 일본기들은 한 대 한 대 검은 연기를 끌면서 바다로 떨어져갔다.

그러나 일본 조종사들도 죽기를 각오한 상태였기 때문에 항모 요크타운을 발견하자마자 즉시 일직선으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뛰어난 지휘관이었던 고바야시는 최적의 폭탄 투하 코스로 부하들을 유도했다. 일본기들이 가까이 접근해오자 미함대로부터 치열한 대공포화가 날아올랐고 마침내 고바야시 탑승기가 대공포화에 피탄되어 불길에 휩쌓여 바다로 쳐밖혔다.
 

 

일본 공격기대의 손실도 매우 커서 고바야시기를 포함한 13기의 99식 함상폭격기들이 와일드캣의 공격을 받거나 대공포화에 명중되어 격추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5기의 99식 함폭은 미친 듯이 돌진해 들어가 요크타운을 공격했다. 이들은 일본 해군이 자랑하는 최고 조종사들이었으므로 기량에서는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 조종사들에 뒤지지 않았다. 곧 폭탄이 한발 한발 투하되었고 이중 3발이 요크타운에게 정확하게 떨어졌다. 2발은 갑판에 명중되었고 한발은 굴뚝으로 들어가 기관실을 대파시켰다. 그러나 참상이 벌어졌던 일본항모와는 달리 요크타운의 갑판에는 함재기들이 거의 없었고 격납고에도 인화물질이 거의 없어 폭탄 자체에 의한 폭발말고는 더 이상의 연쇄 폭발은 없었다. 공격을 마치고 돌아가는 제로 전투기의 조종사가 요크타운으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고 즉시 함대에 보고했다.

"적 항모는 불길에 휩쌓여 있다. 다시 한번 보고한다. 적항모 1척이 불타고 있다."

이 보고를 들은 야마구찌는 약간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 소류에서 출발했던 정찰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정찰기는 섬광신호로 무전기 고장을 보고하면서 착함했다. 정찰기 조종사는 착함하자마자 즉시 조종석에서 뛰어내려 야마구찌 제독에게 보고했다.

"제독님, 우리는 1시간 30분전에 적 항모 3척을 발견했습니다. 즉시 보고하려고 했습니다만 무전기가 고장을 일으켜 아무것도 보고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크타운으로부터 약간 북쪽으로 떨어진 거리에 적 항모 2척이 더 있습니다."

그제서야 야마구찌는 하늘이 일본을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황이 너무나 불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투를 중지하고 후퇴할까하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는 공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적 항모가 3척이었다니... 게다가 하필 정찰기의 무전기가 고장을.... 여하간 적 항모는 이제 2척이 남았다. 그렇다면... 한번 해볼만 하지 않은가!'

"좋아. 지금 우리에게 가동 가능한 기체가 몇기인가?"

"네! 고바야시 공격대를 제외하고 현재 97식 뇌격기 10기와 제로 전투기 6기가 출격할 수 있습니다."

"음... 오늘 아침만해도 우리 비행기들이 하늘을 뒤덮었었는데, 지금 고작 그것뿐이라니 정말 허망하군. 고바야시 비행대의 잔존기들이 돌아오기전에 즉시 이들을 출동시켜라. 나머지 적항모 2척을 찾아내 공격하도록 하라!"

야마구찌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히류의 함상에서는 함재기들이 발진 준비에 들어갔다. 이 뇌격기들의 지휘관은 오전에 미드웨이 공격을 지휘했던 도모나가 죠이찌 대위였다. 그는 자신이 탑승했던 97식 함상공격기의 연료탱크 하나가 미드웨이 공습중에 피탄되어 아직 수리 받지 못한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주저 없이 나머지 연료탱크에만 연료를 채워 넣고는 출격했다. 도모나가는 이미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한 것이다.

 

 

 

* 요크타운 운명과 맞서다

한편, 폭탄 3발을 얻어맞은 요크타운에서는 승조원들이 필사적으로 불길과 싸우고 있었다. 갑판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기관실도 엉망이 되었지만 승조원들이 바닷물을 뿌려대면서 진화에 나선결과 화재는 1시간만에 다 잡혔다. 이어서 수리반들은 갑판을 복구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으며 결국 항공기의 이착함이 가능한 정도까지 갑판도 응급 복구되었다.

 

 

 

 

게다가 가망이 없어 보이던 기관실도 수리반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다행히 보일러 1기가 작동하면서 시속 18노트의 속도로 항진도 가능하게 되었다. 요크타운이 대파되어 전열에서 이탈하거나 침몰했을 것이라고 예측한 야마구찌의 기대와는 달리 오후 2시경이 되면서 요크타운은 산호해 해전에서도 대파되었지만 기적적으로 복구되어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야말로 불사조 처럼 다시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일본 순양함 지쿠마에서 출동한 정찰기 5호가 요크타운을 발견했다. 조종사들은 요크타운이 불길에 휩쌓여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크타운의 화재가 진압되어 연기가 나고있지 않았으므로 요크타운은 공격을 받아 침몰했으며 지금 발견한 것은 새로 나타난 2번째의 미항모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정찰기 5호, 2번째의 미항모를 발견했다. 위치는 요크타운이 침몰한 지점 근방이다. 즉시 공격을 요청한다."

비행중이던 도모나가는 즉시 미항모를 공격하기 위해 정찰기가 보고한 지점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이때 요크타운을 공격하고 돌아오는 고바야시 공격대의 잔존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무운을 빌면서 경례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도모나가의 공격대도 미함대 근처에 이르기도 전에 미군의 레이더에 탐지되었으며 미군의 대응은 신속했다.

"제독님! 적기 20여대가 또 접근하고 있습니다. 레이더에 탐지된 고도로 봐서는 뇌격기들입니다."

"음... 끈질긴 놈들! 이번에는 어렵겠군... 즉시 전투기들을 발진시키고 대공경계태세에 들어가라!"

오후 2시 30분, 드디어 도모나가의 시야에 미항모가 들어왔다. 이것은 요크타운이었지만 도모나가도 이것이 다른 항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이 함대의 상공에 접어들 무렵 F4F 와일드캣 12기가 덤벼들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한 도모나가를 선두로 저돌적으로 돌격해오는 97식 함상공격기들은 자욱한 대공포화속으로 뛰어들어 어뢰를 투하하기 시작했다.


결국 어뢰 2발이 요크타운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이 순간 항모 전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하늘을 뒤덮을 듯한 물기둥이 갑판에 쏟아졌다. 게다가 이미 죽음을 결심한 도모나가의 기체는 어뢰를 투하하자마자 그대로 요크타운으로 뛰어들어 자폭해버렸다. 결국 간신히 복구한 기관실도 완전히 마비되었고 선체는 점점 기울어갔다. 이제는 불사조같이 버티던 요크타운도 그 운명을 다해가는 듯이 보였다.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울것으로 판단한 플래쳐 제독은 전원 퇴함의 명령을 내렸으며 자신도 순양함 아스토리아로 옮겨탔다.

그러나 요크타운이 일본기들의 공격을 받는 동안 미 정찰기들이 일본 함대의 마지막 항모 히류를 찾기위해서 바다를 뒤지고 다니고 있었다. 니미츠는 일본 항모 3척이 불타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후에도 절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말고 마지막 일본 항모를 찾아서 격파할 것을 명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 3시 40분경, 미 정찰기는 북쪽으로 항진하고 있는 히류를 발견했다.

스플루언스는 즉시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에서 총 36기의 SBD 돈트리스 폭격기들을 발진시켰다. 또다시 SBD들이 한 대 한 대 항모를 출발해서 일본 함대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 SBD들중 10기는 요크타운 비행대 소속이었으나 요크타운이 공격받으면서 착함이 곤란해지자 제16 기동부대쪽으로 방향을 돌려 착함한 기체들이었다. 조종사들은 요크타운이 대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를 갈면서 남은 일본 항모를 끝장내버리고 돌아오자는 맹세를 했다.

 

 

 

 
* 히류 최후의 순간

오후 4시 20분, 도모나가 공격부대의 잔존기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히류의 갑판에서는 야마구찌가 참모들과 함께 초조하게 생환하는 기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공격기들이 적 항모를 격파했다고 하니 이제는 우리도 미군도 항모가 한척씩만 남은 셈이군요. 축하드립니다. 제독님!"

"그나저나 우리 함재기들은 몇대나 살아돌아 왔는가?"

"네, 뇌격기 4기와 전투기 3기가 생환했습니다."

"절반도 살아오지 못했군. 그렇다면 우리는 남은 비행기가 97식 뇌격기 4기, 99식 함폭 6기구만.."

"전투기도 6기가 출동할수 있습니다."

"좋아, 즉시 재급유와 재무장을 시행하도록, 작업이 마치는대로 날이 저물기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미함대를 공격한다!"

야마구찌는 그야말로 후퇴를 모르는 지휘관이었다. 그는 미항모 2척을 격침 또는 대파시켰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운이 좋으면 남은 한 척의 항모를 잡아내어 최후의 승리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역전의 항모 히류의 갑판에서는 승조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함재기를 다시 출격시키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야마구찌가 기대하던 운은 일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히류의 분전도 여기까지였다. 오후 5시를 넘기면서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 히류의 승조원들은 수평선 저쪽에서부터 하늘 높이 날아드는 수십 개의 검은 점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승조원이 겁에질려 소리쳤다.

"아아! 급강하 폭격기다! 적의 급강하 폭격기들이 나타났다!"

"으아악! 전원 대피 하라! 전원 대피 하라!"

히류의 갑판은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버렸고 조종사들도 기겁하여 기체에서 뛰어내려 수병들과 뒤섞여서 몸을 숨길 곳을 찾고 있었다. 이 순간만은 냉철한 야마구찌도 하늘을 쳐다보면서 절망섞인 한숨을 내쉬는 수 밖에는 없었다. 야마구찌는 허탈한 듯이 중얼 거렸다.

"아! 결국 하늘은 우리 일본 해군을 완전히 버리려 하는 것인가..."

 

 

 

 

 

* 히류의 최후

히류가 북쪽으로 항진하면서 요크타운을 공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 히류를 잡기위해서 접근하고 있던 미해군의 SBD 급강하 폭격기대는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윌머 갤러허 대위가 지휘하고 있었다. 이들은 남서쪽으로부터 저물어가는 태양을 등지고 일본함대로 접근하고 있었으므로 레이더가 없었던 일본 함대의 대공초계병들은 폭격기들이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먼거리에서 발견했었다해도 마땅한 대응책도 없었겠지만...)

갤러허 휘하의 SBD의 일군이 히류의 상공으로 접근할 무렵 야마모토의 명령으로 상공을 초계하던 제로전투기 3기가 이들을 맞이했다. 제로전투기 조종사들은 필사적으로 덤벼들었고 결국 2기의 SBD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이 무렵 항모 호넷에서 발진한 SBD들까지 가세하여 무려 35기나 되는 SBD의 대군을 막기에는 이들의 분전이 너무나 애처로울 정도였다.

"좋아 저놈이 바로 일본군의 마지막 항모로군, 요크타운의 원수를 갑아주자! 전원 저 항모를 향해 돌격하라! 저놈을 격침시키자!"

히류를 식별한 갤러허 대위는 즉시 공격명령을 내렸고 히류 주위에 작열하는 대공포화속으로 공격 명령을 받은 13기의 SBD 폭격기들이 먼저 한 대씩 히류를 향해서 떨어져 내려갔다.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 히류의 가꾸 도메오 함장은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항모를 우선회시켰다. 이 타이밍이 적절해서 최초의 폭탄 3발은 히류의 주위에 떨어져 물보라만 일으켰지만 항모 히류가 아무리 빨리 선회를 한다고해도 이미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연달아 공격해오는 SBD들의 급강하 폭탄세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내 4발의 폭탄이 연달아 정확하게 히류의 전방 갑판으로 떨어졌고 검은 버섯구름과 함께 대폭발이 이어졌다. 함상에 남아있던 일본해군의 마지막 함재기들이 산산조각나면서 사방으로 튕겨나갔고 수많은 승조원들이 그 자리에서 파편에 맞아 전사했다. 곧 하늘을 뒤덮을 듯한 불길과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더구나 히류가 고속으로 선회 중이었으므로 전방 갑판에서 발생한 화재가 계속 뒤로 번지고 있었으며,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난 열기가 함선을 뒤덮었고 함교의 유리는 폭발의 충격으로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용장 야마구찌 제독도 폭발의 충격으로 함교에 쓰러져 있었다.

상공에서 공격순서만을 기다리면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SBD 폭격기의 조종사들은 이공격으로 히류의 운명이 다했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히류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한 검은 연기 구름으로 인해서 바로 위에서는 히류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이들은 히류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히류를 호위하던 전함 하루나와 중순양함 지쿠마, 도네를 차례로 공격했다. 하지만 하루나와 도네, 지쿠마는 격렬한 대공포화로 저항하면서 희피기동을 실시하여 큰 피해없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우선 공격목표인 항모를 잡아낸 SBD 폭격기 조종사들은 그들이 의도했던 작전이 성공했음을 보고하면서 들뜬 마음으로 귀환길에 올랐다. 공격을 마친 SBD 폭격기들이 모두 물러가자 태양이 저물어 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불가마가 되어버린 히류의 처절한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공격이 끝난후 도네의 수상기가 정황을 살피기 위해서 이륙한후 상공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정말로 처참했다. 나구모 기동부대의 마지막 항모 히류의 전방 갑판은 완전히 날아가버렸으며 불기둥은 점차로 함미로 번지고 있었다.

이제 히류는 항모가 아니라 마치 유령선이 되버린 듯 했다. 히류를 둘러싼 다른 함선의 승조원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후퇴를 모르고 분전하면서 미함대와 맞섰던 용장 야마구찌와 항모 히류도 이제는 그 명을 다한 듯이 계속 불길을 토하고 있었다.

 

* 일본의 거대항모들, 태평양에 잠들다.

한편, 오전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항모 3척은 침몰만은 면하려는 승조원들의 노력으로 간신히 바다에 떠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워낙 큰 피해를 입은 항공모함들은 마치 옆구리에 작살에 찔려 피를 토하는 고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태평양에 잠든 항모는 소류였다. 소류는 오전의 폭격으로 엔진이 정지하고 불길이 함선 전체를 뒤덮기 시작해서 정오 무렵에는 이미 야나기모토 류사크 함장이 전원 퇴함을 명령한 상태였다. 야나기모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소류의 생존승조원들이 바다로 뛰어들었고 구축함 하마카제와 이소카제가 이들을 구하기위해 접근했다. 이들이 구조될 무렵 그들은 그들이 존경하며 따르던 야나기모토 함장이 탈출하지 않고 함교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 야나기모토 함장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몇몇 승조원들이 함장을 구하기위해서 함교로 뛰어올라갔다. 그러나 야나기모토는 단호하게 퇴함을 거부했고 자신은 소류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나기모토의 명령으로 어쩔수없이 함장을 남기고 모든 생존자들이 탈출했으며, 야나기모토는 점점 불길에 휩쌓이는 함교에서 일본국가인 기미가요를 목청이 터져라 부르면서 소류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점점 기울기 시작하던 소류는 6월 4일 오후 7시 13분, 살아남은 승조원들이 안타깝게 쳐다보는 가운데 이미 전사한 718명의 승조원들과 함께 태평양의 5천미터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 일부 승조원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어버이를 잃은 자식처럼 엉엉 울었다는 뒷이야기가 있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가가는 이미 오카다 지사꾸 함장을 포함한 지휘부가 모두 공습당시에 전사한 상태였기 때문에 생존자중 가장 계급이 높았던 항공장교 아마기 다카히사 소령이 생존자들을 독려하면서 불길을 잡기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가가의 보일러에서 빠져나오는 수증기의 소음이 마치 거대한 괴물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한 굉음처럼 울려퍼지고 있었고, 선체가 균형을 잃고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가면서 아마기는 가가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오후 2시 30분, 일본 함대 주위를 배회하면서 공격기회를 노리던 미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일본 함대의 경계가 흐트러진 사이에 함대 가까이 접근했고, 가가를 목표로 어뢰 3발을 발사한 후 일본 구축함들이 추격해오자 그대로 잠수하여 도주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어뢰 3발 중 2발은 빗나갔으나 나머지 한발이 정확하게 가가의 중심부에 명중했다. 그러나 이 어뢰의 신관이 작동하지 않아 폭발하지 않았고 가가는 몇 시간이나마 더 생존할 수 있었다. (일부 미군의 기록에는 이 어뢰가 가가를 끝장냈다고 기술하고 있음.) 하지만 점차로 불길이 거세지고 함내의 폭발이 계속되면서 가가는 점점 더 기울어 가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 점점 더 거세지는 불길로 인해서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아마기는 눈물을 삼키면서 전원 퇴함을 명령했다. 그러나 거대항모 가가는 살아있는 사람이 모두 탈출한 뒤에도 최후의 몸부림을 치듯이 3시간동안이나 마치 유령선처럼 바다를 떠돌다가는 소류가 침몰한지 12분후인 오후 7시 25분에 결국 800여명의 전사자와 함께 태평양의 심연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2척의 항모가 침몰한후에도 일본 함대의 상징과도 같은 아까기는 불과 싸우면서 바다에 떠있었다. 그러나 공습직후 전원 퇴함의 명령이 떨어졌던 아까기에는 이미 살아있는 승조원은 없었고 아까기도 살아날 가망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역전의 항모 아까기는 가가와 소류가 침몰한 후에도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듯이 버티고 있었으며 호위함대도 아까기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아까기는 매우 상징적인 항모였으므로 자침시키려면 야마모토의 명령이 있어야 했다.) 결국 아까기는 바다가 어둠에 휩쌓인 6월 5일 새벽 2시까지도 선체에서 불을 토하면서 유령선처럼 바다를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 미드웨이 침공 작전 중지

한편, 제1 기동부대의 항모들이 모두 당하고 말았다는 비보를 전해들은 야마모토는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모든 작전이 엉망이 되었으며, 냉철하고 신중한 야마모토조차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항모 3척이 대파당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야마모토는 평소답지않게 마음이 조급해졌다. 야마모토는 우선 얄류선 공략부대의 항모 2척을 급히 미드웨이로 향하도록 명령하고 자신이 지휘하는 본대를 전속으로 미드웨이 방면으로 이동시키도록 명령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 각 부대간의 거리가 워낙 멀어 얄류션 공략부대는 미드웨이까지 가려면 무려 48시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야마모토의 본대도 500km가 넘는 거리를 항진해야 했다. 더구나 잠시후 히류마저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가 들어오면서 야마모토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선봉에 섰던 모든 항모들의 손실로 제공권을 상실한 야마모토는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려고 했다. 그것은 곧 날이 어두워 진다는 것을 이용해서 곤도 제독과 구리따 제독이 지휘하는 상륙함대의 전투함들로 하여금 제1 기동부대의 전함과 순양함들과 합류하여 전속력을 미함대를 추격해서 주포와 어뢰를 이용한 야간전투를 감행하는 것이었다.

즉시 미함대를 추격하라는 야마모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본 함대의 순양함 모가미와 미쿠마를 선두로하는 일본 함대는 해가뜨기전에 미함대를 잡기위해서 전속력으로 동쪽으로 항진하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기대와 달리 미항모들은 이미 일본 함대가 추격해 올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듯이 일본 함대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쪽으로 내빼는 중이었다. 아직 항모 2척이 건재한 미함대는 일본 함대가 거리를 좁혀오는 것을 허용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만일 일본 함대가 계속 미함대를 추격해서 동쪽으로 항진하다가 미해군을 따라잡지 못하면 해가 떠오른 후 미군의 함재기들로부터 다시 역습을 받아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었다.

순양함에서 발진한 일본 정찰기가 미항모들이 일본함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하자 결국 야마모토는 그가 구상했던 대작전이 실패로 끝난 것을 인정해야 했다. 휘하의 참모들은 모두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후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상신하고 있었다. 결국 야마모토는 6월 5일 새벽 2시 55분, 미드웨이 공략작전 전체를 취소할 것을 명령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가 일본의 운명을 걸고 감행했던 대도박은 미드웨이라는 작은 섬을 넘지 못하고 태평양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야마모토는 작전실패를 상징하는 치욕적인 명령을 하달해야 했다. 그것은 화염에 휩쌓여 떠돌고 있는 아까기를 방치하고 떠나올 경우 미군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으니 우군의 손으로 격침하라는 것이었다. 이로서 아까기는 태평양 전쟁 최초로 우군의 손에 의해 자침된 항모가 되었다. 이 명령이 떨어지자 일본 함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거대항모 아까기를 향해서 4척의 호위 구축함이 접근했다. 그리고 어뢰 4발이 아까기를 향해서 조준되었고 동시에 발사되었다. 잠시후 어뢰가 모두 명중하면서 아까기는 거대한 불기둥과 함께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1942년 6월 5일 새벽 4시 55분, 나구모는 그의 눈앞에서 자신과 모든 것을 함께한 일본해군의 상징 아까기가 일본해군의 어뢰에 의해 처분되어 깊고 깊은 태평양의 바다속으로 사라지는 쓰라린 광경을 보고 있어야 했다.

한편, 일본의 마지막 항모 히류의 최후도 임박했다. 히류 역시 손을 쓸 수 없는 불길에 휩쌓여 조타력을 상실하고 유령선처럼 북쪽으로 떠돌았다. 6월 5일 새벽 2시 30분, 야마구찌 제독은 그의 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함내에서 발생한 화재는 꺼질줄 몰랐고, 화열로 뜨거워진 함내에서는 크고 작은 연쇄폭발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이 보였으며 점점 히류를 포기해야 할 시점이 임박했다. 점차 연기가 심해지는 함교에서 야마구찌 제독과 가꾸 함장과 함께 부하들을 불러모아놓고 말문을 열었다.

"나는 히류와 소류의 사령관으로서 이 두 항모의 상실에 모든 책임을 지고 가꾸 함장과 함께 히류에 남을 것이다. 내 말이 끝나는 즉시 전원 퇴함하고 이후 최선을 다해서 조국과 천황폐하를 위해서 봉사하도록 하라. 전원 퇴함이 완료되면 즉시 어뢰로서 히류를 격침하라."

야마구찌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든 참모들과 부하들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같이 퇴함 할 것을 간청했지만 야마구찌의 의지는 단호했다. 몇몇 부하들이 같이 남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이 역시 거절했고 모두 퇴함할 것을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리고 그의 전투모를 유물로 부하에게 전달한 후에 일장기와 일왕의 사진을 내려 부하들에게 동행시켰다. 그리고 점점 불길에 휩쌓이기 시작하는 함교에서 가꾸 함장과 술잔을 기울였다.

"자... 달빛이 좋구만, 우리 저 달빛이나 즐깁시다!"

6월 5일 오전 5시 10분, 2척의 구축함에서 발사된 어뢰가 히류에 명중했고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히류도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가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새벽의 바다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 역전의 요크타운 운명을 맞이하다.

한편,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큰 타격을 입은 미해군의 요크타운도 필사적으로 살기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뇌격기들의 어뢰에 명중된후 20도이상 옆으로 기울어버린 요크타운은 이미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엘리엇 벅마스터 함장은 함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모든 승무원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호위 구축함에 구출되었다.

그러나 요크타운은 운명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 역전의 항모는 마치 죽음을 거부하는 불사조처럼 다음날 날이 밝아오도록 옆으로 기운 채로 그대로 물위에 떠있었던 것이다. 결국 미해군은 이 항모를 하와이까지 예인한 후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이 내려지자 요크타운은 호위 구축함에의해 견인되어 서서히 하와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6월 6일 오후 1시, 요크타운이 필사적으로 하와이를 향해 견인되고 있을 무렵에 바다속에서는 요크타운을 노리는 죽음의 사자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미드웨이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던 일본 잠수함 I-168 이었다. 함장이었던 타나베 야하치 소령은 미드웨이 작전이 취소된 것을 알고있었지만 잠망경에 나타난 요크타운을 발견하고는 서서히 미행하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호위 구축함들이 7척이나 있었지만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요크타운은 그야말로 먹음직스런 고기덩어리와 같았다.

I-168의 타나베 함장은 7척이나 되는 호위 구축함들의 위협이 있지만 요크타운을 공격하기로 결심했으며, 계속 이들을 미행하면서 공격기회를 노리다가 요크타운의 측면에서 공격위치를 잡는데 성공했다. 타나베의 명령으로 4발의 어뢰가 발사되었으며 이들은 흰 궤적을 끌면서 요크타운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갔다. 2발은 빗나갔으나 나머지 한발이 먼저 구축함의 옆구리를 통타하여 두동강을 내버렸고, 요크타운도 결정타를 맞고 말았다.

일본군의 잠수함니 나타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뢰 공격에 놀란 미군 구축함들이 분노에 불타올라 일제히 잠수함을 찾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에 폭뢰가 투하되었다. 그러나 I-168호는 거의 침몰위기까지 몰렸다가 사지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I-168의 어뢰 공격을 받은 요크타운은 점점 더 옆으로 기울어가면서도 침몰하지 않고 몇 시간동안을 더 버티면서 또 다시 불사조처럼 살아나는 듯 하였으나 결국 다음날인 6월 7일 새벽 5시, 산호해와 미드웨이에서 불사조의 용명을 떨친 역전의 항모 요크타운도 이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태평양의 바다속에 잠들었다.

 
* 대해전의 종막

야마모토의 명령으로 전 일본함대가 항로를 정반대로 돌리고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6월 6일 미드웨이 해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전투가 전개되었다. 철수명령이 떨어지자 일본 함대는 모두들 방향을 돌려 미 함재기들의 사정권 밖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간전투 명령을 받았을 때 제일 선봉에서서 동쪽으로 돌진해 들어가고 있었던 순양함 미쿠마와 모가미는 뒤늦게 방향을 돌렸지만 아직도 미군기들의 행동반경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앞다투어 후퇴하는 경로에 미잠수함 템버호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템버는 잠망경으로 수면을 살피던중 이 두척의 순양함과 호위 구축함들을 발견했다. 이와 동시에 미쿠마와 모가미의 승조원들도 템버의 잠망경을 발견했다. 일본 구축함들이 템버를 몰아내기위해 다가오자 템버는 잠수하여 도주해야 했다.

그러나 이때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템버가 어뢰를 발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가미의 함장이 회피기동을 실시하던 도중 미쿠마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이 충돌사고로 두 순양함은 큰 손상을 입었고 기름을 바다에 흘리면서 비틀거리면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함대는 끝까지 퇴각하는 일본해군을 공격하기로 결정했고, 미드웨이섬과 항모에서 미군기들이 날아올라 제일 후미에 쳐진 두 순양함들을 공격해왔다. 격렬한 대공포화를 발사하면서 필사적으로 도주하던 미쿠마에 연달아 폭탄이 명중했고 대공포화에 피격된 미군의 SB2U 급강하폭격기 한 대가 엔진 손상으로 더 이상 돌아갈수 없게되자 조종사는 미쿠마에 그대로 돌입했다. 미군기의 자폭공격까지 받은 미쿠마는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다가 순식간에 뒤집혀 침몰해버렸다. 모가미는 침몰은 간신히 면했지만 폭탄에 맞아 커다란 손상을 입었고 향후 1년간 전열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이것이 미드웨이해전의 마지막 항공작전이었다.

 
* 모든 것이 끝난후...

6월 3일부터 6월 6일까지 태평양의 제해권을 걸고 미드웨이라는 작은 섬을 사이에두고 희대의 대결을 벌인 양측의 정예 기동부대간의 승부는 미해군의 승리로 끝났다. 개전이래 무적의 존재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본해군의 최정예 항모 4척이 태평양 전체의 판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전투에서 수많은 조종사들과 승조원들과 함께 허무하게도 모두 바다속으로 사라져버렸으며 이것으로 일본해군이 태평양 전쟁을 주도하던 시기는 끝나게 되었다. 미드웨이해전은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투였던 것이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허탈하게 일본으로 후퇴하던 일본함대이 승조원들은 모두 기가죽어있었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연합함대 본대의 기함인 전함 야마또의 함교에서는 크게 상심한 야마모토가 홀로 고독하게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그와 일본해군의 모든 것을 걸었던 미드웨이의 대도박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지금 야마모토에게는 이제 일본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분명했던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해군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악몽이었지만 미해군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영광스런 승리였다. 전투가 끝난후 하와이로 돌아오는 함대에서 모든 승무원들은 승리를 자축하면서 진주만의 복수를 했다는 것에 크게 기뻐했다. 미군의 승리는 불리한 군세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던 미해군 지휘부와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조종사들의 희생과 미함대의 모든 수병들의 피와 땀이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2차대전의 수많은 격전중에서도 서부전선의 영국본토 항공전 그리고 동부전선의 스탈린그라드 공방전과 함께 태평양의 미드웨이 해전은 강력한 추측국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전세를 되돌린 대표적인 전투로 평가 받고 있다. 태평양의 지배자를 꿈꾸면서 하늘 높은줄 모르고 끝없이 떠오를 것만 같았던 일본의 운명이 결정된 곳, 그곳이 바로 운명의 섬 미드웨이였던 것이다.
 
 
*                              *                                         *                                        *

 

 

* 아래는 어느 네티즌이 작성한 미드웨이 해전에 대한 승패요인 분석이다. 내용이 신선하고 예리한 분석이라서 참고로 싣는다.

 

 

 

미드웨이 전투의 승패요인 분석

 

 

미드웨이 전투는 전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투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되곤 한다. 전투의 중요성 면에서는 두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극적인 진행 과정, 결과 등에 있어서 태평양전쟁의 분수령이나 마찬가지로 분명 눈에 띄는 전사의 한 장면임에 틀림 없다.

 

일본군이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결과에 대해서 흔히 연속된 우연의 결과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미드웨이에서처럼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가진 군대조차도 단 몇 번의 우연적인 요소들로 인해 심각한 패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전장이라면, 이세상 어느 군대라도 승리를 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전날 밤 꿈을 잘꾸기만 하면 저절로 대군을 맞아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즉, 계속된 우연으로 전투의 결과가 발생하였다는 것은 분석을 위한 적절한 결론이 될 수 없다.

 

신의 섭리 운운하는 것도 개인의 가치관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역사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법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미드웨이에서 일본군이 패한 것을 신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면, 여몽연합군이 현해탄에서 태풍을 만나 일본 정벌이 실패하였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태풍이 오거나 혜성이 나타난 것을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인 소신의 정도를 벗어난 미신적인 세계관에 가깝다.

 

 

 

미군

일본군

총 투입 전력

항공모함
전함
순양함
항공기

3
0
12 
343

항공모함
전함
순양함
항공기

6
7
14
약 430

손실

항공모함
항공기
구축함
전사
 

1
147
1
307
 

항공모함
항공기
중순양함
수송선
전사

4
332
1
1
약 2500 (추정)

표 1 : 미, 일의 총 투입 전력과 손실 비교

  

다른 전사들보다도 미드웨이 전투를 연속된 우연의 결과라고 하는 평가가 많은 것에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에도 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실제로

몇몇 전투 중의 사건은 우연성이 인정된다 할 정도로 평범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미드웨이 전투에서 우연의 요소가 과연 전투의 실제 결과를 발생시킨 중요한

요인이었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전투 시간표

역사적 사실의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 발생했던 중요한 사건들을 우선 정확하게 따져보아야 하겠다.

 

이 글의 목적은 미드웨이 전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므로, 배경설명같은 부분은 생략하고 실제 전투가 벌어진 6월 4일의

사건 위주로 전투 일지를 구성해보았다.

 

일본군의 행동과 미군의 행동

0415

미드웨이 미군 정찰기 발진

 

 

0430
 

일본 1차 공격대 발진
정찰기 발진

폭격기 72, 전투기 36
 

 

0500

도네의 정찰기 지연 발진

 

 

0545

미 정찰기, 일본 공습대 발견

미드웨이 미군기들 이륙

 

0552

미 정찰기, 일본군 함대 발견 (1보)

 

 

0600
 

일본군 1차 미드웨이 공격
 

폭격기 72, 전투기 36
 

미군기 17대 손실  
일본기 5대 손실 

0700

일본군, 미드웨이 2차 공격 요청

 

 

0700

스프루언스 폭격대 발진

급강하 폭격기 70, 뇌격기 29, 전투기 20

 

0710

미드웨이發 미군, 일본 항모 공습

폭격기 4, 뇌격기 6

폭격기 2, 뇌격기 5 손실

0715
 

나구모, 대함용 함재기 무장을 대지용으로 교체명령

 

 

0728

 

도네 정찰기, 미 함대 발견 (1보)
나구모, 함재기 무장 대지용 교체작업 중단 지시

 

 

0755

미드웨이發 미 해병 폭격대 공습

폭격기 16

8대 손실

0820

B-17 편대 공습

폭격기 19

쌍방 피해 없음

0800
 

미드웨이 해병 폭격대 공습
 

폭격기 11
 

미군기 2대 손실 
일본 전함 1척 손상

0809

도네 정찰기, 미군 함대 재보고 

항모가 없다고 오보를 냄

 

0830

도네 정찰기, 미 항모 확인

 

 

0838

요크타운 공격대 발진

급강하 폭격기 17, 뇌격기 12, 전투기 6

 

0840
 

일본군 1차 공격대 착함
 함재기 무장 대함용으로 교체 지시

 

 

0915

일 함대, 미 함대 쪽으로 전진

일 함대 방어기들 이륙

 

0920
 

호넷 폭격대, 일본군 발견 못하고 미드웨이로 귀환

급강하 폭격기 35대, 전투기 10대
 

 

0930
 

호넷 뇌격기대 공격
 

뇌격기 15
 

뇌격기대 전멸
어뢰 0/1발 명중

0958
 

엔터프라이즈 뇌격기대 공격
소류 고속 정찰기 발진 

뇌격기 14
 

뇌격기 10대 손실
0/7발 명중

1010

 

요크타운 뇌격기대 공격

 

뇌격기 12, 전투기 6

 

뇌격기 10, 전투기 4 손실
어뢰 0/5명중
일 전투기 10 손실 

1024

 

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 폭격대 공격

 

급강하 폭격기 52

 

아카기 2/?
카가 4/9
소류 4/13발 피격

1030(?)
 

소류 정찰기, 미 함대 발견
 무전기 고장으로 보고 불능

 

 

1040

히류 폭격대 발진

폭격기 18대, 전투기 6대 

 

1200
 

히류 폭격기대, 요크타운 공격
 소류 정찰기 귀환

 

일본 폭격기 13대 손실
요크타운 3/6발 피격

1400

지꾸마 정찰기, 요크타운 발견

 

 

1430

히류 뇌격대, 요크타운 공격

뇌격기 10, 전투기 6

어뢰 2/5발 피격

1500

요크타운 퇴함

 

 

1540

미 정찰기, 히류 발견

 

 

1600

스프루언스 폭격대 발진

폭격기 36대

 

1700

스프루언스 폭격대, 히류 공격

 

4발 피격

1730~
2100

일 항모 4척 침몰 및 포기
 

 

 

 

 

 

우연의 요소
 

미드웨이 해전의 결과에 우연적인 요인이 얼마나 개입하였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건들이

얼마나 있는 지부터 살피고 나서, 그 사건들이 실제로 우연히 일어났다고 할 수 있을지를 분석해보겠다.

1. 일본군 잠수함대의 전개 지연
 원래 일본군은 작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5월 31일까지 잠수함대를 진주만 해역에 배치하여 미 함대의 이동을 경계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잠수함대의 이동이 지연되어 6월 1일에야 경계선을 칠 수 있었고, 미 함대는 이미 그 이전에 진주만을 빠져나갔다. 이것이 일본군의 최초의 중요한 경계실패라고 받아들여지곤 한다.

2. 일본군의 정찰 문제
 미드웨이 전투에서는 일본군 정찰기들의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0430분에 나구모는 미 함대를 찾기 위해 7대의 정찰기를 내보냈는데, 그 중 순양함 도네의 사출기가 고장을 일으켜 도네에서

출발한 4호 정찰기의 출발이 30분 지연되었다. 그런데, 그 30분 늦게 출발한 도네의 4호 정찰기가 나중에 가장 먼저 미군 함대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정상적으로 출발이 되었다면 적어도 실제 역사적 사건보다 30분 일찍 일본군이 미 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전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4호 정찰기의 북쪽 지역의 정찰을 맡은 5호 정찰기도 미 함대를 발견할 수 있는 경로를 지나갔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날씨가 나빠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0시경에 미 뇌격기들의 연속 공격을 받자 나구모는 그 때까지 입수한 정보인 미 함대의 항모 1척 말고 그 이상의

항모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소류의 고속 정찰기를 보내 추가 정보를 획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소류의 정찰기는 미 항모를 모두 발견했지만 무전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보고를 하지 못하고 12시가 되어서야 함대로 귀환해서 직접 구두로 보고를 해야 했다. 이 소류 정찰기의 무전기 고장도 일본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사건으로 여겨지곤 한다.

 


 일본군 정찰기 운용 현황

 

 

3. 일본 항모 피격 순간
일본군은 몇 시간의 우여곡절 끝에 미 항모를 공격할 준비를 모두 마치고 공격대가 막 이륙하는 순간 50여대의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대가 일 항모를 덮쳤다. 그래서 갑판에 대기하고 있던 함재기들이 유폭을 일으키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

때문에 미군의 공격 시간이 30분 정도라도 늦었거나 빨랐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이야기되곤 한다.

 

4. 날씨
 미드웨이로 접근하는 동안 일본군은 날씨 때문에 고생했고, 작전 당일에도 일본군은 미 함대를 찾는데 날씨가 장애가 되었다.

후에 나구모는 보고서를 통해서, 일본 정찰기는 구름 때문에 미 함대를 발견할 수 없었던 반면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대의

공격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제 하나하나를 생각해보자.

 우선, 일본군 잠수함대는 계획대로 제시간인 31일에 도착했어도 미 함대를 탐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호넷과 엔터프라이즈로 이루어진 16 기동부대는 5월 28일에, 그리고 요크타운은 30일에 진주만을 떠났기 때문이다.

 

정찰기들의 문제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연이라고 치부하기 힘들다.
우선, 장비 고장 문제를 따져보자. 순양함 도네의 정찰기는 사출기 고장으로 출발이 지연되었고, 소류의 정찰기는
무전기가 고장 났다. 전장에서 장비 고장은 우연이라고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전장에서 장비가 고장 나지 않게끔 하기 위해 평소에 정비를 철저히 했어야 되는게 아닌가 말이다. 어떤 전사라고 할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장비가 고장 나서 작전이 그르쳐진 것을 두고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묘사할 수는 없다.

설령 장비 고장이라는 것이 실제로 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확률적 사건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전장에서의 모든 행동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백업 대책이 미리 준비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의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 런 관점에서 본다면, 도네의 정찰기가 출발이 지연되었을 때 즉시 다른 정찰기를 띄워서 공백을 메우는 것이 사출기 고장에 대한 정상적인 적절한 조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즉, 도네의 사출기가 고장난 사실 자체보다도 출발 지연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당초 새벽에 출동한 일본측 정찰기는 3개 순양함에서 5대와 항모 아까기, 카가에서 각 1대씩이었는데, 미드웨이 해전에서 상실한 수상기(전함 및 순양함에 탑재되는) 총수는 10대였다. 나구모가 공격전력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폭격기를 정찰용으로 운용하지 않기로 판단한 것을 인정해주더라도 순양함 탑재 수상기들까지 투입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충분히 가지 않는 부분이다.

적어도 사출기가 고장 나서 이륙이 지연되는 정찰기를 대체할 한 대의 정찰기조차 뽑아내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10시경에 출발한 소류의 고속 정찰기는 무전기 고장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시간을 따져보면 무전기가 고장 났든 안났든 사실상 전황에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소류의 정찰기가 출발한 것이 10시 경인데, 일본의 3척의 항모가 공격받은 것은 10시 24분부터이다. 소류의 정찰기가 출발할 때 이미 미 함재기들은 일본 항모를 향해 날아오는 중이었으므로, 소류 함재기의 무전기가 고장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3척의 일본 항모 피격이라는 상황이 바뀔 수는 없다.

 

일본항모의 피격순간은 매우 극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간발의 시간차로 일본 항모가 안타깝게 타격을 입은 것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나구모 제독이 함재기들의 무장을 대지용으로 바꾸라고 했다가 다시 대함용으로 바꾸라고 명령을 번복하여 이 명령 번복으로 인하여 폭탄들이 갑판에 방치되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최초 무장 변경 명령은 7시 15분에, 그리고 대지용으로 바꾸고 있던 무장을 다시 대함용으로 바꾸라는 명령 번복은 8시 40분에 이루어졌고, 그 작업이 완료되어 출격 준비가 된 것은 10시 20분이 조금 넘어서였다. 즉, 간발의 타이밍의 적절한 순간에 미군기가 공격을 가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8시 40분부터 10시 20분까지의 1시간 40분 동안, 그리고 좀더 길 게 본다면 처음 무장 교환 명령이 떨어진 7시 15분부터 10시 20분까지의 3시간 동안 언제든 미군의 폭탄이 한 발이라도 떨어지면 격납고에서 유폭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출격완료된 공격대의 총수는 4개 항모에서 108대였으므로, 항모 한 척 당 거의 30대를 올려 보내야 하므로

출격준비된 갑판의 함재기들이 모두 이함할 때까지는 짧게 잡아도 30분(약 11시까지)은 걸렸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2차 공격대가 모두 이함하고 난 뒤라고 하더라도 귀환한 1차 공격대는 여전히 격납고에서 재보급 작업을 벌이고 있으므로 유폭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 즉, 사실상 오전 내내 일본 항모는 위험한 상태였고, 그 긴 시간 중의 어느 한 시점에 미군의 급강하 폭격대가 성공적인 공격을 펼쳤을 뿐이다.

 

날씨 문제는 패전의 이유치고는 지나치게 어이없는 얘기다. 정찰기가 정찰을 못할 정도로 날씨가 나쁘다면 귀환을 했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6호 정찰기는 기상조건때문에 정찰을 포기하고 귀환했다. 5호 정찰기가 미 함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구름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나구모도 그렇게 보고하고 있으나, 구름이 가려서 시정이 제한되었다면 비행 안전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시정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여러 문서들에서 중복 수색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도 크게 제기되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부주의했다기보다는 적을 찾으려는 의지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밖에 생각하기 힘들다. 
 

어떤 책에서는 나구모의 패전 보고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기상조건이 신의 섭리이기 때문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였지만, 사실 나구모의 변명은 말도 안되는 억지다. 정찰기가 무슨 수를 써서든 미 함대를 발견 못할 정도로 기상이 나빴다면 미 항모에서 함재기들이 출격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거나 지연되었어야 할 것이고, 나구모의 함대에서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을 구름 때문에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 역시 나구모 함대를 발견하지 못했어야 말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름이 미군 폭격기대를 가렸던 안가렸던 간에 나구모는 미군 급강하 폭격기대를 막을 수단 자체를 그 순간에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존에 상공에 있던 방어 전투기들은 무장이 떨어졌거나 저공에 있었고 새로 준비된 전투기들은 그제서야 이륙할 준비가

막 끝나 방공에 구멍이 뚫려있었으니 미군의 접근을 알았더라도 어차피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 미드웨이 전투 결과의 요인 중 하나로 미군에는 레이더가 있고 일본군에는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한 요인으로 분석되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일본군 함대가 레이더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구모의 패전 보고서는 중립적이고 쌍방에 똑같이 적용되는 기상 문제를 자기한테만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하면서 패전의 원인을 날씨 탓으로 돌리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타당한 원인
 

이상과 같이, 미드웨이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불운했던 요인들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단편적인 부분들은 실제로 우연성과 거리가 있는 인적 요소들이라고 본다. 그러한 사실들이 우연적이라고 받아들여진다면, 아마도 미드웨이 전투가 당연히 일본의 승리로 돌아갈만 한데 결과가 그렇지 못했으므로 합리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해내기가 그만큼 힘들게 생각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러한 단편적인 사건들을 일본의 중요한 패전 요인으로 보지 않는데, 이는 단지 단편적인 사실들의 우연성의 부정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본질적인 이유들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 불확실한 작전 목표
 우선, 애당초 일본군의 미드웨이 작전은 작전 목표가 극히 불확실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미드웨이를 공격하면서 미 항모가
반격해오면 압도적인 전력으로 섬멸할 수 있으니 좋고, 반격이 없으면 미드웨이를 점령할 수 있으니 좋다는 것이 미드웨이 작전의 목표인데, 아무리 봐도 미드웨이 공격이 주목표인지 아니면 미드웨이 공격을 미끼로 미 항모와 결전을 벌이는 것이 주목표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어차피 실제로는 그 말이 그 말이니까 상관 없지 않은게 아니냐고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나구모 제독이 상당히 우유부단한 지휘관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미드웨이 전투에서 역시 나구모의 우유부단함을

지적하는 비판이 많은데, 드러난 사실만 보면 그럴 법도 하지만 적어도 미드웨이 작전에서 만큼은 그것이 꼭 나구모의 전적인

책임만은 아니라고 본다.

 

 나구모 제독은 일본 정찰기가 실제로 미 항모를 보고하기 전까지 줄곧 미 항모전단이 미드웨이 해역에 없다고 가정한 것처럼

작전을 하였는데, 적극적으로 미 함대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등 주변에 미 함대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정작 2차 공격대는

대함 무장을 장착한 채로 대기를 하고 있었고 섬에 대한 추가 공격은 머뭇거렸다. 이러한 애매한 행동이 나구모의 우유부단함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애당초 작전 목표가 미드웨이 공략인지 적 함대 격멸인지 불확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 함대를 유인해내서 결전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나구모 제독은 주변에 미 함대가 없을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되고 미 함대가 있다는 가용한 정보가 불충분하더라도 미 함대와 싸우러 온 이상 미 함대를 발견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미드웨이 공략이 주된 목표였거나 적 함대가 없다고 확신했다면 2차 공격대에 대함 무장을 장착하고 당장이라도 적 함대를 향해 출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그랬다면 나중에 무장 변경의 혼란이 더 줄었을 것이다), 미드웨이에 대한 2차 공격 요청에 대해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진주만 공습 당시 섬에 대해 연이은 2차의 공격을 실시했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결과론 적인 얘기긴 하지만, 2차 공격 요청을 받았을 때 곧바로 2차 공격대가 출동했다면 1차 공격대의 수용과 재무장이 오히려 복잡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미국 항모는 1차 공격대가 귀환했을 때쯤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전장에서는 이도 저도 아니게 어정쩡하게 있는 것보다는 최선의 결정이든 차선의 결정이든 간에 일관되고 결단력 있게 판단하는 것이 종종 훨씬 더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도 결단을 못내린 채로 몇 시간에 걸쳐 2차 공격대의 무장을 떼었다 달았다 하는 동안 1차 공격대의 귀환까지 겹쳐서 미 항모를 발견한지 2시간이 지나서야 출격준비가 되었으니 타이밍이 충분히 늦어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군의 작전 목표가 이렇게 불확실했던데 비해서 미군은 일본군의 항모전단을 공격한다는 매우 명확한 목표를 가졌고 지휘관들도 이 목표를 의심없이 수행하였다. 그래서 일본군의 수송선단을 발견하고도 공격을 하지 않을 정도로 미군의 작전 목표와 실행은 철저하였다. 결과적으로 미군의 노력은 일본 기동함대 공격이라는 한가지로 집중될 수 있었다.

 

미드웨이를 점령하고 미해군이 나타나면 미해군도 섬멸한다...이런건 구체적인 실천 목표로서의 작전이라기보다는 제멋대로

희망하는 상상 속의 결과를 현실적인 목표와 혼동한 것에 불과하다.

 

2. 일본군의 전력 분산
 이 점은 여러 문서들에서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한번 확인해볼 수 있다.
 우선, 앞의 표에 언급된 총전력은 일본군이 월등히 우세하지만, 일본군의 전력 분산으로 인하여 막상 전장에서 맞닥뜨린

서로의 전력은 일본군이 항모 4척인데 비해 미군은 3척과 미드웨이 섬(흔히 전력 비교를 할 때 놓치기 쉽지만 미드웨이 섬은

그 자체로 일본군에게 상당한 전술적 딜레마를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119대의 항공기라는 실제 전력을 가진 어엿한 불침항모였으며 기지였다.)으로서 오히려 미군측이 유리한 상황이었고, 항공기 숫자에 있어서도 일본군의 나구모 기동함대가 수상기를 포함하여 약 330대를 보유한데 비해 미군은 육해공 합쳐서 343대로 역시 조금 우세하였고 일본 함재기의 1/3정도는 작전에 직접

투입되지도 않는 예비기였다.

 

실제로 일본군의 공격대는 1차와 2차가 각각 108대씩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함대 방어전투기를 감안해도 250대 정도만 출격하는 상황이었다. 래서 오래된 자료들에서는 나구모 부대의 항공기 세력을 250대 가량으로 추산하기도 하는데, 4개 항모의 제원상 작전기 수용 대수를 계산해보아도 이와 거의 맞는다. 그러니까, 일본군이 총전력은 우세했지만 일본군의 상당수 병력은 서로 지원해줄 수도 없는 먼 거리의 아무 쓸모없는 위치에 있어서 전투에 도움이 안되었고 실제 전투에서는 미군의 전력이 오히려 우세했다는 것이다.

 

일본군의 전력분산의 대표적인 예가 알류산 열도 공략부대이다. 2척의 항모가 포함된 알류산 열도 공략 부대의 임무는 양동 작전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군의 미드웨이 공략은 단순히 섬 점령만이 목표가 아니라 미 함대를 유인해서 격멸하려는 의도도 가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미군이 일본군의 공격을 모른다고 가정할 때 알류산 열도에 양동작전을 편다는 것은 즉 미 함대를

그 쪽으로 유인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 함대와 결전을 벌이려고 했다면 주력부대인 나구모가 미 함대를 맞아 싸우게끔 계획했어야 한다.

 

그러므로 미 함대를 끌어낸다는 목표 하에서는 양동작전을 통해 적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도록 기만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으며 불필요했던 것이다. 양동작전이 아니라 단순한 알류산 열도 점령이 목표였다고 하더라도, 큰 작전을 하는데 하나의 목표에 전력을 집중하지 않고 의미 없이 전력을 분산시킨 잘못을 탓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쓸데없는 병력 분산이나 축차 투입 같은 비효율적인 부대 운용은 단지 미드웨이에서만의 특별한 실책이 아니라 다른 전선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일본군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원하는 어느 한 지점에 병력을 일시에 집중하여 주요 전투를 우세하게 이끌려하기보다 동시에 여러 곳의 관심지역에 병력을 분산하거나 축차 투입하여 결과적으로 어느 곳의 작전도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중국본토를 공격하면서 동남아 공격을 전개하기 시작하였고 진주만공격을 포함하여 필리핀과 태평양 여러 도서를 동시에 공격하는 분산공격을 실시하였다. 이는 지휘관 개개인의 능력 문제라기보다는 일본군부의 육해공이 서로 파벌싸움과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견제 및 경쟁의식이 팽배하였고 전반적인 전략 전술 이론 자체가 융통성이 없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3. 정찰
 일본군의 정찰기들이 작전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할 때도 언급하였지만, 나구모는 상식 밖으로 정찰에 소홀했다.
일본군이 단지 7대의 정찰기를 운용했던데 비해서 미군은 미드웨이 섬에서 38대의 카탈리나 정찰기를 일찍부터 운용하고 있었고 요크타운에서도 작전 당일에 나구모 함대를 발견할 때까지 10대의 급강하 폭격기를 정찰기로 운용하고 있었다. 개개 정찰기들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하기를 따지기 이전에 애당초 미군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정찰기를 운용하여 일본군을 먼저 발견할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점은 작전 목표가 불확실했다는 것과도 깊이 연관이 되는 문제이다. 일본군의 총 투입 전력은 미드웨이 섬만을 빼앗는 소극적인 목표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미 함대와의 결전을 각오해서 구성된 전력이다. 그렇다면 나구모 제독은 미 함대와의 결전을 반드시 하리라 각오하고 전장에 나섰어야 했으나, 단지 미 함대가 있다는 정보를 얻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해서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이것은 작전 목표 자체를 망각한 것이다. 미군과 결전을 각오했다면 미군을 함정으로 끌여들이기 위한 여러가지 수단을 강구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하였다. 적군이 없다는 확실한 정보를 얻은 것과 있다는 정보를 얻지 못했으므로 없을 것 같다고 추정한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미 함대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을 전제로 한다면, 미 함대와 결전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찰기를 소극적으로 운용하고 정찰기 승무원들 역시 소극적으로 행동한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심지어 미 함대를 발견 해놓고도 한시간 동안이나 함종을 식별 못하고 있었으니, 시간 손실로 따지면 도네의 정찰기가 지연 발진한 것보다 이게 사실 훨씬 더 큰 문제였다.)
 

이것이 단지 전적으로 나구모의 잘못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애당초 미 해군을 유인 섬멸하려는 취지로 작전을 구상해놓고 정작 작전 목표는 미드웨이를 빼앗고 미해군이 오면 미해군도 섬멸한다...이런 어정쩡한 작전 목표를 세웠으니 나구모도 미해군과 결전을 벌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지 않고 미해군이 없을 것이라는 정보 반 기대 반의 마음가짐으로 전장에 나섰던 것이 문제였다.

 

4. 미군의 정보능력
 미드웨이 전투를 거론할 때 항상 미군의 역정보 작전이 중요하게 거론되는데, 이 점도 조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정보력의 차이로 인해 일본군은 미 함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 채로 전장에 진입하였는데 비해 미군은 일본군이 확실히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채로 전투를 시작하였기에 전투에서 미군이 그만큼 유리하게 싸울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본군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드웨이 작전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미 항모를 끌어내어 격멸한다는 것이었으므로,

일본군의 공격을 미군이 탐지해서 그에 대처한 사실이 일본군의 결정적인 패인이 될 수는 없다.

 

미군이 일본군의 공격을 몰랐다면 미드웨이 방어를 위해 함대를 제때 출동시키지 못했을 것이므로 미드웨이 섬은 점령했겠지만 미 항모를 끌어내어 격멸한다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 결과가 일본군의 패배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현재 입장에서 볼 때 역정보 작전을 통해 미군이 출동한 것이 결정적인 공훈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 미 항모들이 전장에 나타나는 것은 일본군의 계획에 애당초 포함되어있던 것이기 때문에 미군이 항모를 출동시킨 그 자체가 일본군의 패인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정보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미해군의 역정보작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일본군의 정보수집 및 교환 능력이 미군에 비해

부족하여 지휘관이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도움을 주지 못하였던 것이 일본군의 패인에 더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시간대별 사건 분석
 

당일의 사건들을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일본군이 아깝게 패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선, 말했다시피 정찰에 투입된 전력이 극도로 차이가 났고 이는 적을 발견하는 시간차이를 만들어냈다.
미군은 카탈리나 정찰기가 일본 함대를 5시 52분에 발견했고, 일본군은 도네의 정찰기가 7시 28분에 미 함대를 발견했는데 함종도 확인 못했고 8시 30분이 되어서야 미 항모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일본군이 미군에 비해 무려 2시간 40분이나 늦게 상대방의 항모를 발견한 것이다. 적 발견이 2시간 40분이나 늦었으니 일본군이 이륙도 하기 전에 미군의 공격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게 당연하다.

게다가 일본군은 절반은 이미 미드웨이 공격에 나서 있고 출격대기 상태의 전력은 108대였는데 비해서, 미군은 일본 항모를

발견하자마자 애당초 수적으로 우세한 항공전력이 대부분 공격에 투입되었다. 

 흔히 오전의 미군의 공격을 무의미한 가미가제 파상 공격이라고 치부하기 쉬운데, 사실 그 전체 규모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엄호 전투기와 일본군 항모를 발견 못하고 되돌아간 미군기들을 빼고라도 미군이 최초의 명중탄을 올리기 전까지만도 미군은

총 97소티의 공격을 일본군에 가했다. 이는 실제로 일본군이 출격준비를 하고 있던 총수와 거의 맞먹는다. 그렇다면 미군의 어리석은 공격을 비웃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7시 10분부터 10시 24분까지 그 정도 규모의 공격을 받고도 일본군 항모들이 아무 피해가 없었다는게 도리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0시 20분 경의 미군 급강하 폭격기대의 공격이 일본에게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언제든 일본 항모들 중 몇 척이

큰 피해를 이미 입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전 거의 내내 일본 항모는 단 한발의 폭탄으로라도 유폭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유념하자.)  이 97소티의 미군 공격이 흔히 생각하듯 모두 얼토당토 않은 자살 공격이었는가 하면, 미드웨이發 공격대의 공격현황의 정확한 자료는 구하지 못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3개 항모에서 발진한 3개 뇌격기대대들만도 9시 30분부터 한시간 여에 걸쳐 공격을 하는 동안 총 41대의 뇌격기가 13발의 어뢰를 발사하는데 성공하였다.

 

공격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로 일본군이 철저하게 방어에 성공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일본 항모들이 운이 좋았던 셈이다. 일본군이 요크타운을 공격할 때의 뇌격기대의 성공률은 3/6이었으므로, 미군이 그보다 절반의 명중률만 달성할 수 있다고 쳐도 일본 항모가 그 공격에 3-4발정도 피격되었더라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으니 오히려 일본군이 운이 좋았다. 더욱이 3개 뇌격기 대대 중 2개 대대는 엄호전투기가 비슷한 시기에 도착했으면서도 호흡이 맞지 않아 근접 엄호를 실시하지 못하여 뇌격기대가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니, 이역시 일본군에게 운이 좋았다면 좋았던 셈이다. 호넷의 급강하 폭격기대 35대가 일본군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역시 일본군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오전의 공격들을 감안해본다면, 미 항모에서 발진한 급강하폭격기 부대의 공격 성공은 일본군이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일본군이 먼저 발견되고 난 뒤 압도적인 규모의 공격을 수시간 동안 운 좋게 계속 넘겨오다가 언젠가 당하고 말 일을 그때서야 당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0시 24분에 급강하 공격기 부대들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일본군이 경계가 소홀했다거나 구름이 가리웠다거나 그런 것은 다 부질없는 변명이고, 그 이전의 대규모의 공격에 대항하느라 그 순간 일본군에게는 미군의 공격에 대처할 능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이 공격은 운이 없이 당한게 아니라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을 당한 것일 뿐이다. 일본 항모들이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잘하면 피할 수도 있었는데 아깝게 피격되었다고 생각된다면, 다음 수치를 보자.

 

이 때의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은 총 52대였고, 그 중 10발이 3개 항모에 명중하였다. 폭탄을 미리 잘못 투하한 기체들도 있었으니 실제 투하 발 수는 52발보다 작다고 하더라도 명중률이 대략 20%로서, 사실 일본 항모들은 그정도의 대규모 공격에 대해서 오히려 잘 피한 셈이다.  엄호 전투기와 일본군을 발견 못하고 귀환한 대수를 빼도 미군의 오전 1차 공격이 끝날 때까지 미드웨이發 폭격기들은 총 56소티, 3개 항모의 뇌격기와 폭격기들은 총 93소티, 도합 149소티의 공격을 가했다. 일본 항모를 목표로 출격에 임한 출격대수를 모두 따지자면 210소티에 달한다. 일본군이 궤멸당한 것이 오히려 당연해 보이지 않는가? 일본군의 운명은 10시 24분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미군에게 일찌감치 발견되었을 때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다.

 

시간대별 사건 분석에서, 미드웨이 전투에 운이 개입되었다고 한다면 오히려 일본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도 적지 않다고 중간중간 언급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무시하고 또 일본군이 불운했다고 여겨질 수 있는 상황이 일본군에게 최선의 방법으로 진행되었다고 가정하고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소용 없는 일이지만 일본군에게 불운이 있었다면 그것이 얼마나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지 다시 정리해서 확인해보는 차원에서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우선 도네의 정찰기가 지연 없이 출격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일본군이 미 함대를 발견하는 시간은 7시 28분에서 7시경으로 당겨진다. 그리고 실제로는 함종을 식별하는데 한 시간이 걸렸지만 함대를 발견하는 즉시 항모를 확인했다고 하면 일본군이 미 항모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각은 실제 사건보다 1시간 30분 빨라지는 것이다. 그랬다면 미드웨이 2차 공격요청이 7시였고 나구모가

대함용으로 무장한 2차 공격대의 무장을 대지용으로 바꾸라고 명한 것이 7시 15분이므로, 이런 혼선 없이 7시에 2차 공격대의

108대가 대함 무장으로 즉시 출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가정하더라도 스프루언스의 함재기 119대가 0700시에 출격한 것은 막을 수 없다. 스프루언스의 함재기
선두부대들이 7시 30분 경에 일본 함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여 9시 20분 경에 일본 함대부근까지 도달하였으므로, 일본군도 비슷한 속도로 도달한다고 치면 일본 함재기들 역시 빨라도 7시 30분 경 이함하여 대형을 갖추어서 9시 20분쯤 되어야 요크타운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크타운의 함재기들은 8시 38분부터 이함하기 시작하였고 9시 20분 경에는 이함을 거의 마쳤을 시점이 될 것이므로, 일본군이 아무리 빨리 미 함대를 발견해서 출격했다고 하더라도 3척의 미 항모에서 출격한 210대의 공격 편대군을 막지 못했을 것이란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미군의 공격 시간표는 실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게 된다.


 즉, 일본 정찰기들이 아무리 빨리 미군을 발견했더라도 3척의 일본 항모의 손실은 피할 수 없고, 단지 바뀌는 것이 있다면
108대의 일본기들이 요크타운을 향해 약 10시 20-30분 경에 공격을 할 수 있었다는 점만 달라진다. 실제로는 요크타운은 1200시에 24대의 히류 함재기의 공격을 받아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가정을 근거로 한다면, 히류를 이끌었던 야마구치 제독이나 야마모토 제독은 최후까지 결전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으므로 이후의 전투는 1척의 일 항모와 두 척의 미 항모가 계속 결전을 벌이는 형태가 되었을 것이므로 일본군이 승리하고 미드웨이 섬 점령에 성공하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본이 최하 3척의 항모가 침몰하거나 큰 피해를 입은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이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채로 승리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동안 미군이 실제보다 더 운이 좋을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일본이 유리하게끔 몇 번의 가정을 붙여야만 했다. 즉, 일본군은 미드웨이에서 사소한 악운들이 모두 합쳐져서 큰 패배를 당한 것이라기보다, 당일의 전장상황 자체가 일본군이 패할 위험이 큰 상황이었으며 당일의 상황만 놓고 볼 때는 오히려 일본군에게 반복된 행운이 따랐어야만 항모간 결전에서 승리할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지휘관의 판단
 

언급하였다시피 나구모 제독은 우유부단하다는 평이 지배적이고 미드웨이의 작전수행도 그런 면에서 나구모의 책임을 많이 묻곤 한다. 넓은 의미로서는 그에 동의하지만, 작전 당일의 구체적인 판단에 대해서 만큼은 개인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싶다.

 

흔히 나구모의 지휘능력의 부족을 들어 작전 당일에 있었던 나구모의 모든 판단들을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가 멍청하고 무능력해서 계속된 잘못을 하여 패했다고 치부하기 쉬운데, 이역시 일본군의 패인을 불운으로 돌리는 것만큼이나 무책임한 분석이 될 것이다.

 

 나구모의 큰 실책으로 꼽히는 것은 우유부단하게 함재기의 무장을 바꾸도록 명령을 계속 번복(대지용 무장으로 교체하라->무장 교체를 중단하라-> 대함용으로 바꾸라)한 것이라던가, 미 항모를 발견하였을 때 대지용 무장만으로라도 공격하자는 야마구치 제독의 건의를 묵살하고 1차 공격대 수용과 무장 교체 작업을 지시한 것 등이다.

 

 그런데, 나구모로서는 당시의 매우 제한된 정보하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즉, 나구모의 개별적 명령들이 패전을 유발했다는 것은 단순히 결과론 적인 이야기일 뿐, 당시의 나구모로서는 제한된 정보를 토대로나마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했다는 충분한 기록이 있다.


 말했다시피 무장 교체를 자꾸 반복한 것은 정보가 부족했고 작전 목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아서 등의
근본적인 이유가 있으며, 성격이 원래 우유부단하기 때문만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보다 확실히 더 나은 다른 대안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단지 강력한 전력을 미 함대에 투입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자 한 의도가 지나쳐 미군의 선제공격을 허용함으로써 결국 아예 공격을 해보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말이다.

 

 대지 공격용 무장으로라도 공격하자는 것도 전투의 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이야 그렇게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당시의 정상적인 상황에서 섣불리 그런 원칙에 위배되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미 항모를 발견한 8시 30분에 대지 무장을 장착한 공격대를 출격시킨다면 전투기의 호위도 없이 폭격기들만 보내야 했고, 그랬다면 큰 피해를 면치 못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더욱이 1차 공격대의 상당수는 착함해서 재공격을 준비하지 못하고 연료 부족으로 바다에 빠져 버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지 공격 무장으로 곧바로 출격했다면 한 번도 공격을 못한 실제 사실보다는 조금 나았겠지만 당시 입장에서 본다면 전체 항공전력의 절반은 그냥 버리고 나머지 절반은 전투기 엄호도 없이 효과도 의심스러운 무장으로 출격시켜야 한다는 것이니, 단 한번의 기회 이상은 어차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 자신의 전투력을 내다 버리듯이 할 지휘관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군의 계속된 공격을 받고 있던 상황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앞서 말했다시피 애당초 먼저 발견당했고 미군이 투입한 항공전력 자체가 워낙 우세했기 때문이었으므로, 자력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미군의 공격은 어쨌든 파상적인 것에 불과하고 있었던 것이니 꼭 나구모나 겐다 중령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릇된 판단을 하였다는 비판은 그들로서는 억울하게 생각될만도 하다. 다만, 출격 준비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계속해서 적 항모를 향해 다가가면서 공격을 뒤집어 쓴 것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출발이 지연되는 도네의 정찰기를 대체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데서도 볼 수 있듯이, 미드웨이 전투에서는 전반적으로 우유부단함의 문제보다는 계속해서 바뀌는 전장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융통성이 부족했다는 점이 오히려 문제였던 것 같다. (이점은 무장에 상관없이 신속한 출격을 하자는 요청을 묵살한 것과도 연결된다)

 

 미드웨이의 나구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전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패전을 유발한 패장의 결심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단정하고 그 지휘관이 무능하거나 멍청해서 그런 잘못된 명령을 내려서 전투에 졌다는 식으로 비난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것은 앞뒤가 뒤바뀐 결과론 적인 이야기일 뿐이며, 전장의 어느 지휘관이라도 전투 결과를 다 알고 있고 전지적 시점의 역사책을 보는 현재의 우리들보다 훨씬 제한된 정보만을 바탕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 중차대한 결심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전사를 대해야 한다. 지휘관이 최선의 판단과 결심을 했더라도 결과는 나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사를 대할 때는 당시 지휘관의 판단을 현재의 시점에서 전투 결과에 자의적으로 대입하고 마음대로 재단해서 불공정한 누명을 씌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저명한 군사학자의 의견인데 백 번 지당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패장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심지어 유명인사나 역사가의 저술물들에서도 발견되기도 하니 일반인인 우리들이

전사를 대할 때는 그만큼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결론
 

미드웨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미군에 비해 압도적인 전력을 투입하고도 지휘관의 판단 착오나 불운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역전패를 당하였다는 의견이 많이 있다. 홈지기는 불운이나 개인에게 패전 책임을 씌우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며, 미드웨이 전투는 여느 전투와 다름없이 보편적으로 치루어진 전투이며 그에 따라 보편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온 평범한 전투, 즉 군사학적으로 볼 때 전투결과가 비합리적이지 않고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본다.

 

일본군의 패인으로는 근본적으로 작전 목표가 불확실했던 점, 일본군이 전체 전력은 압도적이었지만 병력 분산으로 인해 전투 당일 접적지점의 실제 전력비는 도리어 미군이 우세했다는 점, 당일의 일본군 작전 지휘에 융통성이 부족하여 유동적인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미군의 승리 요인은 간단하다.

일본군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본군을 먼저 발견했으며, 우세한 전력으로 줄기차게 공격에 임해서 결국 일본군을 격멸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그저 여느 다른 승리와 별다를 바 없는 보편적인 승리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군과 일본군의 승패 요인들은 특이하거나 우연적인 요인들이 아니라 보편적인 전략 전술 원칙의 테두리 내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사항들이다. 설령 우연적인 요소가 작용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일본군에게 행운이 작용한 부분 역시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정황을 따져보면 우연의 요소들은 어느 쪽에 유리한 것이었던 간에 전투의 결과를 결정적으로 바꿀 정도로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