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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1,026 : 일제강점기 71 (1930~40년대초의 민족통일 전선운동 5)

 

 

 

 

한국의 역사 1,026 : 일제강점기 71 (1930~40년대초의 민족통일 전선운동 5)

 

 

           

 

 

만주 유격대 창건과 동북인민혁명군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지역을 점령하고 1932년 3월 만주국을 세운 뒤, 재만 조선인은 합법적으로 토지를 가질 수 있었으며 이중국적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잇었다. 이런 가운데 만주는 동아시아 민중과 일본 제국주의가 부딪히는 최전선으로 항일무장투쟁의 근거지가 되었던 조선인은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만주 지역 항일무장투쟁의 주요 역량이 되었다. 만주 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자 일제는 국경 지역을 더 철저히 감시하고 독립군을 토벌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20년부터 만주에서 활동하던 민족주의 항일무장 세력은 큰 타격을 받고 세력이 약화되어 중국 본토로 물러나고 말았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은 1928년 국내공산당이 무너지자 '일국일당주의' 지시에 의해 해체되고 만주 지역 사회주의자들은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의 지도 아래 항일무장투쟁을 벌여 나갔다. 중국공산당의 지휘를 받게 되자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은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을 함께 떠맡아야 하는 이중의 임무를 맡게 되엇다.

 

1930년대 들어 만주에도 공황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중국 군벌과 일제의 수탈이 심해지자 간도 지방을 중심으로 혁명 분위기가 높아져 갔다. 1931년 가을 조선농민들은 소작료 인하 등을 내걸고 '추수투쟁'을 일으켰으며, 1932년 봄에는 쌀을 구하려는 '춘황투쟁'을 벌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농민의 생존권 투쟁은 무장투쟁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은 1931년 10월 '만주병사공작에 관한 지시'에서 대중투쟁을 바탕으로 유격대를 만들어 유격구를 개척하라는 항일무장투쟁 방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만주 지역에는 유격구가 만들어지고 유격대가 조직되엇다. 1932년 봄 안도.왕청.훈춘.화룡에서 조선 사람을 중심으로 항일유격대가 만들어졌다.

 

만주사변 뒤 일본에 맞서 조선과 중국 사람이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의식이 더욱 높아졌다. 1933년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의 '1월 서한'에 따라 사회주의 계열 항일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을 조직했다. 동북인민혁명군은 만주 지역에 퍼져 있던 무장부대를 통일한 부대였다. 남만주 지역은 동북인민혁명군 1군, 동만주 지역의 유격대는 동북인민혁명군 2군으로 개편되었고, 이들 무장세력은 조선인을 주력으로 한 핵심부대였다. 북만주 지역은 동북인민혁명군 3군, 4군. 6군으로 개편되었다. 만주사변 뒤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항일무장투쟁은 조선인들이 큰 몫을 차지했으며 조선인을 바탕으로 세력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항쟁이 결코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중국공산당이 유격대를 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하여 소수민족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 것은 '반민생단투쟁' 영향이 컸다. 민생단은 1932년 일본영사관이 지시해서 만주 지역 조선인 자치를 내걸고 만들어진 '친일스파이' 조직이었다. 민생단은 얼마 못가 해체되었지만 친일단체인 '간도협조회'는 중국공산당 안에 있는 조선인의 대부분이 민생단원이라고 소문을 퍼뜨리며 내부 분열공작을 펼쳤다. 그리하여 일부 중국인 당원은 조선인 유격대원 가운데 80~90%가 민생단원이라고 의심할 만큼 내부 분열이 생겼다. 중국공산당은 민생단 문제를 처리하면서 '파벌주의자', '개량주의자'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자'까지도 민생단이라고 몰아붙였다. 반민생단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500여 명 남짓한 조선혁명가들이 민생단으로 몰려 목숨을 잃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유격대를 떠나게 되었다.

 

간도 5.30폭동으로 막이 오른 만주 항일무장투쟁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중국공산당 이름으로 일제와 싸웠다. 조선인이 모여 있던 동만주 지역을 비롯하여 만주 여러 곳에서 조선인은 코민테른 지시에 의해 국내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가로막혀 있기도 했지만 중국혁명을 이루는 것이 식민지 조선의 해방과 연결된다는 생각으로 일제와 열심히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