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의 가을 41 : 안보강국의 길을 묻다 11
진정한 보훈없이 안보도 없다
#1. 강화도 군청 인근 4층 건물에 있는 ‘6·25 참전 강화 청소년유격동지회’ 사무실을 지키는 사람은 고기병(75) 회장과 고기춘(78) 사무총장 단 두 명이다. 이들은 6·25전쟁 당시 각각 14, 17세 나이로 고향 강화도를 지킨 유격대원들이다.
당시 대원 2000명 가운데 500명이 숨졌다. 맨손으로 조국을 지켰다는 자부심으로 60여년을 지냈지만 기억해 주는 이도, 찾아오는 이도 없다. 정부가 이들 노병에게 주는 보상금은 한 달에 12만원. 쓸쓸히 빈 사무실을 지키는 노병의 마음속엔 애국심마저 사그라진다.
#2. 2009년 10월29일 새벽 4시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 수송기 문이 열리고 아프가니스탄전 전사자 유해가 운구되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엄숙하게 거수경례를 했다. 관 18개가 모두 지날 때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유가족까지 일일이 위로한 뒤 새벽 4시45분 백악관으로 향했다. 지난달 9일 그는 또다시 도버 기지를 찾았다. 아프간 미군 전사자 유해 30구를 맞기 위해서였다. 백악관은 이를 위해 이날 오후 일정까지 모두 취소했다.
대비되는 두 장면은 한·미 보훈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 과정은 국난 극복의 역사였다. 지금도 남북이 대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보훈정책은 안보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보훈정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갈 길 먼 보훈정책
우리 보훈제도는 1961년 ‘군사원호청 설치법’ 공포로 군사원호청이 창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원호처를 거쳐 국가보훈처로 개칭됐다. 올해로 보훈행정이 만 50년째다. 하지만 참전용사 등 많은 보훈대상자가 부족한 보상과 사회적 무관심의 이중고를 호소한다.
6·25 참전용사들은 전후 반세기 동안 금전적 혜택을 받지 못했다. 보상은 2001년 시작됐고, 그마저 재산이 1500만원 이하인 극빈 참전용사에게만 월 5만원이 지급됐다. 노무현 정부 이후 대상이 모든 참전용사로 확대되고 지급액도 올해 12만원으로 인상됐다. 100만명이 넘는 참전용사 중 수혜자는 약 18만6000명. 참전용사 대부분이 ‘대접’도 못 받고 세상을 떴다.
한국보훈학회장인 유영옥 경기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월남전 참전용사에게 월 3000∼4000달러(약350만∼460만원)를 주고, 중국은 참전용사에게 노동자 평균 월급보다 많은 월 15만∼20만원을 지급한다. 유격동지회 고 회장은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는데 단돈 12만원이 뭐냐”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참전자에 대한 국민의식도 문제로 꼽힌다. 6·25 직후 갈고리와 목발을 앞세워 구걸해야 했던 많은 상이용사는 호국영웅이 아니라 혐오대상이었다. 중국이 6·25 참전자를 영웅시하고 보상·예우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유 교수는 “전쟁 직후 돈이 없는 정부가 참전자와 상이용사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고, 그때 왜곡된 인식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전사자 예우는 더더욱 자리를 잡지 못했다. 6·25 참전자 가운데 시신도 못 찾고 현충원에 위패만 모신 군·경이 14만5000위에 달한다. 유해발굴 사업은 2000년 시작됐고, 그동안 발굴된 시신은 5600여구에 그친다. 미국이 6·25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북한 내 미군 시신을 인도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과 비교된다. 보훈 의료시설·서비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보훈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보훈대상자 예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국립현충원 충혼탑 내부에 위치한 위패봉안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
◆보훈 없이는 안보도 없다
보훈을 강화하려면 보훈 책임자의 지위부터 격상해야 한다. 보훈처장은 장관급이었지만 1998년 정부조직 개편 때 차관급으로 격하됐다. 미국은 제대군인부가 보훈을 담당하며 공무원 21만명이 소속된 거대조직이다. 대만은 부총리가, 프랑스와 호주, 캐나다 등은 장관이 보훈부처 장이다. 한 보훈 전문가는 “보훈 책임자가 장관급은 돼야 국무회의 등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해외 보훈 교류도 용이하다”고 지적했다.
호국영웅 상징화 작업도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미국 워싱턴에는 한국전 참전 추모공원이 있지만 뉴욕에 또다른 한국전 박물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종전 60주년을 앞두고 미국민에게 미군의 숭고한 희생을 되새기려고 건립하는 것이다.
보훈교육연구원 오일환 원장은 “프랑스는 보훈을 ‘기억의 정책’이라고 부른다”면서 “거리 이름이나 광장 기념물 등에 참전용사, 호국영웅들을 상징화해 후세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보훈정책도 수요에 맞는 맞춤형으로 가야 한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금전적 보상 위주의 보훈정책에서 참전용사의 노후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요양, 의료·복지 시설 확충 등으로 점차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유 교수는 “미국 보훈병원은 대통령과 상원의원, 참전용사와 그 가족만 이용할 정도로 수준이 높고 상징성도 큰데, 우리 실정은 거기에 많이 못 미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보훈 없이는 안보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오 원장은 “보훈의 가치는 국가 통합을 위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와도 직결된다”면서 “희생의 가치를 후대에 분명히 일깨우는 것만큼 국가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안석호 기자
- “그동안 보훈정책이 국가에 헌신한 분을 보상하는 ‘사후적 보훈’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젊은 세대의 호국의식을 고양하는 ‘선제적 보훈’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박승춘(사진) 국가보훈처장은 20일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 보훈정책의 방향을 이같이 설명했다. 선제적 보훈 없이는 국가가 방향을 잃고 국민 자긍심도 떨어지기 쉬운 만큼 전후세대를 겨냥한 애국·보훈교육을 통해 건전한 국가관과 호국의식을 함양하겠다는 것이다.
박 처장은 “이를 위해 국민을 대상으로 나라사랑 업무를 추진하는 나라사랑교육과를 지난 6월 신설해 콘텐츠 개발 등에 돌입했다”며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군 가산점 부활 등 보상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최근 호국영웅 상징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현충원 내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1년 365일 ‘꺼지지 않는 불꽃’ 조형물을 만들고 현충일 등 호국 관련 행사 때는 국가유공자의 이름을 낭독하는 ‘롤콜’도 시작해 반향을 낳고 있다고 박 처장은 설명했다.
박 처장은 6·25 참전용사 등 보훈 대상자의 보상·예우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전투행위 참여 참전자 유가족 보상금을 3% 추가 인상하고 6·25 참전유공자의 참전명예수당도 1만원에서 3만원으로 올리는 등 보훈 지원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에 헌신한 분들의 명예와 자긍심을 높이고 생활에 도움이 되기에는 보상금이 부족한 수준임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보훈처는 대신에 보훈대상자의 고령화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 적극 시행 중이다. 그는 “보훈대상자에게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6일 1400병상을 갖춘 중앙보훈병원을 개원하고 보훈요양시설과 재활체육센터도 문을 열었다”며 “특히 노후복지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직접 찾아가는 이동보훈팀을 가동해 지금까지 1만여명에게 가사·간병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또 국가유공자들을 안장하기 위한 신규 국립묘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훈정책의 눈을 해외로까지 돌리고 있다. 박 처장은 “6·25 참전을 계기로 맺어진 21개 유엔 참전국과의 혈맹 우의를 다지기 위해 현지 기념행사를 개최·지원하면서 정부와 국민의 감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참전국과 지속적인 보훈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보훈의 시작이라는 게 박 처장의 지론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유공자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국가보훈처는 이들의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선열들의 애국·호국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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