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의 가을 42 ; 안보강국의 길을 묻다 12
군의 안보관, 항재전장의 정신력 현주소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말 취임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휘관 중심의 정신교육을 강화해 전투 의지가 충만하고 기강이 확립된 장병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장병들의 정신전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바로 강군의 요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장관을 비롯해 수많은 군 지휘관들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언제나 전장에 있다’는 의미의 ‘항재전장’(恒在戰場) 의식을 다졌다. 하지만 군에서 변화의 바람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상부지휘구조 개편안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에 매몰돼 군내 갈등을 초래하거나 해병대 총기사고 등으로 국민 불신만 깊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군 정신교육의 중요성
지난달 20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군의 현실을 빗댄 지적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원유철 의원(한나라당)은 “일선 사병들의 호칭 문제에 대해 확인하겠다”면서 “지금 병사들이 다른 부대나 다른 군의 병사를 부를 때 ‘아저씨’라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이어 “군대에서 호칭은 군의 통일성, 동료애, 전우애 등이 함축돼야 한다. 그런데 병사들끼리 아저씨라고 한다면 여군은 ‘아줌마’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다그쳤다. 김 장관은 “지금 호칭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며 군색하게 답변했다.
실제 일선 부대에서는 많은 병사들이 다른 부대 병사를 만날 경우 계급의 고하를 불문하고 ‘아저씨’로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대 분위기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지만, 군의 존재 의미를 퇴색시키고 군 기강에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러한 잘못된 병영문화를 바꾸는 데 기본이 되는 것이 군의 정신교육이다. 올바른 정신교육을 통해 강인한 정신력을 갖춰야 항재전장의 전투형 병사가 될 수 있다. 병사 개개인뿐 아니라 국민의식 형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장병들에게 어떤 목적으로 어떤 내용의 정신교육을 실시하느냐가 나라의 장래를 좌우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19세기 프로이센의 군사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저서 ‘전쟁론’에서 “물질력이 칼집이라면 정신력은 칼의 시퍼런 날”이라며 정신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부대에서 미디어 활용기법을 이용한 정신교육을 받고 있는 장병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미디어 활용기법이란 교수학습 현장에 미디어를 도입해 학습동기를 부여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육군 제공 |
◆군 정신교육의 어제와 오늘
정신전력 강화를 위한 군의 정신교육은 1970년대 자주국방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중동전 승리와 베트남전에서의 월남 패망을 보면서 한층 강화됐다. 하지만 군내 상황은 열악했다. 정훈교육, 정신훈화, 인격지도, 시사교육 등 정신교육 기본과목의 이름마저 뒤죽박죽이었다. 이처럼 교육체계가 미흡하고 강의는 주입식이어서 병사 참여도가 낮았다.
1990년대에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1999년에는 군 정신전력학교(국방정신교육원)가 폐교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군 정신교육의 필요성이 줄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정신전력학교는 병사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정훈장교의 재교육과 정신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을 담당하면서 군 정신교육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기 때문에 폐교 조치는 충격을 줬다. 올 들어 군은 12년 만에 정신전력학교 재설립을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움직임이 없다.
군 정신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채 혼선을 빚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군이 인혁당 사건과 제주도 4·3 사건 등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벌인 일”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장병 정신교육을 실시하다 논란을 빚은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두 사건은 법원 판결 등으로 국가의 잘못이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검증 절차없이 종북세력과 연관시켰다가 시대에 뒤떨어진 군 정신교육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현재 국방부는 올바른 대적관을 갖춘 전투형 군인 양성을 위해 체험형 교육과 생활화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신세대 장병들의 정신력을 높이기 위해 병사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해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CF식 영상교재를 제작·보급하거나 만화를 활용한 교재를 개발하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주입식 강의에서 벗어나 대담, 다큐멘터리, 골든벨(퀴즈쇼)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부대별로는 인근 전사 유적지 답사를 통해 무용담과 군인정신을 직접 체험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정신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이런 차별화된 시도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먼저 지도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군의 사기를 고취하고 우리의 헌법적 가치 등을 가르치면서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진·조병욱 기자
- “필요할 때 날이 선 군사력을 운용하려면 군이 항재전장의 정신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군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국방위원회 김장수 의원(한나라당·사진)을 만났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7년 10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악수한 사건으로 ‘꼿꼿장수’로 불리며 유명세를 탄 바 있다. 그때 얘기를 꺼내자 “다른 고려는 없었다. 우리 68만 장병들의 수장인 내가 적장에게 고개를 숙이면 장병 정신교육이 모두 허사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며 웃어넘겼다.
그에게 현재 우리 군의 정신전력 수준을 묻자 “불완전한 상태”라는 답이 돌아왔다. 먼저 자발적 동기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우리 군 장병들은 세계 어느 나라 군에도 뒤지지 않는 고학력이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임무를 완수해야 하겠다는 자발적 의지가 일반 사회에 비해 약합니다. ‘왜 내가 군에 입대해야 하는가’, ‘왜 내가 적과 싸워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장병 개개인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김 의원은 군 장병들의 대적관이 흔들리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 남북 경협, 금강산 관광 등 남북화해 움직임은 ‘적이자 동포’라는 혼재된 북한관을 지니게 했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남한의 체제우월적 자신감은 안보낙관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군 정신교육 주제가 진부한 데다가 군 정훈교육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및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군의 정훈관련 예산은 전체 국방예산의 0.03% 안팎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정훈장교들이 장병 정신교육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장교로 인식되는 것은 잘못이죠. 정훈장교는 교육체계 확립과 체계적인 행정지원 등 보조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교들이지, 군 정신교육의 주체가 아닙니다. 정신교육의 주체는 지휘관이어야 합니다.”
그는 “정신전력은 확고한 대적관, 필승의 신념, 국군의 사명의식, 지휘관 중심의 단결이라는 네 가지 기본틀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며 이러한 틀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정신교육 강화를 주문했다.
“전장에서 적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으면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북한 정권의 만행과 실상을 정확히 알게 해 장병들이 왜,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 의원은 독일의 정신전력센터, 미국의 행동과학연구소와 리더십센터, 이스라엘의 중앙교관양성학교 등을 예로 들면서 국방부에 정신전력을 관하는 컨트롤 타워를 설치하고, 국방대의 정신전력·리더십개발원을 ‘국방안보교육원’으로 확대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이런 제도적 측면뿐 아니라 군 지휘부의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처럼 우리 국민이 희생됐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일이 또다시 반복된다면 군의 정체성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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