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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우면산의 여름 42 : 광복! 그 굴욕의 명칭 3

 

 

 

우면산의 여름 42 : 광복! 그 굴욕의 명칭 3

 

 

 

                                                                                     강남고속터미널 새벽 풍경

 

요즘은 자전거 타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다. 이미 입추를 지나 다음주에는 처서가 다가온다. 우면산은 지난 산사태로 골짜기 마다 엉망이 되었고 피해 지역은 아직도 복구에 여념이 없다. 여러 목숨도 앗아가고 한숨에 눈물도 메마른 피해 주민들은 다시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꾸려나가려고 안감힘을 쏟고 있다. 긴 장마로 농작물이 열매를 맺지못하고 시들고 있으며 찢어지고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며 보상을 기대하지만 얼마나 농심을 달래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덩달아 곧 추석이 다가오면서 농산물을 포함하여 전 품목의 가격이 폭등하여 추석 장보기가 겁이 날 정도가 될 전망이다.

 

그렇지만 우면산 산등성이에는 참나무에 도토리가 영글고 밤나무에는 폭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밤송이들이 따사로운 햋볓에 알밤이 익어가고 있다. 구름에 가려 보기 어려웠던 가을 하늘이 청명하게 새털구름과 같이 맑게 푸르름을 더해가고 고추잠자리들이 마음껏 창공을 날개를 반짝이여 날고 있다. 하늘거리는 가을 바람에 키가 큰 코스모스가 여러 색깔로 길섶에 곱게 피어나고 벌써 많이 자란 꿩새끼들도 엄마와 같이 먹이를 찿아 숲 속 낙업 사이를 휘졌고 있다.    

 

계절은 가을로 분주히 달려가고 있다. 기온도 선선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이며 새벽에는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공기가 차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면 새벽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든 사정에 새벽 운동이라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통상 하루의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늦도록 드라마나 뉴스,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거나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만나 술을 먹거나 놀다가 밤 늦게 집으로 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랑과 비지니스 등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밤은 사람들에게 애증이 증폭되는 분주한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나도 그렇게 열심히 대인관계를 맺으며 사회를 살아왔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수십년이었지만 지금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현직을 떠나면 친구도 동료도 선배도 후배도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가정과 자식들, 그리고 자신의 노후를 걱정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권력도 명예도 재산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건만 세월은 흘러 어느듯 머리털은 히긋히긋한 백발이 무성하다. 가까운 친구들과 정기 모임도 있고 같이 여행도 떠나기도 하고 운동도 해 보지만 퇴직후에는 자신의 재력에 따라 목소리 크기가 달라진다. 동기회, 동창회, 향우회 등 각종 모임도 정치색이 농후하고 모두가 자신들의 과거를 감추고 권력과 재력을 뽐내려 하고 있다. 정치권, 장차관, 군장성, 고급 공무원, 대기업 임원이나 중소기업 사장 출신들은 모두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선뜻 거금을 기부하기도 하고 선물도 돌린다. 주소록을 등록하면 어김없이 회비나 찬조금 각출 통지서가 날아들고 각종 길흉사에 청첩장이나 부고장이 날아든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살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주변에서 사라져간다. 죽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하거나 시골에 요양, 집안에 칩거하는 모습을 가끔식 볼 수가 있다. 모두 건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면서도 그것을 심각하게 인식하지는 않는 습성이 있다.

 

삶의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다. 자살율 1위, 암발병율 1위, 출산율 꼴지, 삶의 행복지수 하층, 부정부패지수 상위, 초고령사회 진입, 청년실업 100만, 저소득 독거노인 가구는 점점 늘어가는 사회에 우리들은 살고 있다. 나이든 자식눔이 아직도 장가나 시집을 못가고 집안에서 빈둥거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직장이 없고 수입이 없어 부모에게 더부살이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겨우 장가.시집 보낸 자식들도 새 집은 커녕 전세값도 만들기 힘들고 겨우 변두리에 집을 얻어 살면서 두 부부가 불안한 직장이나 알바를 다니면서 맞벌이에 정신이 없다. 이렇게 삶이 열악하고 힘드니 시댁이나 친정집 부모들은 퇴직 후 아이들이라도 돌보는 보모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남은 재산이라도 조금 있다면 모르겠으나 자식이 벌이가 좋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경우, 또는 자식에게 몽땅 털어서 보탠 부모들은 보모의 역활이 끝나면 통상 자식들로부터 홀대를 받거나 버림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결국 자식이 자랄 때 부모가 보여주고 가르쳐준 가정교육, 즉 얼마나 반듯한 가정교육을 시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를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있다. 우리들의 기억에는 해방 당시 소련군의 북한 진주와 수탈, 공산정권 수립, 한국전쟁 발발이 떠오르고 한반도의 분단이 바로 소련의 팽창정책의 결과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 소련에 김정일이 방문하여 식량지원 및 경제협력 등 구걸행각을 벌이는 모양이다. 한국전쟁 후 소련은 중국에게 한반도 영향권을 물려주고 뒤로 빠졌다. 이제 다시 러시아가 북한을 통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음흉한 흉계를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남유럽의 재정위기는 한국의 재정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과다한 복지지출이 가져오는 재앙을 정치인들과 금융당국자들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개인부채, 국가부채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복지 포플리즘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없는 복지정책은 조세가 증가하면서 진행한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나 정부지출은 축소하지 않은 채 복지만 증가한다면 결국은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지출 축소없는 감세도 마찬가지로 포플리즘이며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장기간 저금리도 장점도 있으나 위험성이 높아 포플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 

 

 

 

요즘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오세훈 시장이 33.3% 이하 투표율이 나오거나 전체 무상급식 찬성이 승리할 경우 자신의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생각된다. 투표 실패 후 서울 시장직을 수행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미리 선언한 모양이다. 그러나 서울 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시장직을 그만 둔다는 것은 매우 졸렬하고 근시안 적인 생각이다. 만약 그만 두게 된다면 서울시장 재선을 위한 선거 비용은 엄청나게 소요될 것이며 그 후에 일어날 혼란을 어찌할 것인가? 이번 투표에 과연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투표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예측만 가능하다. 또 특정 사안을 가지고 주민투표가 전부가 아니다. 또 전례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또 투표율이 저조하고 50%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단지 불참자일 뿐이지 반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관심이 없다는 점일 뿐이다.

 

50% 미만 저소득층 무상급식이나 전체 무상급식이나 무슨 큰 차이가 난다는 말인가? 점진적으로 전체로 확대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한 협상력도 없이 투표까지 갔다는 것은 오시장과 시의회의 거만한 자존심 싸움이요, 여야의 세력대결이며, 보수와 진보의 자존심 싸움질이다. 그 와중에 시민들만 피해를 보는 것인바, 예산만 낭비하고 갈등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광복! 그 굴욕의 명칭은 계속된다.

 

 

38도선 설정과 민족 분단

 

소련군의 점령 계획

한반도 분단은 소련군이 한반도 점령 계획과 군사 작전 지역의 확대로부터 비롯되었다.

 

스탈린은 한반도 북부 지역 점령을 완수하자, 폴란드 등 다른 동유럽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를 소련 체제의 일부로 만들고자 하였다. 스탈린 최고 총사령관이 승인한 극동작전계획 제2호, 말리노프스키 사령관의 작전 계획, 그리고 포츠담 회담 시 열린 군사 회담에 제출된 소련군의 작전 계획은 소련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고 한국 수도인 서울을 점령하겠다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명해 왔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군의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점령 계획을 거부했고, 얄타 회담 때부터 소련군의 군사작전 범위가 만주 지역의 일본 관동군 관할 지역임을 분명히 하였다. 소련군과 대결을 준비하고 있던 만주의 관동군과는 별도로, 한반도에는 일본 대본영군인 제17방면군이 주둔하여 일본 본토와 한반도 방위를 담당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때까지의 일본군 편제에 따르면 앞으로 소련군이 참전하더라도 소련군의 주둔 지역은 관동군의 관할 지역인 만주 지역에만 국한 될 것이었다. 따라서 한반도는 소련군의 관할 지역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소련의 참전이 임박하자, 일본은 소련의 공격에 대비하여 군편제를 변경시켰다. 일본은 한반도 북부 지역의 재34군을 만주국 관동군 관할로 재편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남부 지역은 종전대로 제17방면군이 맡고 그 관할도 일본 대본영이었다. 오히려 제주도 지역에는 3개 사단을 증강시켜 본토 방위를 위한 최후의 전쟁 준비를 강화하였다.

 

일본군 대본영 관할 지역이었던 한반도 북부 지역이 갑자기 일본 관동군 관할로 재편되자, 한반도 북부는 소련군 점령 지역이 될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그것은 얄타 및 포츠담 회담의 합의대로 소련군이 관동군에 대한 무장 해제를 담당한다는 약정에 따른 것이었다. 결국 38도선 분할이란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의 연장선상에서 미국과 소련의 군사 작전 지역의 범위이자 무장 해제 관할 지역의 구분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하지 장군도 한반도가 38도선으로 분할되어 남.북한에 미국과 소련이 각각 주둔하게 된 것은 일본군의 군편제에 따른 미.소간의 합의사항의 이행 조치 결과였음을 분명히 하였다. 한반도 북부인 함흥에 주둔했던 제34군 세이부치 사령관은 일본 관동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연길로 가서 만주 지역의 다른 관동군 부대와 함께 소련군에 항복하고 정전협정에 서명하였다. 한반도 남부에 주둔했던 아베 노부유키 일본 총독과 일본군 제17방면군 사령관 우에쓰키 등은 하지가 이끈 미군에게 항복 서명을 하였다.

 

 

 

38도선의 의미

38도선은 소련군과 미국군이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무장 해제를 하기 위한 군사적 편의에 따라 설정된 경계선이자 소련 공산주의의 남하에 대한 저지선이기도 했다. 소련은 38도 군사 경계선 이북 지역을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및 영향력의 확장선이자 통치 지역으로 간주하였다.

 

그에 따라 소련군은 북한의 공업 지대에 있던 수많은 선업시설을 철거하여 가져갔는데, 수풍 발전 시설 및 함흥, 원산 등 지의 각종 산업 및 기계 시설을 해체하여 소련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한국인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가혹한 전체주의적 통치를 주도하였다. 그와 같은 소련의 만행은 우리 민족의 원성을 샀고, 급기야는 1945년 11월 학생을 중심으로 한 수천 명의 '신의주 반소의거'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자 소련군은 비행기를 동원하여 기총 사격, 탱크와 기관총을 동원한 대량 살상을 통해 진압하였다.

 

더구나 치스차코프 사령관의 소련 제25군은 8월 말부터 경기도 전곡과 동두천 간의 경원선과 금교와 신막 간의 경의선 철도 교통을 차단하였다. 곧이어 38도선 경계의 모든 도로 교통을 차단하였다. 며칠 뒤인 9월 2일에는 남한과 연결되는 전화와 우편마져 단절시켰다. 따라서 한반도는 미군이 서울에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소련군에 의해 실질적인 분단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일본군 편제 변경에 따른 한반도 북부 지역까지로의 소련군 작전 지역의 확대는 한반도 북부가 스탈린 체제하의 소련 지배 지역으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한반도 남부마저 스탈린 전체주의 체제로 편입되지 않는 한, 분단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실제로 해방 직후인 9월 20일, 북한 지역에 독자적인 정부를 구성할 것을 지시한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한반도는 이미 1945년 9월부터 분단국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