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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자전거 교통사고, 도난사고 빈발

 

 

자전거 교통사고, 도난사고 빈발

 

 

자전거 교통사고 빈발

제한 속도 20㎞ 넘겨 보행자 치는 등 사고 빈발 한해 평균 80명꼴 사망
한강변 하루 2만대 질주 인라인 등 뒤섞여 아찔 "잠수교가 가장 위험"

최근 가족과 함께 서울 한강공원 잠실지구로 산책을 나갔던 김동규(37)씨는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노는 데 정신이 팔린 다섯 살짜리 아들이 순식간에 자전거 도로에 뛰어드는 바람에 빠른 속도로 질주하던 자전거 운전자 몇 명이 아이를 피하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것. 자전거 운전자 한명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것 외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잠시 후에 발생했다. 자전거 동호회원으로 보이는 유니폼 차림의 사람들 10여명이 몰려와 "아니, 아이를 '자전거 전용도로'에 뛰어들게 하면 어떡하느냐"고 김씨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김씨는 떼 지어 달려드는 기세에 눌려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한껏 속도를 내며 달려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전거 인구가 늘면서 아무 곳에서나 속도를 즐기는‘라이더’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만들어진 한‘자전거교통안전교육장’에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모습.

자전거가 거리와 공원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새로운 '교통사고 유발자'가 되고 있다. 여전히 승용차에 부딪혀 피해를 입는 자전거가 많지만, 반대로 자전거에 부딪혀서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람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 83명, 2009년 88명, 2010년 73명 등 최근 3년동안에만 모두 244명이 자전거에 부딪혀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전거 매니아들 중에는 속도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루 평균 2만 대 이상의 자전거가 오고가는 한강변 자전거 길만 해도 '제한 속도'는 시속 20㎞이지만, 많은 이들이 이 속도를 훌쩍 넘기곤 한다. 자전거에 속도계를 달고 자신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소위 '인증 샷'을 찍어 블로글 등에 올리는 '스피드광'도 있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한강 자전거 길에서 한 운전자가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자전거 길 옆에 정차돼 있던 공사차량에 부딪혀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서울시 한강본부 관계자는 "자전거와 보행자, 인라인스케이트가 뒤섞여 달리는 도로에서 과속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며 "청원경찰들이 단속을 하지만 그때뿐"이라고 말했다. 올해 한강 자전거 길에선 모두 65건의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람을 친 경우도 7건이나 됐다. 하지만 이는 서울시 한강본부가 확인한 사례일 뿐, 실제 발생하는 사고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전거 출퇴근족이 늘면서 일반 도로에서도 자전거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에만 1만1439건의 자전거 교통사고가 발생, 299명이 숨지고 1만1646명이 부상을 당했다. 특히 자전거가 차량에 부딪혀 피해를 입는 '자전거 피해자' 사고는 2009년 이후 줄어든 반면, 다른 자전거나 보행자를 치는 '자전거 가해자' 사고가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전거 가해자 사고는 2008년 이후 2130건→2639건→2663건으로 증가했다. 유형은 자전거끼리 측면(직각) 충돌하거나 인도를 걷다가 자전거에 부딪힌 사례가 가장 많았다. '자전거 뺑소니' 사고도 매년 2~3건씩 발생한다. 지난 2009년 10월 서울 한강공원에서 발생한 자전거 뺑소니 사망 사고의 경우, 경찰은 아직도 가해자를 잡지 못했다.

일부 자전거 동호인들은 교통사고를 피하기 위해 위험한 자전거 운행 구간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동호인들 사이에선 기둥이 많아 시야가 가리는 잠수교가 서울에서 가장 사고 위험이 큰 구간으로 통한다.

사고 발생에 비해, 자전거보험 가입 등 사고 대비에는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우리나라 자전거 이용자들의 특징이다. 지난 2009년 처음 출시된 한 보험사의 '자전거 전용' 보험의 경우 첫해 1만2000여건이 판매됐으나 지난해 2100여건으로 줄었고, 올해는 6월까지 622건이 판매되는데 그쳤다.

도로교통공단
채범석 책임연구원은 "자전거를 출퇴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면서도 일부 운전자나 보행자들은 여전히 레저 수단처럼 인식하고 있다"며 "고속으로 달리는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더 무서운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자전거 보급 속도에 맞춰 성숙한 교통문화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전거 도둑 극성

 

자전거를 '애마'로 둔 자전거족(族)과 그 애마를 노리는 자전거 도둑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머리싸움 얘기다.

예전에는 간단한 잠금장치만 달아두면 걱정할 게 없었다. 그러나 학생들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절단기나 쇠톱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 이에 강력한 내구력을 가진 'U자형' 또는 '4관절' 자물쇠 판매량이 늘었다. 그러자 안장이나 핸들, 바퀴만 뜯어가는 얌체족들이 생겨났다. 자전거에 잠금장치를 하나 더 채워 주인이 가져갈 수 없도록 만든 후 밤에 훔쳐가는 '덮어쓰기'란 신종수법도 등장했다. 자전거 소유자들은 이에 맞서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 감시체제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부품만 전문적으로 파는 '꾼'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22일 한국교통연구원의 국가교통DB센터 집계에 따르면 서울의 가구당 자전거 보유대수는 평균 0.46대. 2가구당 1대꼴이다. 행정안전부는 전국적으로 약 800만 명이 자전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전거 인구가 늘어날수록 절도범들은 더 활개를 친다.

자전거등록제 등의 정부대책이 미뤄지는 사이 '지키려는 자'와 '훔치려는 자'의 숨바꼭질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쟁은 과연 끝날 수 있을까.

○ 자전거족의 비애

자전거족들은 항상 적들의 시선에 노출된다. '1, 2분이면 되는데'란 안이한 생각을 하는 순간, 적들은 허점을 파고든다. 애지중지해온 보물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잠깐 경계심을 풀었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적들을 미리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하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도 순식간에 사악한 '자전거 도둑'으로 돌변한다.

2010년 이륜차(오토바이, 자전거 등) 절도 사건은 1만9801건으로 전년(1만6805건)보다 17.8% 늘었다. 특히 최근에는 수백만∼수천만 원에 달하는 고가 자전거가 많아 피해 정도가 더 심각하다.

내가 부주의해 잃어버린 자전거는 그나마 마음에서 떠나보내기가 쉽다. 하지만 고가의 자물쇠에다 경보장치까지 달아둔 자전거를 보란 듯이 가져가버리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안전지대인 줄만 알았던 아파트 복도도 예외는 아니다. 뼈대만 남은 자전거와 용의자로 보이는 폐쇄회로(CC)TV 속 중학생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돼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2009년 조사한 결과 자전거 이용자 53%가 '자전거를 도난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두 번 이상 잃어버린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도난 장소는 '집 또는 집 주변'이 63%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영업자인 윤모 씨(33·서울 광진구 군자동)는 1년 전 60만 원에 구입한 '스콧서브40'을 21일 새벽에 잃어버렸다. 윤 씨는 "4관절 자물쇠로 묶어두었는데 그냥 통째로 가져간 듯하다"며 "늘 실내에 보관하다 2층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둔 지 이틀 만에 없어졌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 씨(41·경기 파주시 운정동)는 2년 전 20여만 원짜리 3단 접이식 자전거를 샀다가 누군가 안장만 떼어가는 바람에 혀를 차야 했다. 그가 새로 구입한 자전거는 며칠 만에 아예 통째 사라졌다.

회원이 41만여 명인 자전거 동호회 카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자출사)'에는 도난신고 글이 매달 40∼50건씩 올라온다. 이들 대부분이 자전거를 아파트 거치대나 주택 마당에 두었다가 잃어버린 경우였다.

○ 자전거 도둑 대부분이 10대

"제가 자전거를 훔쳐서 새로 칠을 하고 수리하러 갔다가 거기 주인이 신고하는 바람에 파출소에 갔습니다. 그런데 61만 원짜리 미국제품이라는 겁니다. 저는 구속되는 건가요? 아직 초범인데 전과자 되는 건가요? 16세 남자입니다. 좋은 답변해 주세요. 무섭습니다."

지난달 말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온라인에는 이런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절도가 심각한 범죄인지조차 모른 채 일을 저지른 미성년자가 많다는 얘기다.

자출사 카페운영자인 오종렬 씨(34)는 "전문적으로 자전거를 훔치거나 유통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온라인 장터를 통해 장물을 처분하려는 이는 대부분 미성년자"라며 "회원들의 제보로 찾은 범인이 학생이어서 처벌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2009년 2분기(4∼6월) 서울에서 발생한 자전거 절도사건의 피의자 458명 중 19세 이하가 361명(78.8%)이었다. 최근 휴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전거 20여 대를 훔쳤다 경찰에 잡힌 일당도 20대 학원강사 1명을 제외한 3명이 10대였다.

자전거 도난사건을 다수 처리한 바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김광진 경사는 "최근에는 학생들도 순간적 충동 때문에 자전거를 훔치기보다는 아예 용돈으로 쓸 목적으로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며 "14세 미만의 경우 형사상으로 처벌을 받진 않지만 소년보호사건으로 처리될 경우 평생 기록에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14세 이상 청소년은 초범일 때는 대개 훈방되지만, 재범이 되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 어떻게 내 자전거 지킬 수 있나

자전거족에게 가장 쉬운 방법은 강력한 잠금장치를 다는 것이다.

실제 온라인 쇼핑사이트 G마켓과 옥션에서는 올해 상반기 자전거 도난방지 용품 매출이 각각 전년 대비 7%, 33% 늘어났다. G마켓 스포츠팀 최우석 팀장은 "여름 휴가철에는 자전거 도난 방지 용품과 같은 액세서리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에는 U자형 잠금장치나 무선자전거도난경보기 등 5만∼6만 원대 고가 제품 판매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후조치 중 가장 시급해 보이는 것은 자전거등록제. 자동차처럼 각 자전거에 번호를 부여하면 장물을 쉽게 매매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는 절도사건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보이고 있는 행태는 '자전거 활성화 정책'과 거리가 멀다.

행안부는 지난해 자전거등록제 시행을 위한 사전 용역을 시행했지만 올해 예산 5억여 원을 확보하지 못해 시행을 늦추고 있다. 전병길 행안부 지역발전과 주무관은 "자전거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올해 등록제 시행을 위한 전산시스템을 개발하려 했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내년에 예산이 배정되면 곧바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에서 서울 양천구, 경기 과천시와 파주시, 경남 김해시와 사천시, 제주 제주시 등 6개 기초자치단체만 자체적으로 자전거등록제를 시행해 1만2000건 정도를 등록했다. 그러나 자전거 리스트 확보 수준일 뿐 도난 방지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

자전거 도난 탓에 몸살을 앓았던 유럽 여러 나라는 이미 자전거등록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매년 70만 대 이상 도난당하던 세계 최악의 자전거 도난국 네덜란드는 2008년 1월부터 '국가 자전거 등록부'를 시행 중이다. 또 무선정보인식장치(RFID) 장착을 의무화해 도난 물품의 거래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덴마크는 모든 제조사와 판매점에서 자전거 코딩을 하고 경찰이 해당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해 도난 자전거 회수율을 40%까지 높였다. 영국과 프랑스도 민간단체나 회사를 중심으로 자전거 도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 찾고 있다.

김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