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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우면산의 여름 40 : 광복! 그 굴욕의 명칭 2

 

 

 

우면산의 여름 40 : 광복! 그 굴욕의 명칭 2

 

 

 

 

                                                                       비내리는 새벽길

 

컴퓨터를 바꿨더니 속도가 너무 빨라 글쓰기도 기분이 좋은 상태이다. 화면이 금방 바뀌고 시작과 종료도 무척 빠르다. 돈이 좋기는 좋다. 이러니 사람들은 돈에 약할 수밖에 없고 나 같은 촌부도 돈에는 무력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돈은 인간 사회에서는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편리하게 해주며 질을 향상시켜 주니 돈이 뇌물로 밀거래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 사회는 비리와 부패가 사라지지 않고 역사와 같이 명맥을 유지하여 왔으며 그것은 인간 사회를 윤활유처럼 돌아가게 만들어 준다.  

 

비리와 부패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서는 고대부터 그 명맥을 이어왔다. 뇌물은 윤활유처럼 인간 사회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원한과 적개심을 누그르뜨리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나쁜 감정을 좋게 만드는 신비의 특효약이다. 뇌물로 벼슬을 사고 뇌물로 비리를 용서받으며 무능력자가 능력자로 바뀌고 진실을 거짖으로 둔갑시키는 마력도 갖고 있다. 또 뇌물은 권력과 사촌간인데 뇌물은 권력을 잉태하고 권력은 뇌물을 잉태한다.

 

그래서 인류 역사에서는 조공이라는 국가간 뇌물 관례가 태초부터 시작되어 왔다. 조공이란 한마디로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바치는 뇌물이다. 사신들이 오갈 때나 매년 때마다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고, 심지어 물품을 포함하여 공녀를 바치고 공주를 시집보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당나라가 문성공주를 티베족에게 시집보낸 것이나 한무제가 흉노족에게 공주를 시집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전경련 회장 등을 불러 재벌들의 행태에 대해 질타하였던 모양이다. 부자감세와 공생이라는 혜택과 정부 요구를 거의 묵살하고 자신들의 베만 불리고 있기에 배심감을 느낀 정부와 국회가 어려운 현실을 재벌들에게 그 탓을 돌리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재벌들에게 공생을 외치지만 그것은 허울에 불과하고 자신들의 탐욕을 감추기 위한 가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와는 다르게 미국의 워렌 버펫이 재벌들에게 기부를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전재산 99%를 기부한 사람이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기부는 커녕 비자금 만들기 바쁘고 무자비한 영역 확장과 자식에게 상속하기 바쁘다.

 

삼성과 현대가 영원히 재벌로 군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토롤라나 노키아, 소니, 토요타, 국제, 대우처럼 언젠가 위기가 닥칠 것이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얼마나 미래를 내다보고 혁신적인 사고를 갖으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하는냐에 달렸을 것이다. 삼성 휴대폰은 위기다. 휴대폰 세계가 엄청난 지각변동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만 고집하며 성장했던 삼성이 애플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아차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없이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통신사들도 이제 스스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떠날 것이다. 그동안 우리 나라 3개 이동통신사들이 휴대폰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던 90년대 후반 이후 년간 평균 2~3조원 가까운 순이익을 남기며 엄청난 성장과 무소불위의 경제권력을 행사해왔으며, 년간 수조 원씩 순이익을 남기며 휘발유를 공급하던 정유업계, 중간 마진으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각종 유통업계 등 원가에 비해 과도한 거품으로 소비자들을 우롱하며 주머니를 털어간 수많은 기업들이 이제는 스스로 변화와 개혁을 통해 소비자를 위한 진정한 기업으로 되살아 나지 않으면 시장 개방에 따른 선진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다.  

 

한 여자 배우가 드라마 촬영 도중 촬영을 거부하며 촬영장을 이탈하는 등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얼굴도 반반하고 인기도 어느 정도 있는 배우이니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다. 스탭들이 발표한 한예슬씨의 행태를 보면 가관이다. 촬영장 지각은 물론 촬영 거부, 촬영시간 연기 등 빡빡한 스케줄로 갈등을 빗고 있는 모양이다. 또 한예슬씨 측에서는 제작진들의 오만과 졸속, 쪽대본, 밤샘 촬영, 노예 취급 등 서로 비난하는 막말이 나무하고 있다. 다행히 그녀가 돌아와 사과를 하고 재촬영을 시도하는 모양이지만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요즘 드라마는 사전에 미리 제작하는 게 아니라 시청율을 보고 그때 그때 작가들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졸속으로 제작하는 등 한마디로 막장드라마의 기형적인 제작 방식으로 진행하는 모양이다. 밤샘, 연속촬영 등으로 배우들과 스텝들을 혹사시키면서 진행하는 방송사의 행태도 비난의 대상에 올라야 할 것이다. 그 드라마가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다. 또 그녀와 광고를 예약했던 많은 기업들이 울상이라고 한다. 요즘 드라마들이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내용 일색이다. 한마디로 광고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막장, 불륜, 미혼모, 삼각관계 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판을 친다. 정신도 없고 영혼도 없는 드라마들 뿐이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리모콘을 들고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딩구는 은퇴한 중년들의 심리 상태도 나도 저런 경우가 없을 까 하면서 상상에 빠지곤 한다.   

 

 

 

 

광복! 그 굴욕의 명칭은 계속된다.

 

일본의 패망과 민족 해방

 

소련의 태평양전쟁 참전과 그 파장

일본의 항복 과정에서 한반도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일본이 항복 선언이 있기 전인 1945년 8월 9일에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로써 소련은 유럽에서뿐만 아니라 태평양전쟁에서도 승전국의 일원이 되었고, 그것은 소련이 일본의 북방에서 압력을 가하도록 소련의 참전을 미국이 바라던 바이기도 하였다.  그에 따라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중국 및 한국의 장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유럽 지역에서 독일과 대결하고 있는 동안 소련의 스탈린은 일본과 1941년에 중립 조약을 맺어 일본의 대외팽창과 한반도 지배를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과 홀로 싸우고 있던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강력한 저항으로 미군의 희생자가 계속 늘어나자, 앞으로 있을 일본 본토 공략에 따른 희생 확대에 크다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소련이 가능한 빨리 대일전에 참전하도록 요구하였고 그 때문에 소련의 스탈린은 얄타회담에서 중국에서의 우선적인 이권 등 미국으로부터 참전에 따른 대가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소련은 참전을 미루다가 1945년 8월 9일에야 일본에 대해 선전을 포고하였다. 그 때는 이미 일본이 미국 공군의 공격을 받아 국토가 초토화 되었고, 또한 8월 6일에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일본이 미국에 항복 의사를 타진하고 있던 전쟁 종결 단계였다. 그러므로 소련은 8월 9일부터 무력화된 일본군을 쉽게 밀어붙이며 만주 지역과 한반도의 북부를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소련군은 8월 12일에는 함흥, 청진, 원산을 점령하고, 24일에는 평양까지 점령해 38도선 이남인 개성까지 물밀듯이 진출하였다.

 

종전을 앞둔 시점에 소련의 대일전 참전은 전후 동북아시아 지역에 소련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순식간에 중국, 몽골, 한반도 북부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른 소련의 공산 전체주의 체제가 옮겨졌다. 그에 따라 북한에서도 예외 없이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계급독재 기구인 '인민위원회' 중심의 소비에트 체제가 수립되어 갔다.

 

 

뒤늦은 미군의 남한 진주

미군은 소련군보다 한 달이나 늦은 9월 6일에야 인천에 상륙하였다. 그럼으로 해방일로부터 그때까지 약 3주일 간은 일본 총독부에 의해 행정 및 치안 질서가 계속 유지되었다. 각종 행정 조직과 관리는 물론, 치안, 방송, 무역 등도 종전대로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수행되어 나갔다.

 

그 사이 한국의 지도자들과 단체들은 독립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건국동맹을 계승한 여운형 중심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박헌영 주도의 '조선공산당', 그리고 김성수, 송진우 등의 기업인과 지식인이 중심이 된 '한국민주당'과 같은 단체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특히 일본 총독으로부터 치안 유지 협조를 받은 사회주의자 여운형은 다른 단체보다 빠르게 중앙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지방의 '인민위원회' 조직을 확대해나갔다. 미군 진주가 임박하자 조선공산당의 박헌영 등 좌익 세력이 가세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재빨리 독자적인 정부를 구성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본인의 승인도 받지 않은 채 정치적 이용을 목적으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고, 여운형, 허현, 김구, 김규식, 김성수 등과 같은 좌.우파 인사들의 이름을 넣어 '조선인민공화국'을 급조해 조직을 발표했다. 그리고 각 지방에서 실질적으로 공산 계열이 주도하는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였다.

 

그것은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 전에 미리 정국을 장악함으로써 미군의 개입 여지를 없애기 위한 공산주의 세력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뒤이어 진주한 미군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공산주의자들의 발빠른 주도권 장악 시도에 국내 지도자들과 해외 독립운동 세력의 결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에 따라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국민적 단합과 협력이 어렵게 되었고, 남한 사회는 분열과 혼란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북한의 소력식 공산주의와 남한의 미국식 자유주의가 이미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