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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마음의 평안

우면산의 여름 41 : 정율 스님, 찬불가로 미국 전역을 울리다.

 

 

 

우면산의 여름 41 : 정율 스님, 찬불가로 미국 전역을 울리다.

 

 

                                                                            마음껏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넝쿨장미

 

지난번 아파트 단지 안에 핀 넝쿨 장미가 너무 아름답고 탐스럽게 피어 있어  휴대폰으로 담아 놓았던 사진이다. 물론 이제는 꽃잎은 다 지고 잎과 가지만 남아 쓸쓸히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나비와 벌이 엣날 같지 않아 별로 날아들지도 않고 이상한 파리같이 생긴 작은 벌들이 날아들고 잇엇다. 토종벌은 구경도 못하고 나비도 구경하기가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새벽에 나무에서 열심히 울어대던 매미도 엣날 같지가 않다. 무리도 적은 듯하고 소리도 우렁차지 못한 것같다. 지구의 기후변화로 이상기온이 생태게를 여러가지로 변화시키고 있어 변허ㅏ에 인류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활짝 핀 장미처럼 우리 인생도 절정기가 있다. 몰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옛날에는 대략 10~20년 길어야 30년이었지만, 지금은 그 수명이 더 짧아진 느낌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정보의 공유와 확산, 사회체제의 변화, 문명율의 진보, 경쟁력의 증가, 인류의 자각의식의 발전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존경받는 기간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장미가 수십일 동안 절정을 이루며 이름다움을 뽐내듯이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절정기는 있을 것이다. 그 절정기가 짧으면 짧을 수록 인생행로를 선택하고 결정함에 있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이며 그와 아울러 시기와 때가 자신의 운과 맞지 않았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서울시 무상급식과 관련한 주민투표가 24일 진행될 모양이다. 여야가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고 오세훈 서울 시장과 의회가 무상급식 방법론을 놓고 반목을 일삼다가 이제는 혈세까지 낭비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감은 선거를 전후하여 서울시 산하 전체 교장들을 소집하여 강원도에서 워커샾을 개최하면서 투표에 불참하려는 의도로 반발하고 있고, 거리에는 찬반 현수막들이 사방에 걸리고, 일인시위를 벌이고, 촟불집회를 선동하고, 편가르기라며 전체를 무상급식해야 한다며 포플리즘을 자극하고 있다. 헌법의 무상교육을 들먹이며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제 돈이 안드니 말이다. 개인은 부채로, 나라는 재정이 나날이 부실로 병들어 가고 있다. 토지균등무상분배, 공동 배급제, 공동자산, 빈부차없는 세상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던 사회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가난의 평준화를 가져왔고 일당독재, 공산당원 치부, 권력과 부의 독식을 가져왔던 바, 지금은 대부분 망하고 말았다. 억울하고 거들나는 것은 백성들뿐이다.

 

 

 

 

제주 강정해군기지공사도 역시 찬반이 팽팽하다. 법적인 절차를 밟아 진행하던 공사가 중단되고 현장을 방문하던 해군관계자들이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정강이를 맞기도 하고 쫒겨나기도 했다. 부산 한진영도조선소 분규 현장에 투입되었던 제3세력들의 희망버스가 이제는 평화버스를 만들어 제주도로 집결하여 투쟁을 벌일 모양이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만들어지면 미국 해군이 들락거릴 것이고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을 긴장시켜 분쟁지역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역사에 나오는 주화파들의 전형이다. 고구려 영류왕 시절 당나라와 화친을 주장했던 주화파, 고려 거란족 침공시 거란의 요구에 땅을 떼 주자며 화친을 주장했던 신하들, 이조 병자호란 당시 주화파들이 바로 그들의 전신이다.

 

제주는 평화의 상징인 섬이며 유엔이 지정한 환경보존의 섬으로 군기지가 들어서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어도가 중국이나 일본에 점령당하고 한국 어선이 나포되고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에 유린되거나 해양로가 막혀 원유 수입이 중단되고 무역로가 막혀 경제가 무너져 나라가 망해도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여 환경보존의 섬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지도를 꺼꾸로 놓고 보면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도 난주를 점령하여 우리들의 강역으로 만들지 않는 한 해양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가 없는 반도 국가이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공을 물리치던 고구려 수군들의 무용은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대륙백제를 경영하며 서해를 주름잡던 백제의 영광, 부패와 무능, 왕권쟁탈전으로 무너져 가는 신라 조정에 재정을 크게 보태주며 끓어져가던 명맥을 유지시켜준 해상왕 장보고가 그랬고, 몽고군의 침공에 고려 무신정권은 강화도에서 투쟁하면서 9차례에 걸친 몽고군의 침공에도 버티었고, 결국에는 고려 조정이 항복을 결정하자 진도와 제주도에서 끝까지 항쟁을 벌인 고려의 삼별초, 망하고도 남을 나라였던 꺼져가던 조선을 구원해준 이순신의 23전 23승 해전의 승리가 바로 모두 바다에서 이루어진 기적이다.

 

모든 해상로는 무역과 조운의 길이였으며 바다는 육지와는 삶의 환경이 다르다. 육지에는 먹을 것이 없아 난민들이 떼를 지어 유랑을 하고 굶어 죽거나 자식을 팔거나 잡아먹던 시절이 있었지만 바다가 가까운 해안쪽 주민들은 그런 일은 없었다. 오로지 수탈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왜냐면 갯뻘과 바다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자원이 자라는 식량창고나 다름없는 천연보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다를 남에게 내주고 평화와 환경을 지키고 외부의 위협과 침략에는 수수방관하라는 근시안적인 좌파 지식인들의 주장은 이 나라를 갈등으로 병들게 만들고 친복.종북 세력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평화는 내가 평화롭다고 평화가 찿아오는 게 아니다. 내가 강력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평화를 주장해봐야 메아리에 불과하다. 힘이 없는 나라는 언제라도 강대국의 먹이감이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그것은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막눈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얼마나 울어야 가슴이 열릴까/ 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리고/ 얼마나 버려야 자유스러울까/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한 불교계 스님이 찬불가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눈물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는 몰라도 찬불가를 부르는 정율스님의 목소리는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배다혜나 선우의 목소리와는 강도는 다르지만 듣기에는 아름다웠다. 종교와 종파를 떠나 아름다움은 동일할 것이다. 자신을 수양하고 마음의 정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알맞는 신앙심일 것이다. 아래 기사와 찬불가를 함 감상하시라 ~~

 

 

 

 

 

 

 

정율 스님, 찬불가로 미국 전역을 울리다.

[美서 5년간 150여회 찬불가 공연하고 돌아온 정율 스님]
불교계서 보기 드문 성악가 '한 시간 설법보다 나은 한 곡' 찬불가 들은 큰스님들도 극찬
"무대가 禪房, 노래는 참선… 내겐 노래하는 순간이 곧 수행"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얼마나 울어야 가슴이 열릴까/ 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리고/ 얼마나 버려야 자유스러울까/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2009년 9월 19일 오후 7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세인트마이클 성당에서 열린 '사랑·자비·희망 콘서트'. 한인 교포와 미국인, 천주교와 불교, 기독교 신자 등 800여 명 관객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흐느꼈다. 무대 위에 선 작은 체구의 비구니는 '찬불가 스타' 정율(廷律) 스님. "얼마나 고단하셨어요. 험하고 외로운 가시밭길이지만 불법(佛法)에 의지해 걸어가다 보면 부처님께서 언젠가는 여러분 앞에 환한 등불을 켜주실 거예요."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인 동포들의 고단한 마음을 보듬는 찬불가에 객석은 울음바다가 됐고,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찬불가를 부르는 불교계의 보기 드문 성악가 스님인 정율 스님은 “무대는 내 선방(禪房)이고 노래는 곧 내 참선(參禪)이어서, 노래에 빠져 들어가 노래하는 순간과 법당에서 기도하는 순간이 내게는 별개가 아니라 수행 그 자체로 또렷이 하나”라고 했다. /정율 스님 제공

성가곡과 합창 문화가 발달한 기독교와 달리, 불교계에서 정율 스님은 보기 드문 전문 성악가다. 지난 5년간 하와이부터 뉴욕까지 오가며 150여회 공연과 찬불가 강의를 했고, 최근 귀국해 3집 음반 '오늘은 좋은날'을 냈다. 예비 스님인 사미니 때인 1988년 우연한 기회에 처음 무대에 선 뒤 크고 작은 공연이 그동안 1000여회에 달한다.

출가 전까지 정율 스님은 정식 성악공부를 한 적은 없다. 고1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출가의 뜻을 굳힌 그는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출가했다. 어린이 포교를 꿈꾸던 그에게 1988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장애올림픽 기금 마련 삼소음악회는 인생행로를 바꿔놓은 전기였다. 삼소음악회는 불교·천주교·원불교 성직자들이 힘을 합친 공연. 당시 범패 공연단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었던 스님은 우연히 합창단 오디션까지 보고 발탁됐고, 소프라노 솔로와 중창 공연까지 하게 됐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고, 정율 스님의 노래는 어른 스님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미니계를 받고 운문사 승가대학에 진학한 뒤엔 당시 학장이던 명성 스님이 정율 스님의 '멘토'였다. 틈만 나면 공연을 주선했고, 승가대학 4학년 때부터는 영남대 음대 학장을 지낸 성악가 김금환 교수에게 1주일에 한 번씩 보내 레슨을 받게 했다. "김 교수님은 수녀로 '출가'한 따님이 있으셨어요. 그래서인지 저를 딸처럼 여기고 자상하게 가르쳐주셨고, 찬불가 활동을 활발히 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기뻐하셨죠."

비구니계를 받은 뒤 도반(道伴)들은 선방(禪房)으로 들어갔지만, 스님은 원광대 음악교육과에 진학했다. 학부 4년과 대학원 5학기를 거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스님은 스스로를 '음악하는 수행자'로 여긴다. 격식대로 가사 장삼을 갖춰 입고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말할 때도 여법(如法·불법에 합당함)함을 유지하려 애쓴다. "어느 수녀님이 제게 말씀해주셨어요. '수도자는 목소리만 갖고 노래하는 게 아니라 영혼을 담아 온 마음과 몸을 다해 노래해야 하는데, 스님의 노래에는 진짜 혼이 담겨 있다'고요. 지극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도록, 부처님의 진리와 음악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요."

그래서일까. 당대의 선지식들도 스님의 찬불가를 극찬했다. "전생에 법화경 독송을 많이 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타고난 것"(전 직지사 조실 고 관응 스님) "항상 수행자로서 여법함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비구니 회장 명성 스님) "정율 스님에게는 노래 수행이 곧 포교"(고운사 조실 근일 스님) "한 시간 설법 듣는 것보다 정율스님 찬불가 한 곡 듣는 것이 훨씬 낫다"(광덕사 회주 혜인 스님)는 평을 들었다.

스님은 미국에 가기 전까지 운문사 승가대학 불교음악 전임교수로도 10년을 가르쳤고, 불교TV의 찬불가 교실 '오늘은 좋은날'을 약 3년간 진행했다. 팬카페에 회원이 5000여명에 달할 만큼 불교계에서는 이미 전국구 스타다.

참선에 용맹정진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스님들도 많은데, 출가자로서 찬불가를 부르며 살아가는 삶이 무상하진 않을까. "온 마음으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할 때 염불하고 참선하듯 삼매에 든다고 생각해요. 무대가 제 선방(禪房)이고, 노래가 제 참선(參禪)인 셈이지요. 노래에 빠져 들어가 노래하는 순간과 법당에서 기도하는 순간이 제게는 별개가 아니라 수행 그 자체로 또렷이 하나입니다."

정율스님 - 거울마음 닮을까
정율스님 - 영겁을 하루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