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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스타벅스'의 신화...

 

 

'스타벅스'의 신화...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1953년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1975년 노던 미시건 대학교에서 비지니스학으로 학위를 받고 '제록스'사에서 3년간 세일즈와 마케팅 분야에서 일했으며, 이후 가정용품을 생산하는 스웨덴 회사 '해마플라스트'의 미국 지사 부사장 겸 총지배인이 되었다. 비교적 빠른 성공을 거둔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스타벅스의 커피맛과 경영방식에 반해, 1982년 대기업 부사장의 자리를 박차고 당시 오직 4개의 스토어를 가지고 있던 작은 커피 판매회사 ''스타벅스'에 마케팅 책임자로 합류했다. 1986년 이태리 스타일의 '에소프레소' 바를 열기 위해 '스타벅스'를 떠나 '일 지오날레'를 연 뒤,1987년 8월 '스타벅스'를 인수하여 회장 겸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1992년 '스타벅스'를 스페셜티 커피 회사로서는 최초의 상장기업으로 만들었고, 현재 2,000여 스토어를 갖고 있는 시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로 성장 시켰다.

 

'하워드 슐츠'는 뉴욕의 연방 정부 보조주택 구역인 브루클린의 카지나 빈민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10대가 되었을 때 그는 빈민촌에 붙어 따라다니는 오명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으며 나이가 들면서 종종 아버지와 마찰을 빚었다. 아버지가 노력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었으리라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무책임함과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1988년 1월 하워드의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그 당시 하워드는 스타벅스를 막 인수하여 사세를 한창 확장중에 있었다. 어린시절 저축도 연금도 없는 집안이 어려운 가운데, 그는 아버지가 종사하던 직장에서 아무런 긍지도 만족감도 얻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회사의 우두머리를 생각해 보지는 않았으나 만약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면 그는 '사람'을 가장 중시할 것을 다짐하였다.

 

'하워드 슐츠'의 어머니는 접수원으로 일하면서 장남 하워드 슐츠, 남동생 '마이클', 누이 '로니' 등 세자녀를 열심히 키웠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머니의 꿈은 세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내는 것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예를 들어가며 꿈은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용기를 주었으며 도전정신과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처하는 용기도 주었다. 하워드 슐츠는 야구,농구,미식축구 등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으며 운좋게도 타고난 재질이 있었다. 세 아이중 맏이인 '하워즈 슐츠'는 빨리 성장하여 돈을 벌어야 했다. 가난한 빈민촌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모멸감도 많이 느꼈다. 열두 살 때는 신문을 돌리기고 하고 근처 간이식당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열여섯 살 때에는 맨해턴의 의류 구역이 있는 한 모피상에서 피혁 펴는 일을 했는데, 양손 엄지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배길 정도로 지독한 일이었다. 편물 공장의 스웨터 가게에서 방사를 스팀으로 다리며 뜨거운 여름을 보내기도 하였다.

 

'하워드 슐츠'는 빈민가를 탈출하는 길은 스포츠를 통하는 길 뿐이라고 생각하고 공부는 소홀히 하였으나 미식축구에는 심취하여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근방의 경기장에서 자주 경기를 하였다. 그는 '쿼트 백'으로 '카나지' 고등학교에서 '빅맨'으로 불렸다. '하워즈 슐츠'는 원정경기를 많이 다니면서 실력을 쌓아갔다. 어느날 '미시건' 대학교에서 선수 선발을 하려 온 코치가 슐츠의 경기 모습을 보고 미시건대 미식축구팀으로 선발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우연히도 하워드 슐츠가 미시건대에 입학한 날 시애틀에 스타벅스가 처음 설립되었다. 그는 1학년때 친구들과 즐거이 지내면서 넓은 대학 캠퍼스와 자유를 마음껏 사랑했다. 선수생활은 본인이 원한 만큼 되지 못해 중도에 그만두게 되었으며 대신 학업에 전념하였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였으며 4학년 졸업후에는 무었을 할 것인가에 고민에 빠져 잠을 설치는 날도 많았다.

 

1975년 대학을 졸업한 하워드 슐츠는 뉴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근처 스키장에서 일하면서 미시건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으나 특별한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1년후에 뉴욕으로 가서 '제록스'사에 취직하여 '제록스' 교육기관에서 세일즈 교육을 받았다. 세일즈 교육을 받으면서 비지니스에 대해서 대학에서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으며, 마케팅 프리젠테이션 기법과 건강한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교육 이수후 매일 50통의 잠재고객에게 전화영업을 하면서 6개월을 보낸후, '워드 프로세스'를 세일즈 하는 일에 직접 나섰다. 맨하탄 패션거리와 중심가 한가운데 수많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상대방의 거절에 대한 빠른 상황판단,임기응변을 배우고 냉담한 반응에 대한 인내도 배웠다. 얼굴은 두껍게 되었고 세일즈 어법도 배웠다.'워드 프로세스'를 파는 일은 매혹적이었으며, 유머감각과 모험심을 계속 배워 나갔다. 그는 최고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였을뿐만 아니라 주목받기를 갈망하면서 모든 어려움을 잘 극복하였고 세일즈맨으로 모범을 보였다. 항상 유니폼을 입고 세일즈 판매를 하였는데 얼마후에는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수료 수입을 올리는 최고가 되었다. 3년 동안 대학 학비 융자금도 다 갚았고 조그만 아파트도 하나 장만하였다, 그해 여름 그는 친구들과 같이 별장이 있는 해변가에 휴가를 보내던중 친구들과 여름 휴가를 즐기려 온 '세리 커시'를 대학원생 아가씨를 만났다. 그는 아름다운 그녀에게 매혹되었으며 단아하고 순수한 그녀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대학원생이었다.

 

1979년 하워드 슐츠는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의 친구 소개로 가정용 가구전문 회사인 '퍼스토프'란 스웨덴 회사가 미국에 자회사를 설립하려 한다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것은 성장하는 회사에서 더불어 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시원 모집에 지원했으며 그들은 '하워즈 슐츠'를 채용하여 스웨덴으로 3개월간 교육연수를 보냈다. 그동안 '하워즈 슐츠'는 북유럽을 여러지역을 둘러보며 고풍스런 문화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유럽 생활을 만끽 할 수 있었다. 귀국한 '하워즈 슐츠'에게 미국지사인 '해마플라스트'에서는 하워드 슐츠를 북케롤라이나로 배치하여 건축용 자재를 파는 업무에 배치했다. 하워드 슐츠는 비젼없는 회사 업무에 환멸을 느끼고 그해 10개월을 근무후 고민하다가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하워드 슐츠를 설득하여 뉴욕으로 발령하였으며 미국지역 부사장이자 총 매니저로 승진시켰다. 약 20개의 독립 외판부를 관리하는 미국 지사의 책임을 맏게된 것이었다. 년봉 75,000달러에 회사차,판공비,1년에 4차례 스웨덴 방문을 포함한 무한정의 여행권도 제공했다. 하워드 슐츠가 좋아하는 고풍스런 유럽풍의 스웨덴 집기를 판매하였으며 사원들의 동기유발 방법을 알고 있었던 그는 세일즈 방법을 전수하고 동기를 유발하여 금방 판매고가 증가하였다. 3년동안 근무하면서 28살의 하워드 슐츠는 세리와 같이 맨하튼의 고급 주택가들이 모여 있는 '이스트 사이드'에 멋진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  세리는 멋진 디자인으로 집안을 장식하였고 주말이면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고 영화감상을 즐기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진 저녁도 하면서 꿈 같은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바다의 마녀 `사이렌`이 그려진 스타벅스 로고

 

하워드 슐츠의 어머님은 6년만에 성공한 아들이 믿을 수가 없었다.어머님이 바라던 수준 이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아마 만족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슐츠는 무언가 안전부절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자기가 진정으로 바라던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중 하워드 슐츠는 우연히 '스타벅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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