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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로마인 이야기 4

 

제1권 요약(끝)

 

로마인 이야기 4

 

*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의 대결

 

타랜툼(오늘날 타란토) 앞바다에 10척의 로마 함선이 나타났다. 그당시 로마도 소규모지만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타렌툼 항구로 피항하여 들어왔다. 서로의 세력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협약에 의거 타렌툼은 로마 함선이 세력권 경계선을 침략한 것으로 간주하여 5척을 격침시키고 승무원들은 살해되었으며 나머지 5척은 겨우 달아날 수 있었다.

 

로마는 자국의 함선이 항구에 들어간 것은 침략행위가 아니라면서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타렌툼은 사절을 조롱하면서 쫓아냈다. 이에 로마는 전쟁을 결의하였으나 원로원에서는 손해배상을 받는 쪽으로 마무리 짖자는 의원들도 다수 있어 군대는 당장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타렌툼은 로마에 비하여 긴장하여 북부 그리스 에페로이스왕 피로소에게 용병을 요청하게 된다. 당시 알렉산드대왕이 33세 나이로 대업을 이루고 요절한지 채 40년도 지나지 않아 알렉산드대왕에 대한 증후군이 남아 있을 시기였다. 타렌토의 사자를 맞이한 피로소왕은 타렌툼에서 준비하겠다고 한 37만명의 군대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고 로마라는 미지의 국가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탈리아 지도

 

* 병법의 천재 피로소왕

 

피로소는 자신의 군대 2만 8천여명을 이끌고 배로 타렌툼으로 향하였다. 이동 중 태풍으로 2천명의 병사와 코끼리 두마리를 잃고 도착한 타렌툼은 임전태세의 분위기는 전혀 없고 시민들은 야외 극장이나 체육관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면서 보내고 있었다. 타렌툼이 약속한 병력 37만명의 그림자를 찿을 수가 없었다. 화가난 피로소는 당장 야외극장과 체육관을 닫도록 하자 시민들은 고용된 용병이 별 간섭을 다한다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하였다.

 

로마가 두려워한 것은 37만명의 용병과 피로소의 결합이었다. 로마군은 조급하게군단을 구성하여 타렌툼 근교 해변평원인 헤라클레아에 진을 쳤다. 피로소왕도 자신의 군대 2만 6천500명의 보병,기병과 코끼리 18마리를 로마군에 대치하고 진을 쳤다. 로마의 집정관 레비우스가 이끄는 로마 연합군은 로마군 8천에 동맹국 병사 1만6천명을 합쳐 2만4천명이었다.

 

  

고대 그리스 도시들

 

BC550년경의 로마, 그리스, 페니키아-카르타고의 영역을 현재 세계지도 위에 나타낸 것. 현재 세계지도와 위치, 넓이 등을 비교하는데 적합. 노란색이 로마, 보라색이 페니키아-카르타고, 빨간색이 그리스의 영역.

고대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식민지 지도. 지중해 식민지와 해상활동. 붉은 점이 페니키아(카르타고도 페니키아의 식민지), 검은 점이 그리스의 식민시.

 

      

 

    

                     그리스군 전투 

 

이 싸움은 기존의 마케도니아 방진대형인 팔랑크스와 신흥세력인 로마의 레기온이 처음으로 격돌한 전투였다. 1차전은 간단하게 피로소 왕의 승리로 끝났다. 코끼리떼가 좌우측에서 로마 기병을 절단내고 후방을 공격하지 로마군은 7000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서로 물러났다. 로마군은 코끼리떼의 공격에 기병이 속수무책이었고 처음보는 코끼리떼에 당황하여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고 패배하였던 것이다. 피로소왕은 로마로 진군하는 동안 로마연합에 가입한 도시국가들이 로마에 등을 돌리기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북상하고 있었으나 소식이 없자 로마에서 60키로까지 진군하던 피로소왕은 로마시민 무산자 계급까지 소집되어 로마방어에 임한다는 소식을 듣자 다시 타렌툼으로 회군하여 바렸다.

 

로마군은 2차전을 아오디우스라는 곳을 선택했다. 이곳은 산지자락의 비탈면으로 코끼리의 종횡무진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로마군은 두 집정관 예하 4만명의 병력으로 피로소 왕의 약 4만명의 군대와 마주보고 진을 첬다. 피로소 왕은  지형은 양쪽에 숲이 바짝 다가와 있어 지형에 맞추어 전술을 바꾸었다. 첯 날 전투는 무승부, 이튼날 피로소 왕은 좀더 평탄한 지형으로 로마군을 서서히 끌어냈다. 로마군은 자신들이 끌려가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고 피로소는 평지에 다다르자 전술을 바꾸어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집정관 한 명이 전사하고 6천여 명이 전사하였고 피로소왕도 자신이 대려온 정예 병력 3천여 명의 전사자를 기록하였다. 패퇴하는 로마군을 보면서 피로소 왕도 자신이 대려온 병사들이 줄어드는데 불안감을 갖고 타렌툼으로 회군하였다. 타렌툼으로 돌아온 피로소 왕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도시국가에서 찿아 온 사절을 만나 지원을 요청 받는다. 로마군과의 싸움에서 싫증을 느낀 피로소 왕은 일부 병력을 데리고 시칠리아로 건너가서 그리스 식민지 도시국가들 사이에 벌어진 세력 다툼에 3년 동안 그곳에서 허송 세월을 보낸 뒤에야 실망하고 다시 타렌툼으로 돌아왔다.

 

기원전 275년 여름. 피로소왕은 로마와의 전투에 운을 걸어보기로 하고 2개 군단이 진을 치고 있는 말벤툼(오늘날 베네밴토)에 있는 로마군을 공격하였다. 로마군은 피로소왕이 시칠리아에 체류한 3년 동안 다시 군대를 준비하여 4개 군단으로 2개 군단씩 각각 신임 집정관이 맡아 두 군데서 피로소 왕과 대치하기 위하여 이동중이었는 데 두 개의 로마군이 집결하기 전에 그 중 말벤툼에 있는 로마군 2개 군단을 먼저 공격하였던 것이다. 피로소는 야간 행군을 하여 여명에 기습적으로 로마군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행군 속도가 늦어 아침에야 말벤툼 로마진영 전방에 겨우 도착하자마자 로마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로마군도 피로소 왕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대기하고 있던 중 피로소군과 접전이 시작되었다. 쉽사리 결말이 나지 않은 전투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피로소 왕을 불안하게 하였는데 나머지 2개의 로마군이 언제 현장에 도착하여 협공하게 될지를 알 수 없어 재빨리 군대로 하여금 전선을 이탈하여 타렌툼으로 회군하여 버렸다. 타렌툼에 도착한 피로소 왕은 군선에 전병력을 태우고 그리스로 복귀하여 버렸다. 로마군은 피로소가 떠난 타렘툼을 무차별 공격으로 점령하고 유력자를 모두 처형하고 제6동맹국으로 만들었다. 약속을 저버린 배신자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동맹국과는 달리 자치권도 주지 않고 속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로써 로마는 반도 남쪽 메시나 해협에서 북쪽 루비콘 강까지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일하게 되며 기원전 753년에 건국된 이래 무려 500년이란 긴 세월이 걸린 역사였다.(제1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