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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철호칼럼]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중앙일보 2006-08-02 06:29]    
[중앙일보 이철호]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벌써 핵심 인물에 대한 구속영장이 네 번이나 기각당했다.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양파 껍질을 까는 느낌"이라고 한다. 실체를 종잡기 어려워지면서 수사 방향도 매각 과정에서 정책 판단 오류를 따지는 데 집중하는 느낌이다.
 

요즘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약아빠졌다. 미국 뉴욕에서 경영결정을 내리지만 법적 형식을 갖추기 위해 조세회피지역인 케이먼군도나 라부안까지 날아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꼬투리를 잡히면 비행기 티켓이나 그곳 호텔에 머물렀다는 영수증까지 친절하게 첨부해 결백을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감독을 피하기 위해 손발까지 자른다. 론스타와 뉴브리지캐피털은 외환은행과 제일은행의 미국 지점들을 폐쇄했다.

 

핵심 인물인 론스타 코리아 전 대표인 스티븐 리의 국내 소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검은 "젊은 친구가 언제까지 도피하겠느냐"며 한 자락 기대를 걸고 있지만 자진 입국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동안 검찰이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할 때마다 미국은 난색을 표했다. 미국은 거꾸로 "미국 금융관련법을 어기고 한국으로 도피한 혐의자들부터 먼저 넘겨달라"고 요구하기 일쑤였다.

 

이제 이쯤에서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따져볼 때가 된 듯싶다. 거액의 차익을 챙기고 튀는 외국 사모펀드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그들이 내건 '선진금융기법'도 따지고 보면 보잘것없었다. 직원들을 마구 자르고, 위험부담이 낮은 주택담보 대출에만 열을 올렸다. 비싼 값에 팔기 위해 빼어난 '실적 화장(化粧)' 기법도 자랑했다. 뒤집어 보면 그들의 동물적 감각이 부러울 뿐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먹잇감을 골라내 과감한 베팅을 통해 순식간에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물론 매겨야할 세금이 있다면 당연히 과세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분풀이식 몰매는 삼가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우리가 얻은 이익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외환은행이 버티고 있었기에 하이닉스.현대건설 등이 부활할 수 있었다. 론스타가 하이닉스를 미국 마이크론에 팔아넘기자고 우겼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 그나마 알짜 제조업을 지켜낸 사실을 위안 삼아야, 쓰린 속도 편해진다.

 

일본 역시 장기불황에서 벗어나면서 외국 사모펀드들이 대박을 챙기고 튀는 일이 빈번하다. 론스타는 도쿄스타은행을 인수해 5년도 안 돼 투자원금의 6배인 약 2500억 엔(약 2조125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리플우드 컨소시엄은 지난해 신세이(新星)은행을 인수해 5배의 이익을 챙겼다. 외국투기자본들은 러브호텔.골프장.빌딩까지 닥치는 대로 사들여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국민 감정도 좋을 리 없다. 그래서 정부 차원의 특별팀까지 구성해 불법행위를 추적했다. 씨티은행은 프라이빗뱅킹 업무가 정지당했고, 론스타는 1400억원의 세금을 얻어맞았다. 그래도 일본은 끝까지 감정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았다. 한때 외국인 회사의 주식매각 이익에 20% 과세를 검토했지만 "너무 편파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스스로 칼을 거둬들였다.

 

아무리 서운해도 이별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한다. 일본은 비록 원수지간에도 장례식엔 꼭 참석해 예의를 갖춘다. 상대방이 서먹하게 떠나도 반드시 '사요나라 식사'를 대접하는 게 불문율이다. 요즘 국제 투기자본들은 인도.중국.러시아에 거침없이 달려들고 있다. 돈이 될 만한 곳이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그들의 생리다. 우리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당장의 한풀이보다 그들에게 달콤한 '성공의 기억'을 남겨두는 게 길게 보면 남는 장사일지 모른다. 국제금융시장에 "서울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간 돈도 잃고 인심마저 잃지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