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문창극]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을 분수가 없다고 한다. 분수없는 행동을 하면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나라도 똑같다. 처한 상황을 모르고 걸맞지 않은 일을 벌이거나 엉뚱한 일을 하면 분수를 모르는 나라가 된다. 작은 나라가 분수가 없으면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다. 작은 나라일수록 지혜롭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다.
미사일 사태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이 나라가 바로 그런 나라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자기 신세 모르고 남 걱정해 주는 사람을 푼수라고 한다.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인데 우리는 태평하고 오히려 미국.일본에 거기를 향해 쏜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신 변명을 해 준다. 주위에서 인정을 안 하는데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도 분수를 모르는 행동이다. 이 정부는 마치 자기들이 전쟁을 막느라 애를 쓰는 듯이 행동한다.
한반도는 국제정치의 역학 관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한반도 내 힘의 관계에서 한국은 그 일부분만을 반영할 수 있을 뿐이다. 전쟁 방지 여부도 국제정세에 달렸다. 그러니 국제관계에 세심해야 한다. 자기편이 될 주변국 심정은 긁어 놓고 국제공조를 외치니 처지를 모르는 푼수 같다. 남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도를 넘는 후의는 오히려 푼수 소리를 듣거나 의심을 산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주고 좋은 일을 하면 상을 주는 것이 정상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으면 거기에 대해 엄중한 대응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제재에 나선다는데 개성공단, 금강산 사업은 예외라며 현찰을 못 주어 안달이다.
분수없는 사람은 주변에서 같이 놀아 주지를 않는다. 한국은 이미 왕따가 되기 시작했다. 미.중.일이 유엔결의안을 낼 때 우리는 완전히 소외됐다. 미사일 발사 때 미.일과 어느 수준의 정보를 공유했는지도 의문이다. 북한조차 우리를 왕따시키고 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큰소리치고 있다. 이산가족 면회를 취소하고 금강산 근로자들을 쫓아내고… 아쉬운 쪽이 큰소리를 치니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 왕따가 되어 가니 기댈 데가 중국뿐이라고 생각했던지 대통령이 중국에 전화를 걸었다. 미국이 따돌리는 한국을 중국이 귀하게 여길 리 없다. 한국 뒤에 미국이 있을 때 그나마 대접받은 것이지 이제 한국을 100년 전 조선 말쯤으로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조그만 나라이고 국제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나라다. 솔직히 미국과 일본을 떠나서 우리 경제가 며칠이나 견딜 수 있겠는가. 우리 군사력과 정보력은 어떤가. 우리가 일본을 이길 만큼 실력이 있나.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국방비를 쓰는 나라다. 독도에서 해전이 난다면 우리 해군력으로는 몇 시간도 못 버틴다. 공연히 반일감정 들쑤셔 국민을 속이지 말라. 일본의 고이즈미를 보라. 그도 국내정치에서 튀는 것으로 치면 한국 대통령 버금간다. 그런 그가 왜 미국에는 순한 양인가. 힘이 움직이는 국제정치를 알기 때문이다. 비굴해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처지를 바로 알고 바로 대응하라는 말이다.
상식을 따르고 원칙을 지키면 된다. 한.미.일 공조가 상식이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그렇다. 무력위협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 것이 외교의 원칙이다. 무력위협에 대한 타협은 종속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의 위협에 타협했다. 그는 평화를 얻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를 보라. 큰 착각이었다. 전쟁으로 협박하면 전쟁을 각오해야 전쟁이 막아진다. 북쪽의 무력위협에 굴복한다면 독재의 힘에 굴복해 사는 북한 주민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국제사회의 룰을 따르는 것이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민족끼리'라는 이름 아래 유엔 결정까지도 요리조리 피하려 하지 말라.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나라로 인정받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도와줄 나라가 많이 생긴다.
분수를 모르는 이 나라는 잘못돼 가고 있다. 울타리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이를 허무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가. 애국가처럼 '하느님의 보우'만을 기다린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