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가고 오는 세월이여!

가고 오는 세월이여!

 

 

 


                                  대성리 북한강의 아침 풍경
 

 

어느듯 해가 저물고 있다. 하루가 삼추같다지만 한해가 삼추같이 지나간다.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꽃망을이 솟아나던 날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다. '벽에 걸린 고장난 시계는 멈추었는데, 세월이란 시계는 멈추지를 않네'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만 가고 잇다.

 

한해 동안 별로 이룬 것도 없고 성취한 것 없다. 그냥 매일 자전거나 타고 세 끼 밥 먹고 잠 자고 인터넷 하고 한잔하고 자식과 손주들 틈 사이에서 고민도 하고 걱정도 해보지만 모든게 살아 있을 동안의 세상사에 불과하다. 후일 내가 죽고나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과 가치가 있을 것인가.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을 다해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효를 강조하는 유교 이상 사회를 추구했다지만, 그것은 명분에 불과하고 오로지 양반 사대부들만 여러 처첩을 거느리고 노동을 등한시하고 실리를 멀리하며 명분과 이상만 강조하면서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양반 사대부들이 추구한 유교 이상 사회였다. 이처럼 일부 지배층만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노동자.농민이 지배하는 천국을 만드려는 공산주의 일당독재나, 집권층 김일성 일당이 지배하는 북한 시회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모두가 허구, 선전, 위선을 앞세운 이상 사회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모든 것들도 가치를 상실하고 오로지 자본이라는 재물이 최우선시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나도 어린 시절 명절이면 어머니께서는 종일 각종 음식을 만들고 저녁이면 친척들과 밤을 지새며 보내고 다음날 아침 명절날에는 아버님께서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병풍을 두르고 한지에 무슨 글을 써서 붙여놓고 제사상을 차린다. 향을 피우고 문을 연다. 음식을 차린다 홍동백서? 붉은 색깔의 음식은 동쪽, 흰색깔 음식은 서쪽이라는 말이다. 어느 정도 차려지면 술을 각각 올리고 난 다음 모두 같이 두번 절을 한다. 그러는 사이 아버님께서는 무언가 주문을 외운다. 아마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가정의 평화와 건강, 소원성취가 이루어지도록 기원하고 부디 극락왕생허시라고 주문한 것일 게다. 또 술을 따르고 밥숟갈을 꼿고, 절을 두번 하고 귀신이 식사할 동안 잠시 쉬었다가, 냉수를 올리고 숫갈을 냉수에 담그고 냉수에 남겨진 밥을 먹으면 부스럼이 없어진다고 했다. 

 

죽은 다음 자식에게 제사밥을 얻어먹지 못할까봐 조상에 대한 극진한 '효' 사상을 강조했다. 조상을 숭배하고 고마움을 잊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조상 숭배도 이젠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유교에는 3년 동안 자식은 묘지 옆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효를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때마다 제사를 올리고 차레를 지낸다. 조상의 은덕을 잊지 않도록 자녀들에게 족보를 만들어 교육도 시킨다. 그래서 이 나라 산천에는 종기처럼 무수한 묘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묘지로 인해 자연이 회손되고 개발이 제한 받고 소유권을 제대로 행사하기도 까다롭다. 늦게 출세한 인간들일수록 우선 조상묘를 거창하게 만든다. 조상묘 위치를 잘 잡어서 소위 명당이라 복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인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을 신봉한다.

 

 

 

 

 

 

이기적인 인간의 광기와 충성, 애국이라는 미명아래 일으킨 전쟁은 민간인을 포함 수많은 젊은 남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수많은 목숨의 희생은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과 평화'의 반복이라는 의미 속에 녹아 사라져버린 물거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5천 년 역사이래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트로트 노래가 온 나라 구석구석에 흘러넘치고 방송마다 먹방이 대세고, 캠핑카를 몰고 경치좋은 곳에서 가족이 오손도손 밤하늘의 별을 보며 즐기는 모습, 문화를 즐기고 스포츠를 즐기고 여행을 즐기는 시대, 바로 우리들의 행복한 모습이다. 우리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며 노래부르고 즐기는 평화로운 이 시대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즘 급속도로 확산되는 코로나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행복이 영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언제 다시 어둠의 시대가 몰아쳐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다.

 

화살같이 빠르게 한 해가 또 지나간다. 인류 역사가 흘러온 순간순간마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어느 시대나 위기와 시련이 없었던 시대는 없다. 대제국을 건설하고 눈부신 문명을 꽃피웠다 해도 그 흔적은 세월이 흐르면서 소리없이 사라져갔다. 그 찬란했던 그리스 - 로마 제국의 문명이 지금은 그 흔적조차 희미하게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일군 문명의 명맥이 그래도 오늘날 인류가 살아가는 문명의 원천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미개하던 게르만족이 후세에 인류 역사를 주름잡았지만 반면, 대제국 몽골의 문명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찿기 힘들다.

 

올해도 사람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살아남고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지내왔다. 그러면서 세월은 흘러가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영웅이 되고 이름을 남기면 후세인들이 기억한다고 모두가 영웅이 되고 싶어하고 이름을 남기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위업을 달성하지 못한 민초 나 개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인간의 삶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 자신이 살아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역사란 개인에게는 모두가 지나간 허망한 옛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아래는 한해 동안 이 나리 모습을 평가하는 최근 사설을 몇 개 인용한 내용들이다. 참고하시라~~

 

"문재인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으로 다시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스쳐 지나간다. 정치의 본질을 오독(誤讀)했다. 정치인은 저 거룩한 곳의 정의와 윤리를 추구하는 성직자가 아니다. 정치는 모순과 혼돈의 흙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의 온몸을 더럽히는 일이다. 그래서 함께 더 나은 세상으로 힘들게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하는 실존적 구원(救援) 행위다.

정치인의 무기인 권력은 타인을 내 의도대로 움직이는 폭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만 용서받는다. 유능한 인재와 손잡고 반대자의 이야기를 필사적으로 들어야 하는 이유다. 악마와도 거래해야 한다.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은 이런 고행(苦行)을 거부한다. 그러니 정치를 잘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 나라 대통령 권력의 작동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비무장의 국민이 북한군에게 총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졌는데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인쇄물 편지로 위로한다고 분노와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다.

불법과 비리에 연루된 청와대 참모가 셀 수 없을 정도다. 라임 실소유주 김봉현은 문자메시지에서 “민정수석, 정무수석 라인을 타고 있다”고 했다. 진중권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패한 곳은 청와대”라고 개탄했다. 대통령은 마치 자신과는 무관한 듯이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최측근과 친인척의 탈선을 방지하는 특별감찰관을 3년이 넘도록 공석으로 방치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비현실적 임대차법은 전세대란을 불렀다.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피해자가 되자 “홍남기가 홍남기를 잡았다”는 조롱이 나온다. 탈원전 감사를 하고 있는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렇게 저항이 심한 감사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도처에서 난리판이 벌어지고 있다. 뭔가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다산(茶山) 정약용이다. “다산은 인간이 선한 본성만 지키면 만 가지 일이 모두 해결된다는 성리학적 사고를 거부하고 (중략) 행동으로 옮겨야만 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실천철학이다.”( ‘문재인의 서재’ 푸른 영토)

무능한 참모와 관료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실정(失政)과 부패가 도를 넘었다. 문 대통령은 추상적 이념의 울타리를 걷어차고 현안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다산의 애민(愛民)을 실천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진영을 불문하고 유능한 인재를 기용해야 한다. 절대권력을 잡았으니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저주라는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권력과 돈은 남녀 관계와도 같다. 부도덕한 정치가 바람난 돈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정권마다 ‘게이트’로 불리는 불륜극이 끊이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한보 게이트’, 김대중 정부는 ‘3대 게이트’로 대통령 아들까지 줄줄이 엮이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영포 게이트’를 겪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져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최순실 게이트’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느 정권도 게이트의 비극을 피해갈 만큼 절제심이 강하지 못했다.

 

 

그리고 문 정부가 들어섰다. 임기 절반을 돌 무렵 경제 관료 출신의 친문 인사 Y씨가 수뢰 혐의로 구속됐다. 문 정권의 도덕성을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전화위복이 될지 모른다는 말이 당시 돌았다. 금융 전문가인 Y씨는 문대통령을 ‘형’이라 부를 정도로 친문들과 막역했다. 실세들이 구명 운동을 벌일 만큼 서열도 높았다. 한마디로 권력과 돈의 중개자 역할을 할 적임자였다. 만약 게이트가 터진다면 연결 고리는 그일 것이란 말이 무성했었다. 그런 인물이 축출됐으니 게이트의 잠재적 싹이 잘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폭탄이 있었다. 희대의 사모펀드 사기극 두 건이 연달아 터지고 말았다. 펀드 사태는 DJ 정부의 ‘3대 게이트’와 여러모로 유사했다. 금융 사기라는 구조부터 판박이였다. 20년 전 ‘진승현·이용호·정현준 게이트’는 전형적인 금융·주식 게이트였다. 신용금고 대출과 전환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불법 조성해 주가조작 등에 굴렸다. 이번에도 사기꾼들은 은행·증권사를 통해 판매한 펀드 자금을 빼돌린 뒤 기업투자·인수 등에 썼다. 대출이냐, 펀드냐의 차이뿐이었다.

특정 지역과 학교 인맥으로 얽힌 것도 공통적이었다. ‘3대 게이트’의 주축이 호남·K대 출신이었다면, 펀드 사태는 호남과 H대 인맥이 뼈대를 이뤘다. ‘3대 게이트’는 대통령 아들과 권력 실세, 국정원·금감원·국세청 등이 전방위로 엮인 정·관·업(政官業) 복합 스캔들이었다. 이번에도 정치권과 청와대·금감원 등이 광범위하게 연루됐다는 혐의가 쏟아지고 있다. 20년 전 권력 게이트와 놀랄 만큼 유사한 구조로 전개되고 있다.

펀드 사태는 결코 단순 사기일 수 없다. 금융 논리와 자본시장 시스템상으론 그런 사기극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조6000억원을 날린 라임펀드의 부도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금감원은 미온적 조사로 미적거리면서 사기꾼들이 로비하고 도피할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7개월이나 끌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 뒤에야 검찰에 고발했다. 금감원 검사가 진행되던 와중에도 전주(錢主)는 190억원을 빼돌려 도주할 수 있었다. 든든한 뒷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5000억원이 구멍난 옵티머스펀드는 상품 설계 자체가 허구였다. 펀드가 투자 대상으로 내건 ‘공공기관 매출 채권’이란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엉터리임을 알 수 있지만 놀랍게도 그 까다롭다는 은행·증권사의 심사 절차를 손쉽게 통과하는 기적이 벌어졌다. 농협 계열 증권사는 펀드 측 제안을 받고 불과 사흘 만에 판매를 결정했다. 펀드 설립자는 검찰의 출국 금지 하루 전날 외국으로 튀고, 대통령 해외 행사에 얼굴까지 내밀었다. 이게 ‘빽’ 없이 가능한 일인가.

아니나 다를까, 정·관계 인사들 이름이 줄줄이 튀어 나오고 있다.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5000만원 수수설이 불거졌고, 민주당 중진 의원, 여권의 대선 주자, 전·현직 검사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직 부총리와 검찰총장은 사기펀드의 자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범 중 하나는 문재인 대선 캠프의 특보 출신이었고, 그의 아내는 펀드 지분을 보유한 채 청와대에서 근무 중이었다. 주범과 동향인 청와대 행정관은 금감원의 검사 정보를 사기단에 실시간 전달해주고 있었다. 주범이 “민정실도, 금감원도 다 내 사람”이라며 큰소리치고 다닐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냄새가 진동하는 사건은 본 적이 없다. ‘게이트’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다.

단 하나 과거 게이트들과 다른 것은 정권의 뻔뻔함뿐이다. 권력 비호를 시사하는 온갖 정황이 쏟아지는데도 미안해 하는 기색조차 없다. 1년 가까이 쉬쉬하며 수사를 질질 끌더니 사기꾼 입에서 야당과 검사 이름이 나오자 반색하며 ‘윤석열 내쫓기’의 뒤집기 기술에 들어갔다. 검찰마저 정권의 충견(忠犬)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겁날 것도 없을 것이다. 울산 선거 개입이나 추미애 아들 의혹처럼 적당히 꼬리 자르고 덮을 수 있다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정권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권력과 돈의 부도덕한 동거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게이트’의 악취가 하도 진동해 아무리 덮어도 감출 방법이 없다는 것을.

 

 

 

 

 

문재인 대통령은 3년 반 전 취임하면서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고는 장관급 일자리위원회까지 출범시켰다. 그래놓고는 청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재정을 동원한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늘리는 데 급급했을 뿐, 일자리 환경을 제대로 개선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노력을 한 게 없다. 대다수 청년이 “아무래도 중소기업엔 못 가겠다”고 버티면서 중소기업들이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원인은 자명하다.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은 대기업과 엄청나게 벌어져 있는 임금 격차에서 시작된다.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왕성하게 사업을 펼쳐 ‘미래가 밝은 일터’가 되도록 하는 게 근본해법이다. 그러려면 상당수 중소기업과 원·하청 관계에 있는 대기업 종사자들의 양보가 필수적이다. 중소기업 몫을 덜 가져가야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 본질 문제에 눈감는 까닭은 뻔하다. 대기업 노동조합들로 이뤄진 양대 노총의 절대적 지지 속에서 출범했기 때문이다. ‘노동보호’라는 이름 아래 강행한 최저임금 인상, 주휴수당 의무화, 주 52시간 근로제 등은 취약한 중소기업에 날벼락을 안긴 대신 대기업 노조원들의 지갑을 불려준 조치였음이 분명해진 지 오래다.

‘보호’가 아니라 ‘족쇄’를 채우는 제도와 정책의 파상공세로 인해 중소기업들의 경영 및 채용 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정권 동반자’ 노동기득권 세력에만 귀를 기울여 일자리 생태계를 왜곡하고 망쳐놓은 결과는 사상 최악의 청년 체감실업률(25.4%, 9월 현재)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기업과 청년들을 다 살릴 수 있는 정책에 눈 감고 거꾸로 된 조치만 밀어붙이면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기업과 국민으로부터 거둔 세금을 펑펑 흘려 쓰고 있다. 이런 무책임과 엉터리가 없다.

 

 

 

 

제대로 된 나라는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관례가 있다.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만 예외(例外)였다. 한국에도 자기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임자를 청와대에 초대하고 함께 정원을 산책하던 대통령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전임자들을 청와대에 초대한 적이 없다. 정확히는 초대할 수 없었다. 그들의 현주소가 초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이 자기 뜻으로 제 발로 청와대를 걸어 나오는 데만 40년이 걸렸다. 살아서 나온 대통령도 있지만 죽어서야 나온 대통령도 있었다. 그 후로도 무사한 퇴임 대통령이 한 명도 없었다.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헌법에 자기 지위(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를 새기기도 하고, 열광적(熱狂的) 지지층을 규합하기도 하고, 국회와 수사기관에 심복들을 대량으로 꽂기도 하고, 후계자를 대통령 자리에 앉히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안전은 지키지 못했다. 후계자들은 전임자와의 차별화(差別化)에 더 몸 달아 했다.

한국 대통령에겐 ‘적법한 국정 운영’과 ‘관용의 전례’를 쌓는 방법 이외의 안전책이 없다. 대통령은 ‘내려오는 정치’를 해야 한다. 늦어도 너무 많이 늦었다. 집권당은 지금 국민 앞에서 벌이는 행태가 대통령을 나무 위로 올려 보내고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은 올라가기보다 내려오기가 몇 십 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