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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산다는 게 무언지......6

산다는 게 무언지......6

 


왕숙천 갈대 모습

 

 

긴 여름 장마가 50일이 넘도록 지속되더니 뒤이어 태풍도 두 개나 한반도를 할퀴며 지나갔다. 많은 재물을 손상시키고 농작물이 피해를 입어 이번 추석 물가도 오를 전망이다. 인터넷이나 휴대폰에 예고된 날씨 예보는 이제 볼 가치도 없어 보인다. 흐리거나 맑다는 날씨 예보는 어김없이 빗나가기 일쑤, 비구름이 시도때도 없이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장마철에 제대로 못한 주행을 하느라 왕숙천을 주로 왕복하고 있다. 왕숙천 갈대밭에는 홍수에 떠내려온 각종 쓰레기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흉물처럼 붙어 바람에 너풀거리고 있다. 하얀 비닐 쓰레기가 나뭇가지 여기저기 걸려 있어 멀리서 언뜻보면 마치 흰두루미들이 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부슬비가 비가 내려도 낚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냄새나는 하천변에 앉아 낚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낚시는 번거로운 일상을 잊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시간 보내기에는 적격이기에 , 그리고 펄떡거리며 끌려오는 물고기의 힘찬 파동이 팔에 느껴지는 순간 모든 것을 잊고 황홀한 세계로 뻐져들기 때문에 낚시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또 바둑, 장기, 당구, 화투, 경마, 경정처럼 내기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이처럼 인간은 무언가 즐기기에 심취하여 인생의 시간 대부분 보내는 것 같다. 

 

 




멀리 의암댐이 보인다

 

 

장마, 폭우와 태풍의 후유증

지난 9월 13일에는 모처럼 장거리를 주행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태풍과 폭우가 내렸지만 어느 정도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남춘천역에서 해장국집을 검색하여 찿아갔더니 골목마다 아직 문을 연 집이 없다. 그래서 바로 소양강 방향으로 출발했다. 공지천을 지나 조금 가다가보면 이디오피아 찿집이 나타난다. 굳이 이 찿집을 지나는 이유는 지난 젊은 시절 저 찿집에서 미팅을 한 적이 있는 춘천교대 여학생이 생각나서다. 나를 만나 고생하는 것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찿집 주변에 그래도 조금 남아 있는 듯한 훈훈했던 공기를 맛보고 호반 산책로에 들어서니 산책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의암호 둘레길을 지나 전적비가 즐비한 길에서 바라보면 소양강 처녀상이 말없이 묵묵히 호수 위에 서 있디. 봉화산 근방 사거리에서 소양 제2교를 지나면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자전거족은 거의 보이지 않고 베추 무우밭에는 싱그러운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나무다리를 지날 때까지 자전거족이 보이지 않다가 화천가는 국도변을 지나기 시작하자 자전거족들이 나타난다. 의암호 나무다리 위에서 멀리 보이는 의암댐을 배경으로 사진도 몇 장 찍고 흙탕물을 토해내는 의암댐를 지나면서 지난번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는 애마를 타고 강촌으로 향하고 있었다. 

 

댐을 지나 내려가는데 비탈면에는 아직 토사가 자전거 도로를 덮고 있고 옆으로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아직 완전복구에는 손을 쓸 여력이 없는 모양이다. 소리없이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 물은 아직 흙탕물이다. 몇 개 수문에는 흙탕물을 쏟아내고 있고 저 폭포같은 세찬 물에 휩쓸려 뜨내려간 사고자 시신 중 아직 한 사람은 시신을 찿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번에 유가족이 수색을 그만 중단해달라고 부탁하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눈물겹다. 아직도 작업을 지시한 사람이 없어 수사중이라고 한다. 지난번 사고로 여럿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렸고 책임질 사람이 없다니 기가찬다. 

 

자전거 도로 곳곳에는 난간이 무너지고 쓰레기가 걸려 있고 도로도 붕괴된 곳도 드러 보인다. 어슬픈 철제 울타리 가람막은 대부분 쓰러지거나 휘어져 있다. 하천변 나무가지에는 각종 쓰레기가 흉물이 되어 매달려 있고 건너편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촌을 지나 가평으로 오는데 하천가를 달리는 도로도 파이고 옆에는 지난 폭우로 떠내려온 각종 도로 표지판 등 부유물들이 여기저기 나딩굴고 있거나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자전거 도로도 물에 잠겼는데 나무 다리 일부는 군데군데 파괴되었고 난간대도 부셔지고 안내판은 대부분 쓰러지거나 휘어져 있다. 

 

가평을 지나 청평으로 향했는데, 가평역을 지나면 바로 대규모 도로 및 하천 개선 공사로 인해 자전거 도로가 파해쳐져 있어 통행에 어려움을 겪었고 구간도 1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다. 이리저리 물고인 도로 웅덩이를 피하면서 겨우 공사 구간을 지났다. 공사 구간에 자전거 통행을 위한 우회 도로는 전혀 만들어져 있지 않다. 이런 상태라면 춘천으로 향하는 자전거족들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가뜩이나 평일 자전거 지하철 탑승 금지를 시행하자 자전거족들의 춘천 방문이 줄어 춘천 시내 매출이 줄어들어 춘천시에서 반발하였다지만 철도청에서는 사고를 이유로 계속 탑승을 금지하고 있다. 어저께 뉴스에 서울 7호선을 평일 자전거 탑승을 9~10월 두 달 동안 시범적으로 시행한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서울시 따릉이 등 시민들의 자전거 이용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라 한다. 

 

공사 구간을 지난 이후 청평까지 도로는 그런대로 정상 주행이 가능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주행했다. 첲평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의암호 전경

 

 

청평역에 도착하여 커피 자판기를 찿았다. 동전이 없어서 커피 자판기를 자세히 보니 카도로도 되도록 되어 있다. 교통카드를 인식기에 대고 해당 커피를 누르면 결재가 되면서 커피가 나왔다. 새로 나온 자판기에는 대부분 이런 카드 사용이 가능토록 하는 인식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동전이나 천 원짜리를 준비하지 않아도 카드로 사용이 가능하여 편리한 것 같다.

 

청평 시내를 지나 청평댐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여러 군데 진흙이 자전거 도로에 아직 그대로 깔려 있고 급하게 자전거 도로에 메워진 진흙을 치우기는 했으나 아직 완전히 정리가 되지 못한 상태다. 주변에는 파손된 도로도 드러보인다. 진흙탕 길 옆을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야 했고 반대편 사람과 교행하려면 기다려야 했다. 

 

진흙탕길을 지나 댐 아래 쪽 개활지부터는 도로가 정상 상태였다. 개활지 끝에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서 진흙이 묻은 신발과 자전거를 닦고 있는데 서울 쪽에서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온다. 아마 진흙탕 길에서는 끌고 가야 할 것이고 신발도 자전거도 진흙범벅이 될 것이다. 예쁜 옷을 입은 여성 자전거족과 같이 신나게 달려온 젊은이들이 도로 상태를 보면 당분간 다시 이곳을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후 대성리로 오는 자전거 도로는 큰 문제없이 주행이 가능했다.

 

 

 

삼악산 입구

 

 

아직 해당 지자체에서 자전거 도로 보수에 전력을 쏟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곳에 너무 피해가 많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앞으로 2~3주 안에는 자전거 도로도 정비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언제 정상으로 정비가 될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동안 춘천행 주행은 중단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래서 당분간 왕숙천 왕복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난번에는 잠실까지 주행했고 왕복 60킬로미터거리다. 다음에는 잠수교를 돌아오는 길을 달려볼 예정이다. 아니면 깔닥고개를 지나 도농- 팔당 - 북한강 철교 - 금남리 - 새터 - 마석 - 호평동으로 돌아오는 남양주 순환도로, 아니면 구리-하남대교를 지나 한강 남쪽 길을 선택하여 팔당대교를 지나 팔당 - 북한강 쳘교 - 금남리 - 새터- 마석 - 호평동으로 돌아오는 길도 있다. 이 도로들은 지난 폭우에 피해가 적었던 도로들이기 때문에 주행에 문제는 없는 도로다.

 

 


평내/호평역에서, 춘천행 지하철을 기다리면서......저 멀리 서서히 동녘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카추샤 근무

요즘 법무부 장관 아들 문제가 국회, 여야 간에 최대 이슈로 부각되어 정쟁이 끊일 날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관련자들이 계속 오리발을 내밀고 거짓말로 일관하고 말바꾸기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다. 그들은 양심도, 부끄럼도 없는 철면피 인간들 같다.

 

사실 과거 카츄사 근무 선발 업무는 병무청이나 국방부에서 직접 선발했는지, 아니면 사병 보직을 분류하는 부관 병과에서 실시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금은 육본 인사사령부 주관으로 이관되었고 병무청에서 공개 선발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카추샤 선발 경쟁율은 6~10대 1 정도로 지원자가 몰리고 선발 추첨은 부모, 관련자들이 보는 앞에서 전산 추첨을 한다고 한다. 논산훈련소에서도 신병 훈련을 수료한 신병 분류를 군번순으로 배열하여 전산 추첨한다고 한다. 그래도 예외 규정이 있어 꼭 챙겨야 할 신병이 있다면 실무자는 챙길 수 있다고 한다. 

 

자식을 이 험난한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만드려면 강한 자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 부모들은 약한 자식을 만들기에 급급하고 있다. 그래서 자식의 군대 근무를 수도권이나 국방부, 육본 등지에 배치되어 제대할 때까지 거의 놀면서 편안하게 시간만 보내는 부대를 좋은 부대로 생각한다. 힘들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을 편한 부대, 그런 부대에 자식이 배치되는 것이 부모들이 가장 바라는 희망 사항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 고생은 돈주고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우리 부모들은 자식을 불효자식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편한 젊은 시절은 결국 자식을 탕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고생을 모르고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며 키운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없다. 재벌 자녀들, 고위층 자녀들 대부분이 상대를 존중할 줄 모르며 무시허며 깔보고 거만하고 예의나 메너가 없고 성추문과 마약 등 방탕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고생을 시키지 않고 키웠기 때문이다. 바른 생각을 가진 부모라면 자식을 가장 고생하는 특전사, 해병대 등의 부대로 보내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소양 제2교 모습

 

그래서 과거 부관 병과에서는 육본의 사병 배치와 관련한 자리가 최고의 자리였고, 카츄사 선발 담당 관련자들도 최고의 꽃보직이라고 소문 나 있다. 수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편한 부대로 보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총동원하기 때문이다. 지도층, 고위층, 정치인, 법조계, 경제인, 재벌을 포함하여 현역은 물론 예비역들까지 동원하여 압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관행적으로 진행해오다 90년대 초에는 신병 배치 관련 비리로 부관 병과 장군이 구속되는 부끄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카츄사 부대는 사병 배치보다 더 높은 고위층 자식들만이 근무 가능한 전유물이었다. 선발한다지만 사방에서 들어오는 압력에 자유로울 수가 없다. 실무 당당 관련자들에게는 청와대, 국방부 등 상부에서 압력 전화는 물론, 향응, 뇌물, 선물 등을 제공받으며 카추사 선발에 관여했다. 뉴스를 보면 기록도 없고 증빙 자료도 없고 규정도 없다. 단장 마음대로, 위에서 시키는대로, 카추사 근무 병사는 수시로, 마음대로 외출, 외박 휴가를 나올 수 있는 부대였다. 

 

 

 

의암호 전경

 

 

백과사전을 보면 카츄사에 대한 내용은 이렇다.

 

카투사는 주한미군, 그 중에서도 미 육군의 지휘체계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대한민국 육군의 병과 부사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근무 형태 자체가 매우 특이한데, 미군이 전 세계 각지에 파병을 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국가의 병사가 미군 지휘체계에 편입되어 근무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미군의 지휘체계를 따른다는 것이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육군의 소속으로, 일종의 파견 근무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육군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인사권과 월급 등은 국군 측에서 관리하고 징계나 처벌 또한 국군의 권한 하에 있다. 하지만 근무나 생활은 미 육군과 대한민국 육군 측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며, 미국 육군복을 입고 근무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모든 카투사들은 지역별로 각 지역대에 소속되며, 지역대는 육군본부 예하 육군인사사령부의 직할부대인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에 소속되어 있다. 한국군 지원단은 본래 한미연합사 소속이었으나,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한차례 편입된 이후 육군인사사령부 예하로 다시 편입되었다.

우선 어학성적 심사를 통해 선발되고, 미군과 함께 복무를 하기 때문에 영어를 잘한다는 인식이 있다. 또한 2인실 또는 1인실 생활, 국군에 비해 풍부한 식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출과 외박 등의 이유로 상대적으로 복무가 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100% 맞다고 볼 수는 없는게 영어 실력의 경우, RSO(ROKA Staff Office, 한국군 지원대/반)에 배정받는 병사라면 군생활 내내 영어를 거의 쓰지 않고 전역할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카투사는 미군과 마주하며 영어로 소통할 일이 많아 전역할 때 영어가 늘어서 나오기는 한다. 또한 편하다고는 해도 이들 역시 원치 않는 징집으로 군에 귀속된 병사들이며, 부대나 보직마다 복무환경이 다르므로 카투사 내에서도 업무강도는 제각각이며 카투사에도 육군의 일부 부대보다 힘들게 군생활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국방개혁 2020에 의거 전시작전권 회수에 따라 2012년 한미연합사와 함께 폐지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2009년 6월 존치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후에 전시작전권이 환수된다면 한미연합사와 함께 폐지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전술하였듯 카투사는 한미연합사가 아닌 육군인사사령부 직할부대이며, 한미연합사 창설 이전에 카투사 제도가 있었기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카투사의 규모가 2019년 기준 3,000여 명에서 2020년 2,000여 명 수준으로 꾸준히 감소중이며, 카투사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부대들도 등장하고 있어 카투사 제도의 향방은 미지수이다. 

 

한때 일반인들 또는 타 군인들에게 카츄샤로도 알려졌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영어 발음과 가까운 카투사로 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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