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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산다는 게 무언지......1

산다는 게 무언지......1

 




사능역 근방 주차장에 있는 밤나무.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이 밤나무에는 골프공 크기의 무척 큰 밤이 열린다. 그런데 밤이 생기다만 헛밤송이가 많다. 이번 강풍과 폭우에 밤송이가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도깨비 장마 

 

요즘 폭우가 쏟아지는 긴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남부 지방에 쏟아지던 폭우가 중부 지방을 강타하면서 불어난 강물에 하수구가 역류하여 주택이 침수되고, 많은 농경지가 침수되고, 저수지 제방이 무너져 마을이 휩쓸려 이재민과 사상자가 발생하고, 철도가 산사태로 매몰되어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팬션에서 산사태로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지하차도가 갑자기 침수되어 아까운 목숨을 잃고, 119대원이 강물에 휩쓸려 행방불명이 되는 등 사방에서 비극적인 재난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강풍과 폭우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3주째 연일 비가 내리는 도깨비 장마가 지속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내리는데 기상예보를 보아도 제대로 예보가 맞지 않는다. 기상청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상청이 과거 비싼 기상 장비를 구입하면서 역대 청장들이 비리도 많았고 기상청장이 구속된 적도 있었다. 기상청이 비리의 복마전처럼 구설수에 오르내리더니 이제는 그런 징비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도 없는 모양이다. 뒷돈받고 구입한 장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구 온난화로 기상을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고 장비도 문제고 사람도 문제다. 이런 변덕스런 날씨를 기상 위성도 예측못하는 모양이다. 이상 기후로 요즘은 기상을 예측한다는 자체가 이미 후진적인 사고가 되어 버렸다. 야행성 폭우라는 말이 처음 사용될 정도로 밤이면 기습적인 강풍과 폭우가 창가를 때린다. 

 

 

 

 

그런 바람에 자전거 타기도 여간 애타는 게 아니다. 가다가 비를 만나는 경우도 많고 온다던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 휴대폰으로 기상 예보를 보면 이것은 기상예보가 아니라 실시간 기상중계 정도에 불과하다. 예쁜 옷을 입고 기상 브리핑에 나오는 여자 아나운서들이 인기 높던 시절도 다 지나갔다. 맞지도 않는 기상 예보가 아니라 실시간 기상 중계를 하고 있고 '곳에 따라', '때때로'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대략 예보하는 과거의 수준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후송병원 

 

수도권 외곽 도시들이 대부분 비슷하지만 특히 호평.평내동 일대는 교통의 편리함은 물론 공기도 좋고 자연이 주변 가까이 풍성하여 노후를 맞이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마치 전쟁터 후방에 안전한 지역에 위치한 후송병원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노인을 위한 요양병원이 곳곳에 산재해있고 병원은 물론 편의시설도 잘 구비되어 있으며 특히 서울도 가깝고 지하철, 버스 등 디양한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아침이면 호만천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금곡가는 자전거 도로를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을 피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도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귀가 들리지 않는 노인도 많고 에어폰을 귀에 꼿고 걷는 사람도 많다. 아예 자전거 도로를 점거하고 나란히 걷는 사람도 있고 알아서 피해가라고 비킬 줄도 모른다. 만약 부딪히면 남은 노후를 책임지울 기세다. 보행자 통로로 걷지 않고 자전거 주행 통로로 걸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면 금방 시비가 붙을 것 같아 내가 알아서 천천히 피해다닌다.

 

 

 

 


호평동 삼천리 자전거 점포. 코로나 사태로 자전거 수요가 폭증하여 자전거 판매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삶의 전쟁터에서 격전을 치르고 일부는 전사했고 자신은 겨우 살아 남았지만, 정신과 육체에는 이미 심각한 손상을 입고 후송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대부분 60~70대 이상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여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다. 

 

탐욕과 이기심에 살아온 세월, 5천 년 가난에서 풍요가 찿아온 세상을 만나게 되자 가난과 배고픔이라는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 몸은 비만한 몸매가 되어 걷기도 힘들 정도로 힘들어 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사연을 일일이 들어보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야기를 하라 하면 자신의 과오는 숨기고 잘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만 늘어놓을 것이다. 

 

어떤 노인은 불편한 다리 때문에 지팡이를 집고 걷는 노인 부상병은 보기에도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대부분 다행히 외형적으로는 약간의 부상만 입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암덩어리가 자라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겨우 살아남아 이곳으로 후송온 사람도 많다. 물론 어떤 사람은 성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적의 기습 공격을 받아 졸지에 모든 것을 다 잃고 이곳으로 도망쳐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는 고급 빌라촌에 연예인도 더러 살고 있다고 한다. 난 연예인이 옆에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관심도 없다. 저녁이면 식당에서 무리를 지어 떠들며 남을 의식하지 않은 촌스런 인간도 많다. 인간은 쥐꼬리만한 권력이나 남보다 재물이 조금 많거나 반반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거만해지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게 된다. 연예인인지 아니면 부모 속 썩인 자식이나 집나온 자식인지 몰라도 뮈처럼 치장한 젊은 것들이 밤새 술을 먹고 아침에 콩나물 국밥집에서 또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보기도 한다. 풍요는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노인 부부가 다정히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보기좋다. 거의 반세기 이상 긴 세월 동안 치열한 삶의 전쟁을 치른 사람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격전을 치르면서 죽고 죽이는 공방전을 별였지만 대부분 패자가 되어 이곳으로 피해왔다. 어쩌면 이 전쟁은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승자는 없고 패자만 양산되는 전쟁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다시 삶의 전쟁터로 나가고 그 후손들이 다시 삶의 전쟁터로 나갈 것이다. 

 

 

 

대성리 북한강변 숲이 우거진 산책로. 일요일이몀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전쟁터라는 장소는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극한의 격전지다. 이 전쟁은 무리를 지어 서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각자 홀로 서로 싸우는 만인 대 만인의 전쟁이다. 단지 우군이라면 혈연이라는 가족이 우군이지만 그것도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개인에 따라 적인지 아군인지도 구별하기 힘들다. 혈연은 가족이며 가족은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의지하며 격려하며 전투를 벌이지만 많은 가족들이 서로 내분으로 붕괴되고 만다. 

 

세월이 흐르면 나이가 들어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전역하여 격전지를 벗어나 이곳으로 치료차 휴양차 온 사람도 많다. 그러나 오랜 기간 전쟁터에서 지내다보면 정신이나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이가. 

 

사람들은 평생 전쟁터에서 권력과 재물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권력과 재물을 쟁취하는 자가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승리자가 된다. 그렇다고 영원히 승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권력과 재물은 오물과 같은 것, 가까이 두면 냄새가 나고 심지어 피냄새가 진동한다. 너무 큰 권력과 많은 재물을 갖게 되면 똥파리들이 몰려들고 관리를 잘 하지 못하면 금방 썩는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나타난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을 손으로 잡고 오물통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대도 인간들은 그 오물을 쟁취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바친다. 역사는 인간들의 이러한 쟁취가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극한 상황을 겪으면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속이고 사기치고 농락하고 차별하고 멸시하며 빼앗는 등 권력과 재물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불법, 탈법, 편법이 활개치고 폭력과 권력을 이용하여 재물을 갈취하고 자신과 무리의 이익을 도모하고 권력을 쟁취하면 국고를 빼먹는데 열중한다. 명예, 양심, 배려, 도덕, 윤리 라는 말은 이 전쟁터에서 통하지 않는다. 충과 효는 사라졌고 오로지 탐욕만이 판을 치고 있는 현장이다. 

 

허울좋은 그 이름, 조국, 명예, 충효라는 명제 앞에 목숨을 바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오늘날에는 권력과 재물을 추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만족, 부귀와 영달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전쟁터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지 않는다. 오로지 적과 아군만 있을 뿐이다. 적이면 무조건 깔아뭉개든가 아니면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가족이라는 전우가 위기를 당할 경우에는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유일한 우군이다. 

 

무자비한 적은 가정을 파괴하고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길을 가다가 지뢰를 밟아 죽듯이 고속도로에서 적의 공격에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 다행히 살아남아도 심각한 부상과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전투를 할 수 없을 경우 전장터를 벗어나 이런 후송병원으로 온다. 재물을 강탈당하고 가족을 끌고가고 성폭행을 하고 집에 불을 지르고 집을 쫓겨나고 피난을 떠나 방랑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장기간의 격전을 치르고 나이가 들어 전역 후 이곳으로 온 사람들도 심각한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멀쩡한 사람이 드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