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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호국 보훈의 달, 현충일에 생각하는 '애국'




호국보훈의 달, 현충일에 생각하는 '애국'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애국과 보훈이란 역사의 질곡 속에서 변질된 결과로 허울에 불과하다. 애국은 매국이 되었고 매국이 애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보훈도 그런 이유로 퇴색되고 말았다. 매국이 권력을 잡고 자신들의 매국 행위를 감추기 위해 애국을 모조리 반대파로 몰아 공산주의 너울을 씌워 처단했다. 그래서 이 나라는 매국의 후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지만 애국의 후손들은 하층민이 되어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 애국을 강요하면 그것은 매국을 하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로 과연 진심어린 애국심이 발휘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역사를 왜곡하고 사상과 이념을 주입하여 역사의 진실도 알지 못하고 애국과 매국의 개념도 흐릿하고 친공.친북.종북 이념과 사상의 주입으로 애국의 개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인류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본연의 탐욕으로 인해 결코 평화롭게는 살 수 없는 동물이라는 역사 기록을 남겼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진행중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고 잠시도 평화롭게 살수 없는 시대가 지속되어 왔다. 원시 시대를 벗어나 인구가 늘어나고 먹거리가 부족해지고 게으른 무리들이 나타나자 인간 세상은 서로 먹거리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그 탐욕의 전쟁은 오늘날까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지배자들의 권력과 야망은 왕권 유지, 영토 확장, 주변국 지배, 동맹 배신, 반정/반란 등에 애국을 빙자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지배자의 강요에 전쟁터에서 사라져 갔다.

 

그들도 부모와 처자식이 다 있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 벗어날 수 없는 국가적 의무와 위기에 동원된 사람들이 국가의 강요에 의해서 전장터로 나갔으며 살아 돌아온 숫자보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후손들은 그들의 죽음을 불사한 용맹심과 애국충정의 결과 지금따뜻한 밥과 국을 먹으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 살아 가고 있다. 그들의 피와 땀이 없었던들 지금의 우리들 행복이 있었겠는가!


선진국의 귀족들은 평소에 자신들이 누리던 부귀.영화에 대한 보답으로 국가 위기시에는 앞장서서 나가지 않는가! 고대 로마의 집정관들,독일의 귀족들인 장교들,영국의 귀족들,미국의 부유층들,일본의 귀족들이 그랬다. 그래서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선진국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들과 같은 수준의 공공성이 형성되지 못한 국민이요 민족이다. 이 땅에서 유사시 앞장설 지도층은 기대하지 않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애국'이란 미명아래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민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그런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나마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마음을 가질 때 빛나는 법이다. 현충일인 오늘, 우리에게 지금의 행복한 삶이 나 자신이 일궈낸 것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는 길이 그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일 것이다. 

 

 

                       

 

 

한 지식인의 칼럼을 인용한다.


"서울 사람들이 지척에 두고도 찾지 않는 몇 곳이 있다.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도 그중 하나다. 그러고 보니 현충원 내부를 둘러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인가 싶다. 선생님과 단체로 방문해 경내 청소를 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왜 여기에 와야 하지’하고 농땡이를 쳤던 장면이 어렴풋하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출퇴근 지하철로 현충원(동작역)을 지나간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려 방문한 적 없다. 가끔 버스로 정문 앞을 지나면 그저 예전 추억을 되살릴 뿐이다.

서울현충원은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 능선이 삼면을 감싸고, 앞에는 한강이 굽이쳐 흐른다. 1954년 국군묘지로 출발한 현충원은 총 143만㎡ 면적에 한국전쟁, 월남전 등에서 산화한 전몰 군경과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17만2000여 위패가 안장돼 있다. 65년 국립묘지, 2005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계속된 안장으로 서울현충원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79년에는 대전에도 현충원이 만들어졌다. 서울의 2배가 넘는 면적(329만6807㎡)이다.

현충원에서 첫 추도식이 열린 때는 56년 6월 6일 첫 현충일이다. 당시에는 국군묘지로 불렸다. 이날을 현충일로 지정한 것은 절기상 망종(芒種)으로 고려 때부터 전사 장병들의 추모 행사를 지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제정 당시에는 대상이 한국전쟁 때 순국한 국군과 경찰에 국한된 호국영령만 기리는 날이었으나 65년부터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희생된 순국선열까지 함께 추모하게 됐다.

현충일에는 추념식과 참배행사 등이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되며 가정에서는 조기를 게양한다. 전 국민이 오전 10시 사이렌 소리에 맞춰 묵념을 올리는 의식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현충원을 찾는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고 조기를 게양하는 가정도 많지 않다. 사이렌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도 거의 볼 수 없다. 단지 쉬는 ‘빨간 날’로 인식될 뿐이다. 서울현충원을 찾은 참배객을 보면 2017년 290만여명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220만여명으로 떨어졌고 올 4월 현재까지는 72만명에 불과하다. 많은 국민에게 친숙하고 가까운 곳인 미국 워싱턴DC의 알링턴 묘지와 달리 우리는 가깝지만 먼 그런 곳이 돼 가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현충일에는 여배우 이보영씨가 유연숙의 시 ‘넋은 별이 되고’를 애절한 목소리로 낭독해 화제를 모았다. ‘모른 척 돌아서 가면/ 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당신은 어찌하여/ 푸른 목숨 잘라내는/ 그 길을 택하였습니까/ ~피맺힌 절규로 지켜낸 조국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지는 일 많다 하지만/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은/ 우리들 가슴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애국과 보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일 수 없다”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에 국민께서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라며 그것이 대한민국의 힘이 되고 미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분 한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이라고 했던 2017년의 추념사와 맥을 같이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저의 국민이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뒤 그동안 틈만나면 소통과 통합을 강조했지만 실제 국정운영은 말과는 달리 엇나가기 일쑤였다. 자신의 지지층에 얽매인 나머지 진영 논리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이념 분열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예순네 번째 현충일이다. 현충일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문 대통령도 강조했듯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남녀노소가 없었다. 신산(辛酸)의 세월을 보낸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는 진영과 이념을 넘어 화합과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와 협력의 길로 전진해야 한다. 아집과 ‘마이웨이’는 국민의 삶을 더 팍팍하게 하고 고달프게 할 뿐이다. 현충일 아침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숙제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오늘 우리는 현충일을 맞아 휴일을 보내고 있다. 과연 얼만큼 그들의 희생에 대하여 경건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처럼 유사시에는 초개같이 목숨을 버릴수가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철부지나 친구따라 헛된 용기를 내지 않는 한 애국심이 발동하지는 않을 것 같다. 현충일 아침 아파트 창문에 걸리던 그 많던 태극기는 이제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국가에 대한 개념도 애국에 대한 개념도 우리 모두에게 흐릿해졌다. 사상과 이념이 혼재되어 남.북한이 어느 쪽이 진정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나라인지 이제는 구분도 안 갈 정도다. 마치 광해군 시대 청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외줄타기 외교를 하던 광해군이 생각난다. 그 사이에서 애꿋은 우리 조선 병사들만 수많이 희생되고 말았다.

 

진보의 탈을 쓴 공산/사회주의자들이 나랏돈을 멋대로 빼먹고 편을 가르고 과거사 정리와 적폐청산을 외치며 보수진영을 괴멸시키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친중, 친북 일변도의 사상으로 미국과 사이에서 중계를 자청하고 나선 현 정권이 결국은 북한의 앞잡이 역활밖에 못하고 있어 보인다. 반미 일변도의 현 정권의 유력 인사들이 자식은 특목고, 미국 유학을 보내며 뒤로는 각종 투기로 치부를 일삼는 표리부동한 치졸한 인간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전형적인 이기적인 인간들 집단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들의 낡아빠진 퇴물 사상과 이념으로 인해 이 나라를 낙동강 오라알 신세로 만들어 과거 월남처럼 국의 길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심히 걱정된다. 


그러는 사이 우리 경제는 급속도로 내리막 길을 내려가고 있다. 대기업 분해 공작, 국민염금을 이용한 기업 옥죄기, 최저임금 상향, 자영업 줄도산, 실업자 양산, 대기업 영업이익 급감, 기업 투자 저조, 제조 공장의 탈 한국 현상이 급증하고 있다. 또 중국 일변도의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이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가 등터지고 있는 꼴이다. 그래서 수출이 급감하면서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자영업이 줄도산을 해도 그들은 경제가 이상없다고 주장한다. 노조가 정권을 뒤흔들며 기업을 옥죄고 귀족 노조가 대를 이어 부귀를 누리려 하고 있으며 공권력이 노조 앞에서는 힘을 못쓴다.마치 4.19 혁명 이후 대학생들이 혁명 주도 세력이라며 정치권에 관여하면서 국내 정치를 극도의 혼란 상태를 조성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원유가 잠시라도 수입이 중단된다면 이 나라는 생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유 수입로가 동남아 해로를 통해 이동하지만 이 수입로가 언제 봉쇄될지는 모른다. 해군력의 증강이 절실하지만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그토록 막대한 비용을 치르야 했다. 타국들은 동남아 해상에서 미국과 합동해상작전 훈련을 벌이지만 우리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런 훈련에 참가하지도 못한다. 사드 사태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지만 중국에 말한마디 못했고 지금도 중국의 각종 으름장과 협박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검찰의 각종 비리 조사는 같은 법조계 인사는 유야무야로 끝내기가 대부분이고 또 현 진보 정권의 조종에 따라 조사 내용이 변질되어 믿을 것이 못된다. 직접 피해자가 나타나 증언하고 진술을 해도 '증거 없음'으로 끝난다.


이런 나라에 누가 충성하고 애국할 것인가? 이제 우리들에게 '애국'이란 말은 젊은이의 목숨을 총알받이로 내몰기 위해 혹세무민하는 속임수일 뿐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일제가 대동아 전쟁에 조선의 젊은이를 내보내기 위해 친일파를 이용하여 선전선동하던 일제시대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미 사라진 '충과 효'에 뒤이어 '애국'이란 낱말도 우리들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