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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두 바퀴에 인생을 싣고......10




두 바퀴에 인생을 싣고......10

 


           

        의암호반 북한강 자전거길, 내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이라 생각된다

 

태풍이 진로를 변경하여 새벽에 목포로 상륙하여 내륙으로 진행하여 강릉 방향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폭우와 강풍을 예견하고 자전거 타기도 포기하고 대비하고 있는데 지금 남양주 호평동은 비만 내리고 바람은 크게 불지 않는다. 큰 피해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대해보지만 그래도 불행을 당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정치권은 실업, 경기 하락, 남북 대화, 비리, 거짓말 등으로 무능력과 추악함이 그칠 날이 없다.눈물 없이는 불 수 없는  금강산 이산가족 만남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의 불행은 초래한 당사자들은 조금도 부끄러움도 없이 오로지 권력 잡기에 열중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한계, 즉 영원한 평화는 결코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상과 이념이 무엇이길레 사람들에게 이토록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고도 깨닫지 못하는 동물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이번 태풍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재산이 손실될 것인지 걱정이 된다. 또 아시안 게임에서 태극 전사들이 이란을 격파했다는 낭보도 들린다. 



  

 6사단 대대장 시절 이야기는 계속된다.


군인은 모시는 상급자도 잘 만나야 하지만 아래 부하도 잘 만나야 한다. 상급자가 승승장구하면 모시던 부하들도 덩달아 승진이 빠르다. 그만큼 입김이 음양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 지휘관을 나가게 되면 만나게 될 사단장 등 상급자에 대한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전망이 창창하고 힘있는 상급자를 만나게 되면 자시도 덩달아 미래가 기대돠지만 힘없는 저질 상급자를 만나면 고생만 하고 보람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용인 군인 아파트에서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부임 날짜를 고려하여 오후에 도착하도록 이사를 준비했다.  다음해 1월, 눈내리는 철원 평야 대대 연병장에서 대대장 이취임식을 했다.


대대는 금학산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었고 신축 막사였다. 대대 정면으로 포풀러 숲과 넓은 연병장이 있고 멀리는 철원 평야가 넓게 펼쳐저 있었다. 서울에서 동송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바로 대대 앞으로 지나간다.금학산은 철원 평양서 가장 높은 산인데, 금학산을 뒤에 두고 좌측으로는 전방, 우측으로는 사단 사령부를 향한다.


사단의 정면은 전방에서 좌측으로 5사단과 접하고 우측으로는 3사단과 접하고 었다. 좌측 5사단 지역의 백마 고지와 인접해 있으며. 비무장지대에서 사단 사령부까지 중앙부는 철원 평야가 넓게 펼쳐저 있고 우측에는 3사단 비무장지대에서 흘러내려오는 한탄강이 철원 평야 우측을 연하여 410고지와 내대리를 따라 남북으로 높은 기암 절벽을 형성하며 사단 사령부 근방을 지나 운천, 전곡 방향으로 흘러간다. 


대대 가까이에 동송읍이 위치하고 있고 동송 입구에 위치한 관사 단지에 있는 대대장 관사에 이사를 했다. 대대장 이취임식을 하는 시기 전후로 사단장도 바뀌었다. 전임 사단장은 훌륭한 분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전임 사단장이 떠나는 이취임식 날 사단 사령부 정문까지 도열한 간부들과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지장이며 덕장이었고 부하를 생각하는 마음이 친자식 이상으로 극진히 챙기던 훌륭한 분이라고 했다. 그 분이 나중에 국방장관 시절 하나회 사건을 도맡아 처리한 K장군이다. 아마 그 당시 근무한 참모, 연대장, 대대장, 직할대장 중 진급 해당자 중 장군으로 진급 못한 사람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다. 


후임 사단장으로 아담한 모습의 잘달막한 키를 가지신 온화한 성품의 L장군이 부임했다. 능력은 알 수 없으나 동기생 중에서 잘 나가는 사단장이라는 소문을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하나회 출신이었다. 하나회 숙청 당시 사단장도 군부사령관을 끝으로 군복을 벗었다. 그런 측면에서 P대대장에게는 사단장 운도 없었다.


사실 하나회는 하나같이 그 동기생 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로 선발되었다. 주요 보직을 독차지 했고 후배 하나회에게 물려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군의 주류를 형성했고 어디를 가던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부대 지휘도 소신있고 과감하게, 그리고 통 크게 부대를 지휘했다. 소소한 사고에 대해서는 되려 사고 지휘관을 불러 돈 붕투를 주면 서 잘 처리하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11기 선배 몇 사람에 의해 사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상관을 배신하고 군에 하극상을 여실히 보여준 태도라던지, 법으로 금지된 군내 사조직을 조직하여 군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린 점, 군의 진급과 승진에서 공정한 경쟁과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고 그들끼리 다 해먹는 부류를 형성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인 비난받고 있다. 



대대 업무를 파악하고 현재 진행 사항을 파악했다. 대대 참모들은 보통, 중대장들은 든든했다. 그런데 대대 부사관(하사관)들이 경력이나 역량, 그리고 각자의 능력이 뛰어났다.


그 해에 첯 임무로 박살선 공사 임무가 떨어졌다. 박살선 공사는 휴전선 전GOP사단이 GOP 철책과 별도로 비무장지대 내 GP와 GP를 연결하는 철책을 2중으로 치는 것이다. 전임 사단장이 재임간 좌측 5사단 접경부터 1킬로미터 정도 구축했는데, 석축을 쌓아 그 위에 철책을 치는 방식으로 견고하고 단단하게 이미 구축해 놓았다. 이제 나머지 남은 전구간에 대해서 철책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새로 부임한 사단장에게도 가장 중요한 첯 임무 중 하나였다.


우선 총책임자는 사단 부사단장이 맡고 비무장지대 수색과 매복, GP근무를 전담하는 전초대대, 사단 수색대대, 증강된 공병중대와 장비, 그리고 보병 2개 ~ 3개 대대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전초대대와 수색대대는 전후방 경계와 지뢰제거 작업을 맡았고, 증강된 공병중대는 교량 신축이나 대규모 물골 공사, 도자, 포그레인 등 중장비 운용, 공사 자재 및 철책 자재 추진을 맡고, 보병 2개대대는 철책 설치 작업을 맡았다.


먼저 전초대대와 수색대대가 투입되어 1미터 단위로 늘어서서 줄을 쳐가면서 지뢰를 찿아내는 탐침 작업이 주 임무였다. 작업간 경계병은 전방과 후방을 동시에 경계하도록 앞뒤로 서서 두 명 1개조가 무장을 하고 경계를 선다. 물론 전병력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무장을 하고 투입되었다. 작업 간 GOP 일대 철책선 대대는 개인 및 공용화기를 즉각 발사가능토록 비치했고 후방의 포병 부대도 적 도발에 대비해서 포탄을 준비하고 포상에서 대기했다.


지뢰 제거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갔다. 적의 도발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뢰 제거가 끝난 지역에 도자가 투입되어 흙을 밀어 평탄 작업을 하면서 횡으로 제방을 쌓는다. 포크레인이 뒤따라 가면서 제방을 만들며 흙을 다진다. 비무장지대 곳곳에는 구멍 뚫린 녹쓴 철모, 찌그러진 녹쓴 수통, 녹쓴 대검, 멜빵 쇠붙이 등이 나딩굴어 있었다. 수많은 이름모를 군인들이 이곳에 뼈와 살을 묻고 쓰러진 곳이다.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의 아픔이 그대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철원 평야는 비가 내리면 급작스럽게 물이 불어나고 또 물길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방향을 알 수 없이 흐른다. 사람이 서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매년 화공작전으로 불이 나 비무장지대는 수목이 불탄 자국이 많다. 노루나 사슴은 지뢰를 잘 피해다닌다고 한다. 물이 불어나고 토사가 흘러가면서 땅 속에 묻혀 있던 지뢰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깊이도 알 수 없이 곳곳에 매몰된 지역이 바로 이곳 비무장지대다. 


땅 속에는 무수한 지뢰가 묻혀 있지만 오래되어 녹쓴 지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북한군의 목함지뢰나 아군의 플라스틱 지뢰는 탐지기로 잘 탐지되지도 않는다. 녹쓴 지뢰지만 또 언제 터질지는 모른다. 대인, 대전차 지뢰가 도자가 지나간 바퀴 자국 진흙 속에 박혀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북괴군 지뢰와 아군 지뢰가 많이 발견되었다. 수거 불가한 지뢰는 그 자리에서 폭파하고 제거된 지뢰는 병기부대 폭발물 처리반에게 인계되어 처리되었다. 포그레인이 바위를  옮기다가 지뢰밭으로 굴러들어가는 바람에 대전차 지뢰가 터졌다. 그러나 다행히 장비 운전병이 운좋게 다치지는 않았다.


보병 대대는 합판과 목재로 기초 거푸집을 짜고 포스트를 박고 콘크리트를 친다. 단단한 바위나 땅에는 그대로 구덩이를 파고 기둥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쳤다. 철원 지역은 구멍이 뚫린 화산암이 많아 굴착하기 무척 힘들다. 보병 병사들이 정으로 일일이 쪼아 파냈다. 콘크리트가 양생된 다음 기초를 묻고 횡으로 상, 중, 하 부분에 연결쇄를 조립한다. 땅 속에는 깊이 1미터 이상 철근을 촘촘히 박고 보조 지주도 기초를 치고 주기둥에 연결한다. 그리고 철망을 하나씩 조립해 붙여 나가는 방식이다. 수색 정찰 매복용 소형 출입문도 달고 큰 장비가 들어갈 통문도 설치한다. 물이 흐르는 곳은 토관이나 원형 암거를 묻거나 큰 물골은 공병이 박스형 암거를 설치한다. 철책 후방에는 철책을 따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순찰로는 만들었다. 


매일 매일 수많은 병력이 드나들고 언제 도발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필승 OP 앞에 큰 물골에는 공병 중대가 폭 5미터, 길이 20미터 정도의 교량 작업을 담당했는데, 물막이 공사를 하고 포크레인으로 물을 퍼내면 자연산 장어, 메기, 붕어, 가물치 등 물고기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P대대장도 그때 처음 자연산 장어 맛을 보았다. 사단장, 부사단장, 연대장, 대대장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보내기도 했다.


철책 공사는 무리없이 잘 진행되어 갔다. 부사단장이 보병 대대끼리 경쟁을 붙여 속도가 더 빨랐다. 7사단 접경까지 공사는 계속되어 갔고 한 명의 병사도 다치지 않고 몇 개월 후 박살선 공사는 아무런 사고없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