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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두 바퀴에 인생을 싣고......7




두 바퀴에 인생을 싣고......7

 


          

의암호반 북한강 자전거길, 내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이라 생각된다

 

 맹위를 떨치던 폭염이 말복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기온이 떨어졌다. 이곳은 아침에 바람도 불고 선선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계절이 찿아온 것 같다. 


세상 뉴스를 보면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더 높은 권세를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인 쾌락을 맛보기 위해, 더 넓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수많은 인간들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것이 보통 인간들이 삶인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묻어 가다 흩어지는 먼지처럼 존재도 없이 사라질 삶인데, 인간은 탐욕을 그칠 줄을 모른다. 잘 먹고 즐기고 배설하고 다음날이면 다시 먹고 즐기고 배설하고를 반복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하등 동물에 불과하다. 자신의 삶이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지만 남에게 고통과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해를 주고 빼앗고 훔치면서 그것으로 행복을 느낀다면 그런 인간은 사회를 좀먹는 해충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사는 양과 음이 조화를 이루듯이 정의와 불의가 서로 반작용을 일으키며 진화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 사회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병존하면서 갈등과 타협을 반복하면서 발전되어 온 것이다. 선이 있기에 악이 있고 악이 있기에 선이 존재한 것처럼 인간의 삶도 그런 선악이 공존하면서 인간관계에서 발생되는 갈등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누가 어떤 생각과 사고로 어떤 방식과 행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은 달라진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의 생각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주어진 인생시간은 멈춤없이 계속 흘러가고 있다. 



15사단 스토리는 계속 이어진다.


그해 가을 p대위가 소령 진급 예정자가 되었다. 고참 참모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2사, 3사 출신 고참 대위들이었는데, 사람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대상자가 많다보니 무척 진급이 어려웠다. 물론 무능한 사람도 많지만 우수한 사람도 많았다. 그 출신들이 진급하기 위해서는 무진장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힘든 것도 사실이다. 상급자에 대한 아부와 짜웅은 물론, 뇌물도 다양한 방법과 고도의 기술을 발휘하여 전달해야 해고, 공략 대상도 눈치껏 잘 골라야 한다. 남편이 고지식하면 부인을 공략하면 대부분 성공한다. 원래 부귀영화에 대한 집념이 강한 쪽이 아내 쪽이기 때문이다.  


상급자 부부 생일은 물론 자녀 입학/졸업, 각종 길흉사, 설/추석 명절, 년말연시, 크리스마스, 신년하례, 오래된 가전제품 교체 시기, 심지어 집에 키우는 강아지 생일까지 챙겨야 하고, 마누라는 부대 관사와 서울 본가에 드나들며 식모처럼 일하며 사모님 마음에 들어야 하고 때때로 미장원, 백화점으로 모시고 가서 고급 명품도 선물하고 눈치도 빨라야 한다. 그럴 능력도 재물도 눈치도 없었던 그 고참 장교들은 아마 진급이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쯤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다음해  3월 26일경이었는데, 날씨가 갑자기 어둡고 추워지면서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바람이 새차게 불고 기온이 떨어지더니 아침이 되어서야 잠잠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전기가 정전이 되었다. 평소 하던대로 사단 사령부를 우선 살리고, 전방은 두 개조로 나누어 대성산 라인과 적근산 라인을 구간 전진을 하면서 전기를 살리며 전진해 나갔다. 밤새 내린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상태라 차량도 올라가기 힘든 고지들이다. 


그런데 나중에 대성산 조 선임하사와 적근산 조 전공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정상 부근 고압 전주들이 모조리 쓰러졌다는 것이다. 각각 약 20 ~30 스판 이상이라고 했다. 고압선에 진눈깨비가 녹으면서 얼어붙고 또 녹으면서 다시 얼어붙어 직경 20 ~30센티미터 이상의 얼음이 전체 고압선에 얼어붙자,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압선이 어느 약한 한 곳이 끊어지면서 콘크리트 전주들이 연달아 뿌러지면서 쓰러진 것이었다. 


대대장에게 보고하고 사단, 군단에도 피해를 보고했다. 대성산에는 각종 레이다 기지, 감청 부대 등이 상주했는데, 전기가 장기간 정전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병사들은 혹한에 떨어야 하고 방송장비는 물론 전기 관련 모든 장비는 올 스톱이 된다.


큰 차가 올라가기 힘든 두 고지에 보병 대대 병력이 긴급 동원되고 쓰러진 전주를 치우고 콘크리트 전주는 병사들이 어깨에 메고 목도 운반을 실시해야 했다. 군단에서 보관중이던 콘크리트 전주와 조립 전주를 수송해오고 한전과 협조하여 춘천 한전 직원까지 투입되어 복구작업을 실시했다. 대대에서는 한전 직원들에 대한 간식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밤낮으로 작업하여 열흘 정도 지나자 겨우 전기가 복구되었다. 대대장은 사진을 찍어 사단장에게 보고하고 육본에도 보고해야 한다면서 야단 법석을 떨었다. 가만히 있어주면 좋으련만 일거리를 만들기에 문제였다.



 

                         의암댐 근방 자전거길 휴식 장소. 공들여 잘 만들어진 멋진 길이다. 



그 해 여름에 육대생들이 대대를 방문했다. 대대장은 그들을 대접한다고 저녁에 대대 앞 개울 자갈밭에서 회식을 했는데 보신탕을 먹었다고 한다. 거나하게 취한 대대장은 노래도 부르고 육대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군대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지휘관이 근무 중 개를 잡거나 먹으면 그 부대에는 반드시 큰 사고가 난다'는 소문이 나 있었고 그것을 금기사항으로 여기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사단장 비서실장으로 21사단에서 만나던 동기생이 왔다. 그 동기생 가족은 아내를 만나자 무척 반가워했다. 그런데 아기 인중이 좀 이상한 상태였다. 부부간에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부인은 울면서 아내한테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남의 가정사니까 생략한다. 그러나 그 아기는 잘 자라서 일류대학을 나와서 결혼까지 하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동기생은 p대위처럼 명령나는대로 온 것이 아니라 인척 중에 사단장과 무슨 인연이 있어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어 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해 10월, 둘째가 태어났다. 이번에는 서울이나 대구로 보내지 않고 처형만 오라고 해서 관사에서 직접 아기를 낳기로 했다. 그런데 예정일이 되기 전에 산기가 오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춘천으로 가려고 찝차에 태우고 나가던 중 다목리를 지나고 사단 사령부를 막 지나는데 진통이 시작되었다. 급한 마음에 사단 의무대로 들어갔다. 일요일이라 당직 군의관이 아기를 받았는데, 아들이었다. 첯 딸에 이어 아들이라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p대위는 당시 거금 5만 원을 군의관 손에 꼭 쥐어주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은 신혼 초 첯 아기는 유산을 했다. 산달이 가까운 상태에서 고향 친구 네 명이 신혼집으로 찿아왔다. 친구들과 그날 밤을 새면서 단칸방에서 고스톱을 치면서 술, 안주, 라면을 제공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아내는 아침에 친구들이 떠나자마자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유산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유산된 아기가 아들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후 아내는 그 고향 친구들을 두 번  다시 보기를 거부했다. 지나친 친절로 아기를 잃은 아내는 p대위를 무척 원망했지만 모두 미래가 있기에 참고 지낸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잃어버렸던 아들을 이제 낳은 것이다. p대위는 아내에게 "당신, 수고했어요" 하며서 아기를 안고 아내와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해 겨울, 관사에 펌프가 동파로 고장나서 관사 앞을 흐르는 하천에서 얼음을 깨고 물을 떠와야 했다. 찝차를 타고 지나가던 p대위는 어떤 여자가 물지게를 지고 눈길을 걷지 못하고 비탈길도 오르지 못하고 쩔쩔메는 모습을 보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내였다. 당장 그리로 달려가 물지게를 받아 지고 날랐다. 물지게는 p대위가 어린 시절 동네 우물에서 물을 저나르던 경험이 많았다. 그런데 아내는 서울 토박이 출신이라 물지게를 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기 둘을 키우면서 펌프가 고장나서 물이 필요하니까 물을 진다고 나선 것이었다.



 

 운무 사이로 보이는 호수 가운데 섬을 바라보며 물 위를 달리듯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절색의 미인을 품에 안고 밤새 쾌락을 추구한 들, 몸만 상하고 기만 빠진다. 만사를 재쳐놓고 

떠나보라.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자 p대위는 소령 계급장을 달았다. 그러나 당장 달라진 것은 없었다. 3월에 고압전주 피해 복구가 끝나고 대대장의 성화도 잠시 누그러진 상태에서 대대장은 대외로 출장을 가면서 P대위가 주는 차비는 열심히 챙겨갔다.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 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찿아와서 봉투를 내밀면 면상에다가 내던지는 사람인테 p소령이 주는 차비는 잘도 받아갔다. 


부대로 들어오는 자재는 대대장이 직접 모두 검수했다. 불합격도 많았고 되돌려보내기도 여러 번, 납품업자가 하소연을 했다. 나중에 큰 하자가 없는 자재는 대대장 몰래 그대로 받았다. 


어느날 대대장과 같이 전방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삼거리 어느 연대 본부로 들어갔다. 마침 연대는 전간부들이 간부 식당에 모여 회식중이었다. 대대장이 나타나자 연대장이 반가워하면서 반겼지만 공수부대 출신 소령 군수참모가 술이 취한 상태로 대대장에게 시비를 걸었다. 평소 도움 요청에 문전박대를 한 불만과 반감에 대대장에게 덤벼든 것이다. 싸움을 말려 겨우 회식장을 빠져 나왔다. 찝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챙피하기도 하고 마음이 착찹했다. 대대장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무슨 말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대대장을 싫어하고 대대 참모들은 물에 기름처럼 업무를 소홀히 하고 오후에 관사에서 쉬다가 저녁경이면 들어와서 저녁 결산 준비를 했다. 어차피 욕먹으며 새벽까지 진행될 결산에 대비해서다. 대대장 부인이 아내를 불러 야단을 쳤다고 한다. 사단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도는데 모두가 참모들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내는 영문도 모르고 야단만 맞고 돌아왔다. 다른 참모 부인들을 불렀느지는 몰라도 아내는 부대 일에 대해서 P소령이 일절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부부가 닮는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처럼 존경받지 못하는 지휘관 밑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보람을 찿기 힘들다고 판단한 p소령은 대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멀리 의암댐이 보인다. 


그래서 p소령은 육본 인사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타 부대로 가고 싶다고. 그러자 인사담당 장교가 

"너 한미연합사에 갈테냐?" 하고 물었다.

"선배님, 한미연합사가 어디 있습니까?"

"야, 서울 용산에 있지 않니. 미군하고 같이 근무하는 데 양식도 먹고 좋다"

사람 장사를 하는 그 선베는 나를 구슬렀다.

 "보좌관 자리가 비는데 너가 적임자다 야."

그러자 p소령은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에 무턱대고 명령을 내 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