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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가을 6 : 이 가을에 생각하는 삶

 

 

강남의 가을 6 : 이 가을에 생각하는 삶

 

 

                                                                    남양주로 가는 날, 한강 고수부지 전경 

 

도로나 인도를 가로막은채 차를 세워두고 볼일을 보는 인간,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마구 버리는 몰상식한 인간, 약속을 어기고 미안해하지도 않는 인간, 어른을 무시하고 깔보는 인간, 앞에 노인, 임산부, 어린이를 업거나 데리고 선 아줌마 등이 서 있어도 자리를 양보할 줄 모르는 뻔뻔한 젊은이,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가난하고 굶주리며 인권이 유린되고 천시받으며 주인이 시키는 굳은 일만하며 살아오던 촌놈이 어느날 로또에 당첨되어 거덜먹거리는 꼴이 바로 우리 사회의 실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모르며 자신의 이익과 편리와 편안함만을 추구하려는 인간들이 넘쳐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먼 우리 사회의 후진국형 제멋대로 삶이다. 

 

특히 아무리 허물없는 가족끼리라도 말을 조심하고 최소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상대를 비하하고 무시하고 저 잘난 줄만 아는 인간들은 남에게 존중받지를 못한다. 일말의 양심도 없는 태도, 생각도 없아 내뱉는 말, 부모와 가족, 친구를 무시하고 우습게 아는 언행과 태도 등 예의도 모르고 메너도 없는 인격과 성품을 탓해봐야 근본적인 가정교육, 학교교육부터 잘못된 인간들이니 누굴 탓할 것인가?  

 

 

 

                                                       올림픽 대교 전경, 한강은 말없이 5천 년 역사를 품은채 묵묵히 흐르고 있다

 

 

 

나도 아들집에 가면 편안하게 푹 자고 싶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불편하다. 집에서는 반바지 차림으로 활보할 수 있지만 아들집에서는 며느리와 손주들 때문에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그래서 우리가 잠을 자면 좋겠지만, 여러가지가 불편하여 아들집에서 자는 것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들 집에서 잔다고 무슨 뽀족한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 정이 돈독해지는 것도 아니다. 아들집이라도 치솔, 치약, 수건, 갈아신을 양말, 간편복을 챙겨 가야하고 빨래가 힘든 이불이나 자리는 피해야 한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라도 함부로 무엇이던지 자랑해서도 안되고 돈을 빌려주거나 빌려서도 안된다. 남의 집에 가서 물건을 만지거나 사용하거나 컴푸터를 커거나 이방 저방을 뒤지거나 음식맛을 탓해서도 안되고 늦잠을 퍼져 자도 안된다. 치약, 치솔, 수건, 간편복, 갈아입을 속옷, 양말 등은 자신이 준비해 가야 한다.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그냥오면 주인은 최소한 치약, 치솔, 수건 정도는 준비해 사용후 가져가시도록 하여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좋다. 가정을 이룬 자녀에게 훈계해서도 안되고 야단처도 안된다. 말은 가능하면 적게 하고 듣기만 해야 한다. 상대 말을 곡해하고 자신 마음대로 해석하고 원망하는 태도도 좋지 않다. 부모나 자식이 서로 애를 먹이지 않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데 부모가 아들, 며느리를 누가 미워할 것인가? 가족이라도 베풀면 좋아하고 안 베풀면 감정이 싸늘해자는 것이 사람이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용서해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저들끼리는 유명 맛집, 먹거리를 찿아다니면서 먹으면서 외국여행을 다니고 즐기며 노는데 돈을 펑펑 쓰면서 부모 생각은 커녕 부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비싼 명품 보석, 가방을 사다주어도 차고 나갈 곳도 없고 들고 나갈 일도 없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는 안 사다주도 좋고 생각 안 해도 좋으니 손 벌리지 말고 애 먹이지 말고 싸우지 말고 사고나 치지 말았으며 하는 바램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젊은 시절 즐기는 데 돈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모아도 노후가 불안한 요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벌지 못하여 경제력이 상실되면 인간대접을 받을 수가 없다. 가정도 붕괴되기 쉽고 부부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많다. 불안한 직장과 취업, 수입을 만들지 못하면 미래가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장래가 불투명하고 살아가면서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가족간의 갈등은 자연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노후에 자식에게 기댈일도 없지만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은행대출 이자를 부담하고 할부금을 내는 등 남는 생활비가 적다보니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고 자식 양육부담에 매일 짜증이 쌓일 것이며 그런 세월이 쌓이다보면 가족의 갈등이 표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수양되지 못한 성품과 인격을 가진 사람이 부족함을 견디는 인내심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알뜰하게 모아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니 나도 하고 남이 가니 나도 가는 타인지향적인 삶에서 검소함과 절약정신을 찿아 볼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사람이 얼마되지도 않는 듯하다.

 

그래서 일반 보통 인간군상들 끼리는 의식주에 대한 과다한 욕구로 갈등관계가 표출되는 것이 대부분이며 인격과 성품의 한계, 그것은 바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그리고 자신의 수양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며 타인지향적인 삶에서는 허영과 사치같은 말초적인 것에 만족하는 개념밖에 없는 사고를 가진 정도이니 더 기대할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인내심을 갖지 못한 요즘 젊은이들이 이혼을 밥먹듯이 하는 것이며 살아가며서 갈등 요인이 많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 자신이 안주할 곳도 없이 집을 처분하여 자식에게 물려주어도 지금같은 상황을 보아 나중에 천대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나에게 재산이 없다는 것이 이처럼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리를 지나면서 한강변에는 코스모스꽃이 만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평생 재물을 추구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듯하다. 막대한 재물을 모아봐야 죽을 때는 한푼도 가져가지도 못한다. 자식에게 유산으로 상속시켜주고 간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런 재물도 없는 서민들의 죽음을 자식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부모가 어느 정도 일정 재물이 있다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식에게 어느 정도 먼저 상속해주는 것도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자식에게 푸대접 받지 않으려고 죽을 때까지 재물을 꽉 지니고 있다가 자식 가정이 붕괴되는 등 인생이 망가진 다음에 재물을 물려주어봐야 노인이 다 된 자식에게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 그러나 그런 경우도 자식하기 나름이 아닐까 생각된다. 평소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검소하고 품성이 바르고 예의와 메너가 있는 등 생각과 사고가 건전한 경우면 몰라도 자신의 수입에 걸맞지 않게 낭비하고 사치하며 하는 짓마다 싸가지 없는 자식에게 주어봐야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탕진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식에게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주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 자식들도 마찬가지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도 어렵지만 수입의 많은 부분을 은행이자, 양육비에 소요되고  기타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이유로 비싼  자동차, 외식비, 각종 공연, 여행, 캠핑, 가구, 옷, 신발 등 자신의 분수에 걸맞지 않게 갖추고 꾸미고 살려고 한다. 검소와 절약은 찿기 힘들고 남이 하니 나도 해야 한다는 상대적 열등감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는 미래가 없다. 인생의 절정기인 30~40대에 재물을 모으지 못하며 연금같은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한 이런 사회에서 노후는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모든 푸념도 마찬가지로 얄팍한 나의 쓰레기 같은 자존심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기가 살아 있는가? 아무리 무서운 맹수라도 잇빨이 빠지고 발톱이 하나 둘 빠지고 힘이 어지면 동물의 세계에서도 무리에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초원으로 쫓겨나 굶주리다 쓰러지면 하이에나들의 먹이가 되어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마찬가지 나의 잇빨도 아래 위 할 것없이 흔들거리고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치과에 가니 4개나 인플란트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쓸데없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목돈을 또 들어야 하니 기가막힌다. 길거리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땡빚을 내서라도 치료를 해야 할 상황이다. 하나 둘 무너져가는 나의 육신에서 서서히 자연의 향기와 대지의 흙냄새가 풍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