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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가을 1 : 새벽에 만나는 역동적인 삶

 

 

강남의 가을 1 : 새벽에 만나는 역동적인 삶

 

 

                                                                                         석양빛이 아름답다

 

 

요즘 날씨는 자전거 타기에 정말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새벽 자전거를 타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으며 골목길을 누비는 것은 삶에 생동감을 줄 뿐 아니라 하루의 시작을 원기차게 만들고 있다. 또 쉼터에서 쉬면서 다른 운동도 병행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마디로 새벽 자전거 타기는 나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은 물론 건강을 튼튼하게 하는 데 최고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중단하고 영하 -10도 정도까지는 겨울에도 계속 타고 있다.

 

삶이 여유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북한강, 남한강, 낙동강 등지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지만 난 새벽 골목길을 달린다. 자전거가 많이 다니는 한강 고수부지,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같이 지방까지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은 서로 비교되니 좋고 비싼 복장과 장구에 자전거가 비싸고 좋아야 하고 속도도 남보다 빨라야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만 모두 허영과 사치에 불과하다. 며칠 전 어느 자전거 동우회에서 집단으로 이동하면서 야외 도로를 거의 점거하면서 달리다보니 자동차 운전자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뉴스를 접하였다. 모두 자만에 빠져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보이기 위한 동호회 활동일 뿐이다. 남과 비교하면 싼 자전거나 잘 달리지 못하는 자전거는 자존심이 상해서 같이 탈 수가 없을 것이다. 자전거 타는 데도 돈자랑해야 하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삐뚤어진 모습이다, 수천만 원하는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빨리 잘 나가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필요없는 사치일 뿐이며 빨리 잘 달리는 자전거는 나에게 필요가 없다.

 

난 새벽길은 빨리 달리는 게 목적이 아니고 천천히 달리며 주변을 살피고 새벽 경치를 구경하면서 안전하게 달리면서 나 자신의 삶을 즐겁고 신나게 하면서 건강한 삶을 사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잠원 아파트 새벽 장이 서거나 24시간 문을 여는 마트에서 채소 등 생필품을 구입하여 자전거에 싣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뒤에 짐받이가 있고 앞에는 바구니가 달려 있다. 자전거  모양도 투박하고 무겁지만 튼튼하기만 하다. 단지 안전을 위한 헬멧 등  각종 장구는 물론 블랙박스, 전방 안전등 5개, 후방 안전등 5개 정도 달고 다닌다. 물론 앞 뒤 바퀴에는 휠 라이트를 달았고 반사띠도 충분히 부착하고 다닌다. 그래서 안전장구 및 안전장치는 충분히 갖추고 탄다. 대략 새벽 6시 반에서 7시 반 사이에 내방역과 방배역을 지나가는 데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혹시 나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혹시 지나가다 관심이 있으시면 아는체하면 반가울 것이다.

 

 

 

 

 

 

새벽은 하루의 시작이면서 생명의 시작이기도 하다. 어둠과 죽음의 암흑 속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만물이 생동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새벽 시간은 방심한 상대를 기습적으로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태양이 떠오르기전, 어둠에 사방에 깔린 새벽은 대부분 동물들이 지난 밤 피곤에 젖어 깊이 잠든 시간이기도 하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이기에 모든 게 준비되지 못한 흩으려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대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기습적으로 로마제국 본토인 이탈리아 반도 침공시 북이탈리아 지방에서 로마군과 대치하고 있던 중 한니발은 몰래 새벽에 병사들을 기상시켜 따뜻한 식사를 충분히 시키고 몸에 기름을 바른 상태에서 강을 건너 로마군 진지를 기습하였고 한니발군의 기습에 놀란 로마군은 아침도 먹지 못한채 뛰쳐나와 도망치는 한니발군을 추격하여 강을 건넜는데 차가운 겨울 새벽 강물 속에 뛰어들은 로마군은 추위와 한기에 몸을 떨며 한니발군과 대적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로마군은 추위와 한기를 견디지 못하고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여 전열이 무너지면서 한니발군에 패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 이스라엘의 4차에 걸친 아랍과의 전쟁시에도 항상 새벽에 기습적으로 적을 강타하고 승리를 쟁취하였다. 또 한국의 6.25전쟁은 김일성에 의해 사전 충분한 전투력을 갖추고 38선 전역에서 6.25일 새벽 여명을 기하여 전면 남침하였고 대비가 허술했던 한국군은 공격준비사격 후 처음보는 전차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북한군에 밀려 전전선이 붕괴되고 말았고, 개전 3일만에 수도 서울이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졌고 오산의 스미스 미특수임무부대도, 대전의 미24사단도 붕괴되고 사단장이 포로로 잡히는 등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낙동강까지 한꺼번에 밀리는 패배를 당하였다.

 

이처럼 새벽은 사전 준비한 사람에게는 기습적인 공격으로 전승을 가져올 수 있으나 새벽 시간을 소홀히 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밀리거나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새벽시간의 활용은 인생사의 승패를 좌우하는 역활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새벽시간은 인간에게 가장 취약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가장 유리한 시간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보통 서민은 퇴근 후 안락한 가정에 돌아와서 가족과 같이 즐거운 식사를 하고 하루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설계하며 맥주와 닭고기도 먹으며 텔레비젼에서 드라마, 영화, 연극, 음악회, 예능프로를 보며 편안한 복장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밤이 깊어지면 자녀를 재우고 부부가 사랑을 나누고 깊이 잠들게 된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거울을 보면 거슴츠레한 얼굴에 찌부둥한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지난 하루 피곤의 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자신이 눈 감을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사이 다른 사람은 이미 출근을 준비했거나 일찍 출근하여 하루를 먼저 준비한다. 늦게 출근한 사람이 당연히 무능한 직장인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들의 삶은 백년도 살지 못하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살고 있다. 시작은 장대하나 대부분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인간의 삶이 평화로운 시간을 유지하지 못하고 도덕이 무너지고 윤리가 상실되는 혼탁한 사회가 되는 것은 인간의 심성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선의 행함보다 악의 행함이 더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처럼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대부분 무너지는 데 바로 권력과 재물에 대한 탐욕이 이성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재물을 가진자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무위도식하고락을 추구하며 가난한 서민을 합법적으로 수탈하고 폭압하면서 삶을 영위하지만 귄력과 재물을 갖지 못한 가난한 서민들은 가진자들의 합법적인 수탈과 폭압속에 부귀와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쾌락도 제대로 추구하지 못하며 자신의 삶을 노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배기간 동안 지속적인 고통과 착취가 계속되면 가난한 서민들은 결국은 봉기하게 되어 있다. 물론 가진자 중에서 소외된 자들이 주동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존 권력에 대한 민중의 반항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혁명이고 반란과 내란이며 정부전복 음모다.

 

지금 우리사회는 이러한 권력과 재물의 빈부차이 때문에 병들어 가고 있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 짧은 기간이지만 5천 년 이래 기적적인 경제적 부흥을 이루어 지금은 비만이 넘쳐나고 성형과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등 삶이 비약적으로 윤택해졌지만 물질적으로 분배의 정의가 사라졌고 정신적으로 경제발전과 자본주의 성숙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서구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없이 너무나 빨리 받아들였고 그 와중에 경제발전을 이루어 가난에서 벗어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되었으나 정신적인 발전과 성숙이 병행하지 못하여 빈부차이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이 확산되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 신분상승을 위한 시스템이 무너지고 말았다. 정상적인 경쟁에서는 승리할 수 없고 착실한 노력만으로도 이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추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뇌물른 물론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고 있으며 사기, 공갈, 협박, 절도, 횡령이 넘쳐나고 있다. 하루 24시간 노예처럼 벌어도 각종 세금, 생활비, 양육/육아비용, 집마련/이자부담, 주.부식비, 외식비. 교통비, 교육비, 문화생활비, 전기/수도/가스/통신비 등으로 수입의 대부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저축은 커녕 노후를 위한 준비는 공염불에 불과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인간은 이성보다 감성에 빨리 반응한다. 고통이 길어질수록 쾌락은 용솟음치게 되고 그래서 인간은 고통에 비례하여 쾌락추구에 인간은 더 집중하는 본성이 있다. 최근 사회지도층까지 가세하여 확산되고 있는 도덕적 추락 인간이 아무리 수양하고 지위가 높아져도 인간 본연의 쾌락추구에는 나이와 신분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규범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방편에 불과하고 그것은 가난한 서민들에게만 해당되는 족쇄에 불과할 뿐이다. 삶의 대부분이 초적 쾌락을 추구하는데 대부분 돈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인간이 동물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며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권력욕, 정복욕, 재물에 대한 탐욕, 이기주의 ,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습성, 자신의 가족과 무리들이 사회를 지배하며 무한 번창하기를 바라는 종족번식본능 등 인간의 탐욕적인 본성이 거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변질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 중에는 오늘도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오토바이 타고 신문배달 하는 사람, 편의점 점원, 택시/버스기사, 청소차량과 환경미화원, 골목마다 나를 반겨주는 고양이 가족들, 폐지줍는 노인들, 새벽 출.퇴근하는 사람, 먹자골목은 새벽까지 젊은 남여가 술과 식사를 하고, 차에서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연인, 감시, 범죄, 추적, 경비, 방황, 노숙 등), 차에서 잠을 자는 사람, 노래방 아가씨 배달 차량, 경찰 순찰차는 기동순찰이 아닌 한 곳에서 기다리는 순찰차량으로 경찰대부분 잠을 자고, 캡스회사 차량과 경비원, 건물 관리인 및 경비원, 새벽 출근 건물 관리 및 청소아줌마들, 술취해 길바닥이나 벤치에 자는 사람, 술먹고 싸우는 사람들, 새벽 교회 가는 사람들, 부부 싸움 후 나와서 울고 있는 여자, 새벽 먹자골목이나 모텔 근방에서 짙은 화장과 미니를 입고 배회하는 젊은 여자들, 장거리 이동을 위해 나서는 사람, 새벽에 집으로 들어가는 차량과 사람, 택시에서 내려 급하게 집으로 가는 사람, 새벽 인력시장으로 출근하는 건설현장 인력, 골목길을 배회하는 노숙자, 운동이나 산책하는 사람, 애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물건 운반차량과 기사, 지방에서 새벽에 올라오는 택배회사 배달 물건 운반차량과 기사, 야식배달 오토바이 등등......

 

새벽의 모습은 괭음을 내며 달려가는 차량이나 오토바이, 버려진 각종 쓰레기,오물들,길바닥에 흩어져 있는 각종 전단지, 일수명함, 아기 귀저기, 담배꽁초, 답배갑, 술병, 라면컵,음료수컵,몰래 버려진 쓰레기 봉투, 길가에 버려진 불법 폐기물 등 새벽의 흉한 모습들이다.

 

동이 트기 시작하면  새벽에 고속버스를 내린 사람들, 지방으로 가는 사람들, 지방 대학교로 등교하는 대학.관광.광역버스와 줄서서 기다리는 대학생들, 지방 사찰로 불공드리려 가는 버스와 노인들, 주말에는 등산.여행을 위해 기다리는 버스와 등산객들, 아침 출근 차량들, 쉼터에 먹이를 찿는 까치,까마귀, 잡새, 고양이들, 등교하는 학생들, 지방으로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리야카로 동네를 돌며 어물을 판매하는 아저씨, 잠원 아파트 새벽 시장을 여는 아저씨, 성당 앞에서 두부 등을 파는 아줌마, 잠을 자는 택시기사 아저씨, 헬스크럽으로 가는 사람들, 김밥집, 분식집, 지하철 역 입구에서 김밥을 파는 할머니 등을 만나게 된다.

 

 

 

 

그리운 그 시절 추석......

추석연휴가 시작되고 내일이 백로이면서 추석이다. 3,0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고향을 찿는다고 한다. 고속도로는 만원이고 철도는 입석표를 겨우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암표상들이 무더기로 빼가고 늦게 표를 구하려고 하지만 표를 구할 수가 없다고 한다. 딸부부는 겨우 좌석표를 구하여 부산 시댁을 내려갔다. 며느리에게는 시댁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집안이다. 딸에도 시댁 불평을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직 철들기는 멀은 듯하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인내하면 추석은 즐거운 날이 될 것이나 자신의 자존심 찿고 나만 일을 시킨다고 불평하고 말 한마디에 속상해하면 자신만 불행해진다. 명절에는 누구나 말을 조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나 집과 비교하고 언행을 비하하거나 비난하는 언사, 곤란한 질문 등은 삼가하는 게 좋을 것이다. '취업은? 결혼은? 성적은? 자녀는 언제 가질 것이니? 벌이는 어떠니? 연봉은 많이 받니? 집은 언제 살거니? 돈은 얼마나 모았니? 어디서 이런 비싼 거 샀니? 좀 미리오면 안되니? 이게 선물이라고 사왔니? 내 선물은 왜 안 사 왔는데? 겨우 이걸 용돈이라고 주는 것이냐? 넌 성질이 왜 그러니? 결혼전 집에서 무얼 배웠니? 너 성형했니? 얼굴 점은 안빼니? 머리 모양이 그게 뭐니? 넌 대학 나왔다면서 그것도 모르니? 학교다닐 때 공부는 못했지? 막내니까 너가 해라, 좀 더 있다가 올라가지' 등등 상대를 비난하거나 다그치거나 비하하거나 옥죄는 말은 삼가하는 게 좋을 것이다. 대신 '얼굴이 좋아졌네. 고생이 많다, 내가 하마 넌 좀 쉬거라, 제가 할께요, 앞으로 이런 거 사오지 말고 빈손으로 와라, 처가집에도 가 봐야지, 좋은 사람 만날 것이다. 잘 될 거다, 꼭 부자되거라, 예쁘게 생겼다, 영특하게 생겼다, 나름대로 멋이 있네, 마음씨가 곱네, 너같은 며느리는 최고다' 등등 덕담을 주로하는 게 좋을 것이다.

 

부부는 부산 시댁에 내려갔고 아들은 지난주에 미리 다녀갔으니 처가집에서 추석을 보낼 것이다. 우리집에는 추석연휴 동안 아무도 올 사람이 없고 갈 데도 없다. 단지 우리 부부만 단 둘이서 차례를 모시고 평소와 다름없이 지낼 것이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런 명절이면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혈육을 확인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즐거운 명절을 보내는 게 인간사 보람일 것이다. 이제는 자식도 한 둘을 둔 가정에 그런 호사를 누릴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일요일 동태전과 두부전, 그리고 파전을 부치라고 마누라가 명령했다. 그래 이 나이에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내가 하는 수밖에...... 사실 요즘 피자와 햄버그에 맛이 길들여진 젊은 며느리들이 시어머니가 자상하게 알려주면서 명절 음식을 만들어도 어린 시절 먹어보지 않아서 굶주림이 베어있던 그 진정한 맛을 모른다. 가족이나 친척이나 선물을 받고 싶지도 않고 주고 싶지도 않다. 국회에 쌓인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사진을 뉴스에서 보았다. 그 선물들이 과연 국회의원을 존경해서 보내는 선물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 어떤 대가성을 바라고 주는 선물이며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보답하고픈 마음에서 보내는 정성어린 조그만한 선물이 진정한 선물이 될 것이다. 그것도 과한 가격이라면 뇌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이유없이 선물을 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며 존경과 사랑이 결여된 선물은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비빌 언덕이라도 있다면 인.친척들이 달라질 것이지만 별 볼일 없는 우리집에 선물 보낼 위인은 없다. 이런 명절날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얼굴을 볼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남이거나 이 세상을 떠난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5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출산정책을 구사한 한국은 지금 저출산으로 걱정이다. 나이든 30~40대 자식들이 아직 취업은 커녕 결혼도 못하고 집안 골방에 쳐박혀 게임에 빠지거나 도박에 빠져 웅크리고 있는 집안이 어디 한 둘인가! 그런 자식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억장이 무너지고 심장이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나이 40에 결혼해도 60이 넘어야 자식이 군대가고 성인으로 성장한다. 대자연의 섭리를 순종하지 못하는 인간, 그런 인간사회의 모순이 가져올 재앙의 시작이 될지 모른다. 

 

저출산이 계속되고 인구가 감소한다면 장자.난자은행이 생기고 인공부화시켜 원하는 부나 모가 키우던지 아니면 국가나 사회단체가 집단으로 양육하는 인간이 태어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로봇인간이 군대을 대신하고 재조업 등 산업현장에도 힘들고 더럽고 거친 일은 로봇이 대신할 것이며 결혼하지 않고 누구나 남여 로봇인간을 끼고 살 날이 올 것이다. 인간과 대화하며 서로 교감하고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 나타날 것이며 영화처럼 아이로봇 시대가 올 것이다. 그래서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부담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올 것이며 그래서 가정과 가문, 혈통이 없어지고 가정이 붕괴되고 집단적인 인공수정과 부화, 양육, 교육이 국가나 단체에 의해 수행될 것이다. 그때는 충과 효, 인간의 도리, 도덕과 윤리, 혈연, 가족, 가정, 헐통, 조상, 가문, 명절 민족대이동이란 단어는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 50년 아니면 100년? 그것은 바로 지구가 멸망으로 가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어린시절 추석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머리속을 지나가고 있다. 고향 우리집에는 추석이 되 가족/친지이 모여들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치개 냄새가 마을 어귀부터 진동하던 그 배고픈 시절이었다. 평소에는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을 참아가며 지냈지만 먹을 거리가 넘쳐나던 추석은 수학여행 전날밤 처럼 항상 기다려졌고 밤잠을 설쳤다. 사촌들과 같이 밤을 지새며 할머니 옛날 이야기도 듣고 밤참을 먹으며 가을밤을 지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어머님께서 부엌마당에서 준비하시던 추석 음식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밤, 대추, 과일, 송편, 생선, 탕, 소고기국, 흰 쌀밥, 고구마/부추/두부/동태 등 각종 전 등을 준비하시는 옆에서 조금 씩 얻어먹던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차레를 지내고 나면 추석빔 옷을 입고 마을로 나가 놀다가 친구들과 마을 뒷산에 오르기도 하고 알밤도 줍기도 했다. 단풍이 서서히 물들어가던 포플러 길을 걷기도 했고 마을 앞 금호강 강둑을 걷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저녁이면 친구네 집에 동네 친구들이 모여 놀기도 했고 같은 또래 여자 친구들과 합동으로 놀기도 했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 시절 고속도로가 뚫리고 공업단지가 들어서고 재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돈 맛을 알게 된 용기있는 마을 처녀.총각들이 도시로 도망을 가서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부모님 몰래 고향을 도망쳐 도시로 떠났그들이 추석날 고향을 찿아오면 온 마을이 뒤집혀졌다. 고무신에 몸빼만 입고 집안일과 밭일을 하던 시골 총각과 아가씨가 도망쳤다가 명절날 도시에서 돌아오는 날, 양장 투피스에 양산을 쓰고 루즈를 바르고 하이힐을 신고 선물 보따리를 손에 들고 나타난 것이다. 총각들도 마찬가지 넥타이에 멋진 양복을 입고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넘긴 멋진 모습으로 선물을 양손에 잔뜩 들고 고향을 찿았다. 마을에는 명절내내 그들의 무용담과 성공담으로 들떤 가운밤을 지샜다. 나중에 그들이 모아온 돈으로 대부분 초가지붕이었던 부모님 시골집 초가지붕을 헐고 스레트 지붕으로 교체했고 논이나 밭도 조금씩 매입했다. 소작농에서 토지를 가진 지주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명절내내 마을 어른들을 찿아다니면서 인사도 하고 마을 어른들의 환심과 부러움도 샀다. 저녁이면 마을 친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남아 있시골 처녀.총각 모두가 둘러앉아 부러움이 넘쳐나는 모습으로 눈이 충혈되어 밤이 깊도록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했고 자신도 가능하다는 무한한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명절이 끝나고 나면 마을의 처녀.총각들이 하나 둘 또는 집단으로 사라졌다. 모두 그들을 따라 도시로 떠난 것이다. 그들은 모두 60~70년대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초석이 된 공순이.공돌이가 되었으며 그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이었다. 고향을 도망쳤던 그들이 다시 고향을 찿는 것은 금의환향이었고 성공의 자랑이었으며 신분상승의 기회였던 것이다. 타인지향적인 귀향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명절 민족대이동은 해를 거듭할수록 계속되어 갔다. 이제는 고급 외제차에 자녀까지 대동하고 선물 보따리를 가득 싣고 고향을 찿아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 고향을 지키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고 고향을 찿을 연고를 상실하게 되면 점차 민족대이동도 수그러들 것이다.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잊지 못하는 것은 어린 시절 때묻지 않고 순수했으며 찌들지 않았고 행복했던 아련한 추억때문일 것이다.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 살아온 세태에 때묻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자 원초적으로 자신이 자란 생존터를 찿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심신을 정화하고 원기를 북돋아 앞으로 헤쳐나갈 미래의 새로운 삶에 더 충실하고픈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명절을 보내면서 가족간에 불화를 겪지 말고 항상 배려하며 위로하고 덕담으로 갈등을 이겨내는 즐겁고 슬기로운 명절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이무기로 전락하고 있는 나라

국가경쟁력 추락이 끝이 없다. 며칠 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4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144개국 중 26위에 머물렀다. 지난해보다 한 단계 밀린 10년래 최악의 성적이다. 2007년 11위까지 올랐던 한국의 경쟁력은 거의 매년 뒷걸음질을 거듭했다. 앞서 5월 나온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경쟁력 평가에서도 한국은 지난해 22위에서 올해 26위로 밀려났다.

어제 나온 평가는 아시아 경제모범국의 자존심을 짓밟는 참담한 성적표다. ‘아시아 4룡’ 중 20위권 아래로 밀려난 국가는 우리뿐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각각 2위, 7위로 선두권을 굳히고 대만도 우리보다 12단계나 앞선 14위다. 우리만 이무기 신세로 전락할 판이다. 중국 역시 지난해 29위에서 28위로 상승해 우리 뒤를 바짝 추격했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와 북한 미사일 발사, 개인정보 유출 등이 경쟁력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어제 받아든 성적표는 정부·정치권·기업의 신뢰 상실, 노동시장의 비효율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실제로 정책 결정의 투명성 133위, 해고 비용 120위, 기업 경영윤리 95위로 관련 항목이 줄줄이 꼴찌권이다. 툭하면 머리띠를 두르는 습관성 파업도 경쟁력을 갉아먹는 암적 요소다. 억대 연봉의 현대차 노조는 협상테이블을 걷어찼고, 금융노조는 어제 총파업에 돌입했다. 올해 노사협력 순위는 132위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부 규제다. 규제개선 측면에서의 법체계 효율성은 지난해 101위에서 113위로 추락했다. 정부 규제의 부담도 지난해보다 한 단계 낮은 96위로 내려앉았다. WEF가 설문조사를 실시한 지난 3월은 정부가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벌인 시점이었다. 정부의 규제완화 약속과 노력이 시장과 국제사회에서 별로 신뢰를 얻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송광호 체포동의안 부결, 후안무치한 국회

철도부품제작업체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재석 의원 223명 가운데 반대ㆍ기권ㆍ무효표가 무려 150표에 달하고 찬성은 73표에 불과했다. 이날 출석한 새누리당 의원이 130명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여야가 야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는 누누이 “방탄국회는 없다”는 말로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이 방탄국회를 주도한 것으로 나왔다. 야당의 동조도 수십표로 추산이 되는 만큼 ‘동료 감싸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군 4성장군의 추태, 나락으로 추락하는 군

깡통 계급장이 결국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군내 각종 사고가 다발하여 흉흉한 지금 4성장군이 벌인 추태는 국민들이 군이 어디까지 추락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결과가 되었다. 육사 35기 이후 40기 중반까지 당시 대부분 육사지원자원이 형편없는 저질 자원들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는 듯하다. 당시 공부하기 싫은 학생을 "너 육사갈래?"라고 하면서 조롱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그 기수들이 군의 중추적인 핵심 분야를 맡고 있다. 신중하지 못하고 처신이 바르지 못하며 생각이 짧고 언행이 일치되지 못하는 성향이 다분한 그룹이다. 그래서 군은 사실 위기이면서 사기가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태이다.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지금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개혁이 뒤따르지 않으면 환골탈태하기 힘들 것 같다.

 

 

올림픽 유치를 거부하는 주민들

서구 유럽 국가들은 올림픽을 주민들이 거부하는 움직임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강원도 평창이 2011년 확정되었을 때, 경쟁 지역이자 탈락 지역이었던 독일 뮌헨의 주민들은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 또 2년 뒤 2022년 겨울올림픽 개최 유치신청 과정에선 독일 뮌헨 등 해당 지역은 주민투표를 실시해 아예 유치신청 자체를 거부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조건과 땅값 인상, 경기장 건설로 건설기업, 은행이 챙겨가는 이익이 자명한 만큼이나, 지역공동체에 돌아오는 것은 적자와 부채로 인한 세금 증가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17일간 진행되는 행사를 위해 알프스의 오래된 자연, 경관, 문화가 파괴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일에서 올림픽 유치 반대는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고, 특정 이익집단을 위해 지역과 주민이 입을 경제적 손실을 방지하는 일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 일이고, 공적 예산을 공공 분야에 투여하도록 촉구하는 일이라 본다. 이 때문에 이 활동이 지역발전을 저해한다고 지탄받거나, 매국적 행위라고 비난받는 일도 없다.

독일만이 아니다. 스위스의 장크트모리츠-다보스,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도 주민투표로 2022년 겨울올림픽 유치를 부결했다. 스웨덴 스톡홀름도 의회의 반대로 신청이 불가능해졌다. 오스트리아 빈의 2028년 겨울올림픽 개최 추진 역시 주민투표 결과 무산됐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소치야말로 최악의 환경파괴가 이뤄진 올림픽 개최라는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소치 국립공원 안에서 오래된 수령의 주목과 회양목들이 대거 벌목됐고, 자연보호구역 내 광범위한 채굴이 행해졌다. 또한 종합경기장과 스키 활강장 40㎞를 연결하기 위한 도로와 철도가 천혜의 므짐타강을 제멋대로 지나며 소치 주민 식수원의 수질을 악화시켰다. 강 주변을 감싸고 있던 원시림도 훼손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장은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와의 인터뷰에서 “벌목된 나무 한 그루당 세 그루 이상 식재로 만회하겠다”고 했지만, 환경운동가들은 원시림을 베고 생태적 특성과 무관한 야자수나 덤불을 이식하고 생색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8년 평창 역시 자연보호구역 가리왕산에 세워지는 스키 활강 구간에 대한 반대와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대규모 국제행사 개최와 지역발전을 등식화하고 있다. 500년 이상 보존해온 산을 파헤치고, 공사비와 복원비용 2천억원 낭비를 감내하면서 가리왕산에서의 활강 경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대회 전 경기를 정선에서 개최하고 활강 경기를 용평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조정하면, 500년 숲의 가리왕산도 보전하고, 절약된 예산으로 주민들을 위한 공공 분야에 투자할 수 있다는 시민단체의 제안은 최문순 강원도지사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

임성희 녹색연합 전문위원

실용성과 합리성이 부족하고 환경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국민들의 세금을 무서워하지 않는 지방관의 모습이다. 전시.과시행정의 표상이며 백성을 위한 진정한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나게 한다. 탐관오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도지사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한 번 읽어 보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