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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2013년을 보내며......2

 

 

 

 

 

                             2013년을 보내며......2

  

                                                                               청권사와 겨울 하늘

 

한반도는 역사 이래로 얼어붙은 동토처럼 민중의 고난이 계속되어 왔다. 철저한 수탈과 탐욕으로 얼룩진 조선 500년은 가난하고 고통받던 민중의 등을 밟고 양반사대부들이 부귀영화를 누린 시대였다. 지나한 긴 세월의 권력싸움, 그리고 부패와 탐욕으로 나라가 결국 일제에 망하고 말았고 일제 강압통치 36년 동안 민중들은 또 다시 피눈물 나는 삶이 계속되었다. 

 

일제 36년간 한반도는 일제의 철저한 식민지 지배하에서 민중은 억압받으며 학살당하였고 전국토가 그들의 수탈대상으로 암울하기 짝이없는 동토였다. 항일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궐기하였으나 일제는 남한대토벌이라는 의병 토벌작전을 벌이며 무자비한 진압으로 수많은 생명이 강토에 피를 뿌려 목숨을 잃었고 강압통치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철저한 강압통치가 계속되고 일본 자본이 들어오면서 토지를 약탈하고 생산품을 수탈하는 등 강압통치가 계속되자 드디어 3.1의거와 광주학생운의거 등 민중저항이 일어났으나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맨주먹의 민중들은 수도 없이 고문.학살로 목숨을 잃었다.

 

친일파 등 나라를 팔아먹은 세력을 비롯하여 민족개량주의자, 실력양성론자 등은 친일성향이 강한 세력으로 일제와 타협하면서 민족을 개몽하고 실력을 양성하여야 한다면서 민중을 선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장투쟁을 주장한 세력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 중국, 러시아, 미국 등 해외로 이주하여 독립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일부 지식인들은 상해에서 국내외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도할 가정부인 임시정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원활동을 할 만한 재정적인 능력도 부족하였고 사회주의 세력이 성장.확산하면서 임시정부 내에서도 분파가 일어나 분열되기도 하였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 동.서간도로 이주한 유생, 관료, 지식인, 지주, 양반 등 조선인들은 그곳에 정착하면서 자생적으로 독립운동 세력을 곳곳에서 양성하기 시작하였는데, 나중에는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 등 3부로 성장하여 광복군을 양성하고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일제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령 자유시로 들어간 광복군 일부는 러시아령 독립군끼리 주도권 다툼에 휘말려 피살 및 무장해제는 당하는 등 자유시 참변을 겪었으나 다시 만주로 돌아와서 재기하여 국내 진공작전을 맹렬하게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참의부는 독립군 지휘부가 일본 침투부대에 의해 전멸당하는 고마령 참변을 겪는 등 고난의 시간이 계속되었고 나중에는 만주 지역의 독립군 통합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견이 달라 결국 통합에 실패하고 분열하는 등 통합적이고 조직적인 항일무장투쟁은 불가능하였다.

 

독립군들의 국내진공작전이나 일본군에 대한 공격은 일제에게 자극을 주는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 당시 일제는 만주침략을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러일전쟁,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일제가 만주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독립군들의 무장투쟁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조선 민중은 나라를 잃고 나서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모습이 처절하였고 이 모든 것이 조선조의 지도층 양반사대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었으니 수많은 이름없는 민중과 항일 의사, 투사.독립군들의 뿌려진 고귀한 피는 바위에 계란 던지는 꼴에 불과하였던 것이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아닌가.

 

3.1운동 등 국내 민중의 대규모 봉기 사건 이후 국내 민중운동은 노동운동, 농민운동, 소작쟁의가 주를 이루었다. 사회주의 사상이 전파.확산되면서 신간회가 창립되었고 광주학생운동 등 조직적인 민중운동 방향을 지도하고 항일세력을 결집시키는 등 주도적인 역활을 하였다.

 

 

1929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국인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공황은 수많은 생산시설을 멈추게 하면서, 1차 세계대전 뒤에 안정되오던 자본주의체제를 뒤흔들었다. 그 근본 까닭은 자본주의 자체 모순 때문이었다. 미국은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여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이른바 '뉴딜정책'으로 산업을 재건하고 수요를 늘림으로써 실업문제 해결하려고 했다. 또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와 식민지 모국을 묶는 블록경제를 만들어 공황의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세력은 대외침략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

 

세계공황은 후발 자본주의국가였던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차 세계대전 동안 급격히 발전된 생산력을 바탕으로 경제호황을 누렸던 일본경제는 전쟁이 끝나자 판매시장을 잃어 버리고 만성적인 불황에 빠졌다. 공황으로 생사를 비롯한 상품 수출이 크게 줄고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으며, 실업자가 크게 늘어났다. 농업공황도 심각했다. 실업자들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오고 누에고치와 쌀 값이 크게 떨어지는  가운데 지주들은 농민을 더욱 수탈했다. 일본 농가소득이 1926년에 견주어 1931년에는 50~60%나 줄어들 만큼 농촌경제가 무너져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노동자와 농민들의 투쟁이 많이 일어났다.

 

공황의 여파로 위기가 깊어진 일본 독점자본은 자본 수출을 확보하려고 일본.조선.만주 블록체제를 만들어 공황에서 벗어나려 했다. 일본은 1931년 만주 침략을 계기로 군수 부문과 만주에 자본을 투자하면서 중화학공업화로 나갔으며, 한동안 불황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만주 투자에 기대를 걸고 있던 중화학공업화는 제품과 원료를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서 들여왔으므로 큰 무역적자를 낳았다. 무역적자가 커지자 일제는 군수공업을 바탕으로 하는 중화학공업을 키워 적자를 줄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침략전쟁을 계획했으며, 마침내 1937년 중일전쟁, 그리고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일제는 전시체제로 돌입하여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지역을 확보하여 시장을 확대함으로써 경제공황을 돌파하려 하였으나 만주 침공 후 중국 내륙 진공으로 전쟁은 확산되어 갔고 나중에는 동남아 지역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진출함으로써 이권 충돌이 불가피한 미국과 원치않던 태평양 전쟁까지 확전함으로써 일제는 종말의 막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1930년대 초 일제는 식민지 조선민중을 탄압하고 만주로 진출하려는 사전작업으로써 경찰력과 군사력을 늘렸다. '문화정치'때 2개 사단이던 조선주둔 일본군을 만주사변 뒤에 1개 사단을 더 늘려 3개 사단이 되었다. 차츰 군사력을 강화하여 태평양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23만 명 남짓 군대를 두었다. 만주사변 뒤 경찰은 치안을 유지하고 전시물자를 동원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일제는 경찰조직을 보조하고 조선민중을 더욱 통제하려고 지방 '친일공공단체'를 할용했다. 그래서 일제는 관변 청년단체.자경단.경방단.방공단.재향군인회 등 반관반민 단체를 이용하여 경찰 임무를 보조하도록 했다.

 

일제는 1930년대 초반 일본에서 공산주의자를 검거하는 데 효과를 본 '경무관' 제도를 조선에도 실시했다. 이것은 경무관이 사상운동 탄압을 전문으로 맡아 지방 경찰과 중앙의 보안과를 밀접하게 연결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일제경찰이 통일적인 공조체제를 마련한 것은 조선 곳곳에서 혁명적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사회주의운동도 생산현장과 결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제는 1932년 '사상결찰망'을 크게 늘려 사회주의운동이 노동자, 대중과 결합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일제는 군대.경찰.사법기관 같은 억압기구와 그 밖의 보조기관을 통해 민중을 옥죄는 한편, 사상마저 철저하게 통제하려고 했다.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비롯한 '사상통제법'으로 민족해방운동가와 대중을 분리시키려 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1930년대 전반기부터 '사상선도'를 빌미로 운동가들에게 사상전향을 강요했다. 1936년에는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만들어 사상전향을 강요했다. 일제는 경성.함흥.청진.평양.신의주.대구.광주 등 7곳에 '보호관찰소'를 마련하고 사상범들을 보호관찰대상으로 삼아 '국제의 본의(本義)'를 몸에 익히라고 강요했다. 또 일제는 전향자에게 형을 감면, 면제해 준다고 선전하면서, 가족을 통해 비전향자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1930년에서 1935년 사이에 사상사건으로 일제에 체포된 조선인은 약 1만여 명에 이르렀다.

 

 

                                                                                                 내방역 전경  

 

만주사변과 중국 침략에 이어 일제는 미국의 화와이 미태평양 함대를 기습하여 일부 전력을 괴멸시킴으로써 전세를 한꺼번에 장악하였으나 일제의 화와이 기습에 경악한  미국민의 분노가 일자 미국은 유럽에서 독일.이탈리아와 전쟁을 진행하는 한편 일제와도 또 다른 전쟁을 수행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전력을 재정비하여 대일전에 본격적인 공세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거함거포 시대였던 당시까지는 대형 군함을 만들어 함포로 적 함선을 격파하는 전술이 점차 항공모함을 이용한 장거리 함재기 공격으로 전술이 바뀌면서 태평양 전쟁의 분수령인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 주력이 대부분 괴멸됨으로써 전세는 역전되어 차츰 일본 본토로 미국이 옥죄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일본군의 결사항전과 자살특공대의 공격으로 수많은 인명의 희생이 뒤따르는 가운데 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국내 여론에 미국은 그동안 비밀리에 개발하였던 원자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소련의 참전하여 사할린, 만주 등 북에서 밀려오고 미폭격기의 본토 폭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군에게 오키나와까지 내준 일제는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미군의 본토 상륙에 전원 옥쇄할 각오로 대비하고 있었고 가미키제 특공대의 마지막 발악적인 공격도 미군의 물량전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일제는 원자탄 두 방에 두 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는 뜻하지 않게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일본군 무장해제 지역이 달랐던 탓에 북한에는 소련군,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함으로써 남북이 분단되었고 수차례 남북분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나 소련의 공산세력 확산 의도로 실패함으로써 결국 남북에는 각각의 정부가 세워지게 되었다. 뒤이어 터진 한국전쟁은 강대국의 대리전쟁이기 전에 김일성의 민족해방전쟁, 남조선 적화통일, 한반도에 김일성 단독정권수립, 즉 소련의 위성국을 한반도 전체에 세우려는 의도로 전폭적인 소련의 지원하에 발발한 김일성의 남침전쟁이었다.

 

 

                                                                                          내방역 전경

 

                             

유엔군을 포함하여 수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고 전국토를 초토화시킨 3년간의 지리한 전쟁이 휴전으로 종식되고 먼지만 남은 폐허위에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한 부정선거를 포함하여 암울한 시대에 분노하여 일어난 대학생들의 4.19 민주항쟁 결과 자유당 정건이 붕괴되고 이승만이 하야함으로써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혁명 주도세력인 대학생들과 정치인들 간에 주도권 다툼이 일고 '북으로 가자'는 구호가 난무 하는 등 안보 정세는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는 극단의 혼란 사태가 전개되었다. 이러한 혼란 사태를 우려하던 군부의 박정희를 비롯한 혁명 세력에 의해 5.16 군사혁명이 발발하였고 제3공화국의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박정희는 강력한 리더쉽으로 경제개발을 시도하였고 서독 광부.간호사 파견, 월남전 참전, 한일협정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게 되었고 그 눈물어린 자금으로 악착같이 노력한 결과 오늘날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세게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역사는 항상 공과가 있기 마련. 중국의 한무제는 자식과 마누라까지 죽이는 잔혹한 황제였으나 영토를 만리나 넓혔고 북방의 흉노족을 고비사막 북쪽으로 물리친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로 기록되듯이, 박정희도 군사독재, 유신독재의 오명을 쓰고 있지만 5천년 동안 억압과 수탈로 고통이 지속되어 오던 민중들의 가난을 벗어나게 해준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오늘날의 이 풍요가 민주화도, 민주주의도 아닌 한 지도자의 과감한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어느 정권도 백성들이 배부르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지 못했지만 박정희는 그 어느 정권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하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권도, 민주화 정권도 자신들 밥그릇 챙기기에 그치고 말았고 이념과 사상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다. 존경하는 김씨 정권에 아부하기 바빴고 퍼주기에 바빴다. 북과의 모든 약속은 종잇장에 불과하였고 보내준 자금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북한정권의 배만 부르게 해주었다. 청렴을 내세웠지만 주변은 온통 오염된 비리 투성이었고 자신들의 족벌, 지역 이익과 권익 찿기에 부심하였고 종북.친북 세력만 키웠지 진정한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의 김씨 세습정권은 폐쇄정권으로 오로지 군사력 확장과 권력유지에만 안간힘을 쏟다보니 경재적인 비참한 상황으로 북한 주민은 인권이 유린되고 탈북자가 늘어나고 기아와 굶주림에 억압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국민들이 비만이 넘쳐나고 다이어트에 열중하고 있는 남북 간에 웃지못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지난 1년간 블로그에 올린 글을 되돌아 보았다. 조선의 역사를 기술하는 내내 회한과 안타까움이 1년 내내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이런 역사가 우리들의 어쩔수 없는 운명인가?', '지금의 현실을 과거에 투영해보면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를 되묻고 싶다. 5천년 역사에 경이적으로 일군 이 풍요를 과연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쩌면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다시 더 일취월장 할 것인가 아니면 나락으로 다시 떨어질 것인가는 우리들에게 달렸고 그것이 우리들의 당면 과제일 것이다.

 

 

  

 

 

 

우리의 현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아도 조선 말기적인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는 듯하다. 지도층과 가진자들이 부를 독식하고 비리와 부패가 넘쳐나고 있는 현실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정의가 사라지고 공정이 무너진 사회, 개천에서 용나기는 글렀다는 사회, 자신의 신분을 향상시킬 방도가 없는 사회, 정상적인 방법으로 되는 것이 없는 사회, 청년실업이 넘쳐나고 노숙자, 폐지줍는 노인들이 늘어나도 속수무책인 사회, 초고령.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수립하지 못하는 사회, 집단이기주의가 넘쳐나고 매일 시위와 데모가 넘쳐나는 사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조리 투성이의 법조계, 리베이트가 관행이 되어버린 의약계, 대학이 대학이 아니라 장사하는 대학으로 변질된지 오래고 대학 입시가 수시로 바뀌는 사회,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범람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초역 사랑의 교회, 종교 건물이 도심을 파고 들고 있다.

 

경제는 살얼음판 

미국 경기가 살아나면서 내년 세계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퍼지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삼성전자 등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기업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쌍두마차인 현대자동차마저 원고·엔저 영향으로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내수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년에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환율변동과 금리상승, 신흥국 경제둔화 등으로 경영환경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한계기업들이다. 몇 년간 지속된 해운·조선·건설경기 침체로 웅진, STX, 동양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 이어 한진, 현대 등도 돈 될 것은 다 팔면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 3곳을 팔아 금융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3조3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고강도 자구계획안을 내놨다. 대한항공도 지난주 에쓰오일 지분과 노후 항공기 등을 팔아 3조5000억원을 확보하고 계열사인 한진해운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0여개 외항선사가 문을 닫았고, 국내 3위 해운사인 STX는 법정관리 중이다. 2위인 현대상선과 1위인 한진해운도 풍전등화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 수년간 부동산경기 침체로 건설사를 끼고 있는 대부분 그룹들도 어려움에 처했고 1400여개 협력업체를 거느린 시공능력 16위의 쌍용건설마저 법정관리 기로에 놓였다. 부채비율 최상위 300개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279.2%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높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업들이 사라질지 모른다.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기나 한지 묻고 싶다.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고 한국의 간판 기업들이 무너져 가면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재벌과 부자 특혜라는 과거 잣대만 들이대면서 경제활성화법안을 꽉 움켜쥐고 있으니 안타깝다. 거대한 파고를 넘기 위해선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때다. 시간은 많지 않다.

 

 

 

이어도 방공망 선포, 정부의 한심한 태도
새로운 대한민국 방공식별구역(KADIZ)이 62년 만인 지난 15일 오후 2시 정식 발효됐다. 우리 공군 항공통제기와 해군 해상초계기가 발효 직후 처음으로 이어도 남단 KADIZ 구역까지 감시비행에 나선 역사적인 날이었다.

새 KADIZ는 기존 KADIZ의 남쪽 구역이 ‘인천 비행정보구역(FIR)’과 일치되도록 조정됐다.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인접국과 중첩되지 않게 우리 영토인 마라도와 홍도 남방의 영공, 이어도 수역 상공이 포함됐다. 다행스런 일이다.

중국이 지난달 23일 CADIZ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이후 우리 정부가 이에 대응하는 새 KADIZ를 마련하기까지 보여준 태도와 해명은 실망스러웠다. 정부당국은 이어도가 바다 속 암초(暗礁)이지 해면 위에 있는 섬(島)이 아니어서 영토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설명을 했다. 배타적경제수역(EEZ) 문제로 봐야 한다는 얘기였다. 또 중국의 영공 방위 개념인 CADIZ에 이어도 상공이 들어갔다고 해서 이어도 관할권을 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는 시비를 감추고 JADIZ를 발표했을 때와 같은 태도였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재추진하던 이어도의 날(9월 10일) 조례 제정도 정부가 요청하고 중국이 반발해 지난 13일 다시 무산됐다.

이처럼 해수면 4.6m 아래에 있는 이어도는 우리의 흐린 영토 개념 속에서 가능하면 거론되지 않는 게 좋은 존재였다. 이어도에 2003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떤 통한(痛恨)의 사건들이 벌어졌을지 참담하다.

이어도는 사람이 사는 우리나라 마라도와 가장 가깝다. 국제해양법상 관할권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엄연한 우리 영토인 이어도에 대해 우물쭈물할 이유가 없다. 정당한 것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시비가 발생하면 국제기구와 국제법규에 호소해 해결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인접국들이 자국의 안보와 영토 관할 확대를 꾀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이어도 실효지배를 무시하려는 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끝없는 긴장을 요구하는 동북아지역의 냉엄한 현실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100여년 전 대한제국 시절 서구 열강들이 대한제국을 어떻게 다루고 능욕했는지를 상기하며 역사인식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이어도는 앞으로 대한민국 역량을 가늠할 시금석이 되고도 남는 소중한 영토다.

 

'무크' 시대가 전개된다

대규모 공개 온라인 강의를 뜻하는 `무크(MOOCㆍMassive Open online Courses)'가 전세계 교육 환경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강의 방식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넘어 전세계에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 하버드뿐만 아니라 호주, 유럽, 아시아의 유수 대학들까지 동참하며 폭발적으로 퍼져 나가는 상황이다. 국내 오프라인 대학들에서도 온라인 강의 수를 늘리거나 오픈 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이제 대학이 문을 닫거나 개혁을 시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대학이 없을 듯하다. 무크의 확산은 장사치 대학들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철도파업

내가 보기에 이번의 철도파업문제는 귀족 노동자인 철도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에서 비롯되엇다고 생각된다. 박대통령은 영국의 대처 수상처럼 과감하게 공기업의 혁신을 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이번 철도파업 해결에 달렸다고 본다. 무노동 무임금, 파업 손실 금액 부과,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서만 귀족 노동자로 변한 한국의 노동계를 혁신시킬 수 있고 무너져가는 경제를 살리고 공기업의 혁신과 효율을 기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적자를 거듭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년봉 8천에 가까운 고액을 챙기면서 자신들의 밥그릇에 금이 갈까봐서 이번 파업을 일으킨 것이다. 민노총까지 가세하여 노동자 인권을 주장하지만 모두가 제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꼴이다.

 

여론과 정쟁에 휘둘리지 말고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쉽만이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쪼개기는 기정사실화되어 있고 가상의 민영화만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본말의 전도이다. 쪼개기를 막아야 민영화도 막아진다. 유일한 흑자노선 KTX를 떼어가면 코레일은 반신불수가 되어 결국은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노동자들이 대폭 구조조정될 것이다. 그것을 막자는 의도가 아닌가? .

적자 공기업은 반드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의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길 뿐이니 국민들만 봉이 된다. 국민은 그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제에 국회에서 과연 무엇이 진정한 철도산업의 살 길인지, 시설과 운영의 통합을 비롯해 KTX 쪼개기 등 철도산업 전반에 대한 깊숙한 논의를 통해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사회적 부검

최근 서울고법 행정9부(부장판사 박형남)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판에 심리적 부검을 도입해 세무공무원 김모씨의 자살 원인을 밝혀내고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서야 사회적 부검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재판부는 사회적 부검 결과 업무 과다가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을 2심 재판부가 뒤집은 것이다.

김씨의 유족 4명과 직장 동료 3명을 면담한 감정인이 “김씨가 개인적·경제적 이유 없이 순수하게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때문에 자살했다”고 진술했고, 2심 재판부가 검증절차를 거쳐 감정인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념·세대·계층·지역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갈등을 제때 해결하지 않으면 국가 발전에 큰 장해물이 될 수 있다. 갈등이 폭발하면 국가와 사회가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 원인을 규명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부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지난 5천 년 역사와 비교하여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백성들이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인 풍요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을까? 우리들은 풍요라는 마취제에 마취되어 몽롱한 정신에 노래나 부르고 있는 게 아닐까? 정치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채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고 권력형 비리가 난무하는 현실, 사회 곳곳이 썩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비리와 부패가 넘쳐나고,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 경제마피아들의 국부 빼먹기와 유출, 신의 직장 공기업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언론이 무차별적인 폭거를 자행하고 있는 상황, 연예인이 젊은이들의 비젼이고 꿈인 사회, 군대가 버림받아 갈곳을 잃고 쏘면 맞고 터지는 힘없는 군대, 미국의 찟어진 핵우산 아래 국방.안보가 과연 언제까지 지켜질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전후 63년, 오늘날까지 무수한 시행착오와 진통을 겪으면서 가난과 굶주림에서 해방되었고 억압과 구속에서 자유와 인권, 자본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자유 대한민국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나 급속한 경제적인 성장은 물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잉태되기 시작했고 정신적인 붕괴 사태를 야기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의 내부적인 갈등관계로 전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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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 붙어 있던 동토의 땅 대지에 봄의 따뜻한 훈풍이 불면 모든 생명이 다시 서서히 움튼다. 새들이 하늘 높이 날으면서 짝을 찿아 교미하고 식물은 꽃을 피우고 나비와 벌을 부르며 교접의 계절이 시작된다. 화사로운 봄이 지나고 나면 무더운 여름이 찿아온다. 무더운 여름은 강렬한 태양의 빛을 받아 동식물의 성장을 도모하고 서서히 결실을 맺으면서 풍성하게 영글어 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 동토가 풀리지 않은 상태같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주변 강대국 세력이 틈만 나면 밀고 들어올 기세다. 그런 가운데 조금 풀린 날씨에 국민들은 노래부르며 즐기고만 있을 뿐 바깥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민중들의 삶의 현실은 제3공화국의 경이적인 경제개발과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적인 풍요를 어느정도 누리고는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고통과 괴로움, 서러움과 억울함, 비참함과 빈곤감,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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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곳곳에 토한 자국을 많이 보게 된다. 요즘 년말 송년회.망년회가 많은 때라 사람들이 술을 과다하게 먹고 토한 자리다. 대부분 색갈은 붉은 색을 띠고 있는데 비둘기들이 열심히 쪼아먹고 있다. 그것은 아마 이 사회에 대한 불만과 고통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술이 취하도록 먹어야 울분이 풀리고 고통이 잠시 마비되기에 취하고 싶고 깊이 잠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되는 것이 없는 사회,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 개천에서 용은 커녕 미꾸라지도 나기 힘든 나라,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나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치 현실 등 모든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살아 갈 수 없는 나라와 사회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일부 직장에서는 송년회.망년회 분위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술에 찌든 년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다보면 장갑 한 짝이 버려져 있는 겻을 많이 본다. 본인도 모르게 흘린 장갑이지만 버려진 장갑 한 짝이나 본인 주머니에 남아 있는 장갑 한 짝도 사용할 수 없어 결국 버리게 된다. 장갑처럼 짝을 잃으면 버려야 하는 것처럼 이혼하면 가정이 파괴된다. 요즘 이혼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로, 탈선, 불륜, 폭행, 성격차, 자존심 싸움, 시댁과 갈등 등등으로 헤어지면 그때부터 또 다른 불행은 시작된다. 바꿔봐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 겉으로 보아서는 사람의 한 치 속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고속터미널 사거리

 

남자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바람을 피우기 쉽다. 왜냐하면 돈이면 어떠한 미인이라도 가질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반반한 여자에게 돈 있는 놈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그래서 여자들은 미인이 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자기 관리에 투자한다. 즉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돈이 없는 가난한 잘생긴 여자는 돈을 위해서는 정조도 거침없이 제공하는 사회풍조다. 그것이 바로 매춘이지만 그것을 누가 탓할 수 있을 것인가?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죄 없는 자,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 보아라" 라고 했을 때 우리 사회에서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나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매춘도 젊은 시절 한 시절에 불과하다. 그래서 돈이 없는 가난하고 못생긴 여자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래서 얼굴 성형과 체형관리에 목숨을 건다. 길을 가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지 않으면 이미 사회적으로 수명을 다 했다고 보면 된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리현상이다. 인간을 초월한 돈의 가치는 부모도, 인륜도, 천륜도, 우정도, 정조도, 순결도, 양심도, 가족도,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강남성모병원

 

또 한 해가 미련없이 떠나는 기차처럼 누구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떠나가고 있다. 아침 여명을 뜷고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이 분주한 삶에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듯 붉게 물든 석양을 남기고 서산 너머로 넘어가는 것처럼 두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의 영겁, 역사의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다. 나의 인생도 마찬가지로 별다른 의미 없이 한 해를 더 살았다는 것이 만족하고 역사의 간이역에 잠시 머물다 가는 외로운 나그네처럼 다시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나라는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은 시작되었고 빈부차에 의한 사회적 갈등도 같이 시작되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더 많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 갖가지 권력형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 갖지 못한 자들은 가난과 고통을 벗어나고자 권력자에게 항거하였다. 인류의 역사를 보아도 어디 평화로운 시절을 제대로 누린 적이 얼마나 있던가? 힘이 강한 민족은 힘이 약한 민족을 침략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을 포로를 잡아 노예로 부렸다. 정복지가 늘어나면서 나라는 부강해졌고 귀족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융성하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타락해 갔다. 창업 초기에는 강력하던 군대가 장기간 평화를 누리면서 점차 나태해지고 군기가 빠지고 귀족들이 군대를 기피하고 오합지졸로 변하고 만다. 그러다가 발흥하는 다른 민족의 침략을 받고 군대가 패전하면 찬란하던 문화와 함께 멸망을 길을 걷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였다.

 

지혜로운 지도자와 지도층을 만나면 나라의 존속 기간이 좀 길어지고 그렇지 못하면 얼마가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문화도 언어도 역사도 사라지고 타 민족에 동화되어 민족의 역사를 잃고 만다.

 

 

 

 

나라가 망해야 정신 차리는 민족

 

나라가 망해야 정신차리는 민족. 바로 우리 민족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이 망할 즈음 친일파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 일제 36년 동안 수많은 의사, 열사 등 독립투사들이 강대한 군국주의 일제에 맞서 항거했지만 그 의지는 가상하였으나 바위에 계란치는 격이었으니 그 얼마나 무모한 항거였는지 모른다. 러일.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만주사변을 준비하고 중국을 침공할 일제를 상대로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조선말 흥선의 개혁이 성공하고 갑오개혁 등 각종 개혁이 제대로만 이루어졌더라도 일제에게 그렇게 허망하게 나라를 송두리채 피한방을 흘리지 않고 상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양반사대부들이 잘나서 나라를 되찿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고 권력투쟁으로 당쟁이 격화되면서 외교.국방.안보보다 내부 권력쟁탈과 부귀영화에 온 열정을 쏟아부었던 시기였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땅이다. 신라시대 장보고가 그랬고 거상 임상옥이 그랬다. 좁은 반도에 제한된 농지에서 생산되는 수확에만 의지하던 조선은 민중을 수탈하지 앟ㄴ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은 조선은 국제무역을 통해서만 부를 이룰 수 있었고 대외무역만이 조선이 살아갈 길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좁은 땅에서 생산되는 양곡 등 물량에 조정의 재원을 모두 의지했으니 나올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민중들이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탐관들의 수탈이 극에 달하였으니 어디 백성들이 한 번 배부르게 먹고 지낼 수가 있었겠는가? 의적 장길산이 보여주듯 백성들은 수탈을 견디다 못해 유랑객이 되어 산천을 떠돌아 다니면서 걸인이 되거나 산적이 되었다. 탐관들의 수탈을 견디지 못해 동학이 일어났지만 일본군을 불러들여 철저하게 진압하였다.

 

나라가 다행히 자신의 힘도 아닌 강대국의 힘에 의해 해방을 맞이했다. 우리 자력으로 해방을 이루기에는 불가능했다. 역사를 가정하지 말라지만, 만약 일제가 미.소.중국과 전쟁 중 휴전을 맺고 평화회담이 이루어졌더라면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로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며 지금쯤 국민 대부분이 일본말을 사용하며 일제에 동화되어 일본인이 되었을 것이며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민족도 문화도 역사도 모두 사라지고 일본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문화를 숭상하며 일본인이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은 폭도나 반적으로 낙인찍혀 해외를 떠돌다가 소리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식민지 백성의 삶은 보나마나 노예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국토도 좁고 인구도 적다. 약소국의 운명을 벗어나기 힘들다. 핵무기로 무장한 주변국은 언제라도 한반도를 유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큰 소리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우리가 핵무기를 당할 재주나 있을까? 일제는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에 핵무기를 가질 능력이 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만 비핵화를 주장하며 미국의 우산 아래서 노래부르며 놀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정치.사회는 뒷걸음질 치고 있고 시대정신을 호소할 만한 지식인은 사라졌고 위선과 파벌,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집단이기주의.지역이기주의가 시대정신이 되고 말았다. 친북.종북.용공 세력들이 사회 각처에서 날뛰고 둥지를 틀고 있다. 정신은 목줄을 놓은지 오래고 정의도, 공정도, 평등도, 양심도 사라진지 오래다. 모두가 국부 빼먹기에 여념이 없고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고 있으며 오로지 돈에 양심도, 체면도, 명예도, 윤리.도덕도 모두 버리고 목숨을 걸고 있다. 경제는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물거품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라가 망해야 정신을 차리는 민족인가? 지금의 풍요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3대가 모여 앉아 만두를 빚고 있지만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저런 조그만한 행복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앞선다. 

 

끝으로,

저 블로그를 방문해주시고 글을 애독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새해에는 더욱 행복하시고 건승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서초동 올림 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