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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늦가을 12 : 약소국 국민의 꿈과 삶

 

 

 

 

 

강남의 늦가을 12 : 약소국 국민의 꿈과 삶 

 

  

                                                                              새벽 고속터미널, 뉴코아 앞에서

 

 

11월도 벌써 중순이 지났다. 지난 주 며칠,  그리고 토요일 밤에도 가을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었다. 농촌의 가을걷이는 대부분 마무리 되었을 것인지 의문이다. 날씨가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영하권에 육박할 것이라니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뉴코아 건물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다. 추수감사절도 지났다.

 

수능시험 대란을 겪고 대학입시전형이 발표되는 등 학부모와 학생들은 대학입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끝이없을 것이다. 정부와 교육부는 자신들의 정책 발표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국민들에게 무언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미 고질병이 되어 갈핑질팡하는 대학입시제도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대학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이런 나라, 혈연과 학벌, 지방색이 줄기차게 핏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국민들, 외모와 간판과 졸업장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사회, 이제는 우리도 신시대를 맞아 새로운 기치관과 인생관으로 사회가 탈바꿈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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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반포상가 뒷 골목 새벽 풍경

 

 

김장 담그기

 

우리집도 지난 주말에 김장을 담갔다. 이제는 사계절 음식이 되어버렸지만 겨울 반찬 중 한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김치, 그래서 주부들이 가족 건강을 위해서 직접 김장김치를 담그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 먹거나 바쁘다고  음식을 시켜서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그 음식은 재료와 요리를 믿을 수가 없다.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비싼 재료를 사용할 리가 없고  정성도 없으며 조리도 각종 조미료를 덤뿍 넣어 만드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먹거리 프로를 보면 대부분 가짜 재료, 대부분 수입산 싼 재료와 불량재료를 사용하거나 국산과 섞어서 사용하는 등 눈속임 음식이 많다. 지저분한 것은 물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든 음식을 우리는 모르고 먹고 있는 것이다. 먹다 남은 반찬이나 음식을 재사용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밀가루 한 포대로 30만원 이상 남겼다는 어느 시골 중국집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만드는 부억에 들어가보면 음식을 먹을 정도로 청결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다보니 집에서 직접 김장을 담그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무슨 바자회 같은 행사시에나 김장을 담그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 김치를 사다 먹거나 시골 부모님 집에서 담근 김장을 가져다가 먹는다. 또 요즘은 절임배추가 유행인데, 절임 배추를 사서 담그는 경우 절임에 들어가는 소금이 문제가 된다. 김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금인데,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국산 서해안 소금(부안)이 제일이라고 한다. 값싼 중국산 소금이나 정재염을 사용할 경우 김장맛은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미내랄이 전혀 없는 정수기 물을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김장은 직접 담그는 정성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나고 보관도 도시에서는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장기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옛날 김장 맛은 아닐 것이다. 가능하면 휴일을 선택하여 부부가 같이 담그고 또 김장을 담그는 것은 주부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필요한데 매년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담그는 것은 더 맛있는 김장을 맛보지는 못하는 남편의 불행일 것이다. 그리고 주먹구구식이나 대충은 김치맛을 그러치기 쉽다. 천연 자연산 재료 선택과 각종 양념의 구입과 계량, 순서, 절임 시간과 정도, 양념 넣는 방법, 보관방법 등 김장에 대한 넓은 식견과 지식이 겸비되면 맛나는 김치를 먹을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너무 짜거나 싱겁거나 질기거나 빨리 쉬거나 냄새가 나거나 하면 김치 맛은 별로다. 좋은 재료 선정과 정확한 물량 계량으로 담그는 김장은 시원하며 아삭하고 적당한 감칠맛이 나는 김치가 될 것이며 밥맛을 더욱 나게 하고 가족의 건강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홍씨나 꽃게로 담근은 김장도 잇다. 그래서 김장은 일반 반찬에 비해 재료 선별부터 염장, 보관까지 돈, 시간, 정성, 다양한 비법이 필요해 초보 주부가 시도하기가 쉽지 않을게다.    

 

김장에 대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참고로 싣는다. 올해 김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배추를 절이는 소금은 수입산이나 정제염보다 자연 건조가 잘 된 천일염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베이비뉴스

 

 

배추는 중간크기, 천일염은 자연건조된 것으로 준비

 

'쉬운 김치'의 저자이기도 한명숙 요리연구가는 "김치 담그기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삭한 김장김치는 몇 가지 비법만 알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며 "다양한 비법 중에서도 김장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배추를 절이는 염장"이라고 조언했다.

 

한 연구가가 제안하는 '아삭아삭한 김장'의 성공비법은 배추와 소금 선택에 달려있다. 우선 배추는 속이 꽉 차고 부피에 비해 가벼운 것이 좋다. 이런 배추가 섬유질이 적당해 아삭아삭한 김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크기는 너무 크거나 작은 것보다 2.5~3kg 정도 나가는 중간 크기가 적당하다. 흰 줄기 부분은 꺾었을 때 툭하고 탄력 있게 꺾이는 배추가 좋다. 힘없이 꺾이면 물을 많이 머금어 김장김치가 무르기 쉽다.

 

한 연구가는 "배추를 절이는 소금은 수입산이나 정제염 보다 자연 건조가 잘 된 천일염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연건조된 천일염을 사용하면 배추가 금새 무르고, 씁쓸한 맛이 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천일염은 정제염에 비해 우리 몸에 좋은 나트륨, 칼슘, 마그네슘, 망간 등 약 88개의 풍부한 천연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어 더 건강하고 감칠맛 나는 김치를 완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CJ 식품연구소 관계자는 "일반 가정에서는 천일염을 자루째 구입해 바닥에 3개월 정도 간수를 빼고, 눈에 보이는 정도의 불순물을 제거해 사용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다"며 "요즘에는 자연건조와 여러 차례의 불순물 선별 과정을 거쳐 김장에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깨끗하게 만들어진 천일염도 판매하고 있다. 때문에 김장용 천일염 구입 및 사용을 원하는 주부라면 이런 제품을 눈여겨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염도는 2%, 시간은 10°C에서 10시간 정도가 적당

 

배추를 잘 절여야 아삭하고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다. 염장방법은 지역이나 사람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배추 한 포기당 염도 2%가 정도가 가장 맛있고 아삭하다. 하지만 최근 김치의 과도 나트륨 함량이 문제가 되면서 1.7% 가량으로 염도를 낮춘 저염 김치도 관심을 받고 있다.

 

염장을 할 때는 배춧잎 사이사이에 소금물을 적셔주고, 잎사귀 보다는 줄기 부분에 켜켜이 천일염을 뿌린다. 그리고 배추의 속이 위로 올라오도록 차곡차곡 넣은 후 남은 소금물을 부어준다.

 

5시간 후에 배추를 위 아래로 한 번 뒤집고 다시 5시간 정도 놔 둔다. 절인 배추는 뿌리 쪽을 잡아 꺾었을 때 소리가 나지 않고, 흐물거리지 않으면 적당하게 잘 절여졌다고 보면 된다. 염장이 잘 된 배추는 흐르는 물에 3번 정도 헹군 후 채반에 놓고 물기를 뺀다.

 

이 배추에 각종 양념을 한 김칫소를 넣으면 완성이 된다. 양념은 감칠맛, 시원한 맛 등 젓갈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젓갈은 두어 가지를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더욱 깊고 진한 맛을 낸다.

 

갓 김장을 한 김치처럼 아삭한 식감을 오래 유지하려면 보관도 중요하다. 김장김치를 저장할 때는 김치 위에 푸른 겉잎을 1~2장 정도 덮어 두면 김치가 마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김치는 상온에 하룻밤 뒀다가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김치냉장고에 보관 할 때는 금방 먹을 것과 오래 두고 먹을 것을 나눠 보관하여 공기와의 접촉을 피한다. 김치는 4~8℃를 유지하면서 약 20일 정도 숙성하면 김치가 아삭아삭하면서도 가장 맛있는 상태가 된다.

 


  

                                                                                          내방역 근방 가로수 단풍

 

인생은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삶

 

태초에 인간이 태어나  지구상에서 원시적인 동물에서 점차 두뇌가 커지면서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어 갔고,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지내면서 가족 단위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사냥과 채집을 위주로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족이 늘어나자 먹을 것이 더 필요하게 되었고 더 많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각종 사냥 도구를 개발하고 저장법을 개발하고 불을 발견하여 익혀 먹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청동기 시대에 석기보다 더 단단한 사냥도구를 만들 수 있었고 무기도 만들었다. 그러다가 철기 시대를 맞아 먼저 철기문화를 맞이한 민족은 석기와 청동기로 무장한 부족을 무찌를 수가 있었는데 철기가 더 단단한 무기와 농기구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터키 지방의 고대 앗시리아 민족이 철기를 개발하여 바빌로니아 국가를 붕괴시킨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인류는 점차 가족들이 모여 부족단위로 모여 살기 시작하였는데, 사냥과 채집을 병행하면서 씨를 뿌려 농사 짖는 법을 알게 되었고 식량을 생산하게 되었다. 부족단위로 모여 살면서 집단적인 노동력을 이용하여 식량을 생산하게 되었고 저장법을 개발하여 잉여 농산물은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비하여 저장하는 지혜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농사짖기에 자연 환경이 열악하고 기후가 고르지 못한 지역, 즉  사막, 혹한지, 산악지역, 침수지역 등 이러한 지역에 살던 부족들은 식량이 부족하자 인접한 다른 부족을 침공하여 부족민을 노예로 삼고 식량을 탈취하는 도적질이 성행하게 되었다. 또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하고 지혜가 부족한 부족은 다른 부족 마을에 저장된 잉여 농산물을 탈취하는 행위가 시작되었는데, 바로 무리들이 집단으로 달려가서 무력을 사용하여 식량을 탈취하고 부족민을 포로로 잡아 노예로 부려먹는 일이었다.

 

이렇게 지구상에서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자 부족 집단 간에 무수한 정복활동이 전개되었다. 청동기를 발견한 민족이 석기로 무장한 부족을 병합하였고 철기를 발견한 민족이 청동기 무기로 무장한 민족을 진압하게 된다. 무기의 성능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라졌다. 그래서 인류는 부족간에 수많은 다양한 무기들이 개발되었고 조직적인 훈련을 통해 강한 집단의 병사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인구가 늘어나고 집단이 확대되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신분이 차별화 되기 시작하였고 질서가 필요하여 각종 규정과 법이 정해지기 시작하였고 부족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부족공동체는 타 부족의 침공에 대비하여 울타리를 치고 함정을 파고 병사를 양성하고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렇게 대비책을 강구한 부족은 힘을 비축한 다음 다른 부족의 침공을 물리치고 타 부족을 침공하여 승리하면 포로로 잡은 그 부족 집단을 노예로 삼기 시작하였다. 그 노예들은 각종 노역과 농사에 동원 되었고 병사로 보충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생산량은 더욱 늘어났고 점차 힘을 증대시키면서 일정 지역을 평정하게 된 부족 집단들이 힘이 강한 유능한 자를 지도자로 선출하여 뿝고 그 사람이 지도에 따라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집단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원시적인 형태의 지도체제, 즉 국가의 건설이었다.

 

인간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자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하게 되었고 더 넓은 농토와 노예가 필요하게 되자 정복 활동이 확대되었고 농사법도 개발하게 된다. 힘이 센 부족이 힘이 약한 부족을 병합하거나 합병하면서 정복과 영토 확장의 인류 역사는 전개되어 갔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무력이 곧 힘이었고 평화와 공존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고대 로마의 영광은 강력한 무력으로 카르타고를 포함한 지중해 주변의 수많은 강대국을 제압함으로써 천년 이상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의 번영 속에서 피어오른 탐욕과 사치, 비리와 부패는 로마를 멸망의 길로 안내하고 말았다. 로마의 영광을 실현한 인재로는 카르타고를 제압한 스키피오 아프리카 누스 영광이 있었고, 지금의 유럽 지역인 갈리아를 정복한 시이저의 영광이 있었다. 또 유대전쟁을 제압하고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서 영원히 추방한 로마도 결국 망하여 역사의 페이지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은 평생 중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은 짧다. 통상 10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자마전투에서 한니발을 누르고 승리하여 개선한 후 겨우 1~2년 영광을 누렸고, 시이저는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점령하고 반대파를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잡았고 수년간 누리던 권력의 정상에서 결국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절친한 연인의 아들이며 친구인 부르투스를 포함한 반대파 원로원들의 칼을 23군데나 맞고 암살당하였다.

 

 


 

 

 

 

약소국 국민의 꿈과 삶

 

인간의 꿈은 무엇일까? 가장 보편적이고 동물적인 꿈을 서술한다면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평생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오랜세월 장수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자손들이 자자손손 번창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약소국의 국민들은 이런 꿈을 실현시키기가 어렵다.

 

힉문적으로는 마슬로우는 인간의 욕구 5단계를 내세우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5단계가 있는데, 생리적 용구-->안정의 욕구-->사회적 욕구-->존경의 욕구-->자아실현의 욕구로 전개되는데, 이 단계 중 1차적인 욕구인 생리적인 욕구이다. 의.식.주 즉,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는 욕구를 말한다. 현재 우리는 의.식.주의 기본적인 욕구는 해결되었으나 2차적인 안정의 욕구는 아직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 안정의 욕구는 의.식.주의 안정성을 말하는데, 지속적인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물론 의식주는 기본적인 것이 해결되면 더 좋은 것을 원하게 되고 현재와 같이 양극화,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될 경우에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3차적인 욕구로 사회적인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사회봉사, 사회단체, 기업인, 공무원, 선거를 통해서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다음으로 4차적인 욕구가 발생하는 데 존경의 욕구이다. 주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말한다. 기업인, 종교인, 정치인, 법조계, 교육자, 과학자, 예술인 등을 통해서 존경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평소 꿈꾸어오던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마지막 단계인 5차적인 욕구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시대와 지역, 종교, 환경, 국가의 국력에 따라 그 꿈의 기준이 달라진다. 강대국의 국민은 이러한 꿈을 실현할 수 있으나 약소국 국민은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힘들다. 그래서 모든 국가가 강대국이 되기를 희망한다. 강대국이 된다는 것은 바로 국익을 확장할 수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익을 확장한다는 것은 타국의 부를 차지하는 것이고 타국을 지배하며 종속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역사를 보아도 강대국은 타국을 점령하여 자산을 수탈함으로서 부를 누렸고 약소국은 노예가 되어 가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꿈을 실현한다는 것은 어렵다. 요즘 인기드라마 '기황후'가 방영되고 있지만 고려가 몽고 치하 100년 동안 몽고를 등에 업은 부원배들이 날뛰면서 고려 국왕을 무시하고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며 재산을 모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몽고는 몽고인 고려 왕후와 부원배들의 말만 듣고 고려왕을 아침 저녁으로 갈아치웠고 별도로 심양왕을 두어 고려왕과 갈등관계를 조장하였다. 기황후는 자신의 동생 기철을 죽인 개혁군주 공민왕를 치기 위해 몽고군 1만을 동원하여 고려를 침공하게 하였으나 국경에서 고려군에게 결국 패전하고 물러났다. 기황후는 몽고가 명나라에 쫓겨 도망치면서 결국 목숨을 잃는다. 

 

또 조선 500년 내내 명나라에 조공을 바쳤고 아침 저녁으로 제사와 장례, 당파싸움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또 일제치하 36년간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국부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해방 후 한국은 미국과 손잡은 60년 내내 불평등 조약과 노후 무기 처리장으로 변하였는데 바로 찢어진 핵우산 아래서 북의 위협에 항상 불안한 안보를 유지하고 있다. 원자력 개발 통제, 미사일 족쇄, 발사체 제약, 우라늄 추출과 사용 통제, 무기개발 및 수출 제약 등으로 적정수준 이상의 군사력 증강을 제한하고 있다. 기타 각종 불평등 무역, 금융자본 유출, 다국적 기업 이윤 방출, 국내 기업 사냥, 저작권 및  특허분쟁,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과다한 주둔군 비용 요구, 증가되는 미군범죄, 양공주 양산 및 퇴폐문화 확산 등으로 이 나라는 약소국의 운명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국부 유출로 정부 재정과 개인빚이 하늘 높은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 경상수지가 늘어나도 기업은 이윤이 늘어날지 몰라도 국민들에게 전혀 체감이 되지 않는다. 취업이 어렵고 결혼은 물론 이혼을 밥먹듯이 하고 자녀 양육에도 엄청난 부담이 작용한다.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으나 소수의 가진자들이 권력과 부를 거의 독식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후준비 없이 노령화되어 가고, 독신자, 가정붕괴, 백수, 저출산, 성폭행.성매매, 알바, 비정규직, 엄청난 사교육비, 폭리, 성형 등에 시달리며 노예처럼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알바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가장, 신분을 뛰어 넘을 수 없는 사회, 개천에서 용나기는 글렀다는 사회, 부자가 부자를 낳고 가난이 가난을 낳게 된 구조, 정의와 공정이 사라지고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사회,  사회 각 분야에서 곪고 있는 비리와 부패, 나랏돈이 쌈지돈이 된 공무원 사회, 금융위.금감원 퇴직자들이 각종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서 저지르는 저축은행, 동양사태 등과 같은 대형 금융사고는 이 사회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으며,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과 성과급 돈잔치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종교의 세계 구원의 허실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타락한 이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나타난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수많은 종교도 이 세상을 구원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들로 인해 인류의 역사는 종교적 갈등이 더욱 확대되었고 이교도 학대와 멸족, 거대한 성전, 각종 재물 갈취, 이기심과 탐욕, 우상숭배로 가득찬 성경, 성지회복을 외치며 수차례 원정을 시도한 십자군 원정 전쟁, 암흑기의 중세, 마녀사냥 등 종교가 세상을 지배할 때 인류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값비싸게 잘 경험하였던 것이다. 중세 교황이 지배하던 시대는 모든 논리가 종교논리로 점철되었고 인류의 발전이 정지되었으며 문명과 문화가 퇴보하는 시기였다. 결국 그리스도교는 점차 심각하게 부패하여 결국 종교혁명을 맞이하여 두 동강 나 버렸다. 또한 우리 역사에서도 최고의 번창과 예우, 그리고 전성기를 누리던 신라와 고려의 불교가 결국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고 말았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종교천국이 된 우리나라는 자신을 희생하며 진정한 종교인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도 있지만, 그리고 이 사회에 긍적적인 역활을 하는 점도 인정되지만, 최근 뉴스에 나오는 순복음 교회 같이 일부 몰지각한 교주의들의 비리와 부패가 판을 치는 것을 보더라도 교주가 내뱉는 모든 말은 위선이며 가식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결국 그도 한 인간으로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탐욕으로 결국 종교는 구원의 역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유대교가 지향하는 천국도, 불교가 지향하는 극락도 인간세상에는 오지를 못했다.

 

종교는 이념이나 사상과 비슷하여 이교도나 다른 이념이나 사상을 제거해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수많은 전투적인 구호와 이교도에 대한 인명 살상과 철저한 살륙과 복수를 강조하고 있다. 교황이 세계를 지배하며 시대, 즉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는 암흑기였고 부패한 종교가 종교개혁을 기화로 신교와 구교로 분파되었고 지금은 수많은 분파가 생겨났다. 모두가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성경을 해석하고 자신이 교주가 되어 새로운 사생아 같은 종교집단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처음 이도교로 출발하였다가 점차 교세가 커지면 정통으로 인정받는 종교집단이다. 불교계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종파와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불교재산을 두고 사찰 쟁탈전을 포함하여 종단끼지 권력 싸움과 재산 다툼이 비일비재하고, 기타 재물과 교세를 이용하여 전세계를 휘졌고 있는 통일교,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있는 신천지 등 이름도 생소한 별의별 종파가 준동하고 있고 그들 선동가 교주들이 잠실 경기장에서 벌이는 엄청난 사기극에 수많은 국민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종교의 탈을 쓴 이들 사이비 종교들이 대부분 여색과 재물을 탐하는 교주들에 의해 순진한 신도들의 정신과 피, 재물을 갈취하고 빨아 먹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한가지 예로 중국의 역사에서 청조말 '그리스도교 나라를 세워 천국같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위세는 대단하였는데, 팔기군이 부패하여 무력한 상태라 청조가 무너질 지경에 까지 이르렀지만 이홍장을 민간 용병 조직이 영불연합군과 힘을 합쳐 겨우 진압하였던 반란이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이미 내분으로 지리멸렬되어 반란군이 괴멸되던 순간 남경의 궁궐에서 수많은 처첩들과 같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처럼 종교와 사상을 빙자한 이상국가는 절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왜냐면, 그 언저리에는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인간의 탐욕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교가 지향하는 천국같은 이상사회는 불가하다. 

 


 

 

 

지하드는 성전이 아니다

 

원래 수렵과 농사를 지었던 변화무쌍한 자연에 인간이 너무나 무력하여 항상 천(天)신과 지(地)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수렵의 풍성과 농사의 강우를 기원한데서 전통적인 무속신앙이 시초였다. 

 

현재 이슬람 극단주의는 천국을 보장한다면서 성전을 조장하면서 이교도나 적대시하는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 무차별적인 자살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이슬람의 극단주의는 시아파에서 출발하였다. 

 

아브라함이 유일신 사상을 처음 내세울 때 주변의 대부분 민족들은 우상을 숭배하던 시대였다. 유일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가끔 유명 종교인들이 하느님 말씀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브라함이나 마호메트나 마찬가지로 모두 스스로 갈망하다가 환청을 들은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기 환청이지 진정한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여러 종교가 거의 비슷하듯이 허무맹랑항한 성서와 교리 등은 모두가 백성들을 혹세무민 시키기 위한 위작에 불과하다. 성서의 창세기만 보더라도 남의 나라 설화, 전설, 민담을 모방하고, 남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왜곡.조작하여, 이상주의, 신비주의를 배경으로 유태인 랍비들이 수천년 동안 첨가,수정, 복사를 해 오면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다고 성경에 나오는데 다른 민족은 무언가?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그렇게 편파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가진 인물인가? 우리 민족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성서에 의하면 동양에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양반가문에 서자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천만이 넘는 기독교 신자들이 매일 교회에서 통곡하면서 기도하고 있지만 조선 시대 양반집 서자에 불과하다. 서자들이 아버지의 자식이나 출세길은 없었다. 다만 서자들이 이땅에서 하느님을 빙자하여 탐욕을 부리고 있을 뿐이다.

 

유대교는 예수를 신으로 만든 그리스도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유일신은 하느님 뿐이라는 사상이다. 그래서 모세가 가나안 땅이 멀리 보이는 곳에서 죽었을 때 유대인들은 몽골의 징키스칸의 무덤처럼 무덤을 흔적도 없애 버렸다.  이는 후일 사람들이 모세를 추앙하며 성전을 세우고 신으로 만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기원후 70년 전후 남의 유대와 북의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로마의 통치를 받을 때 유대인 사회는 분리되고 혼란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고대하던 중 예수가 나타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민중을 선동하는 불순분자로 인정하여 그를 로마 총독에게 고발하였고 십자가에 처형하였다. 그가 죽고 그의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전파하면서 교세를 확장하자 유대인들의 배척으로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을 떠나 중동을 포함하여 로마제국 전역으로 전파하여 나갔다. 초기에는 이단으로 몰려 엄청난 탄압을 받았으며 순교자도 부지기수 나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동로마 시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종교는 정권의 힘을 타고 순풍에 돛단 배처럼 빠르게 전파되는 특성이 있다. 그리스도교가 그랬고 이슬람교가 그랬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승격시켜 하느님 다음의 신으로 추앙하기 시작하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신격화시킨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이단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전세는 역전되어 중세가 되면서 유럽 전역이 그리스도 국가들이 탄생하였고 교황이 각국의 국왕을 지배하는 정교일치의 시대가 열렸다. 유대인들은 기원후 70년 당시 로마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켜 수 년간 저항하다가 마사다 요새 항전을 끝으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영구히 축출되었으며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유럽지역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도 강압받았고 '개토'라는 유대인 정착촌에 갇혀 살아야 했으며 마녀 사냥 등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학살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기원후 7세기 경 마호메트에 의해서 이슬람교가 탄생하게 된다. 마호메트 역시 알라신을 유일신으로 믿으며 예수를 부정하며 신격화를 거부한다. 예수를 그냥 유대인 랍비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시조로 하여 마호메트식의 신앙윤리강령을 작성하였는데, 바로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다. 마호메트는 아마 당시 부패해지던 그리스도교의 난맥상을 연구한 결과 자신만의 새로운 종교관을 세웠는데, 바로 하루 다섯번의 기도를 올리는 것과 축일에는 염소나 양을 잡아 같이 나누어 먹으며 가난한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를 벌이는 것이 의무이다. 평생 누구나 한 번은 반드시 마호메트 묘지가 있는 곳으로 성지순례를 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교가 주일에 교회에서 한 번 예배를 올리지만 이슬람교는 알라신(하느님)을 하루 다섯번 경배하는데 새벽, 아침, 점심, 저녁, 잠 잘 때 예배를 올리게 되어 있다. 그만큼 기도와 예배를 생활화하여 신앙심을 강력하게 고취시키고 있다. 또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흰옷을 입고 기도를 올리게 되어 있는데 모스크에서 기도시 평민과 거지 뒤에 왕과 귀족이 자리한 경우 기도를 하면 왕이나 귀족이 거지의 엉덩이를 향해 절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즉 겉으로는 신분의 차이를 없앴고 평등의 종교이며 형제의 종교이다. 그러나 코란에 명시된 종교적인 규율은 엄격하다. 모든 법령에 앞서 코란의 율법이 우선한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오스만 투르크 등 이슬람 세력이 팽창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지금의 스페인 지역인 이베리아 반도 등지에서는 그리스도교와 장기간 영역확장의 길고 긴 싸움을 벌였다. 이슬람 점령지는 대부분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점령주민들에게 이슬람교로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는데 단지 국가에서 이슬람교인과 타종교인 간에 세금 등 국가에서 주는 혜택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이슬람 점령지 그 곳에서 살려면 이슬람교로 스스로 개종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이슬람의 극단주의, 자살 테러, 즉 성전을 수행하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이 태동하였다. 과거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벌할 즈음 이란 북부 지역을 정벌할 때 이야기다. 카스피 해를 뒤로한 산악 골짜기에 비밀스런 난공불락의 성채가 있었는데, 그 성채 안에는 성서에 나오는 천국처럼 인공으로 천국을 만들어 포도주, 꿀, 우유, 물이 흐르고 수많은 과실수와 꽃정원, 아름다운 반나체의 젊은 여인들이 악기를 켜며 밤이면 환락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다. 이 성채를 세운 사람은 이슬람 광신도이며 원리주의자였던 시아-이슬람의 일파인 이스마일파의 한 분파인 아사신파의 한 노인이 있었는데, 바로 '하산 사바흐'라는 사람이다. 그는 젊은이에게 대마초로 환각에 빠지게 하여 성채에 대려다가 일주일 정도 천국을 경험하게 해주고 다시 마취를 시킨 다음에 마을로 대려가 깨어난 다음에는 노인이 천국의 경험을 묻고 다시 천국에 가고 싶으면 자신이 지시하는 일을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정말 천국같은 곳에서 실제로 환희의 시간을 경험한 청년은 노인의 지시대로 목숨을 걸고 암살을 사주하는 암살단의 일원이 된다. 암살단을 조직한 이 노인은 목적은 모든 것이 자신의 종파를 위해서 타종교 말살, 타민족/국가 지배자 암살 등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탐욕과 사악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지하드 성전은 이러한 이슬람 광신도의 한 노인에게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며 이슬람교의 과격집단의 한 분파에 불과하였으나 지금은 이슬람권 전체에 파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타종교이며 중동의 석유지배를 노리는 개신교 국가인 미국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자살테러를 자행하는 것이 진정한 마호메트의 종교 창시 의도나 이슬람 종교가 지향하는 진정한 성전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앞으로 이슬람권과의 대테러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게 덜미를 잡힐 수 있는 잠재적인 걸림돌로 대 이슬람 전쟁이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9.11테러는 전대미문의 기발하며 절묘한 그리고 장기간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테러였다. 우려하는 것은 그러한 테러를 계획하고 시도하여 성공하였다는 것은 앞으로도 그들이 생화학무기나 소형 핵무기 등 다른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또 다시 미국을 저강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빈 라덴의 추종자들이 복수를 외치며 말하는 것처럼 미국의 위싱톤, 뉴욕, 보스톤, 시카고, 필리델피아, LA, 센프란시스코 등지에 소형 원자탄이라도 터지는 날에는 미국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며 세계는 핵전쟁의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리크, 아프칸, 이집트, 리비아에 이어 시리아가 진행중이며 다음에는 이란, 파키스탄 순으로 미국의 중동 국가, 즉 이슬람 국가에 대한 전복 활동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불행한 대테러 전쟁이 언제까지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게 된다. 고대 지중해 신흥강자로 부상한 로마가 카르타고와 벌인 지중해 패권전쟁이던 1, 2, 3차 포에니 전쟁이 200년 이상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아직 그 끝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종교적인 이론으로 제시하는 천국이나 극락, 공산주의 사상에서 지향하려던 인민들의 이상국가, 그리고 사이비던지 아니던지 편협한 사상을 내세우며 민중을 선동하여 기존 권력에 항거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말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열정에 넘치고 비젼을 제시하며 기존에 분노하며 천국, 극락, 사랑과 이상, 복지를 설파하지만 대부분 결국은 그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를 살펴보고 오늘을 반성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태도는 미래를 열어가는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오늘날에 과거처럼 똑같은 오류를 다시 반복한다는 것은 역사를 알지 못함일 것이다. 역사를 소홀히 취급하고 배척하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그 흔적조차 사라져갔다. 그러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후세인들이 선조들이 기록한 역사를 보며 다시금 불행한 국난을 당하지 않도록 경계함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유성룡의 <징비록>은 그 역사적 가치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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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420년 전 임진왜란은 정말 한심한 전투였고 안타까운 전투였고 지리한 전투였고 울분의 전투였고 가슴이 저미는 전쟁이었다. 이 블로그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임진왜란을 기술한 이유는 임진왜란이 조선의 역사에서 변혁의 시점이었고 존망의 기로였으며 이를 극복한 조선의 500년 역사에서 가장 클라이막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조선이 임진왜란을 당하게 된 것은 당시 임금 선조와 조정의 무능, 훈구척신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에 진출한 사림들은 서로 학풍과 혈연, 지연에 따라 분파되어 서로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당쟁에만 치열하였지 백성들의 삶은 물론 주변 국제정세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다가올 미래의 국난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햇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군부는 제승방략 전략.전술 문제점을 예측하지 못함은 물론 당시 군제에 따라 유사시 동원 가능한 군사는 대부분 종잇장에 불과하였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지도층이 대부분 군대를 면제받은 것처럼 양반들은 대부분 군역을 회피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였던 것이다. 또 장수들은 적에 대하여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한체 우물안 개구리처럼 자만에 빠져 일본군을 왜구 수준 정도로 얕잡아 보았다. 또 방어 임무를 받고 현지로 출동한 장수들도 지형도 미숙하고 적정도 제대로 모른체 방어에 절대 유리하고 전술적으로도 중요한 지형지물이나 천험의 애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절대 열세한 전력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평야나 개활지에서 적을 맞아 대적하여 대부분 대패하고 말았다. 또 적의 침공에 대비할 군사 체제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문제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조선 창업 후 약 200년 동안 평화기를 누리면서 문민우위의 조정과 국방에 대한 소홀한 인식이 대부분이었고 그것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 사회의 단적인 병폐였던 것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420년 전 7년 동안 진행된 당시의 전쟁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함부로 폄하는 것은 역사를 바로 보는 자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전해지는 자료들에 의해 치세를 주도한 선조, 당시의 조정, 그리고 장수들의 언행을 살펴보면 권력에 대한 탐욕, 자신의 목숨에 대한 아까움, 공리공론으로 국익보다 당론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루어졌으며, 유교 서적을 통해 충효사상를 따갑도록 배웠지만 실제는 아니었다는 점과 성리학의 이상론과 인간 심성의 이중성 등 인간의 속성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대부분 고관대작 집안 출신의 관료들은 현지 사정도 잘 모른체 임금 선조의 의중에 부합되는 언행으로 일관하였고, 적이 침입하자 선조와 조정은 도망치기에 바빴고 심지어 만주로 망명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임금, 그로인해 전선과 지역을 책임지고 지키던 관료와 장수들은 적의 위세에 놀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성, 군선, 무기, 식량, 백성을 버리고 군사들을 헤쳐버린 다음 도망치기에 급급하였고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승리한 다른 장수를 모함하거나 비난하며 자신의 몸보신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교훈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다. 우둔한 지도자와 정권 아래서는 백성들의 삶이 고난과 불행을 당하게 되어 있고 현명한 지도자를 만나면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지는 법이라는 점이다. 지도층과 가진자들은 유사시 자신의 목숨 부지와 몸보신으로 도덕적 책임정신이 희박하다는 점, 머리만 좋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많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지도자로 부적합하다는 점, 국방을 소홀히하면 반드시 외침을 당하고 국난을 초래한다는 점, 지도층이 권력투쟁에 빠지고 갈등이 심화되면 국론분열이 일어난다는 점, 아무리 우수한 무기와 병력을 가진 전력이라도 지휘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는 점, 지도층이 부패하고 백성이 곤궁이 처할수록 국난을 당하기 쉽다는 점,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인재를 등용하면 반드시 훌륭한 인재를 만나게 된다는 점, 나라의 교육이 병들어 젊은이들의 바른 정신과 윤리가 무너진 나라는 국난에 처하게 바로 망하지만 교육이 바로 선 나라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점,  역사에 이름이 남는 인물은 반드시 자신의 기록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기술하고 남겼다는 점 등등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420년 전 조선의 상황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주변 국제정세는 시시각각으로 빠르게 돌아가고 주변 4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으며 미.중의 세력분쟁은 점점 그 도를 더해갈 것이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우리 미래에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들이므로 그들과는 운명적인 관계를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태평양 바다 건너 이억 만리 미국이라는 나라의 손을 잡고 한반도 남쪽에서 배수진을 치고 패권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중국, 군군주의 부활을 꿈꾸며 대동아공영권을 획책하고 있는 일본, 김씨 세습왕조를 유지하기 위해 적화통일을 목표로 군비증강에 여념이 없는 호전적인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북한 김씨 세습 정권은 경제가 파탄나고 아사자와 탈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도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체제유지와 군비증강에 여념이 없다. 즉 평양의 김정은 정권 핵심층과 열성 공산당원들만이 모여 살고 있는 600만  주민들 외에는 절대적인 빈곤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것도 북한 주민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탓일 것이다. 

 

나라가 망하려면 지도자가 부패하고 공직사회가 비리로 얼룩지며 안보와 군비를 소홀히 하고 지도자는 적과 싸우는 장수를 의심하며 파벌싸움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것이 망국의 지름길이며 갈등을 조화롭게 해소하지 못하면 적에게 이로움을 주어 나라가 망하게 된다. 우리들의 역사에서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듯이 우리는 과거를 모르고 살고 있다. 역사를 잊은지 오래 되었고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 과거를 들추면 남에게 보이기 싫은 자신의 출신성분이 드러나고 태어나 자란 곳과 가정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 과거의 행적을 살펴보면 부끄러운 면이 대부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과거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조상의 위대성을 꾸며서라도 강조한 이스라엘 민족의 성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기책이며 조작된 역사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고 후손들에게 매일 교육시키고 있다. 오늘날 유대민족이 이스라엘 땅을 2,000여 년만에 다시 되찿게 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고구려의 고토인 만주 땅을 되찿아야 한다고 역사학자 어느 누구도 강조하고 있지 않다. 발해 역사가 중국, 러시아, 일본 손에 놀아나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일부 학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손놓고 입다물고 있다. 이런 역사 의식이 약소국인 우리들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50~60년대의 배고픈 어려운 시절에 자란 부모들에 의해 유전자 전이로 인해 대부분의 30~40대 국민들은 폭식을 즐기게 되었고 인스탄트 식품 등 과지방질 음식이 넘쳐나자 비만형의 자녀들이 많이 나타난 것이 그 증거이다. 배부른 자들의 특징이 악착함이 부족하고 나태한 사고를 갖기 쉬우며 비교적 욕심이 많다. 비만형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이 먹으면 잠이 오고 비만은 그 속도를 더하게 된다. 배고픔은 정신을 맑게 해주고 악착함을 더해주며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배고픔을 극복하는데 급급해오다 보니 국민들은 정신도 없고 영혼이 없으니 포퓰리즘에 동화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군중심리에 잘 휩쓸리고 TV 고발프로에 잘 흥분하고 경기장에 나가서 흥분하고 네티즌 말한마디에 뭉치며 밖으로 뛰쳐나가 각종 집회나 촟불시위까지 동참하여 잘 뭉치는 민족이다.

 

그동안 우리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 불철주야 달여온 선현들의 노력 덕분에 이제 보리고개같은 배고픔도 잊었다. 나라는 두 동강 났지만 평양의 지배층을 제외하고 다같이 굶고 가난한 북쪽보다 남쪽은 운 좋게도 경제개발이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덕분에 이제는 청소년들을 포함하여 배고픈 시절의 선대들의 유전자로 인해 너무 먹게 되어 비만자들이 넘쳐나는 나라다.  거지나 머슴살이하던 사람이 배가 부르게 되면 서서히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웃을 무시하고 가진 것을 자랑하고 뽐내게 되어 있고 사치와 허영에 방탕하게 되기 쉽다.

 

100년 전 안중근이란 대한제국의 한 젊은이가 일제의 대한제국 멸망의 원흉이던 이등박문을 할빈역두에서 권총으로 저격, 암살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결국 여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처형되었지만 지금 우리는 그의 사상도 정신도 잊어버리고 그의 동양평화사상도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숭고한 정신과 처절한 삶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저 안중근 의사, 이등박문을 저격하여 살해한 독립투사 정도로 알고만 있었다. 그에 대한 전기도 한 번 읽어보지도 않았고 그의 정신과 사상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수많은 독립투자 후손들이 가난과 차별속에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모두가 오로지 현실에 급급하여 왔으며 권력과 재물에 탐닉하여 왔다. 수많은 선혈들이 흘린 피의 댓가로 이 땅을 찿았건만 정치 지도자들은 오늘도 냄새나는 권력과 재물 욕심에 온 나라가 비리공화국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교육자, 기업가, 정치인, 종교인 할 것 없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자살하는 나라다. 나라 전체가 영혼도 없고 정신도 없다. 존경받을 지도자도 없고 흠모할 선각자도 없다. 뇌물이 윤활유처럼 사회를 움직이고 있으며 나라의 장래는 연예공화국이 될 징조다.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지망하는 비율이 상상을 초월하고 취업이 안되어 먹고 놀고 있는 젊은이들이 길거리 지천에 깔렸다. 경마.경정.경륜.카지노를 비롯하여 사설 경마장, 실내 골프장, 내기 골프, 내기 당구, 내기 바둑, 닭싸움, 개싸움, 소싸움, 길거리 오락실에서는 도박을 즐기는 백수들이 부지기수다. 집안 골방이나 길거리 PC방에서는 게임에 중독되어 담배에 쩔어 미쳐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게임에 중독되어 자녀가 굶어 죽어도 모르고 젊은 부부는 이혼도 증가하고 있다.

 

종교인들은 교세를 이용하여 정치에 간섭하고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하여 종교인들을 우대하고 있다. 종교인들이 신도들의 무리를 등에 업고 민주사회의 선거라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그들의 권위와 교세를 확장하는데 여념이 없다. 들어오는 헌금이나 시주에는 세금도 없고 시비거는 사람도 없으니 종탑은 하늘 높이 올라가기만 하고 비싼 대리석으로 왕조시대 궁궐같은 성전이 대도시 심장부로 들어서면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재물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순복음 교회 고발 사건을 보면 종교세계의 치부가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평생 무위도식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기름이 번드러하고 탐욕으로 가득차 있다. 뒷구멍으로 누구보다도 악행을 저지르는 일부 종교인들의 이중적인 얼굴에 순진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보태주고 있다. 얼마전 돌아가신 불교계 큰 스님께서 무소유의 삶을 설법하였건만 불씨도 꺼지기 전에 불교계는 권력과 재물탐닉에 세간의 눈쌀을 찌프리게 하고 있다. 그들이 재물 싸움을 벌이면서 폭력배를 동원하여 피터지는 전쟁을 벌인게 어디 한 두번인가!

 

권력과 재물은 오물과 같으니 오래 지니고 있으면 썩어 냄새가 난다. 주변에 뿌리면 오곡이 엉글게 되고 수많은 민초들에게 축복을 내리게 된다. 사람의 몸 밖으로 나가는 모든 것은 더럽기 그지없다. 대.소변을 포함하여 눈물, 콧물, 땀, 침 등 밖으로 배출되는 노폐물은 모두 오염된 물질이다. 또한 입으로 내뱉는 말도 대부분 남에게 상처를 준다. 평생 500권도 읽지 못한 짧은 지식에 불과한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고 자신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우둔함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생각에 자신은 매우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머리도 좋고 좋은 일류대학도 졸업하였고 석.박사 학위도 받았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건 현명하지 못한 생각인데,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낮추지 못한다면 갈등관계는 당연히 존재하고 상대를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그 갈등관계는 제3자에게는 매우 좋은 이간질 거리다.

 

                                                                            논현역 근방 불꺼진 카페

   

 

 

갈등관계는 적을 이롭게 한다.

 

지금 이 나라는 모든 사안이 흑백논리로 갈등관계가 증폭되고 있다. 그것을 해소할 능력도 지혜도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최고이며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나라다. 사초실종 문제, 4대강 사업 평가, 전세가 등 부동산 침체 문제, 낙태 문제, 교육 문제, 성폭력범 문제, 사법 항명 파동문제, 무상 급식 문제 등등 어느 하나 제대로 타협점을 찿아보기 힘들다.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하고 학위 간판만 갖추는 교육 시스템에도 문제지만 사회 지도층들이 하나같이 파벌을 조성하여 국민을 팔며 상대방 이야기는 무조건 무시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로 당파싸움을 벌이며 권력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한편 세비를 챙기고 권력과 재물에 탐욕의 눈독을 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에서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 황제 숭정제 시대 이야기다. 청나라 군대가 산해관으로 밀려들자 명나라 장수 원숭환은 청나라 군대를 여러차례 효과적으로 막아내어 청나라 군대는 산해관을 넘을 수가 없었다. 청태종은 명나라 포로 가운데 범호정이란 인물을 회유하여 그에게 계책을 물었는데, 숭정제가 의심이 많아 그것을 이용하면 될 것이라면서 이간책을 제시하였다. 명 조정은 환관들과 동륜당파가 서로 파벌싸움을 장기간 벌이고 있을 즈음이었다. 청나라 군대는 몽고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통로를 통해서 산해관과 만리장성을 우회하여 북경으로 진군하였다. 원숭환은 나중에야 청나라 군대가 산해관을 우회한 것으로 알고 북경을 향해 달려 갔다.당시 청나라 진영에 사신으로 온 환관들이 묵고 있는 옆방에서 원숭환이 청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이를 들은 환관 사신들은 돌아가 숭정제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청나라 군대가 산해관을 우회한 것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던 숭정제는 원숭환을 군량문제를 토의하자며 궁중으로 불렀다. 원숭환은 궁으로 갔으나 성문을 지키는 장수는 비상시국이라 바구니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데리고 간 병사들을 성밖에 두고 원숭환은 혼자 바구니를 타고 성문을 올라갔다. 올라간 원숭환은 바로 감옥에 하옥되고 가장 처참하게 쳐형되었는데, 뼈에서 살점을 발라내고 나중에는 머리통을 망치로 박살내는 형벌로 쳐형되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독립투쟁파와 외교파로 나뉘었고 나중에는 민족파와 사회주의파로 나누어졌다. 대통령 이승만과 국무총리 이동휘가 자금 문제로 불그졌다. 이승만은 대통령에 선임된 직후인 1919년 5월 미국에 임시정부의 외교를 담당한다는 구미위원부를 설치했다. 그런데 구미위원부는 임시정부 외교위원부와 별도의 조직으로서 임시정부의 어떠한 법적 직제에도 포함되지 않은 이승만의 사조직 비슷한 기구였다. 이 구미위원부는 미주 교포들이 내는 애국후원금을 임시정부에 납부하지 않고 전용하면서 논란을 빚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애서 발간한 <독립운동사>(제4권 임시정부사, 1975)는 "구미위원부가 미주에서 정부 재정을 관장하면서 임시정부가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던 미주 동포사회로부터 재정 수입에 차질을 빚게되자 재정상 타격이 컸기 때문에 임시정부는 항상 구미위원부의 폐지를 요구했다"고 전한다.

 

임시정부의 명의로 모금한 자금을 임시정부 재무부로 송금하지 않고 구미워원부가 단독으로 사용하면서 상해 임시정부 사람들은 이승만에 대한 불만이 크기지 시작했다. 1920년 5월 임시정부 국무차장 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한 것은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 회의는 주미 외교위원부를 설치하고 따로 주미 재무관을 두자고 제안했는데, 임시정부 산하로 개편하자는 주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시정부는 이승만의 상해 부임을 거듭 촉구했고 드디어 1920년 12월 8일 이슴만이 상해에 도착했다. 이승만은 1919년 4월 대통령에 선출된 후 1925년 3월 의정원에서 탄핵될 때까지 6년 임시 동안 상해에는 고작 6개월(1920.12~1921.5)만 체류했다. 이승만이 1918년 정한경과 공동명의로 "한국을 당분간 국제연맹의 통치하에 두라"고 청원한 것이 뒤늦게 큰 문제가 된 이면에도 이런 자금 문제가 걸려 있었다. 심산 김창숙은 자서전 <벽옹 73년 회상기>에서 "나와 백암(박은식), 단재 신행로 등 여러 동지들은 이 박사가 조선 민족대표라 자칭하고 미국의 노예가 되기를 원한 것은 우리 광복운동사상에 큰 치욕이기에 그대로 두고 불문에 부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승만이 상해로 부임하자 문제를 원만히 풀어보자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일제 고경(고등경찰)의 '상해에서의 이승만 환영회 상황(1921.1.14)'이란 보고서에서 이승만의 반대편이었던 박은식이 환영사를 했다고 전한다. 그만큼 합리적인 해결책을 비랐지만 이승만은 현상유지론을 주창해 임시정부 인사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통령 이승만이 미주 교포들의 애국후원금을 독단적으로 사용해 문제가 되었다면, 또 국무총리 이동휘는 레닌으로부터 지원받은 혁명자금 분배 문제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처럼 시대나 상황에 따라 언제던지 갈등관계는 존재해왔다. 그런 갈등 관계를 잘 해결하고 풀어나가는 지도자가 우리들에게는 지금 가장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