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982 : 일제강점기 27 ( 전 민족적인 항거)

 

 

한국의 역사 982 : 일제강점기 27 ( 전 민족적인 항거)

 

 

         

 

 

민족 저항의 시대 

 

 

전 민족적인 항거 : 3.1운동의 민족대표는 33인이 아니라 48인이었다

 

3.1운동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그간 역사의 객체였던 민중이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통치를 향해 던진 비수였다. 3.1운동으로 한국인이 원해서 병합되었다는 일제의 선전은 사기였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드러났다. 그렇게 민중은 스스로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했다.

 

 

노론 당수 이완용이 일진회 이용구.송병준과 매국 경쟁에 나선 것은 망국 이후에도 자신들에게 정치적 지분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는 한국인들에게 어떤 정치적 배려도 하지 않았다. 이완용과 송병준에게 주어진 자리는 총독 임면권과 해임권을 갖고 있는 중추원 고문이란 명예직에 불과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18년 조선총독부 및 소속 관서의 직원 수는 촉탁과 고용원을 포함하여 2만 1,302명인데, 그중 일본인은 1만 2,865명, 조선인은 8,437명이었다. 조선인 숫자가 40%에 가깝긴 하지만 그중 말단 순사를 보조하는 순사보가 3,067명, 헌병보조원 4,749명으로 도합 7,8126명이나 되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 최하위 말단직이었다.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재임 1910년 10월~1916년 10월)와 2대 총독 하세가와(재임 1916년 10월~1919년 8월)는 첯째도 무력, 둘째도 무력으로 한국을 통치했다. 일본 육사 출신 박영철은 1921년부터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전북 익산군수를 역임했는데, <삼천리> 1934년 5월호에 데라우치가 익산을 순시했을 때의 일화를 전한다.

 

1913년 데라우치가 "아키시 경무총감, 구라토미 법무장관 등을 거느리고 장관이 군대를 사열하는 듯한 모양으로 도착했다."는 것이다. 접견실에서 재무주임이 칼을 차지 않고 나오자 이를 본 데라우치가 "너 검을 어떻게 했어?"라고 대갈일성 했다고 한다.

 

박영철은 같은 친일파까지도 데라우치는 무용제일이었다면서 "군속, 철도원, 기사 같은 평화한 직무를 보는 자는 물론 심지어 벌레 하나 못 죽이일 듯한 여학생을 교육하는 여학교 교사들에게까지 칼을 채워 살기횡일한 외관을 이루었다"고 비판했다.

 

데라우치나 하세가와는 헌병경찰제도와 태형이면 한국인을 영구히 지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박영철도 "데라우치 자신은 겁 많은 이로 관저 이외에는 나다니지 못했고, 나다니더라도 사복 헌병 등으로 열을 지을 지경이었다" 고 데라우치의 무단통치가 내면적 두려움의 표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러한 무단통치에 대한 반발과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민족자결주의가 제창.확산되면서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전 민족적인 3.1운동으로 결집된다. 1919년 1월 20일 권동진.오세창.최린 등은 동대문 밖 천도교 소유의 상춘원(지금의 숭인동)에서 손병희를 만나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일제의 각종 신문기록과 <의암 손병희 선생 전기>(1967년) 등에 따르면, 이들은 한규설.윤치호.박영효.김윤식.윤용구 등 대한제국 관료들은 물론 심지어 이완용까지도 끌어들이려고 시도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고 전한다.

 

손병희가 이완용끼지 끌어들이려 했던 것은 이완용도 총독부에 의해 사실상 '팽'당한 상황이란 점과 "매국적(敵)까지 독립은 원한다면 3,000만이 다 독립을 원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라는 손병희의 말처럼 3.1운동을 전 국민적인 충의로 승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천도교계의 이런 움직임은 최린이 당시 경성지방법원의 '신문조서'에서 "최남선이 기독교계에서도 독립운동을 전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면서 합동으로 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해 이승훈을 자택에서 만났다"고 전하는 것처럼 기독교계와 만나게 된다.

 

기독교계는 당초 독립청원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계획했으나 천도교 측과 만나 독립선언을 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기독교계의 이승훈.함태영은 2월 22일쯤 최린의 집에 회동해 "3월 1일 오후 2시에 탑골공원(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독립을 선언한다"는 계획에 합의했다. '손병희 신문조서'에 따르면 천도교 측에서 이때 5,000원의 자금을 기독교 측에 제공했다. 또 불교계도 참여시키기 위해 불교 혁신운동을 전개하던 한용운과 백룡성을 합류시켰다. 유림도 참여시키기 위해 곽종석 등과 접촉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경북 성주의 김창숙과 접촉했다.

 

김창숙은 자서전 <벽옹 73년 회상기>에서 서울의 성태영으로부터 "광무 황제 인산일에 모종의 일을 일으키려고 하니 바로 상경하라"는 편지를 받았지만 모친의 병환 때문에 2월 그믐에야 서울에 올라오니 이미 때가 늦었다고 회고했다. 김창숙은 '독립선언서'를 읽고 "지금 광복운동을 전개하는데 3교의 대표가 주동을 하고 소위 유교는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았으니...... 이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있겠는가"라고 통탄했다. 김창숙은 대신 전국 유림 134명 명의로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파리장서'를 파리평화회의에 전달하는 '파리장서 사건(1919년4월)'을 일으켰다고 전한다.

 

만세 시위를 준비하던 양교 인사들은 연희전문학교 김원벽, 보성전문학교 강기덕, 경성의학전문학교 한위건 등 학생대표들과 만나 범위를 확대했다. 손병희 등 천도교계 인사 15명, 이승훈.길선주 등 기독교계 인사 16명, 2명의 불교계 인사들이 민족대표 33인이 되는데, 준비 과정에서 깊숙히 관여했던 천도교계 박인호.노헌용, 기독교계의 함태영.김세환 등은 뒷일을 처리하기 위해 명단에서 빠졌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48인이 된다. '이종일 신문조서' 등에 따르면,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서는 최남선 경영의 신문관에서 활자를 만들고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보성사에서 인쇄했는데 1,2차 도합 3만 5,000장이었다. 서울 시내는 학생대표단이, 지방은 천도교와 기독교가 나누어 배포하기로 분담했다.

 

거사 전날인 2월 28일 오후 5시 서울 가희동 손병희 집에서 23인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모임을 가졌는데, 손병희와 최린의 '신문조서'에 따르면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어 손병희가 명월관 인사동 지점인 태화관으로 장소를 변경했다고 한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낮 12시쯤부터 태화관에 모여들었고, 파고다공원에도 수천 명의 시민.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학생대표인 '강기덕 신문조서'에 따르면, 강기덕.김문진,한국태 세 사람이 태화관으로 가서 민족대표에게 파고다공원으로 가자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최린은 '신문조서'에서 "손병희가 이런 일은 젊은이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니 선진자들에게 맡기고 돌아가라고 했고, 다른 사람들도 빨리 돌아가라고 해서 학생들은 되돌아 갔다"고 전한다.

 

그러나 강기덕은 '신문조서'에서 "그때 나는 실례되는 태도를 취했으므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나의 팔을 잡고 제지하는 등 혼잡했다"고 전해 양측 사이에 상당한 이견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강기덕은 누군가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더라도 "책임은 자기들(민족대표)이 진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고 전해 발표 장소와는 무관하게 책임은 민족대표들이 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한다. 다만 독립선언이 폭력 시위로 발전할 경우 자신들의 직접적인 책임은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태화관을 고집하였던 것이다.

 

최린은 '신문조서'에서 대표들이 태화관에 모여 있을 때 이미 종로 쪽에서 만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태화관 내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데, 대략 이종일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최린이 경무총감에 전화로 독립선언 사실을 통보했으며, 총독부에는 이갑성이 김윤진을 보내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린은 '신문조서'에서 "선언서를 배부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한용운이 인사말을 하고 일동이 만세를 부르고 체포되었다"고 전한다.

 

오세창은 '신문조서'에서 한용운이 인사말을 하고 만세를 제창했다."고 전한다.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으로 파고다 공원에 있었던 이의경(필명 이기옥)은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갑자기 깊은 정적이 흐르고 누군가가 조용한 가운데 연단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었다. (......) 잠깐 동안침묵이 계속되더니 다음에는 그칠 줄 모르는 만세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좁은 공간에서 모두 전율했고, 마치 폭발하려는 것처럼 공중에는 각양각색의 삐라가 휘날렸고, 전 군중은 공원에서 나와 시가행진을 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대한문 앞 광장에서 고종을 애도하던 각 도 유생들은 물론 상인들도 철시하고 합류했다. 서울 거리마다 수십만의 인파가 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데라우치와 하세가와의 무단통치는 이렇게 전 민족적인 항거에 맞닥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