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녀, 일그러진 우리시대의 자화상
명품녀에 대한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랄까? 세간에 명품녀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우리시대의 슬픔이기도 하지만 가진자들에게는 무슨 대수일 것인가! 양극화의 결정체이며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일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하는 방송사 입장도 이해는 간다. 오죽하였으며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을까?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안감힘을 쓰는 방송사의 입장은 시청율을 높여 광고수입을 극대화하는데 있다. 그래서 시청율이 낮은 프로그램은 도중에도 하차하며 도덕.윤리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허영심이 가득찬 일부 부유층의 사치와 허영을 보도함으로써 그것을 본 자극받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적인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점심 한 끼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날아가는 여자, 온몸에 걸친 고가의 비싼 패물과 치장, 하루 저녁 술값과 몸값에 백지수표를 던지는 사회, 돈이면 정조나 체면은 사라진 막장사회, 불법.탈법은 물론이고 불평등이 난무하고 정의가 사라진 사회.. 정말 보통사람들이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든 나라가 아닌가!
사생활을 소비하는 방송, 인기라면 심지어 발가벗는 세태
그녀는 자신이 '명품녀'라고 불리게 될지 알았을까. 그리고 그것이 대중이 한때 '개똥녀'를 부를 때 가졌던 공분의 뉘앙스를 갖게 될 것을 알았을까. 아마도.
그렇다면 문제가 된 방송 프로그램은 어땠을까. 그녀가 나간 방송이 이토록 큰 파장을 가져올 줄 알았을까. 분명.
명품녀라 불리며 사회적 파장까지 일으킨 당사자와, 그녀를 한껏 스토리텔링해 결국에는 명품녀라 불리게 만든 방송. 이것은 안타깝게도 작금의 우리네 방송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한쪽에서는 인기라는 이름 하에 스스로 사생활을 팔겠다 나서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렇게 내놓은 사생활을 '상품화'시킨다. 물론 그 '상품화'의 성패는 얼마나 논란이 되느냐다.
한때 '루저 논란'을 일으켰던 '미녀들의 수다'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방송사고'였다면, 명품녀의 탄생은 의도적인 방송이었다는 점에서 실로 '독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하나가 실수(?)였다면, 다른 하나는 의도지만, 이 두 방송은 내용적으로 보면 그다지 차이가 없다.
명품녀는 자신이 한 얘기가 10배쯤 부풀려졌다고 주장하고, 제작진들은 오히려 명품녀가 한 얘기를 오히려 순화해서 편집했다고 한다. 지금 이 공방은 '거짓말을 하는 이가 누구인가'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 '누구'인가가 과연 중요할까. 한쪽은 너무 부풀려졌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축소된 것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크고 작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왜 명품녀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이런 소재가 버젓이 방송을 탔다는 점이다. 그것도 이른바 아이템이 되기 위해 스토리화되어서.
이 스토리화되는 과정에서 명품녀의 다른 부분들은 모두 삭제되고 오로지 명품, 사치 같은 특정 부분들만 취사선택되어 보여진다. 그것이 과장됐든 아니든 이미 스토리화 과정에서 논란은 의도된 것이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지만, 명품을 좋아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이다. 물론 정치인 같은 공인이 이런 행동을 버젓이 내놓고 하고 있다면 그것은 윤리적이고 도적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여성이 아무리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공인처럼 치명타를 입지 않을 것이라 하더라도 사생활의 노출이 개인적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일반인이 방송을 타는 조건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끄집어내는 일종의 거래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러한 사생활이 거래되는 방송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케이블 채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우리는 늘 이 사생활이 사고 팔리는 장면들을 당연한 듯 바라보고 있다. 토크쇼는 대표적이다. 연예인들은 이제 심지어 푯말에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자랑이라도 되는 듯 써놓고 그 내밀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연예인과 일반인의 차이가 있지만, 사생활을 거래하는 방식은 '명품녀'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방송이 점점 선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그 경향에서도 프라이버시의 문제는 발견된다. 즉 개인의 훼손불가능한 몸은 사적 영역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 몸을 전시하는 TV의 선정성은 프라이버시의 대표적인 침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지극히 사적인 내밀한 몸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사생활 침해'에 더더욱 둔감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명품녀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는 문제의 핵심을 흐린다. 문제는 그런 사생활을 거래하는 방송이 상호거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점점 더 자극적으로 흐르면서 거기에 제작자나 대중들 모두 둔감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연예인들이 공공연히 사생활을 소비하면서 인기를 유지하고, 방송은 그들을 끌어들여 시청률을 거두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 명품녀 논란을 통해 알게된 것처럼, 이러한 사생활 소비는 이제 연예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논란이든 인기든 또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화제가 된다면 무엇이든 끄집어내지고 발가벗겨지는 방송 프로그램과, 주목받고 싶다면 서슴없이 그런 방송에 알몸으로 자신을 세우는 세태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제2, 제3의 명품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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