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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뜻으로 본 한국역사' 16

 

 

'뜻으로 본 한국역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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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는 신라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창건한 사찰로, 신라 말 고승 무염대사(無染大師, 801~888)가 일시 머물렀고,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고려시대에 크게 중창하였으며,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유명하다. 창건 후 임진왜란 때 방화로 소실된 것을 인조 대에 중건하였는데 극락전은 이때 중건된 것이다.

◇ 극락전 근경, 현판은 김시습의 글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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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칠한 무덤

 

김시습

제 골육을 죽이고, 충량을 죽이고, 의인을 죽이고 그리고 임금 자리를 강도질하는 데 수미 완전히 성공한 세조는 남은 해를 명군으로 마치었다. 그리고 예종을 지나 성종에 이르는 40년 동안 세상은 별일 없이 태평하였다. 성종은 성질이 온순하고 인자한 사람이요, 이른바 태평성군이라는 말을 듣는 이다. 그리하여 세조.성종은 의인의 핏자국을 씻어버리고 빛나는 문화의 시대를 낳아놓은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같 뿐이요 의인의 피는 그렇게 값싸게 씻겨질 것이 아니다. 아무리 겉을 꾸며도 속에는 죽은 뼈다귀가 있는 회칠한 무던인 것을 면할 수가 없다. 우리가 볼 때는 세조.성종의 시대는 회칠한 무덤의 시대였다. 

 

세조 때에 김시습이라는 괴상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호.이맹전.조여.성담수.남효온과 더불어 생육신아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생육신이란 것은 사육신이 세조에에 무릎을 끓지 않고 죽은 대신에 이들 여섯은 역시 그때 벼슬은 아니하였으나 살아남았으므로 생육신이라 한다.

 

김시습은 세종 때에 난 사람으로서, 나면서부터 천재가 있어, 다섯 살에 이미 신동이란 말을 들었고, 세종이 불러보고 사랑하던 사람이다. 사람됨이 꾸밈없이 곧고 바르며 시원시원하고 영민하여 학문이 깊고 시를 잘 하였다. 단종이 자리를 빼았기던 당시 21살의 청년으로 삼각산에서 글을 읽다가 그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고 책을 불사르고 미쳐 중이 되어 그후 일생을 명산과 절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시대에 대한 엉키고 맺힌 생각을 풍월 속에 풀려 하였다.

 

그렇듯 그는 한 개 미친 중이었다. 늘 비분강개하여 종이 두루마기에 글을 지어 냇가에 띄워보내고 통곡하기, 농부 목상을 만들어 책상위에 놓고 종일 울기, 곡식을 심어놓고 갑자기 나가 낫을 들고 베어버리고 울기, 벼슬아치들의 잘못을 보고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울기를 마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가 미친 것은 의로 미친 것이요, 가슴의 아픔이 너무 심하여 미친 것이요,보통 똑똑한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부끄러워 미친 것이다. 세조가 불러 법회에 참석하도록 하였으나 길가 뒷간에 얼굴을 내놓고 빠져 있는가 하면, 신숙주가 불러 같이 술을 먹고 잠든 후 아침에 일어나자 놀라 나오는데 신숙주가 소매를 잡자 칼로 소매를 짜르고 나와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세조와 그 시대에 대하여 오줌을 갈기고 비웃음을 던진자다.

 

의인이 부끄러워하는 시대

성종 때를 태평성대라 하지만, 의인이 부끄러워하는 시대다.의인이 죽기를 부끄러워하는 시대는 참으로 불행한 시대다. 속이 썩은 시대는 무르익은 과일같이 속에 병균이 잠복하고 있는 문둥이 미인같이, 그 겉모양은 비록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은 썩은 속의 표시밖에 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성세는 성종이 돌아감으로 끝을 맺고 그날로 곧 무서운 병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살인의 역사

 

하늘에 귀 있다

하나님은 낮은자, 눌린 자의 하소연을 반드시 듣는다. 수난의 한국을 상징하는 이 슬픔의 소년이 견디다 못해 발하는 그 비명을 아니 들을리 없다. 얼마 못가서 그 갚음은 왔다. 연산의 채청사, 채홍사, 천과흥청, 지과흥청 하는 미친 노름에 죄 없이 죽은 수많은 백성들, 무오사화, 갑자사화, 명종 때에 들어가서 기묘사화, 을사사화, 무슨 옥, 무슨 옥으로 헤아릴 수 없이 죽은 사람을 생각할 때 이는 하나님의 섭리다.

 

연산의 미친 연극

연산의 미친 사나움에 죽은 사람이나 죽인 사람이나 다 같이 살인의 미친 연극을 하였을 뿐이요, 다 같이 어지럽고 얼크러진 정신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하면 세조.성종 때에 무시한 양심의 결과가 연산 때에 시대 인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은 착란에 빠졌다. 삐뚤어지고 까무라쳤다. 사회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변태심리의 소유자인 연산을 임금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 미친 사람의 손을 빌려 세조.성종이 꾸몄던 평토장 문화를 여지없이 심판한 것이다. 그 발랐던 분이 모두 뜯기고 그 속의 썩은 송장이 드러났다. 그것이 얼마나 거짓이요, 얼마나 값어치 없는 것인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연산의 가슴속에는 역사의 근원을 가지는 세 줄기 악성의 피가 섞이어 흐르고 있었다. 그 �째는 잔인성이요, 둘째는 음탕성이요, 셋째는 황폐성이다. 어머니에게 유전받고, 궁중생활에서 배워 얻은 것이요, 사회적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어머니 윤씨는 천성이 사나와서 남편 성종의 얼굴에 손톱 자리를 내던 사람이다. 그래서 폐위까지 당하게 되었다. 물론 궁중의 복잡한 생활이라 까닭이 있겠지만 용안에 손톱자국을 낼 만큼 사나운 심성을 타고난 여인이다. 그 어머니가 폐위되어 원통히 죽었다는 데서 어려서 부터 자극이 컷을 것이다.

 

성종은 온자한 임금이었으나 풍류를 좋아하고 태평성대라 이름은 좋았지만 궁중에는 하루도 술 냄새, 기생의 난무가 떠날 날이 없었다. 그것을 어려서 보고 그 곳에서 자랐으니 그 성격이 음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선비사회의  반동으로 마구 놀려는 소인 무리들이 일어나려는 기색이 있어 연산은 학문을 멀리하고 선비를 싫어하게 된 연유이다. 연산은 시대의 죄인을 한데 모아 그 역사적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나온 사람이었다.(계속)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