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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바리데기

 

바리데기

황석영,그는 1943년 만주 창춘에서 태어났다.고교시절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여 작품활동을 본격화 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귀국 제대후, '객지','한씨연대기','삼포로 가는 길','무기의 그늘','장길산' 등 한국 문학사에 획을 긋는 작품들을 속속 발표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1989년 방북했다가 이후 독일, 미국 등지에 체류하고 귀국하고 복역한 뒤 1998년 석방되었다. 이후 장편 '오래된 정원','손님','심청,연꽃의 길','바리데기' 등을 발표하여 부단한 형식적 탐구와 폭넓은 현실의식을 결합한 걸작들을 선보여 왔다. 만해분학상,단제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1989년 이래 아시아.유럽 등 지의 10여개 언어로 '손님','오래된 정원','장길산','객지','무기의 그늘','한씨연대기','삼포로 가는 길' 등이 출간되어 세계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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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는 북한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청진에서 할머니를 포함한 가족들과 흰둥이 개와 새끼중 막내 칠성이와 같이 못먹고 가난하였으나 비교적 행복하게 자라던 소녀 '바리'는 아버님이 두만강변 무산시 인민부위원장으로 전근가면서 전 가족이 이사를 간다. 그곳은 두만강을 사이로 두고 중국과 접경지역이며 철광석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중국측 무역을 담당하는 미꾸리라는 사람과 아버지가 친철하게 지내면서 각종 생필품 등을 제공받는 등 청진에서 살 때보다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바리 가족은 청진 무역사업소에 근무하던 외삼촌이 저지런 부정 문제로 아버지까지 보위부에 끌려가자 어머니와 세 언니들은 당의 지시로 부령 수용소로 가도록 지시되어 떠나고 할머니,현이 언니, 바리 그리고 강아지만 남게 되었다. 결국 집도 비우라는 당의 지시로 떠나야 될 즈음 중국 무역상 미꾸리 아저씨의 권유로 할머니와 남은 가족들은 모두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도피를 하게 된다. 그래서 바리의 가정은 결국 풍지박산 되었다.

 

두만강을 건너 미꾸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민가의 창고에 기거하면서 끌려갔던 아버지가 도망하여 �아 온다. 중국 공안의 수색으로 창고에 지내지도 못하고 산속으로 피해서 움막을 짖고 지내다가 아버지도 다시 어머니를 �아 북한으로 들어가고 한겨울의 추위속에서 언니 현이가 동사하고 얼마후 할머니도 노환으로 죽게 된다. 혼자 남은 바리는 가족을 �아 중개가 된 칠성이와 같이 북한땅으로 들어 갔으나 부모님을 만나지 못하고 혹한속에 산길을 가다가 방화로 보이는 산불이 난다. 바리는 칠성이와 산불을 피해 깊은 산속을 헤메다가 결국 칠성이 마져 멧되지에게 죽게 되자 중국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움막으로 돌아온 바리는 결국 미꾸리 아저씨 도움으로 연길로 가서 발마사지 업소에서  잡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15세의 바리는 같이 일하는 중국인 샹 언니를 만나게 되고 샹 언니 남편을 통해서 발마시를 배우게 된다. 바리는 사람들의 발을 보면 그 사람의 살아온 이력을 환상으로 읽어내는 신내림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던 바리는 샹 언니의 권유로 대련으로 가서 별도로 맛사지 업소를 차린 샹 언니의 부부와 같이 지내게 된다. 얼마간 장사가 잘되고 샹 언니 남편은 그 지역에서 유지급에 속할 정도로 성장하게 되자 그 것을 빼앗기 위한 불량배들의 강압에 샹 언니 남편은 납치되고 샹 언니와 바리는 밀항선에 실려 어디론가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긴 항해를 통해 배 밑창 생활은 비참하였다. 뱃사람들에게 샹 언니가 능욕을 당하는 등 인간 이하의 고통스런 생활을 하게 된다.

 

고통의 긴 시간이 지나고 도착한 곳은 영국 런던.

바리는 샹 언니와 차이나 타운에 팔려가서 헤어진다. 바리는 중국 반점을 하는 루 아저씨에게 팔려가서 반점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어느날 루 아저씨는 바리가 발마사지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루 아저씨의 보증하에 이웃 언니를 통해서 미용 및 발마사지 업소인 통킹이라는 곳에 정식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업소 주인인 탄 아저씨는 바리의 발마사지 실력에 감탄하여 당장 채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방글라대시 사람인 3살 위 루나 언니와 같이 지내게 해 준다. 루나 언니가 살고 있는 건물에는 세계 여러 빈민국에서 런던에 와서 불법체류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특히 윗층의 파키스탄인인 압둘 할아버지는 친절하게 그들을 대하면서 성실한 바리에게 많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발마시지 업소에서 근무하던 바리는 착실히 돈도 저축하고 몸값도 상환하면서 성실하게 일하자 단골 손님도 점점 늘게 된다. 그중 사라 아줌마가 바리의 발마시지 실력에 감탄하여 자신이 일하는 대저택 귀부인에게 소개하여 일주일에 한두번씩 방문 마사지를 하게 된다. 바리는 가는 곳마다 발을 보면서 상대의 과거 환영을 떠올리게 되고 통상 말을 않지만 궁금해하는 경우에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자신의 과거를 너무나 잘 맞추는 바리에 대해서 많은 호감을 갖게 된다.

 

바리는 윗층에 살고 있는 압둘 할아버지의 손자인 알리를 만나게 되고 결국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자 아프칸 사태가 발발하자 압둘의 동생이 파키스탄으로 가고 시간이 지나도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압둘도 그의 동생을 �으려 파키스탄으로 떠나게 된다. 파키스탄으로 떠난 압둘은 영 돌아오지 않고 바리는 임신한 상태에서 딸을 낳게 된다. 귀여운 딸을 보면서 바리는 압둘 할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통킹 업소에 열심히 다니면서 압둘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던 중 샹 언니가 �아온다. 두번째 �아온 샹 언니는 그동안 사창굴에서 몸을 팔면서 마약에 까지 손을 대고 있던 중이었다. 지난번에도 �아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요구하기에 100파운드나 주었으나 다시 �아온 것이다. 중국 연길과 대련에서 자신을 도와주었던 샹 언니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던 바리는 샹 언니를 설득하여 새로운 삶을 �도록 해주기 위해서 그녀를 집으로 대려간다. 이미 결혼하여 � 돌이 다 된 아기까지 키우고 있는 바리를 샹 언니는 부러워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밤을 지새고 다음날 바리는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하여 샹 언니에게 아기를 맡기고 길 건너편 빨래방에 갔다. 빨래가 될 때까지 바리는 시장을 보기로 하였다. 바리의 머리속에는 압둘의 환영이 나타나 슬픈 얼굴로 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들은 압둘이 행방불명 되어 이미 죽었거나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했으나, 바리의 환영에는 압둘이 반드시 살아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빨래를 �아들고 장을 보아 집으로 돌아오던 바리는 순간 머리가 쭈삣함을 느꼈다. 바리는 발걸음을  달려서 이층으로 올라오니 출입문이 열려 있으며 계단 아래에는 아기가 엎어져 있는게 아닌가! 아기는 이미 숨져 있었고 집안은 온통 다 흐트러져 있었으며 샹 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샹 언니가 집을 뒤지고 귀중품과 돈을 �아 떠나자 열린문으로 아기는 윗층 압둘 할아버지에게 올라 가다가 굴러 넘어진 것이었다. 바리는 슬픔과 괴로움으로 한동안 출근도 못하고 집안에서 멍하니 정신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곤 하였다. 압둘 할아버지가 인생 허무함과 속절없슴을 이야기 하면서 바리를 달래고 용기를 주었다.

 

"얘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사고나 병으로 죽든 스스로 죽든 그 건 새 출발이야! 아기는 새로 시작하는 거야! 너도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 아무런 악한 짓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신은 왜 저에게만 고통을 주는 거예요? 믿고 의지 한다고 뭐가 달라지죠?"

 

"신은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는 게 그 본성이다. 색도 모양도 웃음도 눈물도 잠도 망각도 시작도 끝도 없지만 어느곳에나 있다. 불행과 고통은 모두 우리가 이미 저지른 것들이 나타나는 거야. 우리에게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우여곡절이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 이겨내야 하고 마땅히 생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게 신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거란다. 어서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 그냥 내버려 두세요!"

 

" 나는 아내와 딸들이 총살당하고 잠무카슈미르를 떠나면서 나도 너와 똑 같이 신을 원망했다. 어째서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느냐고. 그런데 육신을 가진 자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지상에서 이미 지옥을 겪는 거란다. 미움은 바로 자기가 지은 지옥이다. 신은 우리가 스스로 풀려나서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를 잠자코 기다린다"

 

바리는 어둠속에서 환영을 보게 된다.

하얀 길이 나타나고 자세히 보니 죽었던 강아지 칠성이가 꼬리를 흔들고 있다. 

"칠성아! 나는 슬프서 살 수가 없어. 제발 나를 위로해줘."

"바리야! 괜찮아.너는 잘 해 낼꺼야"

칠성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가는 길에 흰옷 차림의 할머니가 서 있다. 바람에 옷자락이 한들한들 나부끼고 있다. 바리가 그전처럼 할머니에게 달려가 쓰러지듯 안긴다. 할머니는 바리를 가뿐하게 안아준다.

"할마니! 나 가족두 잃고 이젠 남편두 딸두 몽땅 잃었시요!"

바리가 울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할머니가 등을 토닥여준다.

"저 세상을 보라! 길거리에 스쳐지나던 사람들두 그 순간이 지나문 자리에 없어. 어제 또 조금 아까 만난 사람들 생각해 보라.없지.말두 알들리구 형체도 없어지지. 네 딸 순이는 여게 와 있다"

바리가 눈을 들어 자기 딸 어린 순이를 보자 손을 뻗쳐 안으려 하였으나 멀리 물러나곤 하였다.

" 애쓰지 말라. 세상에 간직한 네 몸은 네가 아니야. 네 넋에 집이지. 몸을 버리구 떠나오문 너두 우리처럼 된다. 슬픈 거나 기쁜 거나 다아 세상에 속해 있지."

"기러문 나두 떠나올래"

"아니 할 일이 좀 남아 있지 않네? 너 가구 오는 길에 질문하는 사람덜 많이 만난다구"

"응, 옛말에 바리공주두 저승 가서 알아가주구 오갔다구 기랬대서. 오오, 기랬다. 글카구 생명수두 �아내야지비"

그 길은 맨 처음 불바다,그 다음은 피바다, 마지막으로 기러기 깃털도 가라앉는 모래바다를 지나면 무쇠성이 나온다.

거기가 어디야? 서천의 끝이다.할머니가 살아 게실때 항상 들려주던 바리공주 이야기다.

 

바리가 스물한살 되던 해에 남편 알리가 그야말로 느닷없이 나타난다. 미군의 관타나모 감옥에서 그동안 갇혀 지내다가 이제야 석방되어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리는 알리의 가슴속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압둘 할아버지는 바리와 알리 같이 기도를 올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힘센자의 교만과 힘없는 자의 절망이 이루어낸 지옥이다. 우리가 약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 저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좀더 나아질 거다. 주께서 이르시기를, 타오르는 분노의 불꽃을 경고하나니 가장 불행한 자들만 그곳에 이르리라"

 

알리가 돌아오자 바리는 얼마가지 않아서 아기를 가졌다. 그리고 예쁜 분식 가게도 차렸다. 오전에는 알리를 도와 분식집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전처럼 통킹에 나가 일을 하다가 저녁때는 압둘 할아버지와 셋이서 식사를 하는 등 평온하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어느날 런던 시내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런던 킹즈 크로스역과 대로상 버스에 폭탄태러가 발생되어 굉음을 울리며 천지를 진동하는 폭발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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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쟁과 대립을 넘어 21세기의 생명수를 �아서...

 

오래전부터 우리에게는 죽은 이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비슷한 구성과 내용의 굿이 전국적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는데,지나귀,오구,오기라고 한다. 총칭하여 이런 굿을 '황천무가'라고 하며 이 굿의 여러 과장중에 무속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말미,바리공주,바리데기,칠공주 등의 서사무가가 거의 같은 내용으로 한반도 전 지역에서 구송되어 오면서 47종의 구술자료를 남기고 있다.

 

이 서사무가의 줄거리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하여 저승을 다녀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무당들은 바리를 자신들의 원형으로 여기고 '바리할미'를 샤먼의 무졸호 밝히고 있는데, 바리 대목이 어째서 모든 굿의 한 과장으로 들어가야 했는지는 무당 자신들도 모른다. 그러나 짐작건대 무당이 자신들의 원조인 바리가 겪는 고통과 수난에 대한 줄거리를 구성함으로써 '고통받는 고통의 치유사' 또는 '수난당한 수난의 해결사'임을 자처하려던 겉다. 그래서 바리의 구비전승이야말로 무속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명력의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리'를 '버린다'의 뜻으로 해석하여 무가의 내용대로 '버린 공주'로 보기로 하고, 한편으로는 '바리'를 '발'의 연철음으로 본다면 '발'은 우리말에서 광명 또는 없던것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광명의 공주',' 생명의 공주','소생의 공주'라는 뜻도 있으며 접미사 '데기'는 부녀자를 낮춰 가리키며 '부억데기','소박데기'와 같이 쓰이는 말로 보면 된다.

 

작가는 우리네 형식과 서사에 현재의 세계가 마주친 현실을 담아낸 작업이다. 바리데기는 오늘의 새로운 현상인 '이동'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되풀이되는 전쟁과 갈등의 새 세기에 문화,종교,민족,진부 차이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어떤 다원적 조화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작가는 집필전 백두산,두만강을 따라 러시아 중국 조선의 국경이 맞닿는 금삼각까지 답사햇고, 지린성의 연길,용정,도문,훈춘,창춘,션양,따렌,남양,삼봉,회령,무산,숭선 등지를 답사했다고 한다.

 

작가는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정점으로 북한은 동구 붕괴 이후 십여년 이상의 오랜 기근 속에서, 유엔의 지적에 의하면 삼백여만 명이 굶주림과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죽어 갔다고 한다. 풍요로운 대한민국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일이며 북한 통치권의 책임과 함께 남북의 분단체제를 경영해온 강대국들의 위선적인 인권론리를 여러 차례 비판했다. 이런 북한의 실상은 비현실적인 '북한붕괴 유도'라는 이념적이고 전략적인 논지들에 묻혀 세계속에서 잊혀지거나 북한정권의 반인도주의적 면모를 선전하는 데만 활용된 점이 많다. 북한 난민을 세계화 체제의 그늘로 보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변부는 비슷한 참상을 겪고 있다. 실제로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아프리카 도처에서 동식물이 멸종하듯이 종족 전체가 사라지고 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마치 한쪽 창문으로만 경치를 바라보고 그쪽으로만 바람을 소통하는 듯하다. 세계는 더욱 이행기의 혼란 속에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서구 세계의 표피만 보면서 심지어는 그 잣대로 자신을 재고 그에 맞추려 하고 있다. 세계가 공유하는 '문예사조' 따위는 없으며 자신과 한반도의 현재 삶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이 국경이나 국적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시민'이 되는 것이다. 세계 문단이 한국문학에 바라는 것이 바로 그 점이며 자신들과 비슷하게 흉내낸 것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요"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바리가 중국에서 유럽으로 항해하는 화물선 컨테이너속에서 지옥같은 상황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것은 작가의 꿈과 무격의 원조인 '바리할미'를 형상화 하였으며 서천 끝으로 가면서 피바다,불바다.모래바다를 지나는 것과 공수 장면은 '황천무가'에 나오는 대목들이다.

 

런던의 이주민 분포도는 다양하며 표범무늬처럼 런던시를 잠식하고 있는데, 나이지리아 사람, 남아프리카 사람들의 어린시절 체험이나 무속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참조하였으며, 당시 런던에서 행방불면 되었던 영국 국적의 파키스탄 2세 청년들이 미군 관할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돌아온 사건이 있었으며 그 내용을 서천의 환상적인 장면으로 처리했다.

 

탈북자라는 바리의 신분이 상징성과 한반도의 현실과 세계적 혼란에 대한 연계성에 대해서 작가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베르린 장벽 이후 부시정권 이전까지의 세계가 세계화 체제 재편성 기간이었다면 9.11은 그것이 본격화하는 분기점이 된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세계에 노골적으로 강행되는 근거가 되며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는 개인과 사회를 넘어서서 국가간에도 양국화가 심화되는 중이다. 9.11을 계기로 '악의 축'으로 지면된 나라들을 보면 그 당사국들보다도 아프카니스탄,중동,중국 등의 지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주목되는 점을 눈치챌 수가 있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 때도 그랫지만 지금도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부끄럽게' 참여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 시행이나 6.15선언 이후 오히려 '분단'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의식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세태를 우려한다.세계는 사우스와 노스를 구분하려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분단이 세계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 운명적인 사실을 잊으서는 안된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반국가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식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금 돌아보지 않는 뒷마당도 우리집이니 집수리할 때에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실 바리를 왜 뉴욕으로 보내지 런던으로 보냈느냐고 이의를 제기한 친구도 있었는데 제가 19세기를 배경으로 <심청>을 먼저 쓰고 난 다음에 <바리데기>를 쓴데는 이유가 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19세기의 제국주의와 21세기의 신자유주의가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미국 문명의, 이를테면 '안동 김씨' 본가인 영국이 현재 서구권의 모습을 가장 드러낼 수 있다고 보았다. 옛날의 업보가 많고 축소되어 있어서 훨씬 자세히 보이죠."

 

설화에서는 바리가 약수를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리는데, 소설 바리데기에서 바리가 구한 생명수는 어떤 것이며 분열과 증오와 죽임의 21세기 지구촌에서 생명의 길은 어디서 �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작가는

"글쎄요, 이 작품에서 생명수는 과연 부엇일까요? 그리고 바리는 그것을 �기라도 했을 까요? 이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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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구상과 생각은 세계화에 대한 문명의 흐름속에 한반도가 겪고 있는 아픈 현실을 믹서하고 있다. 강대국과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비난도, 한국이 미국의 부끄러운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것도 비난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힘이 부족하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다. 5.16 혁명 후 박정권은 그 어느 왕조나 정치권력이 해결하지 못하였던 백성들의 가난과 빈곤을 해결했다. 배고픈 백성을 굶주리지 않게 하려고 이를 악물고 경제개발에 온 정력을 다 기울였다. 그래서 지금 남쪽은 그래도 배부르게 살고 있다. 양극화니 정경유착이니 하는 것은 자본주의 속성상 불가피한 현상이고, 민주화니 좌파니 하는것도 모두 배부른 사람들의 자유의지이다.그러나 우리들에게 당장은 이북땅에 지금도 수천만명이 굶주림과 강제노역에 탈북자가 속출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국가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어떤 정부가 진정으로 바른 정부이며 국민들이 바라는 체제인지도 인식해야 할 것이며 비인도적이며 비윤리적인 정치체제는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국법을 어기면서 돌출된 행동으로 비난받아 왔으며 감옥까지 가면서 작가가 추구한 것이 환상적인 생명수 였다면 현실을 무시한 허상이며 이상일 뿐이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평화적인 남북통일로 고통받는 북쪽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며 주변 강대국이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국력배양으로 <팍스코리아나>를 구현해 나가는 일이다.이러한 역활의 선봉은 바로 작가와 같은 지식인이 앞장서야 할 일이며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는 길이다.

 

작가가 주장하는 '세계시민'은 현실을 망각한 이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어차피 우리는 세계속에 주도적인 국가로 거듭나기 위하여 국론을 통일하고 지식인들의 주도하에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처야 한다. 환상으로 그려진 그런 생명수는 없다. 전래되는 무속이야기속에서 이상을 �아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끝)

                                                         - 서초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