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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중국의 동북공정, 허구성 핵심 열쇠 2

중국의 동북공정, 허구성 핵심 열쇠 2 

 

 

 

 

2. 덕흥리 고분벽화: 유주자사 진의 진실

1976년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 고분벽화는 묘지명을 통해 피장자의 신분이 �혀져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의 고구려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큰 진전을 가져왔다. 고분벽화에 나타난 명문에 따르면 무덤의 주인공은 유주자사幽州刺史 진鎭으로 77세에 죽어 광개토태왕 18년(서기 408년)에 이곳에 묻혔다. 유주자사는 지금의 하북성 일대를 관할하는 자로 그 휘하에 13개 군의 태수를 거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하게도 고분벽화에는 이 13군의 태수가 주인공인 유주자사에게 하례하는 모습이 그림으로 뚜렸하게 남아 있다.

 

유주자사 진의 묘지명에 의해 그에게 제수되었던 벼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건위장군(建威將軍)

2) 국소대형(國小大兄)

3) 좌장군(左將軍)

4) 용양장군(龍釀將軍)

5) 요동태수(遙東太守)

6) 사지절 동이교위(使持節 東夷校尉)

7) 유주자사(幽州刺史)

 

그에게 제수된 벼슬은 무려 일곱가지나 된다. 이중에서 건위장군,용양장군은 중국 대륙 벽제의 벽제 장군들의 벼슬과 일치한다. 이처럼 중국 대륙에 개척한 식민지를 다스리는 관원에게 중국식 관작명을 하사한 것은 대륙 벽제나 고구려가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식민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통치술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소형,대형은 고구려 고유의 관작이며 주목할 것은 '사지절 동이교위'란 직책이다. 중국측에서는 오랑케를 관리하고 교화시키는 벼슬로 인식하고 있으나, 사자절이란 천자의 임명부절을 가지고 전권을 위임받은 사령관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는 점령지역 주민들을 통치하기 위한 통치술로 중국식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무덤의 주인공 진의 계급이나 위치는 막강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행정책임자인 요동태수를 지내고 군사 책임자인 유주자사까지 겸했다는 것은 그의 지위가 매우 높았음을 말하며 유주와 요동이 긴밀한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유주자사 진을 알현하고 정무보고를 하는 13개 군의 태수의 면면을 보면 유주의 관할 지역을 알 수 있다. 이들 13개 군의 태수는 다음과 같다.

 

범양태수,아양태수,연군태수,상곡태수,광녕태수,대군태수,북평태수,요서태수,창려태수,요동태수,현도태수,낙랑태수,대방태수

 

<진서> <지리지> '유주조'에 의하면 유주는 일찍이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한 후 이곳에 아양,상곡,우북평,요서,요동의 5개 군을 설치했고, 한나라 고조 때는 상곡을 나누어 탁군을 설치했으며 무제가 전국에 13개 주를 설치할 때 유주는 옛 명칭을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그 후 현도,낙랑을 그에 속하게 했다. 또한 한나라 소제 원봉 원년(기원전 80년) 연을 광양군으로 하고 유주는 9개 군을 거느렸다. 후에 위나라 때 동이를 다스리기 위하여 평주를 설치하고 요동,현도,창려,대방,낙랑 5개 군을 설치했다.(진서 지리지 상 유주.평주편)

 

청나라 초기에 만든 <독사방여기요>에서도 진나라와 심육국 시기 유주의 치소는 탁군(지금의 북경 부근)이며 속군은 범양,연,북평,상곡,광녕,대,요서군이며, 평주의 치소는 찰려(난하 갈석산 부근)이며 속군으로 창려,요동,낙랑,현도,대방군이다(독사방여기요,권3,역대주역형세3,유주.평주)

 

결국 유주를 나누어 평주를 설치했고, 후대로 오면서 유주는 요서군을, 평주는 요동군을 중심으로 군현을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일찌기 모본왕 때 중국 동북부 지역 깊숙이 진출했는데, <삼국사기> '모본왕 2년(서기 49년)조'의 기록과 <후한서> '동이열전' '구려조' 편에도 실려있다.

 

고구려 모본왕이 한나라의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차례로 공격하였을 때 한나라 요동태수 채융(채동)이 은혜와 신의로 대하므로 화친하였다는 것이 바로 유주며,평주요,요동임을 알 수 있다. 유주가 속한 지역인 범양,연,광녕,상곡,아양,대 지역은 오늘날 북경을 중심으로 한 하북성,산서성에 해당한다. 요동태수 채융은 고구려에 항복하였는데, 많은 전쟁보상금을 주고 화친을 맺었다는 중국식 표현이다.요동태수가 이 지역까지 와서 항복하였다는 것은 그가 관할 하였던 지역이기 때문이다.중국이나 일본 식민사관들이 주장하는 단동이 서안평이고 요하의 동쪽이 요동지역이라면 동쪽 끝에서 이곳 북경까지 달려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요동지역에 대해서 학계에서 치열한 논란이 있었다는데, 바로 현장의 실제 증거를 �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고서 기록으로만 탁상공론하는 오늘날의 역사학계이다. 그동안 요동은 요하의 동쪽으로 인식되었고 요동군의 치소는 양평이라 했다. 또한 양평은 지금의 요녕성 요양시로 비정하고 있는데, <후한서> '원소.유표열전 하'에 요동군의 위치는 "양평현은 요동군에 속하는데 그 고성이 지금의 평주 노륭현 서남쪽에 있다"고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평주의 치소가 노룡현인데 이곳에 요동군의 고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노룡현은 창려현과 갈석산의 북쪽, 산해관의 서쪽,난하의 하류의 동쪽에 현존한다.

 

유주자사 진에게 알현한 태수들의 근무지는 중요한 사실을 시사해준다. 대형 등의 관직으로 보아 그는 고구려 사람이 분명한데 그가 유주자사와 요동태수를 지냈고, 13개 군의 태수들이 와서 알현했다는 사실은 고구려가 한때 중국의 중원인 이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중 이덕일,김병기 지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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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위와 같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며 그런 역사와 관련된 사적을 지우고 없애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데, 중국의 동북공정은 무슨 의도일까?그들이 반드시 목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무너지고 파괴된 고구려의 성곽과 봉분을 제대로 된 고증도 없이 보수를 하고 덧칠을 하는 등 자기들 속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유네스코에 등제 하려고 까지 하고 있다. 이 문제는 북한과 같이 공동으로 강력대처해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안건으로 제안하고자 하는 역사학자나 정치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탁발씨가 건국한 선비족의 나라 위나라,글안족이 세운 금나라,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주변 수수민족이지만 중원을 장기간 점령하여 한족을 통치하였는데, 그들 소수민족은 몽고를 제외하고는 국가다운 국가를 지금까지 유지해온 민족은 없다. 그들은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소수민족으로 한족의 지방자치구로 차별받으며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민족은 사라지지 않았으나 국가가 없다.

 

그러나 중국의 수,당나라의 침공에 대항하여 수백만 군대를 저지한 고구려는 그후 신라의 외세 세력을 이용한 통일 전쟁을 통하여 결국 멸망하였으나, 고구려 후예인 대조영에 의해서 대발해의 발흥으로 수백년간 명맥을 유지하였다. 비록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은 달성하였지만 지금은 재평가 되고 있으며 만주강역의 고구려 고토를 상실하고 오로지 반도내에서 사치와 향략을 위한 왕권유지에 급급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수와 당은 고구려 정벌로 인하여 수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고, 당태종도 중국 역사에서는 현명한 군주였으나 치적 말년에 고구려를 3차에 걸쳐 침공했던 것이 당나라 국운이 쇠약해지는 큰 요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비록 고구려와 벽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하였으나 그들의 지방정권이 아닌 당당한 개별국가로 자리메김 하였던 것이다. 수나라 인구수는 당시 2000만 명 정도였는데, 전투 참가 병력이 100만 명이라면 그 지원병력은 전투병력의 2배 정도로 보았을 때, 거의 300만 명에 가까운 병력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던 것이며, 결국 약 30만 명의 수나라 별동대인 육군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에서 전멸되었고, 수군 30만 명도 대동강 입구 전투에서 상륙하다가 전멸되었던 것이다. 그후 당나라와 청나라는고구려,조선 정벌시 엄청난 전비와 병력으로 나라가 망했던 수나라를 상기하고, 한반도 지배에 연연하지 못하고 군신관계,형제관계,조공,상국대우만 요구하고 물러났던 것이다. 한반도는 그들 입장에서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지이며 망지였던 것이다.  

  

그후 건국된 고려는 한반도에 국한된 영역을 차지하고 치세를 유지하였으나 만주 고토회복의 꿈은 문민통치와 무인정치,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내부적인 갈등에 시달리는 바람에 고토회복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고려는 글안족의 3차 침공과 원나라 몽고족의 끈질긴 6차 침공에도 견디어 내었다. 결국 정치적으로 부폐하게 된 고려는 이성계의 성공한 쿠테타로 나라가 망하고 이씨조선이 잉태되었으나, 세종대에 김종서를 통해서 북방의 4군과 6진개척에 머무렀으며 만주 고토회복은 고사하고 새로운 나라인 중국 명나라의 간섭속에 왕권유지에 급급하였고, 창업공신,세조반정,반란평정 등의 공신들인 훈구파들이 오랜 집권 기간을 통하여 부폐와 무능이 극에 달하고 정치력의 상실, 붕괴된 국방력,형식과 공리공론으로 일관하다가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그후 명이 망하고 청나라의 침공으로 삼전도 치욕을 견디어 내면서 북벌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사림들의 극력 반대와 효종의 급서(독살설) 등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권력싸움으로 일관해온 조선 말기에는 외척발흥,권력투쟁,사색당쟁, 매관매직으로 나라가 피폐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원군과 민비의 권력쟁탈전이 반복되었고, 심지어 고종과 민비까지 매관매직과 민씨 일파 등 외척기용으로 통치력의 무능은 극치에 달하였으며, 결국에는 외세가 개입하는 가운데 망국의 한을 겪게 되었지만, 어느 나라던지 있을 수 있는 현상을 중점적으로 부각하여 민족의 기상과 혼을 말살하려 한 일제와 그에 뇌화부동하였던 식민사관 역사학자들은 영원히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 조선은 국력이 쇠약하여 북방정벌을 소홀히 한 결과 중원대륙,만주벌판,간도땅까지 빼았기고 일제의 식민통치를 겪고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남북으로 두동강 나고 피비린내 나는 한국전쟁을 치루면서 금수강산은 초토화 되었으나, 다행히 5.16 군사혁명을 통해서 이나라는 가난의 굴레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오늘날의 번영을 가져오게 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북한 김일성의 통치방식은 철저한 배급제를 통한 인민을 통치했다. 인간의 기본적이며 1차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를 통제받는 경우에는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즉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인간은 무기력해지고 동물화된다. 그래서 김일성은 배급제를 통해서 북한 인민을 적절히 통제해온 것이다. 오늘날 이 나라 백성들은 배가 너무 부른게 문제일까? 어찌했던,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  대내외적인 큰 전쟁으로 인한 피해 없이 지나오면서 이룩한 경제 발전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올라설 정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기도는 장차 유사시에는 북한을 흡수하고 남한까지도 흡수하여 자국의 지방정권으로 만드려는 불순한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만주 벌판에 수많은 조선족이 살아온 핍박의 세월을 보라! 그들은 '서북공정', '서남공정' 을 진행하면서 티베트와 타림분지의 억압과 통치방식을 보라! 그리고 무자비한 진압으로 탄압했던 톈안먼 사태와 사람의 장기를 추출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사리지게 만든 파륜궁 탄압을 보라! 파키스탄과 네팔, 부탄,미얀마,태국,라오스 등지에 반군공산군들에게 무기공급하여 정부 전복으로 친중국 정부를 구성하거나 흡수하려고 하는 패권주의의 기도를 보라!  아프리카 등지에 까지 세력을 확대하고 지원하는 등 미국과 미래에 군사,경제,정치적인 경쟁에 대비하고 있는 그들을 보라!

 

그들은 유사시 공룡이 토끼를 잡아먹듯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한반도 쯤은 식은 죽 먹기로 처리할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조상들이 수천년 동안 한반도를 침공하여 군신,형제,혈맹의 의를 강조하였으나 속국으로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다. 삼국지의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도덕적,윤리적이지 못하고 야만적이던 영웅들은 존경도 받지 못하였으며 위업을 이루지도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지금 그들이 기도하는 동북공정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세계적인 비난을 받을 때는 그들의 운명도 다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속국으로 보던,지방정권으로 보던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며 이러한 사실을 세계 만방에 강력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한반도는 엄연히 한 민족을 뿌리로 여러 왕조를 유지하면서도 국방의 힘이 딸려 그들에게 복종한 것이지 자체적인 찬란한 민족역사와 왕조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목적하는 불손한 기도를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은 경제대국으로 국력을 배양하고, 합리적인 평화통일을 추구하며, 남북통합 최첨단 과학군을 만들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는 방법과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강력한 자주의식과 역사의식으로 그들과 당당하게 토론하며 권위있는 논증과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역사학자들이 배출되고 정치적으로 현명한 대중외교와 국제적인 홍보와 설득외교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끝)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