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용옥] 나는 지금 인천 송도 해양경찰청 수색구조과에서 앞바다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소식을 접하고, 분노의 염을 가라앉히고, 조금 더 정밀한 상황을 알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 문제가 된 우리의 배 골든로즈호는 발해만(渤海灣) 내해 깊은 구석, 요하(遼河)의 하구에 자리 잡고 있는 항구, 잉커우(營口)를 11일 오후 6시쯤에 출발하여 우리나라 충청도 당진항을 향해 동남쪽으로 운항하고 있었다. 중국배 진성(金盛)호는 옌타이(煙臺)를 떠나 따리엔(大連)항으로 거의 정북(正北)으로 운항하고 있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3000명의 동녀동남과 함께 서복(徐福)을 보낸 랑야타이 앞바다도 안개로 지척을 분간키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이곳도 안개가 잘 끼는 곳이다.
골든로즈호는 3800t급이고 진성호는 4800t급이니까, 1000t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 배의 길이도 100m 가까이 되니까 결코 작은 배는 아니다. 우리 배는 중국산 강철코일을 싣고 있었으니까(보통 데드웨이트가 배t수의 1.5배) 배가 낮게 가라앉은 상태에서 운항하게 되고, 중국 배는 컨테이너 화물선이라서 위쪽으로 떠 있는 상태에서 운항하게 된다. 이 두 배가 충돌할 경우 우리 배가 밑에 깔려 불리한 상황이다. 동남행의 배와 북상의 배가 충돌했다면, 북상하는 배 앞쪽 이물의 강한 부분이 동남행의 우리 배 오른쪽 옆구리를 들이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엄청난 강철코일 무게 때문에 물이 들어가면 불과 5분 내로 완전히 침몰될 수도 있다는 긴박한 상황에 있다. 때는 새벽 4시5분(현지시간 3시5분)! 이 시각에는 보통 선원은 다 잠들고 조타실에 2명, 기관실에 2명만 일하고 있다. 이러한 긴급상황에서는 기관실 사람들은 탈출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기관실이 바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타실의 2명인데 이들은 배를 버리고 탈출하기보다는 가라앉는 배에 잠들고 있었던 선원들을 구출하려 하다가 배와 운명을 같이했을 가능성이 높다.
불행한 사실은 자동조난신호발생장치(EPIRB)가 작동치 않았다는 것이다. 충돌시 충격으로 파손되었거나 고장나 있었다고 추측할 뿐 여태까지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장치만 작동했어도 우리 해경의 신속한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다. 더욱 우리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사실은 중국 배 진성호의 선장이 아무리 무지막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4800t급의 선장이며 유경험자일 텐데 이 충돌과 침몰 사실을 확인하고도 즉각적인 구명대책이나 상황보고를 일절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꿍해서 나가보니 별일 없는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가, 나중에 배가 찌그러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7시간 후에 대련항 해사국에 신고했다"는 생거짓말 같은 변명이 과연 통할 수가 있겠는가?
맹자(孟子)도 아무 생각 없이 우물로 기어들어가는 어린아이를 보면(孺子入井) 인간으로서 차마 두고 볼 수 없는 마음이 덜컥 북받쳐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선험적 조건이라고 외쳤다. 공자(孔子)도 자기 집 마구간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말은 당시 엄청난 재산목록이었다. 그리고 공자의 사랑하는 말이 그곳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퇴근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 공자는 "사람이 상했냐?"(傷人乎)고 물으시고 말에 관해서는 일절 묻지 않으셨다(不問馬)고 '논어'향당편은 기록하고 있다. 중국 측에서 어떠한 발표를 하든지 간에 중국 측의 태도는 일단 국제적 규약과 인도주의적 상식을 어긴 것이다. 이 사건은 중국사회가 인간의 존엄을 묵살하는 타락상을 노출시키고 있다는 불행한 윤리적 사실을 방증하고 있을 뿐이다. 엄중한 항변이 없이 넘어간다면 중국은 이와 같은 비륜의 행태를 반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패권주의적 발호는 중국인 자신들을 위하여서나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