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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자동차가 마티즈 유사모델인 체리자동차의 ‘QQ’였다. ‘QQ’는 GM대우 마티즈의 중국용 모델인 상하이GM ‘스파크’의 5배 정도 판매를 기록했다. 1999년 대우가 망하기 직전 대만에 마티즈와 매그너스 조립라인을 건설했었는데, 이 과정에서 금형과 설계도면이 중국으로 많이 유출됐다고 한다.
중국에서 잘나가는 자동차회사의 연구개발 책임자가 한국 자동차회사의 부사장 출신임은 잘 알려져 있다. 수많은 자동차 설계도면이 넘어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최근에는 현대 기아차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신차 HM의 핵심기술을 빼돌려 중국 자동차회사에 유출시킨 전·현직 현대 기아차 직원이 붙잡혔다. 그 중 한 명은 대가로 중국회사의 이사로 취임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자료 유출 이메일에서 ‘다 빼가라’ ‘다 팔아먹어라’라는 표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고 하니 과연 회사에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들인가?
얼마 전 세계 넥타이 공급의 중심지인 저장성을 여행하면서 동료 외국인 연구자로부터 한국 넥타이 고급기술자의 변심이 마산 넥타이산업 붕괴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 우리나라 직원들의 전직이 많아지면서 얄팍하게 기존 직장의 기술을 이용하려는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지고 있다. 혼다자동차 간부 출신에게 일본에서도 이런 일이 빈번하냐고 질문했더니 일본 자동차회사 퇴직 인력이 그런 식으로 기술을 유출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와 미국의 GE를 보자. 도요타 방식의 출발점은 도요타 철학이다. 도요타 철학은 ‘도요타는 사람을 키우고, 사람은 도요타를 키운다’는 정신이다. ‘모노 쓰쿠리(물건 만들기)’는 ‘히토 쓰쿠리(사람 만들기)’의 결과라는 것이다. GE의 철학은 정직성(Integrity)에 있다. GE에서 변하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면 ‘세상은 변한다는 것’과 ‘일은 정직하고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정직한 사람을 키우는 철학’이 기업 성공의 열쇠라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이 대리인 비용 이론(Agency Cost Theory)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대리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만일 종업원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하는 모니터링 비용이 높아지면, 대리인 사회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힘들다. 그러면 대리인 비용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첫째, 이제 우리나라에도 자본(Capital)에 대한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자본이란 잉여가치 창조의 주체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장비, 도구 같은 물리적 자본에 집착해 있다. 진정한 기술은 사람의 머릿속에 있고, 고급 기능은 사람의 근육 속에 체화돼 있다. 로스토는 사람의 지식, 기술이 바로 한국의 경제기적을 낳았다고 했다. 사람자본의 적은 도덕적 해이이고 이는 주인의식을 통해 풀어야 한다. 주인의식이란 종업원이 회사의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몰입의식이다.
둘째, 제도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처럼 입사할 때 퇴직 후 몇 년간 경쟁사 이직을 금지하는 계약을 도입하고 보안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국가정보원도 이제 다른 무엇보다도 산업기밀 보호에 중심역할을 해야 한다. 선진국은 경찰이 무서운 시대가 아니라 경찰이 반가운 시대다.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 CEO는 몸으로 열심히 뛰는 직원은 연봉 2000만원, 머리를 쓰는 직원은 연봉 5000만원, 주인의식이 있으면 1억원 이상 연봉의 임원으로 발탁한다고 한다. 주인의식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신뢰회복 운동이 필요하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