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3불정책 논란이 한창이다. 하지만 3불정책 탓에 우리 교육이 망가진 것도 아니고, 또 3불정책을 지킨다고 교육이 살아날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교육, 큰일 났다. 살인적인 학습 부담이 고교생에서 중학생으로 확산되고 심지어 초등학생들로까지 번지고 있다. 당연히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갈수록 늘어난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의 2% 언저리에 머물던 사교육비 비중이 최근에는 3%를 넘어 4%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과연 그 성과는 어떠한가?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 2005년에 발표한 예순 나라 교육시스템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43위로, 핀란드·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 선진국뿐 아니라 인도나 말레이시아 쪽보다도 한참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교육만 놓고 보면 순위는 더 떨어져 예순 나라 중 52등으로 최하위에 든다. 대학들이 큰소리칠 형편이 아니다.
엄청난 노력과 투자에 견줘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과, 왜 그런가? 쓸데없는 내용을 너무 많이 공부하고, 나쁜 방법으로 공부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을 건강한 시민으로, 21세기 지식경제 시대에 경쟁력 있는 인재로 길러내는 데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 줄 세우기 교육, 시험점수에 매달리는 교육, 그래서 창의력이나 비판적 사고력을 오히려 갉아먹는 교육을 한다는 게 문제다. 아이들을 문제풀이 기계로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교과과정을 획기적으로 개편해야 하고, 대학 입시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교실과 학교의 민주화다. 민주적인 의사소통 없이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이 크기 어렵다. 열정을 지닌 선생님들의 다양한 실험과 활발한 토론이 없는 학교가 교육혁신을 이루기는 난망이다.
이 말은 내가 우리 학교시스템의 피해자로서 하는 말이다. 내가 평범하게 키우고자 했고 또 실제로 평범한 고등학교 1년생이던 내 아들 녀석이 작년 말에 학교를 자퇴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두발 규제’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면에는 비인격적인 대우와 주입식 교육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왜 이런 규칙이 필요하냐, 왜 이런 걸 공부해야 하느냐고 묻는 녀석에게 학교는 제대로 답을 주지 못했다. 오해 없기 바란다. 이 녀석이 선생님 잘못 만나서 그런 게 아니다. 나도 만나 본 바가 있는 젊은 담임 선생님은 이해심도 많고 좋은 분이셨다. 녀석이 공부를 못 했던 것도 아니다. 학교시스템이 내 아이를 억압한 것이었다. 아이의 자퇴 결심을 들은 나는 당혹스러웠지만 가기 싫은 학교를 억지로 가라고 강요해 봤자 공부를 제대로 할 리도 없으니 그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흔히 교육의 질을 높인다고 하면 학교 사이 경쟁 강화나 대학별 본고사, 더욱 노골적으로는 고교 평준화를 해체하고 잘 하는 학생들끼리 모아서 수월성 위주 교육을 해야 한다는 등의 발상을 한다. 이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비과학적인 발상이다. 쓸데없는 재주를 누가 더 잘 부리느냐며 아무리 경쟁을 더 한들 무슨 해법이 되겠는가? 형평성을 내세우며 변화를 가로막는 것도 한심하지만 마치 평준화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편견에 불과하다. 위에서 언급한 교육 경쟁력 순위에서 세계 1등을 차지했던 핀란드에서는 “성·지역·사회경제적 배경에 관계없이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교육정책의 근본 원칙으로 삼는다. 교실과 학교의 민주화와 교육내용의 획기적인 개혁이 교육문제 해결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