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은 거인들 : 특별한 능력의 유대인들
* 세계에 군림한 유대인들
1999년이 마지막 저물어가던 어느 날, 미국의 TV 토론 프로에서 지난 세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선정에서 토론자들이 마지막까지 거론한 두 인물 중에 '아인슈타인'과 정신분석학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선정되었으나 결국 다수의 의견으로 '아인슈타인'이 선정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난 세기 가장 영향을 미친 두 인물이 모두 유태인이라는 사실이다.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약 20%는 유태인
'아인슈타인'이나,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마르크스' 등은 모두가 독일계 유태인들이다. 1935년 미연방의회는 나치스 정권을 피해 이주하는 유태인들을 위주로 한 정치적 망명객 수용을 위한 <이민법>을 통과시켜 약 30만 명이 넘는 유태인들이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통계를 보면 그때까지 유럽에 뒤지던 미국의 과학기술이 그 이후 유럽을 능가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토양이 되어 세계 최선두의 과학 강국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1년에서 1939년까지 39년 동안 물리.화학.의학분야에서 독일은 35명의 노벨상을 받았으나,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은 불과 14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유태인 망명 이민자들의 미국내 활동이 꽃피기 시작한 후인 1943에서 1955년까지의 13년 사이 29명의 미국인이 같은 분야애서 노벨상을 받았으나, 독일은 5명에 불과했다. 1955년에서 1990년사이 35년 동안 미국은 132명이 노벨상을 받은 반면, 독일은 13명에 그쳤다. 히틀러는 나라를 망쳤을 뿐 아니라 유태계 독일인들을 박해함으로써, 독일의 지식산업 자체를 피페하게 한 것이다. 미국에 망명한 아인슈타인으로 인해 미국이 원자폭탄을 가장 먼저 만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을 앞당기게 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01년에서 1995년 사이에 663명의 인사들이 노벨상을 받았는데, 유태계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40명에 이른다. 물리학.화학.의학.문학.평화상에 이르기까지 어림잡아 전체 수상자의 약 21%를 차지한다.
철학.사상계 거장들
포르투칼계 유태인 '스피노자', 형이상학의 대가 '모세스 멘델스죤', 문학계의 거두 '앙리 베르그송', 철학계의 '에른스톤 카시러', 종교 철학자인 '프란츠 로젠츠바이크', 사회학자 '에릭 프롬'과 '마르쿠제', 철학자이며 정치 평론가인 '한나 아렌트' 등이 있다.
자연과학 분야의 두뇌들
아인슈타인과 같이 <맨해튼 계획>을 입안했던 물리학자 '레오 칠라드', 인공두뇌의 대수학자 '노버트 워너', 물리학자 '이시더 래비', <위그너 법칙>으로 유명한 핵물리학자 '유진 위그너', 미국 첯번 째 물리학 노벨상 '에이브라함 마이컬손', 노벨 의학상의 '어니스트 보리스 체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발명한 '셀먼 왁스', 박테리아 유전적인 형성과장을 밝힌 '조슈아 리더버그', 노벨 생리학자 '알버트 센트 디와르디', 여자로 두 번이나 노벨 의학상을 받은 '로살린 엘로'는 혈액정밀검사 방법을 소개하였고, DNA의 형태와 활성 체계를 밝힌 '아서 콘버그' 등이 있다.
문인들
<로렐라이>를 쓴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성>을 쓴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동독에서 활동한 '아놀드 츠바이크', <말테의 수기>를 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미국에서 활동한 '솔 벨로우', '아이작 싱어' 등은 모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닥터 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이스라엘 최초의 노벨상을 받은 '사뮤엘 요세프',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아서 밀러', <홀로코스트>를 직접 겪은 작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셀', <모비 딕>으로 유명한 '노만 메일러', '제이디 셀링저', '스잔 손타크', 여류작가 '릴리안 헬만', '도로시 파크', 영국 태생의 극작가 '톰 스탑파드', 스웨덴의 여류시인이며 노벨 문학상을 받은 '넬리 작스', <케인호의 반란>을 쓴 '허만 위크', 미국의 여류시인 '엠마 라자러스'는 자유의 여신상에 그녀의 시가 기초에 각인되어 있으며, 월남전 반전 시인 '알렌 긴스버그'도 있다.
언론 및 예술계 별들
<퓰리처 상>을 만든 '요셉 퓰리처',<뉴욕 타임즈> 컬럼니스트이며 닉슨 스피치 라이터로 명성을 날린 '윌리엄 싸파이', <보스턴 글로버>, <타임>지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대통령 만들기>를 쓴 역사학자이기도 한 '테오도르 화이트', 닉슨 대통령 안보 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외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알프레드 프리트', '엘리 위셀','매니헴 베긴', '시몬 페레스', '이츠 라빈' 등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명예회장 '캐서린 그래함', 현재 그녀의 장남 '도날드 그래험'이 <워싱턴 포스트>의 회장과 발행인을 맡고 있다. <더 타임즈>를 인수해 오늘의 <뉴욕 타임즈>를 만든 '아돌프 오크스', 러시아 언론 재왕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미국의 여류 신디케이트 컬럼니스트인 '앤 랜드스', 미국 최대 방송사인 CBS 방송사 창업주 '윌리암 펠리', ABC 뉴스 앵커이며 <나이트 라인>을 현재도 진행하고 있는 '테드 카플', 앵커 우먼 '바바라 월터스', 스포츠 해설가 '하워드 코젤', 또 미국의 영화계는 유테인이 거의 주무르고 있는데 <쥐라기 공원>, <신들리스트>, <인디아나 존스>를 만든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로는 '게리 그란트', '커크 다그라스', '폴 뉴먼', '토니 커티스', '더스틴 호프만', '우디 앨란', '해리슨 포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슬리 하워드', 여배우 '쥬디 할리데이'가 있다. 배우 겸 가수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제임스 칸', '쉘리 윈트스','데브라 윈즈', '맬빈 더글라스', '누빈다니 케이', '로레이 베니컬', '로드 슈타이그', '주안 콜린스', '조지 시걸', '제리 루이스', '진 월더', '피터 로르', '토니 렌돌', '잭 베니', '멜부르크' 등이 있다. TV 연기자 '조지 번', <형사 콜롬보>의 '피트 휘크', <도망자>의 '데이비드 젠슨', 정통 서부극 <보난자>의 '마이클 랜튼' 등은 연속극의 대스타들이다.
공직에서는 비교적 저조한 편인데 그래도 두각을 나타낸 유태인이 많다.
앨 고어와 함께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조세프 리버만', 애리조나주 상원의원 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배리 골드워터', 역대 뉴욕 시장 가운데 인기가 많았던 '피오렐라 라가르디아', 루즈벨트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뉴딜 정책>을 입안했던 '헨리 모겐터우'와 '샤무엘 로젠만', 아이젠하우어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낸 '아서 번스'는 닉슨 행정부에서 연방준비제도 이사장을 지냈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는 후생복지장관 '리비코프', 노동부 장관으로 '아서 골드버그', 경제 자문역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샤뮤엘슨', 알래스카주의 대부로 알려진 '어네스트 글루에닝', 닉슨 행정부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 클린턴 대통령 시절 8년 간에는 여러 명의 유태인 장관을 기용했는데, '로버트 루빈'과 '로렌스 서머스'는 재무장관, '다니엘 글릭맨' 농산장관, '믹키 켄토' 상무장관, '로버트 리취' 노동장관 등이 있으며 연방준비제도 이사장으로 '제이코브 류'도 있다. '루빈', '서머스', '그린스펀'은 미국 경제를 60년대 이래 최대 호황기로 끌어올린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정책 3총사'이다. '그린스펀'은 부시 행정부에서도 연방준비제도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울브라이트' 국무장관, '윌리엄 코언' 국방, 전유엔 대사 '리처드 홀부르크' 등 미국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경제,외교의 두 축이 유태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유태인들이 진출하여 활발한 분야는 의사,변호사 같은 전문직종이다.
미국의 연방대법관을 지낸 유태인은 7명이나 된다. 1999년 미국 내 유태인 변호사 수는 전체 미국인 변호사 약 74만 명의 약 15%에 이른다. 이는 미국 내 유태인 비율의 약 7배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펌은 뉴욕과 워싱턴에 몰려 있는데, 약 40%를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유태인들은 신출내기 변호사들의 영역인 세금, 상해, 부동산 문제 등의 영역이 아니라 대기업체의 법률 자문이나 대노조 및 국제법 문제 등의 고수익 법률 분야에 가장 먼저 진출하였으며 유태인 기업들이 늘어가면서 대거 채용되고 있다. 이들을 세계 각국에 진출해 있는 유태인 기구들이 도운 것은 물론이다.
전문직종인 의사의 경우도 전체 노벨상의 3분지 1이 생리.의학상이다. 유태인들은 특히 의학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미국 의사협회의 자료에 의하면 총 68만 4천여 명의 의사 중 약 15%인 10만여 명이 유태인 의사들이다.
유럽의 경우는 중세에는 약 50%를 유태인 의사가 차지 했다고 한다. 당시 의사는 의과 대학 졸업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독학으로 의술을 터득하여 환자를 진료하였다 하니 유태인들의 연구와 노력 외에 천부적인 재능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유명한 예언가 '노스트라무스'가 유태인 의사였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는 의사로 출발 했지만 천문.수학.지리.철학.사상에 통달하여 1929년 대공황, 제1차 세계대전, 케네디 암살을 예언했던 것으로 유명하며. 오늘날까지 그의 예언이 신비에 가득찬 미래 예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재계.증권.투자금융의 큰 손들
유태인들의 경제계 진출은 그 뿌리가 대단히 깊고 길다. 그들은 일찍부터 경제 관념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유태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모두 13명이나 되며그 첯번 째 인물이 바로 '폴 샤무엘슨'이다.
유태인들은 일찍부터 장사에 솜씨를 발휘했다. 중세 시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제노바를 비롯한 해운 상권의 중심지에서 무역을 거의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고, 신용거래를 개설하여 신용금융에도 눈을 떴다. 이러한 유태인들을 기독교권의 유럽사람들이 증오하게 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예수를 부정하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으나, 악착같이 돈놀이와 치부에만 집착하는 유태인에 대한 반발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 상인'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중세의 아랍권 통치자인 칼리프들은 유태인으로 경제담당 고위관료를 임명하였으며, 그들은 계산이 빠르고 재무행정이 뛰어나 상위 귀족의 대우도 받았다. 그러나 종교적인 문제로 금융 재무관계와 학문에서 제한을 받기도 하였다.
스페인을 경제 대국으로 만든 재정고문도 유태인이었으며 그는 스페인의 유태인 추방을 돈으로 막으려다가 실패하였다. 18세기 유럽 최대의 금융 재벌인 유태인 '로츠췰드'의 재력은 20세기 미국의 '록펠러' 이상의 재력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유태인은 전세계에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 대륙이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초기에는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등 어려운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20세기 초부터 돈을 굴리는 뉴욕 월 스트리트의 증권가를 비롯하여 금융투자 분야에 진출하였고, 이제는 거의 대부분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즉 그들이 세계의 돈 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유태인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 최상급의 투자증권 회사는 '레만 브라더스', '라자르 푸레르스', '골드만 삭스', '솔로몬 브라더스', '베이치 앤드 컴퍼니' 등이며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투자증권 회사들로는 '모건 스텐리', '스미스 바니', '메릴린치' 등이 있다. '다우존스' 상장 대기업은 물론 '나스닥' 상장의 첨단 기업의 대주주들이 상당수 유태계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뉴욕 증권가뿐만아니라 월 스트리트를 거점으로 전 세계 주식시장의 배후 실력자로 활약하고 있다. 세계 금융가를 주름잡는 투자가로 '조지 소로스', '칼 아이칸', '로렌스 티쉬', '베리 딜러', '마이클 블름버그', '론 페렐만', '센포드 웨일', '애비 코핸', '스티픈 슈워츠만', '하비 골르프', '사울 스테인버그', '에숴 에델만' 등이 있다.
유태인이 성장시킨 기업으로는 가 있다. 1922년 전등 하나만을 생산해온 이 회사를 유태인 '제럴드 스워프'가 인수하여 냉장고.세탁기,진공청소기.라디오 등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가전제품들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한때 세계 TV 메이커의 대명사였던 마찬가지이다. 전기 기술자였던 '데이비드 사하로프'는 <타이타닉호 침몰> 소식을 전 세계에 최초로 알린 전신 기술자이다. 그의 기술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라디오 대량생산이 가능해 졌다. 그는 수리와 더불어 화상까지 전하는 TV의 연구에 착수, 1923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세계 최초의 TV를 선보였다. 그는 미국 TV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또 그는 유태인 과학자 겸 사업가로 광학의 권위자였다. 즉석 현상 폴라로이드 카메라, 필름 등 광학 제품으로 <이스트만 코닥>회사를 창업했으며, 현대 군사무기인 미사일 열추적 컴퓨터 장치도 그가 처음 개발하여 <내셔날 메달 오브 사이언스> 상, 그리고 미 대통령이 주는 <프레지덴셜 메달 오브 프리덤> 상을 받았다.
컴퓨터 분야도 마찬가지다. 퍼스널 콤퓨터 분야의 개척자 가운데 '마이클 델' 역시 유태인으로 <델 컴퓨터>를 창업했으며, 컴퓨터 부품 제조 회사로 유명한 <인텔>의 공동창설자이며 회장인 '앤드류 그로브'도 항가리 태생 유태인이다. 또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에 도전한 <오라클> 회사를 창업한 '래리 엘리슨'도 유태인이다.
세계 보석시장도 유태인들이 독점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다이야몬드 거래상은 <드비어스>이다. 1800년대 말 두 사람이 창업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유태인이다. 현재 <드비어스>는 전세계 유통 다이야몬드 제조업체 60%, 거래의 80%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백화점, 유통시장, 의류 소매점도 유태인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고 보면된다.
미국 경제 월간지 <포브스>는 1999년 10월호에 미국 내 400명 대재벌 가운데 유태인 재벌이 전체의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권 50명 중 36%를 차지하며 10억 달러 이상 재산가의 24%에 이른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를 통해 유태인의 재능과 재력 규모는 전 세계를 음양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결과 세계 도처에서 이러한 유태인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유태인의 무서운 세계 장악을 알고나면 여러분은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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