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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봄 19 : 탐욕의 세월 2

 

 

강남의 봄 19 : 탐욕의 세월 2

 

 

 

 

새벽 자전거 타기에 좋은 날씨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세월호 충격으로 모든 것이 얼어붙어 경기가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6.4 지방선거는 후보자들이 갖가지 추태를 보이면서 썰전을 벌이고 있고 쥐꼬리 같은 권력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사거리마다 붙은 각종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무질서하게 붙어 있다. 누가 어디에 출마하였는지, 저 놈이 어떤 인간인지, 범죄이력은 없는지. 성품과 인간성은 어떤지, 정치경력은 어떤지, 살아온 과거가 어떤지, 과연 주민을 위해 첨렴하게 일 할 수 있는지, 돈푼께나 있다고 무조건 나온 놈은 아닌지, 헛공약을 내걸고 주민을 속이는 놈은 아닌지, 가정사는 어떤지 등등을 알 수가 없다.

 

서울시장 후보는 썰전을 거듭하고 있다. 농약문제, 마누라 문제를 들먹이고 상대를 깍아내리는 후보는 좀 천박해 보이기도 한다. 돈만 있다고 정치를 잘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런데 상대는 마누라를 왜 숨겨 놓은지도 궁금하다. 여성 후보도 많이 눈이 뛴다. 그만큼 여성들의 사회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과연 다산 정약용같은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교육감에 출마한 고승덕 딸이 보낸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고승덕 변호사는 방송에 몇 번 나오더니 서초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 교육감으로 출마한 것을 보았는데 교육관련 경력도 없는데 갑자기 교육감에 출마한 것도 이상하였다. 그런데 언론에 공개된 딸의 편지에 의하면 부인과 일찍이 이혼하였는지는 몰라도 자녀들의 성장에 전혀 무관심하였고 그동안 연락 한 번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자신의 아버지가 서울시의 교육감에 출마하였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한국 국민들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딸의 이야기가 처절하다. 얼마나 가슴속이 사무쳤으면 저런 편지를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을 겉만보고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딸은 아버지 고승덕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여부를 알 수는 없으나 일단 딸의 편지 내용을 볼 때 입을 벌리고 찍은 현수막의 고승덕 사진이 참으로 가소롭게 보인다. 비참한 우리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법피아 천국

 

관피아에 이어 법피아가 도마위에 올랐다가 결국 낙마했다. 국민검사는 이름뿐이었지 민의를 대변할 수는 없었다. 한국의 대법관 출신들이 그렇게 대단한 줄은 처음 알았다. 퇴직 후 싸인만 해주어도 엄청난 수임료가 들어온다니 한국 법피아 실태를 낱낱이 보여주었고 너무나 불공평한 사회의 이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말았다.

 

지난해 대법관 퇴임 후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내다가 퇴임 후 편의점을 부부가 같이 운영하던 김능환 대법관이 세간의 뉴스로 오르면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그도 결국은  6개월만에 다시 로펌으로 들어갔다. 유명세를 타고 쇼만 하다가 결국 돈이 필요하니 로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며 그동안 줏가도 올랐고 대법관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로펌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는 지인들에게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 다음주 월요일(지난해 9월 2일)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일하기로 했다"며 "사람은 직업을 가져야 하며 공직을 마친 사람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다른 일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그것도 없고 평생 해왔던 영역에서 일을 하는 게 맞다고 봤다"고 말하며 2013년 9월 2일부터 한국의 대형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율촌에서는 고문변호사로 활동할 것을 알렸다. 김정현 민주통합당 부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아마 오늘 아침 많은 사람들이 김 전 대법관의 대형로펌 행 소식을 듣고 착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라며 “고위공직자로서 퇴임 후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결국 고액연봉을 받는 것이 관례인 대형로펌을 꼭 선택해야 했을까, 편의점이라도 운영할 수 있는 처지가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저럴까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무제,  배기원 대법관은 퇴임 후 로펌의 유혹을 뿌리치고 대학 석좌교수로 남아 후진 양성에 몰두하고 있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 30명이 넘는 대부분의 대법관 출신들은 대형 로펌에 취업하여 엄청난 수임료를 벌고 있다. 물론 대형 기업형 사건에 대해서 수임을 하겠지만 그 사람의 싸인 하나로 법원 판결이 달라진다면 전관예우가 아니라 법의 공평성과 정의로움을 송두리채 갉아먹는 법조비리로 볼 수밖에 없다. 법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아니라 돈이 있는 사람과 힘있는 변호사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이며 이는 법치주의를 휘손함은 물론 정의로운 사회를 파괴하는 근원적인 요인이기도 하다.그러나 대부분의 대법관 출신들이 대형로펌에 취업하여 엄청난 수임료를 벌고 있지만 일부 대법관 출신 중 올바른 처신으로 존경받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이비 종교 교주로 군림하면서 재물에 탐닉하는 사기꾼 종교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소록도나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몸바치는 존경받는 종교인도 있다. 종교의 역사를 보면 종교에는 정통과 사이비, 이단이 구분이 없는 듯하다. 정통이 사이비를 낳고 그 사이비가 커지면 정통이 되고 또 사이비의 교리 해석과 신앙관을 달리하는 또다른 사이비를 낳는다. 자신들과 교리 해석과 신앙관을 달리하면 처음에는 이단으로 취급하며 차별을 두지만 그 사이비 교주가 갖가지 김언이설과 안수기도로 치유와 병을 고친다는 소문을 내면 그 소식을 듣고 몰려든 신도를 통해 거액을 헌금받고 대형건물을 신축하거나 사업체를 만들어 신도를 노예처럼 부려먹고 이익금으로 치부하며 교주 가족들의 부귀영화에 사용하고 자신은 신의 아들인양 설교하면서 자신의 자식들에게 종교재단을 세습시키는 등 대형종교로 성장하면 바로 정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종교단체다. 종교는 전도가 우선이다. 영역을 넓히고 신도를 많이 확보하는 종교가 정통으로 인식하는 오류에 빠진다. 대부분 신념이 강하지 못하고 불행한 일을 겪게 되거나 영혼이 약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반겨주는 종교를 찿게 되고 교주이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자신의 재물은 물론 육신까지 바치는 광신도가 되는 것이다. 무리가 많은 종교가 힘을 갖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권력과 상통한다.유태교의 이단이 그리스도교이며 구교의 이단이 신교이며 그리스도교 또다른 이단이 바로 이슬람교이다. 이번 세월호 사건처럼 그 이단과 사이비종교들이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른다.

 

 

 

원룸 살며 버스·지하철 이용, 구청에서 무료로 법률상담
소수자 위한 판결 앞장서기도

향판(鄕判·지역법관)은 문제 판사만 있는 게 아니다. 법원 안팎에서 올바른 처신으로 존경받고 대법관에 오른 이들도 있다. 조무제(73) 전 대법관과, 배기원(74) 전 대법관, 김신(57) 현 대법관 등이 그들이다.

조무제 전 대법관은 경남 진주 출신으로 부산 동아대를 나와 1970년부터 28년간 부산·대구·창원 등지에서 판사 생활을 했다. 1993년 공직자 첫 재산공개 당시 6300여만원을 신고해 꼴찌를 차지, '딸깍발이(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는 가난한 선비) 판사'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영남지역에서만 법관을 오래했지만 공정한 재판, 존경받는 향판 자격으로 1998년 대법관이 됐다. 대법관 시절 전세 보증금 2000만원짜리 원룸에 살면서 비서관을 두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청빈 대법관'으로 불렸다. 2004년 대법관 퇴임 후 모교인 동아대 석좌교수로 강단에 섰으며, 2009년부터는 부산지법 조정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조무제, 배기원, 김신 사진
조무제, 배기원, 김신.
대구 출신으로 역시 향판 출신인 배 전 대법관은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지만, 판사 임관 후 18년간 주로 부산·대구 지역 법원에서 근무했다. 1998년부터 12년간 대구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0년 대법관이 됐다. 딸깍발이 판사’로 알려진 조무제(73) 전 대법관은 1993년 공직자 첫 재산공개 당시 6400만원을 신고했다. 공개 대상 고위 법관 103명 중 꼴찌였다. 98년 대법관이 됐을 때도 신고 재산은 7200만원에 불과했다. 본가가 부산인 그는 대법관 시절 전세보증금 2000만원짜리 원룸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2004년 대법관 퇴임과 동시에 낙향, 모교인 동아대에서 석좌교수를 맡아 지금까지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의 한 구청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하고 있다.

 

 대구·부산지역 향판(鄕判) 출신인 배기원(74) 전 대법관도 2005년 퇴임 직후 대형 로펌 고문직 유혹이 있었으나 깨끗이 단념하고 모교인 영남대 석좌교수직을 택했다. 요즘 서울의 한 구청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대법관을 지낸 뒤 엄청난 수입이 보장된 로펌행이나 변호사 사무소 개업을 하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청렴 법조인의 상징이다.


배 전 대법관은 최근 논란이 된 '황제 노역' 판결에 대해 "이번 판결은 객관성·균형성을 맞추지 못하고 기준에 훨씬 벗어나 논란을 자초했고, 그래서 향판이 무더기로 욕을 먹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향판 제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판사 개인의 자질 문제"라며, "대법원에서 주기적으로 윤리 교육을 하면서 정밀하게 향판을 평가하고, 지역 법원에서 세미나 또는 법관 회의 등을 열어 판사 자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신 대법관은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83년부터 29년간 부산·울산에서 판사로 근무했다.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판사 생활을 하면서 소수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판결을 많이 했으며, 2012년에 대법관이 됐다.

 

지난해에는 김능환 전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에서 퇴임한 뒤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 일을 도우면서 신선한 충격을 줬으나 불과 6개월 만에 로펌에 들어가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서울지역에서 로펌에 소속돼 있거나 변호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전직 대법관은 3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변호사 일을 하지 않고 대학 강단에 선 사람은 조·배 전 대법관과 김영란(서강대) 차한성(영남대) 전 대법관 정도다. 재물에 초연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2005년 국회 인사청문회 때 대법관 퇴직 후 5년간 6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신고해 전관예우 논란을 빚었다. 그 사이 몸값이 많이 올라서일까. 법조계에 따르면 요즘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3년 동안 약 100억원의 수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관예우가 아니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액수다. 상고이유서에 사인만 해주면 2000만∼3000만원을 받는다는데 그 동네에선 이를 ‘도장값’이라 부른단다. 참으로 대단한 몸값이다.

국무총리에 내정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10개월간 사건 수임과 법률 자문으로 무려 22억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밝혀져 야당으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다가 결국 퇴진했다. 수입의 사회 환원을 약속했지만 ‘국민정서법’은 냉랭하기만 하다. 공직 임명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무리하게 욕심을 부린 것 같다. 대법관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회창·김황식 전 총리의 경우 과다 수임료나 전관예우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없다.

 

직장에 다니는 일반 서민이 한 달 봉급 200만 원씩 번다고 가정하면 안 먹고 안 쓰며 모아도 80 평생 중 20대부터 60년을 번다고 가정할 때 12억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런데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녀를 키우고 집을 장만하려다 보면 한 달에 모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거나 고작 몇 만, 십만 원도 안된다.  그래도 독한 마음을 먹고 매달 50만 원을 꼬박꼬박 저축한다고 가정하면 60년 동안 3.6억 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서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법관의 전관예우 금액은 서민들이 보기에 다리에 힘이 풀리는 엄청난 금액이다. 물론 그들이 열심히 공부했고 법관생활도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근무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반 서민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불공평한 사회다. 그래서 우리나라 같은 비정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법, 탈법, 사기, 투기를 하지 않으면 평생 가난한 서민으로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인생역전의 기회는 상실되고 노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물론 억울히면 대법관이 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한 대법관들이 그럴진데 기타 법조계에서 힘깨나 쓰던 인물이 퇴임하면 수임료는 대법관 정도는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수임료를 받아 챙긴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나머지 일반 법관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연수원이나 롤스쿨 수료후 임용된 젊은 신임 변호사들이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가 하면 저임금을 받고 일반 기업에 종사하는 어려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마 그들도 대법관 출신들의 수임료를 보고 부럽기도 하고 법조계가 비난받는 것에 대하여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구원파, 그들은 누구인가?

 

 

 

개요

구원파는 개신교 계열의 종교 단체다. 주류 개신교 교파로부터는 교리 해석의 차이로 인해 이단으로 분류되었으며 사이비 종교단체다. 구원파(救援派)는 기독교 교파로 성경중심의 특정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부류를 이른다.

 

구원파라는 용어는 단일 교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같은 외국인 독립 선교사로부터 교리를 배운 다음 교파를 이르는 말이다. 각 교파간에는 교류가 없으며, 각 교파는 침례회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침레교(기독교한국침례회)와는 관련이 없다. 또한 구원파라는 명칭은 해당 교파에서 스스로 일컫는 칭호가 아니라, 탁명환이 구원에 대한 성경해석의 차이에 대해 구분적으로 일컫는 칭호였던 것이 현재는 개신교 기성 교단에서 임의로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구원파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래 교리부분에서 나오듯이 다른 기성교회 교인들과 논쟁을 벌일 때 단골질문으로 "구원받았습니까?"나 "언제 구원받았는지 아십니까?"등의 말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원파는 일반 교회와 달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이 없다.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와 마찬가지로 1인독재 체제인데, 구원파의 교주는 총회장이라고 부른다.

청해진해운 직원들이 권신찬-유병언계 구원파 신도들이다.

 

 

형성과정 

미국의 선교사인 딕 욕(Dick York)이 1960년대 자신의 구원관을 가지고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딕 욕이라는 사람은 정식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기록은 없고, 말 그대로 개인 신앙을 선교하러 온 자로 알려져 있다. 딕 욕, 케이스 글라스, 데릭 얼등은 한국에 와서 선교학교를 만들었고 1기생이 바로 유병언, 박옥수였고, 당시 대구 칠성교회 시무였던 권신찬 목사는 청강생으로 함께 했다.

권신찬-유병언계 구원파를 만든 권신찬은 51년 11월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지만 62년 12월에 제명당한다. 한국기독교이단문제연구소 심영식 이사장에 따르면 "다른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침례를 받고 장로교 교리와 다른 주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의 외국인 선교사가 바로 네덜란드 출신 독립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김길수, Kees Glas)와 미국인 선교사 딕 욕이다.


권신찬 목사와 유병언 전 회장은 1960년대 초 외국인 독립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대구성경 학교에서 성경을 공부 했으나 장로교로 부터 제명당한 이후인 1963년부터 선교사들과의 관계를 끊고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전도 활동을 펼쳤다. 그러면서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고 1981년 12월에 기독교복음침례회라고 이름을 변경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기독교복음침례회를 92년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한다.


한때 교인수가 수만 명에 이르렀으나 87년 오대양 사건 배후로 지목되며 교세가 위축되었다. 현재는 전국 10여 곳의 교회를 운영하며 1000여명의 신도가 있다는 설과 2만명 이상의 신도를 거느려 아직도 교세가 막강하다는 설이 있다.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금수원'은 구원파의 수련회 장소이자 본거지이다.

 

 

 

교리

기존 교단과 성경해석의 주요 차이는 성경을 기준으로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가 사해져 이를 믿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으로 기존 교단의 부단한 회개를 통하여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해석과 대별된다. 성경중 논쟁의 중심이 되는 부분은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 믿는 자에게 영원한 속죄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아담과 하와원죄만 사한 것인지이다. 또한 성경을 통해 오직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의 확신이 오면 구원을 받는다는 해석과 인간 스스로의 계속 회개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게될 것이라는 성경해석의 차이가 있다. 기존 개신교계로 부터 “한 번 구원받으면 평생의 죄가 사해진 것이므로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되는가?”라는 공격을받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하나님의 죄사함을 깨달은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고 마음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예수를 닮은 정결한 삶과 더욱 가까워진다는 성경중심의 교리를 가지고 있다.

  • 오직 '깨달음'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회개할 필요없이 믿는 것만으로 구원된다는 내용을 주로 한다. 믿음이라는 것도 주류 종파와는 다르다. 정확히는 내가 죄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는 것 만으로(혹은 그렇게 믿는 것 만으로)도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가르친다. 극단적인 율법폐기론적 입장에 으로 특히 회심에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는 "회개와 믿음"을 부정하고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통상적인 정통 교리상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성화에 이르는 회개는 서로 구분된다.

  • 지속적인 회개를 부정한다.
깨닫는 순간에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깨달은 이후에는 더이상 회개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만일 스스로 죄인이라 고백하면 구원받지 않은 자라 주장하며 상대적으로 기도를 도외시 하고 사업운용이나 교제를 예배로 간주하기도 한다.

  •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때문에 예전에 초기 구원파에서 기성교회 신자를 포섭할 때 언지 구원받았는지 물어본 다음에 대답을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 기도와 예배를 경시한다.
특히 오대양, 세월호 등의 문제를 일으킨 권신찬-유병언파에서 기도와 예배를 경시한다. 권신찬은 ' 기도를 해라, 해라, 해서는 안 된다. 새벽기도는 필요 없고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것도 필요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방언을 인정하지 않으며 방언을 이단시한다. 물론 방언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신비주의로 빠질 수 있고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이런 점을 경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언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통파 그리스도교의 교리와는 거리가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유병언은 '진정한 기도는 성도의 교제에서 시작된다'는 논리를 내세워서, 유병언의 사업에 도움을 주는 것도 기도라고 주장했다. 이런 교리 때문에 유병언파 신도들이 청해진해운, 세모 등 유병언 가의 기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구원파가 문제된 이후의 접근 방식은 문화선교나 처음에는 일반적인 성경 해석 등을 가르쳐주며 문제 없는 곳으로 위장하지만, 어느 정도 관심을 얻은 후에는 구원파 교리를 설파한다고 한다.

 

평가 

주요 인물로는 권신찬-유병언계열(기독교복음침례회), 이요한계열(본명 이복칠, 대한예수교침례회), 박옥수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혹은 기쁜소식선교회)로 나뉜다. 셋 다 '침례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통 침례교단인 (기독교한국침례회)와 (성서침례교회)와는 별 관계가 없다. 또한 전통 침례교와 달리 저 세 분파는 모두 이단이다.

 

간단하게 보자면 유병언이 종교와 기업을 동일시 하자 이에 반발하여 1983년 이요한 계열이 떨어져 나온 것이고, 그때문에 이요한 계열은 철저하게 기업적인 부분을 자제했다.


그에 반해 박옥수는 유병언과 함께 선교학교에서 딕 욕에게 구원관을 배웠지만 독자적으로 구원파를 만들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기원은 딕 욕-케이스 글라스이기 때문에 셋의 교리관은 동일하다. 심지어 구원파 피해자 모임도 세 분파 통합으로 존재한다.


구원을 받은 이후로는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지 않으므로, 회개할 필요도 없고 경건한 삶을 살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구원파의 교리는 현재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빚고 있다.

교회와신앙의 특집 기사를 읽어보면 구원파 분파의 형성 과정을 잘 알 수 있다.

 

 

권신찬-유병언파 (기독교복음침례회)
  •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참조

 

이요한파(생명의말씀선교회)

유병언이 교인들의 헌금으로 사업을 하는 것에 반발한 이요한이 5천명의 신도와 함께 1983년 분파하여 나가 형성되었다. 이목사는 1983년 2월 '세속적인 사업으로부터 복음을 수호한다'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하며 "유병언 사장은 사업 경영의 무리로 인하여 발생하는 적자 요인과 필요한 자금을 교회 헌금에 의존해왔다.... 유병언 사장은 여러차례에 걸쳐 건축 헌금 등의 명목으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성도들을 기만하여 거의 사업에 전용했다"고 유병언을 비난 하였다. "그러면서 교회와 사업은 분리되어야 한다."라는 당연한 주장을 하며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대한예수교침례회'를 설립하였다. 현재는 '생명의말씀선교회'로 활동중이다.

갈려져 나간 곳이다 보니 주요 교리는 차이가 거의 없지만 사업 등에 관련된 내용은 빠져있다. 구원파 분파 중 가장 교세가 약한 곳이며 종교 연구자들도 소규모 분파라고 언급한다.

 

 

박옥수파(기쁜소식선교회)
이쪽은 권신찬-유병언파에서 분파한 것은 아니다. 똑같이 딕 욕과 케이스 글라스에게 사사 받았고, 딕 욕에게 목사 안수를 받으지만 독자적으로 만든 분파이다.

딕 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쪽도 권신찬-유병언파와 교리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으며, 특히 이 문서의 "교리" 단락에 나온 부분은 거의 같다. 또한 초기에 권신찬계와 협력관계였다는 증언도 있다.

2000년대 이후 구원파 중 교세가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교파들이 어느 정도 폐쇄적으로 활동하는 데 비해 대놓고 활동하는 것이 특징. '박옥수 성경세미나'라는 이름으로 TV 광고도 하여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목사. 이따금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경건서적'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면서 박옥수의 교리가 담긴 책을 배포해 일반 신자들을 낚기도 한다. 또한 신문처럼 만들어진 기쁜소식선교회 명의의 인쇄물을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 등에서 나눠주기도 한다. 종종 실제 신문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만든 인쇄물로 사람들을 낚기도 한다.

국내 대학 곳곳에 퍼져 있는 IYF가 박옥수 계열 단체이다. IVF와는 전혀 다르다.

암, 에이즈등을 치료해주는 '또별'이라는 제품을 개발한 후 주식으로 상장하여, 870명의 교인들에게 주식 200억치를 판매하였다. 피해자 측에서는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기적의 약이라는 '또별'이 알고보면 그냥 녹차가루라며 사기죄로 고소하자, "해당 제품에 항암효과가 있다고 홍보한 적은 없었다."라며 발뺌 하였다.


자신들은 유병언의 구원파와 전혀 관계 없고 이름도 구원파가 아니라며 세월호 사태에 대해 억울해 하는 입장이지만 하는 기업을 통한 사기 행각이나 교리는 유병언의 구원파와 차이점을 찾기 힘들다.

 

 

기타

WEC선교회(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소속 네덜란드 선교사인 케이스 글래스(Kees Glass)와 딕 욕(Dick York, 믿음의 방패선교회 소속 Shield of Faith Mission)이 1960년대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교리를 강습하면서 시작되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권신찬이 케이스 글래스와 딕 욕의 교리를 배움으로서 시작되었고 역시 이에 참여, 활동하던 전라남도 목포 출신의 이복칠(일명 이요한)이 권신찬의 사위인 유병언이 교회 자금으로 사업을 하는 것을 비판하여 갈등을 빚게 되는데 권신찬이 유병언을 지지하면서 이복칠은 생명의말씀선교회(또는 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말씀측)라는 교단명으로 서울중앙교회를 설립하여 분파해 나갔다. 생명의말씀선교회는 현재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으며, 기독교복음침례회와는 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 기성교단의 부패에 따라 다수의 장로교 신도 들이 새로운 신앙을 찻고 있다.

 

 

연예인에서도 여기 관련 교회 다니는 인물들이 있다고 보도되기도 했지만 이에 대하여 마녀사냥이라는 반응도 있고 세월호 관련 문제를 유병언 패거리만 다루자면 뭔가 기사거리가 부족해서 기레기들이 더 오버한다는 반응, 더불어 이런 연예인 목록을 아무개 교회에서 냈다고 종파 싸움(뭐 이단이긴 하지만)이라는 다양한 의견도 있다. 비록 구원파는 정통 개신교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를 당했지만, 비기독교인들 중에는 구원파도 다 같은 기독교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 기성교회 교인들도 비신자에게 선교할 때 흔히 묻기도 한다. '당장 오늘 죽는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지만 구원받은 날짜를 묻는다면 얄짤없이 구원파이다.
  • 참고로 신천지의 이만희도 총회장이라고 불린다.
  • 기독교 교리나 윤리상으로 볼 때 율법은 그리스도로 완성되어서 더 이상 강제적으로 필요치 않은 것이지 그리스도가 율법을 폐기한 것이 아니다. 이 입장에 서면 성경에서 야고보서를 없애버려야 한다
  • 여기까지 가기 직전 단계가 바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다. 뭔 짓을 해도 일단 예수만 믿으면 천국간다는 주장이니까... 사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구원파나 한국의 근본주의(소위 정통교단) 교단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보기도 한다. 어찌보면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말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심화 발전시킨 것이 구원파일 수도 있다.
  • 일단 회개기도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 사실 한국의 정통교회들이 극단적으로 근본주의화한 데는 이런 이단집단들의 병크 논리로 인한 반작용도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 예정설을 믿는 장로교와 성공회에서도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 이것이 장로교 및 성공회의 예정설과 구원파 교리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등 주요 장로교 교단에서 구원파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은 이 때문이다.
  • 구원받았으니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논리는 자신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잘못과 책임을 저버리는 것을 자기합리화하는 그것이다. 진정한 종교는 선을 베풀라고 강조하지 악을 좌시하지 않는다.

 

 

 

탁명환(卓明煥, 1937년 7월 8일 ~ 1994년 2월 18일)은 대한민국 전라북도 정읍군 출신의 신흥종교 연구가, 이단 사이비종교 연구가이다. 기독교 계열의 이단 연구라는 이름으로 여러 종파를 지속으로 비판하여 소송, 테러, 살해 협박을 받았고 자신의 아파트 근처에서 대성교회 광신자에게 살해당하였다. 본명은 경술이다.

 

 

 

결론적으로,

법치가 바로서야 공권력이 살고 정의가 구현될 수 있으며 탈법과 불법이 사라지고 양심적인 시민의식이 되살아나 사회가 맑아져야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법이다. 법치가 썩어면 모든 것이 썩게 되어 있다. 법치가 바로사야 정의가 살아 숨쉬고 인권이 바로서며 억울함과 불평등이 사라지고 공권력이 권위가 서는 법이다. 그러면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는 비리와 부패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며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가 구현될 것이다.

또한 사이비 종교 교주들이 신도를 선동하여 치부를 일삼으며 종교세습권력이 사라지고 종교적 기업의 탈법과 불법이 활개를 치는 사회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법치가 무너지면 비리와 부패가 당연히 만연하게 되고 불법과 탈법이 정의로 둔갑한다.

정상적인 신분 상승의 기회가 사라지면 공정경쟁이 불가능하고 양극화는 사회적 불만계층을 더욱 양산하게 될 것이다. 법치가 바로서는 사회가 선진국이며 복지와 풍요를 구가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