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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시대의 흐름

성범죄를 부추기는 사회

 

 

 

성범죄를 부추기는 사회

 

 

 

성범죄가 크게 늘었다. 자기보호 능력이 없는 어린이까지 빈번히 그 범죄 대상이 되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온 세계의 칭송을 받던 나라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타락했는지, 비통하고 원망스러운 심정을 감추기 어렵다.

엊그제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어린이 대상 성범죄는 2005년 인구 10만 명당 10건에서 2008년 16.9건으로 69%나 늘었다. 선진국에서는 같은 기간 크게 줄었거나 증가율이 미미한데 비해, 우리만 그렇게 늘었으니 낯을 들기 어렵게 됐다. 미국은 2.9% 증가에 그쳤고, 영국 독일 일본 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니 말이다.

대낮에 학교 안에 침입한 호색한에게 끌려간 초등학교 여학생이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자기 집안으로까지 끌려가 능욕을 당하는 세상이 되었다. 딸자식 가진 한국인 누가 안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겠으며, 어떻게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겠는가.

눈만 뜨면 성적 욕구를 충동하는 세상

‘조두순 사건’이라는 극악한 어린이 성범죄를 계기로, 미성년자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갖가지 대책과 예방책이 나왔다. 오랜 논란 끝에 흉악범 얼굴을 공개하게 되었고, 성범죄자를 중형에 처할 수 있도록 관련 법조항과 양형기준이 고쳐졌다. 평시에 그들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감시하는 제도가 작동되었고, 중범죄자 DNA를 국가가 관리하게 되어 범죄수사에 이용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최근에는 성범죄자 몸에 주사를 놓아 성욕을 억제시키는 ‘화학적 거세’ 제도를 도입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예방책으로는 경찰의 초등학교 주변 순찰을 강화한다, 경비 용역회사 직원의 정기순찰을 의무화 한다, 학교주변에 감시카메라(CCTV) 설치를 늘린다, 등등 감시강화 조치들이 주류를 이룬다. 범죄자에 대한 형벌과 감시를 강화하고, 성적인 욕구를 인위적으로 억제시키는 강제적인 방법까지 가동되게 되었으니 이제 안심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런 표피적인 처방에 기대를 걸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성적인 욕구를 충동하는 생활환경과 분위기는 그대로 둔 채, 성범죄자 처벌을 강화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에 국한된 대증요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눈만 뜨면 성적인 욕구를 충동하는 사상(事相)으로 가득하다. 일찍이 이런 고모라 같은 세상은 없었다. 일상사처럼 접하는 TV 연예물이나 드라마는 ‘섹시함’을 컨텐츠로 하지 않으면 성립이 되지 않을 정도다. 여성출연자들의 옷차림에서부터 성희롱에 가까운 남성출연자 언동에 이르기까지, 선정성이 강한 프로그램 기획과 연출자가 능력 있는 PD로 인정받는 세상이다.

신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특히 중요 일간지 인터넷 판은 벌거벗은 여성 사진과 동영상 경쟁의 무대가 된지 오래다. 일반 인터넷 세상은 말할 나위도 없다. 차마 보기에 망측한 사진과 동영상을 초등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집을 나서면 어떤가. 속옷보다 짧은 민망한 옷차림의 여성이 물결을 이룬다. 스포츠 경기장 관람석과 공연장, 관광지 같은 공공장소를 가득 메운 젊은 여성의 옷차림과 매너는 상식을 초월한지 오래다. 정부 사업 홍보물도 젊고 예쁜 여자가 모델이 아니면 안 되는 세상이다. 비도덕적인 욕구를 자제할 정신력이 없는 사람에게 충동만 주고 해결책은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세태다. 그런 사람들이 손쉽게 욕구를 분출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어린이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과도한 선정주의 완화하는 지혜 짜내야

민주사회에서는 그런 섹시 비즈니스를 규제하는 데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과도한 선정주의는 법제로 개선할 수 있겠지만, 지나치면 디지털 시대, 국경없는 시대 조류를 거스르게 된다. 정부가 그런 환경과 분위기를 완화하는 일에 지혜를 짜내고, 국민 개개인이 내 일처럼 어린이 성범죄 예방에 정신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과다한 노출이 멋지고 섹시하게 보이지만, 성범죄의 계기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일깨워주는 일이 시급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 다에게 자제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되도록 성적 욕구를 촉발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에 정부와 사회,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문창재 논설고문

 

이러한 성범죄가 증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사회.문화적인 환경변화가 가장 큰 요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 사회를 그대로 뒤따라 가는 형태로 발전하는데 바로 80년대 일본사회에서 무차별적인 선정성이 난무하던 시대를 연상하게 된다. 과다한 노출, 막장드라마, 선정적인 프로그램, 원조교제 등 우리사회는 이러한 무절제한 환경에 대하여 근본적인 철퇴를 내리지 않는 한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TV 선정성 도를 넘었다

 

얼마 전 한국에 오랜만에 출장을 갔다 저녁 시간 지상파 TV를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기껏해야 10대 중반의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들이 거의 가슴과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 복장으로 이른바 섹시댄스를 신나게 추고 있었다. 후배에게 물어보니 “요즘 다 저래요”란다. 다른 채널도 다를 게 없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아니 거의 그대로 묘사하는 몸짓과 노골적인 노출이 판을 쳤다. 가관이었다.

일본의 1980년대 이야기를 해보자. 당시 일본 TV의 선정성은 지금의 한국보다 더했다. 지상파에는 낮 밤 가리지 않고 여성의 가슴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했다. 온갖 저질, 선정적 프로그램이 난무했다. 당시 일본에 있던 나는 '11PM'이란 프로그램 장면을 기억한다. 전국의 스트립 댄서들을 모아 놓고 누가 더 농염하고 선정적인 몸짓을 보이는가 겨루게 했다. 또 사이비 최면술사가 출연자에게 최면을 걸어 묘한 교성과 성 행위를 연상하는 몸짓을 유도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일본 사회는 이런 TV의 선정성에 자연스레 물들어갔다. 변태적 퇴폐업소가 급증하고 '섹스 천국'이란 오명도 갖게 됐다.

20년 후. 일본에 다시 와 놀란 것은 그런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새벽 시간에 극히 일부 잔재가 남아 있지만 적어도 0시 이전, 청소년이 보는 시간대의 프로그램에서 선정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뭘까.

 

                                           



한 민방의 간부는 “2001년 '청소년 유해 사회환경 대책법'이 만들어진 이후 선정적인 장면이 TV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거센 반발도 있었다 한다. 방송사들은 숫자(시청률)가 확실히 나오는 프로그램을 포기하기 싫어 반대했다. 상당수 성인 남성들도 속사정은 다르겠지만 “표현의 자유를 뺏지 말라”고 저항했다. 하지만 이들도 꼼짝 못한 논리가 있었다. “당신 딸이, 아니면 당신 아들이 그로 인한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면 좋겠는가.”

일본뿐 아니다. 2004년 수퍼보울 축하공연에서 재닛 잭슨이 가슴을 노출하자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는 이를 실황중계했다는 이유만으로 CBS에 55만 달러(약 6억4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방송의 선정성을 재단하는 데는 미국 또한 가차없다.

한국의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수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인구 10만 명당 한국의 성범죄 발생건수는 33.4건으로, 미국의 29.3건이나 일본의 6.8건을 앞섰다. 더 큰 문제는 발생건수의 증가율이다. 미국은 7.9%, 일본은 20%가 줄었는데 한국은 오히려 18% 증가했다. 최근 4년을 보면 69%가 늘었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난 최근 한국 TV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노출이 이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12세 이상 시청가'를 '15세 이상 시청가'로 바꾸는 식의 미봉책은 어림없다. 꿀벅지, 엉짱 등의 몰상식한 용어를 양산하고 섹시댄스로 범벅인 TV에는 가차없이 '레드카드'를 내밀 때다. 우리 딸, 우리 아들이 그로 인한 피해자, 가해자가 되기 전에 말이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