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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일본을 얕보는 나라...

 

 

[노재현시시각각] 일본을 얕보는 유일한 나라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7-06-21 20:51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노재현] 오늘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지 꼭 42년째 되는 날이다. 1965년 6월 22일 맺어진 한일협정에 따라 한국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모두 8억 달러를 일본으로부터 받아냈다. 개인청구권 포기라는 쓰라린 대가를 감수하며 받은 피묻은 돈을 투명하게 효율적으로 집행한 것은 박정희 정권의 공로다. 포스코와 경부고속도로가 이 돈으로 건설됐다.
 

인도네시아와 비교하면 쉽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침공으로 본 피해에 대한 배상 협상이 1958년 마무리됐다. 순배상금 2억2308만 달러에다 차관 4억 달러, 일본 기업의 수출 외상값 포기분을 포함해 한국처럼 8억 달러를 받았다. 인도네시아는 이 돈으로 자카르타 번화가에 사리나 백화점을 세웠다. 인도네시아.암발쿠모.샘도라비치.발리비치 호텔 등 네 개의 최고급 호텔도 배상금으로 건설했다. 경제발전이나 서민생활과는 상관없는 부유층을 위한 시설이었다. 특히 자카르타에서 7시간 거리의 외딴 인도양 해안에 세운 샘도라비치 호텔은 수카르노 당시 대통령의 개인 별장으로 알려져 있었다('대일 청구권 자금의 활용사례 연구'.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사실 8억 달러는 19세기 말 이후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 지배, 수탈, 민족문화 말살을 생각하면 전혀 성에 차지 않는 액수다. 박정희의 집권 초기 표현대로 "도둑맞은 가난한 집" 같던 나라 경제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눈물 머금고 합의했을 뿐이다. 어쨌든 한국은 다시 일어섰다. 그 과정에서 이웃 나라 일본이 제도나 기술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은 침략의 원흉이었지만 압축성장에 필요한 모델이기도 했다. 한국인이 지금도 일본에 이중적 태도를 보이면서 '세계에서 일본을 얕보는 유일한 나라'라는 말까지 듣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본지의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도 일본은 '가장 싫어하는 나라'와 '가장 본받아야 할 나라' 두 항목 모두 2005, 200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두 나라 사이에는 역사적으로도 존경심과 경멸감이 교차돼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학자 중에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대체로 일본을 깔보았다. 일본인은 조선 선비를 존경하다 근세에 들어오면서 점차 얕보는 마음이 강해지고, 급기야 정한론(征韓論)으로 비화한다.

 

임진왜란 후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 중에도 일본인에 대한 우월감을 즐긴 이가 많았다.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 과정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속된 말로 일본의 식자들을 얕보고 갖고 놀았다. 일본 측 기록을 보면 일본인들이 휘호를 받기 위해 내미는 종이에, 조선 문사들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문진을 놓는 대신 발뒤꿈치로 밟고 냅다 휘갈겨 썼다고 한다.('일본은 있다'.서현섭).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에도 시대 일본 지식인들은 조선의 선비와 학문을 흠모했다. 오규 소라이(1666~1728)라는 유명한 유학자는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인근 시나가와로 이사 간 친구에게 "그 나라에 2리 가까이 다가가 사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정색을 하고 인사했다. 2리는 일본 단위로는 약 7.8㎞이고 '그 나라'는 물론 조선이다. 그러나 일본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 '국학(國學)'의 영향으로 조선 멸시론이 점차 확산되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예 한반도를 정복하자는 정한론이 세력을 얻는다. 19세기 사상가 요시다 쇼인(1830~59)은 노골적으로 "조선을 책해 인질과 조공을 바치게 하고, 북쪽으로는 만주 땅을 분할하고, 남쪽으로는 대만과 필리핀 제도를 손에 넣어 점점 진취의 진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시다의 주장은 불과 1세기도 안 돼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대부분 실천에 옮겼다(쫄딱 망해버리긴 했지만).

 

한국과 일본에는 수백 년간의 '상호 멸시의 역사'가 있다. 그 유전자는 지금도 작동한다. 한쪽에서 일본이라면 무조건 깎아내릴 때 다른 쪽에선 배배 뒤틀린 혐한론(嫌韓論)이 유행을 탄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등신대(等身大)로 파악하려는 지혜가 아쉽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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