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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노대통령의 원맨쇼

 

 

[사설] 자칭 ‘세계적’ 대통령의 4시간짜리 원맨쇼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6-03 23:07 | 최종수정 2007-06-03 23:46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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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엊그제 ‘참여정부 평가포럼’이라는 열성 지지자들 모임에서 4시간 동안 격정의 원맨쇼를 했다. 이 특강 원고를 며칠 동안 썼다지만 내용이랄 것도 없었다. 저속한 말로 야당과 그 후보, 언론을 닥치는 대로 비방하면서 스스로는 “세계적 대통령”이라고 한 것이 전부다. 대통령 입에서 자극적인 말이 나올 때마다 900석 좌석을 메운 지지자들은 100번 넘게 박수치며 열광했다. 특강 마무리는 민중가요 합창이었다. 한 신문은 ‘종교집회 같았다’고 그 현장을 전했다.

지금 대통령이 누구를 공격한다고 타격받을 사람도 없다. 공격받은 쪽의 국민 지지율이 더 올라간다고 다른 쪽이 화를 내는 게 현실이다. 국정 실패로 여당에서조차 쫓겨나다시피 한 대통령이 다음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것도 과대평가다. 대통령 훈수에 여권 후보들과 정당들이 먼저 “그만두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 대통령 특강은 국민들에게 버림받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풀이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막판까지 대통령을 짱짱하게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아직도 내가 떠드니까 세상이 시끄럽고, 신문이 크게 쓰지 않느냐. 나는 식물대통령이 아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조용하다 싶으면 나타나서 소음을 일으키는 것은 이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대통령의 행태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그것은 4년여 전에 우리가 과연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느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미 “남북관계만 잘되면 나머지는 깽판쳐도 괜찮다”고 했던 사람이다. 지금 그의 행태가 바로 “깽판쳐도 괜찮다”는 자신의 말 그대로다.

대통령은 특강에서 또 한 번 헌법과 법률을 깔아뭉갰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비난하다가 “캬, 조기숙 선생님 토론 한번 하고 싶죠, 나도 하고 싶은데 그놈의 헌법이 못하게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헌법을 어떻게 보는지는 ‘그놈의 헌법’이라는 말에 다 담겨 있다.

선거법은 공무원이 선거와 관련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특강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끔찍할 것”이라고 했다. “제 정신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하겠냐”며 이명박 후보를 공격했고, “공약이라 할 것도 없다”는 식으로 박근혜 후보의 열차페리 공약을 깎아 내렸다. 그러면서 노골적으로 “민주세력에 남은 과제는 대통령 선거일”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여권조차 반기지 않는 선거운동을 혼자 하면서 선거법만 짓밟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노 대통령에게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기대하는 국민은 이제 거의 없다. 그래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그에겐 정책도 “꼴통 정책”이 따로 있다. 야당 후보들을 공격해도 “(내가 한 일) 책으로 많이 써놨으니 그냥 베껴가라”고 하고, “열차페리는 (내 사업인) 물류허브에 비하면 손가락 한마디도 안 된다”고 한다. 대통령은 박 후보에 대해 “한국 지도자가 독재자의 딸…”이라고 해 지지자들의 환호가 나오자 “내 말이 아니라 해외 신문에 그렇게 나면 곤란하다는 것”이라고 돌려쳤다. 유치한 일이다.

대통령은 “작전통제권 반대 시위하던 사람들 다 어디 갔나. 웃어주자”고도 했다. 나라 걱정한 죄밖에 없는 국방 원로들에게 이렇게 침을 뱉었다. 대통령은 “북핵 실험 때 국민이 나를 죽사발 냈지만 안보정책은 정말 잘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자극적인 말에 지지자들이 계속 폭소를 터뜨리자 “내가 코미디언이냐. 왜 자꾸 웃냐”고 했다. 또 웃음이 터졌다. 그걸 보는 국민이 어떤 심정일지 이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에겐 언론이 敵적이다. 국정홍보처 폐지를 제안한 사람들을 향해 “언론과 영합이냐 추파냐 굴복이냐 작당이냐”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마구 쏟아냈다. 취재 통제와 관련해 언론에 “왜 걸핏하면 내놓던 입에 맞는 여론조사 안 하느냐”고 했다. 대통령 조치에 반대가 훨씬 많다는 여론조사는 이미 수 차례 보도됐지만 흥분한 대통령 눈에 그게 보일 리 없다.

대통령이 우리 사회를 보는 극단적 시각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그의 눈에는 “약자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것이 保守보수”이고 “대입 본고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福祉복지는 국물도 없다”는 것이다. “부유세 내라고 하면 안 내지만 종부세라고 하니까 세금 내는 것”이고, 자신이 주식을 산 것은 “부동산이 이기나 주식이 이기나 해보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나같이 황당한 소리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피해는 국민이 당한다. 여기엔 서민도 없고 부자도 없다. 나이가 많고 적고도 없고, 지역도 없다. 모두가 피해자다. 여당까지 피해를 입었다. 노 대통령 임기 5년은 최소한 그런 교훈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