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미국의 버지니아공대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총격사건으로 33명이 사망하고 범인이 교포자녀인 조승희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조씨가 미국의 NBC로 우송한 사진과 동영상이 언론보도로 알려지면서 우리는 또 다른 충격과 정신적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조씨가 죽은 상태에서 왜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가 사회 부적응과 소외를 겪어 우울증까지 경험해 오던 조씨가 내면에 분노를 가득 담은 채 외톨이로 지내오다가 오랫동안 품어오던 사회에 대한 반감과 불만을 일순간에 폭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범죄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조씨의 성격과 심리를 파악해 보면 ‘반사회적인 성격장애’와 ‘피해망상’, 그리고 ‘과대망상’ 등이 혼재된 것으로 보인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자신이 불행한 이유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세상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조씨의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계획하고 불안이나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신념이 가득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왜곡된 논리를 전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보냈다는 사실에서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성격소유자 중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고 성공할 기회를 주지 않은 사회에 대한 강한 반감과 분노를 자신이 아닌 제삼의 불특정 다수를 향해 증오범죄의 형태로 표출한다.
피해망상 증세는 자신이 오랫동안 다른 사람이나 사회로부터 고통을 받아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씨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피해망상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있다. 조씨는 나와 너를 구분하여 대립을 조장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체계를 보여 주는데, 너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불특정한 다수로 구성된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조씨는 상상 속에서 가상의 적을 상정하고 이를 응징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사명으로 인식한 것 같다. 또 자신의 행동은 힘없고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마치 순교자인 것처럼 정당화하는 소영웅주의적인 특징을 보이는 과대망상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적응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조씨가 심리적인 고통을 겪을 때 세탁소를 운영하기에도 힘에 겨웠던 부모님들은 충분한 관심을 제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단지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미국 사회에 완전히 적응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부모들로부터 성장단계별로 필요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커나가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조씨는 여러 모로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그냥 방치되어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판단해서 해결해야 하는 막막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수사 초기에는 범행 이유가 여자친구와의 갈등이나 우울증, 그리고 스토킹 과정에서의 좌절 등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동영상이 공개된 후에는 범행동기가 사회에 대한 강한 반감과 분노의 표출이라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번 사건처럼 불특정한 다수를 향해 사회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범죄가 이미 발생한 적이 있다. 2003년 2월18일에 대구광역시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지하철 방화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정신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50대 남자가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휘발유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지하철 바닥에 던져 12량의 지하철 객차를 뼈대만 남긴 채 모두 태워 버림으로써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당했던 대형참사였다. 또 2005년 6월19일에는 경기도 연천의 최전방 GOP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여 8명의 아까운 젊은 장병의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이 사건의 범인인 김모 일병은 내성적이지만 냉혹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군대생활로 인한 정신적인 압박감과 언어폭력에 불만을 품고 사고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총기사고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엄격한 총기규제 방안을 유지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헌법에서 보장한 개인들의 총기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대학캠퍼스를 비롯한 교육기관과 공공기관, 그리고 교회와 같은 종교시설에서는 총기 소지와 사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 젊은이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유해매체와 유해환경을 정비하는 데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강화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교훈을 얻어야 한다. 특히 사회 곳곳의 외톨이들을 조기에 발견하여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 어울리도록 유도하며, 필요하다면 상담과 치료프로그램을 제공할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고 사회정신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에 정부와 민간이 함께 나서야 한다./곽대경 동국대 교수·범죄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