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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조승희는 누구인가?

 

 

<데스크칼럼> 조승희는 ‘?’ 였다

[헤럴드 생생뉴스 2007-04-1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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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최악의 피해를 낸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건의 범인이 버지니아 공대에 재학중인 한국인 재미교포 1.5세대 조승희(23)로 밝혀졌다. ‘대학살’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니 참담하다. 세계 사회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다. 1903년 한국인 101명이 이역만리 미국의 사탕수수 농장에 발을 디딘후 100여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일궈낸 아메리칸 드림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다. 소수 민족의 설움을 극복하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의 주류사회에 편입하려는 시기에 발생한 이번 사건으로 교민사회는 패닉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파장이 자칫 미국 주류사회가 한국인 커뮤니티 전체에 대해 그릇된 이미지를 갖게 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기대효과에 들떠 있던 기업들은 노심초사하고 있고, 현지 유학생과 교민들의 보복테러를 당할까 안절부절 하고 있다.
 

현지 수사당국은 참사의 원인을 ‘치정에 얽힌 범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녀교육을 위해 무작정 떠나는 해외이민과 묻지마 조기유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졌다. 32명이 숨지고 29명이 부상을 입은 학살의 이면에는 미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교포 1.5세대의 엄청난 스트레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1992년 부모를 따라 8살때 이민간 소년 조승희가 언어와 관습이 전혀 다른 미국사회에서 받아야 했을 문화적 충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승희가 남긴 행적 곳곳에서 부적응의 흔적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조승희가 다른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는 조용하고 고립된 성품의 소유자라고 전했다. 한인은 물론 백인 학생들과도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였다. 래리 힝커 버지니아텍 대변인도 “그는 외톨이(loner)였다”고 밝혔다. 노트에 ‘부잣집 아이들’, ‘방탕’, ‘기만적인 허풍쟁이들’이라고 강하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캠퍼스를 비난한 조승희는 기숙사 방에 불을 지르고, 여성들을 스토킹하는 등 점점 비정상적으로 변했다. 대형살인사건의 범인들처럼, 그는 점점 사회에서 고립되고 반사회적 외톨이형으로 변질된 것이다.

 

교민 1.5세대들은 부모들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혼란을 겪는다. 허드렛일을 하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오로지 자녀의 성공만을 바라는 부모의 기대, 세계에서 알아주는 광기수준의 교육열 등 한국인들의 독특한 문화가 자녀들을 스트레스의 늪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다민족이 더불어 사는 미국에서 ‘나만 1등하면 된다’는 식의 강요로 인해 자녀들은 주변인으로 전락한다는게 현지인들의 분석이다. 한국과 달리 통제가 느슨하기 때문에 부모가 잠시 한 눈이라도 팔면 자식들이 약물중독 등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 있는게 미국 교육의 어두운 현실이다.

 

특히 모국어와 모국 역사에 대한 철학이 정리되지 않은 채 떠나는 조기유학은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불러온다. 이탈리아 이민 1.5세대로 미국 교육계에서 이름이 있는 레오날드 코벨로는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부모가 수치스러운가를 배우면서 미국인이 되었다”라는 짧은 말로 이민자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표현했다. 주류에 끼기 위해서는 조상의 문화와 전통을 무시하고 단절하는 희생을 감내해야만 진정한 미국인의 꿈을 이룬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주류인 ‘백인’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을때 이민자들은 좌절하고 방황한다. 조승희는 영문과에 입학할 때 이름을 적어내라는 교수의 요구에 ‘?’를 적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가 비대해지면서 순수 유학생과 1.5세대 교포 학생, 시민권자 학생들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 생겨나고 있다. 미국내 한국 유학생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9만3728만명을 기록, 세계 1위 규모다. 사건이 발생한 버지니아공대에서만 한국 유학생과 교민 학생이 1000명을 웃돈다.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층간의 알력이 유학생 사회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조승희는 개인일뿐이지, 한국인 전체는 아니다. 하지만 버지니아 대학살은 치밀한 준비없는 해외유학이 ‘제2의 조승희’를 만들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사회부장 정덕상

<속속 드러나는 조승희씨 행적>
[연합뉴스 2007-04-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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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담당 강사는 평소에도 무슨 일을 당할까 우려했다', '룸메이트에게조차 거의 말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당일 아침 지극히 일상적으로 하루 일을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ABC 뉴스 인터넷판은 17일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을 저지른 조승희(23)씨를 잘아는 친구들과 교수들의 말을 인용해 조씨의 최근 행적을 자세히 보도했다.

 

2005년 가을 학기 때 창작 수업을 담담했던 루신다 로이(여) 강사는 조씨의 행적과 그의 창작 과제물에 드러나는 주제에 대해 걱정을 한 끝에 일대일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로이 강사는 ABC 뉴스와의 회견에서 "조씨의 작문에는 명시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수면 아래에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며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봐온 사람 중에서 제일 심각한 외톨이였다"고 말했다.

 

로이 강사는 조씨가 실내에서도 모자를 눈까지 깊숙이 내려쓴 채 선글라스를 착용했다고 평소 모습을 회상했다. 로이 강사는 또 조씨는 무슨 질문을 하면 뭔가 속삭이면서 답변을 하는데 20초가 걸렸다고 말했다.

 

조씨는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로 로이 강사를 사진찍기도 했다. 로이는 그를 만날 때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기도 했다고 했다.

 

로이는 당국에 조씨의 위험성에 관해 알렸으나 개입하기에는 법적 장애물이 너무 많을 것이란 답변을 들었다. 로이 강사는 조씨에게 생활 상담을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조씨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조씨의 기숙사 룸메이트 조지프 오스트(전기공학.2년)는 조씨와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냈으며 같은 방으로 옮기게 됐을 때 무슨 일인지 그는 경영학 전공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기억했다.

 

특히 조씨는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 록, 팝, 클래식 등 각종 음악을 감상했다는 것. 오스트는 "그(조승희)는 음악을 다운로드 받느라 많을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회상했다.

 

조씨가 응시점이 없이 자신의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조씨는 매일 운동을 했으며 매일 밤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사건이 발발하기 전 마지막 몇주간 조씨는 오전 7시에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그러나 최근에는 오전 5시30분이나 6시에 일어났다고 오스트는 전했다.

 

더욱이 조씨는 어떤 남자친구나 혹은 여자친구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조씨는 자기 방에 어떤 장식을 하거나 포스터, 사진 액자 등을 걸어놓지 않았으며 랩톱 컴퓨터과 서적, 옷이 전부였다는 것.

 

오스트는 2-3차례 그에게 말을 붙이려 시도했다면서 "그러나 그는 한마디 답변만을 주었고 대화를 하려 고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의 경우 조씨는 아침 일찍 깨어나 무자비한 총격 사건을 저지를 것으로 전혀 보이지 않은 모습이었다는 증언도 나와 관심을 끈다.

 

버지니아텍 회계학 전공의 캐런 그루얼(21)은 사건이 벌어지기 몇시간 전인 지난 16일 오전 5시30분께 수업준비를 위해 '벼락치기식'으로 밤늦도록 공부한 후 잠깐 휴식을 취하던 차에 조씨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루얼이 하퍼홀 기숙사의 화장실을 떠나려는데 조씨가 남자용의 통 넓은 속옷에다 티셔츠 차림으로 들어와 아침 의식을 치르듯이 로션을 바르고 콘텍트 렌즈를 착용하고 약제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루얼은 사건 발생 수시간 전 조씨는 "거의 보통 때와 마찬가지 모습"으로 아주 평범하게 일상을 시작한 것으로 묘사하면서 "그가 이런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런 면과 동시에 영문학 전공의 조씨가 희곡 과제물 작성 등 평소 학업 과정에서도 이상한 인물이었다는 점이 뚜렷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버지니아텍 영문학 전공 4학년 여학생 스태파니 데리는 저명한 에드 폴커 교수가 가르치는 희곡 수업을 조씨와 함께 들었다. 데리는 "그의 희곡은 정말로 병적으로 음울했고 괴기했다"고 회상했다.

데리는 또 "그의 희곡들 중 한 개는 매우 좋았다고 기억한다. 그것은 그의 의붓아버지를 혐오하는 아들에 관한 것이었다"면서 "소년인 이 아들이 전기톱을 마구 집어던지며 의붓아버지를 망치로 공격하는 그 희곡은 소년이 폭력적으로 아버지를 질식사시키는 것으로 끝난다"고 전했다.

 

이런 일을 자주 접한 데리는 총격사건 소식을 듣자마자 직감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학생이 조씨라고 생각했고 "소리치며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데리는 "그의 행적에 절망적이었고 모든 조짐을 감지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