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게 무언지......3
호평동 호만천 운동기구에서 바라본 고가도로 (경춘 고가도로). 오랫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 아름답다.
한국군 현실태
당나라 군대, 당나라 군대 하지만 당나라 군대도 당나라 건국 초기에는 청나라 팔기군처럼 천하무적이었다. 그러한 군대가 전성기를 보내고 풍요를 맛보면서 변질되어 갔다. 당나라는 말기로 접어들면서 지도층의 타락과 권력 투쟁, 사치와 향락에 빠지면서 군대도 자연적으로 기강이 무너지고 부패와 무능이 심해지면서 무너져갔다. 명나라를 무너뜨린 청나라 팔기군도 마찬가지로 말기에는 외국군대를 막을 힘이 없을 정도로 오합지졸로 변모하고 말았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인지도 모른다. 즉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 즉 만물은 생로병사를 거치면서 순환되는 이치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도 만물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 같다.
이씨 조선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창업 후 200년이 지나자 임진왜란을 당하여 국운이 등불처럼 꺼져갔으나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 의병의 궐기와 분투. 명나라 지원 등으로 정유재란까지 극복하면서 겨우 나라의 명맥을 유지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지나한 당쟁과 치열한 권력 투쟁, 양반 등 지도층 무리들의 부패, 법과 제도의 문란 등으로 점차 다시 내부적으로 썩어갔다.
그러다가 후금이 일어나며 정묘.병자호란을 당하게 되었는데, 광해군을 몰아내고 등극한 인조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임금으로 이괄의 난을 거치면서 서북방 방어력이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청태종이 침략하자 남한산성으로 도망친 인조는 40여 일을 버티다가 결국 삼전도에서 청태종 앞에서 머리를 땅에 찍으며 항복했다. 50만 명이 넘는 조선 백성이 청나라로 끌러가서 노예처럼 살다가 이슬처럼 사라졌고 환향녀들이 몸을 씻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대부분 목을 메거나 버려지거나 미쳐버렸다.
효종의 북벌의 꿈도 망상에 불과했고 영.정조의 개혁도 양반 사대부에 의해 물거품이 되었다. 외척들이 득세하면서 허약한 왕을 내세워 권력을 농단하며 벌인 세도정치는 조선을 망국의 길로 끌고 갔다.
마지막 고종이 등극하여 흥선이 앞장서서 개혁을 시도했지만 양반 계층의 강력한 반발로 대부분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민비와 권력 다툼을 벌이면서 서로 외세를 끌여들여 망국의 길로 갔다. 친일파들과 왕족들이 앞장서서 일제의 침략에 총한방 쏘지 못하고 합방에 조인하여 나라를 송두리채 바쳤다.
36년 간의 기나긴 세월 동안 나라를 되찿으려고 안중근의 총성이 할빈역두에서 울렸고 수많은 의사들이 목숨을 던져 독립을 위한 희생양이 되었으나 이 모든 것들이 동해 바다에 일렁이는 물거품에 불과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장터로, 탄광, 공장으로, 위안부로 끌려가 이슬처럼 사라졌고 한반도는 일제의 침략 전쟁에 피와 살은 물론 뼈까지 빼앗기는 고통에 허덕였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미국은 일본 본토 공략에 고민에 빠졌는데, 최소한 50만 명 이상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소련에게 대일전 참전을 요청하는 한편, 비밀리에 개발한 원자탄을 결국 사용하게 되는데, 일본의 두 도시에 떨어진 원폭의 피해는 엄청났다. 일제는 전인구가 공멸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다.
미국은 소련이 사할린, 만주 등지로 밀고 내려오자 일본 본토를 혼자 차지할 욕심으로 한반도에 소련의 남하 저지선을 구상하는 데 바로 북위 38도 선이었다.
한강 철교 모습. 얼마전 구입한 노트북 액정이 깨져 신도림 테크노마트로 가는 길이다.
그리하여 미소 협정에 따라 남쪽은 미국이 진주하고 북쪽은 소련이 진주하게 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이승만과 김일성을 앞세워 각자 위성국을 세우고 자신들의 관할 지역으로 차지했다. 미소 냉전이 시작되면서 북한 김일성은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아 남조선 해방을 외치며 6.25 전쟁을 일으켰다.
초기 전투에서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에 국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맥아더 장군의 정세 판단에 따라 오산에 미군 스미스 특수부대가 투입되고 대전에 미군 사단이 긴급 투입되었지만 미군 사단장까지 포로로 잡히는 등 미군도 무너지면서 낙동강까지 밀려났디. 낙동강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사이 맥아더 장군에 의한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다시 38선을 넘어 북진하게 되어 평양을 점령하고 한국군 6사단이 압록강, 미군 해병 제1사단이 장진호 근처까지 진출했으나 은밀히 침투한 대규모의 중공군의 후방 포위 전술에 대부분의 연합군이 와해되어 장비와 무기를 버리고 철수하게 된다. 휴전선 일대에서 지리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전쟁 발발 3년 만에 겨우 휴전이 조인되어 어느듯 70년이 지났다.
호평동 아파트 전경
오늘날 북한과 대치하며 미국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목숨을 구걸하며 한반도 남쪽 반토막에서 버티고 있는 한국군의 실태도 마찬가지로 오합지졸로 변모하고 있는 듯하다. 그 원인은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 성공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자 이 나라는 기나긴 5천 년 동안의 가난을 물리치고 풍요가 찿아오면서 국민들의 의식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고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투쟁한 결과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그동안 학대받고 멸시받았던 문민정부 지도자는 군사 문화를 청산하기 위해 군에 대한 대대적인 숙군작업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군대는 사회적으로 천시받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군대는 권위와 기강, 질서가 무너지고 정권이 철저하게 군을 무력화시키자 국민들도 덩달아 군을 무시하기 시작하면서 군은 천시받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주화 세력에 이어 진보 새력이 정권을 잡았으나 부패로 무너지고 보수 정권이 2대에 걸쳐 정권을 잡았으나 천안함, 세월호 사건과 더불어 무능이 드러나자 촟불 운동으로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몰락하고 말았다. 뒤이은 진보 새력인 현 정권은 친북, 친중 진보 정권으로 북한과 관계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중국에 대한 친중 정책으로 인해 기업과 국민들이 막심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하게 되었고, 진보 지도층의 타락과 위선, 추태, 주택 정책 실패, 코로나 사태 등으로 현재 지지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현정권은 군의 수족을 묶고 북한 편들기에 앞장섰다. 한편 군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지역 출신들이 진급하게 되고 청와대 눈치만 보는 소신도 없고 의지도 없고 전의도 없는 당나라 군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군은 정권은 물론 지도층, 국민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도시 주둔지에서 외곽으로 쫓겨나고 전투력 향상보다 안전 제일주의에 빠져 훈련도 '했다치고'로 생략하거나 대략대략하거나 도상으로 하는 실전적 훈련이 사라졌다. 외형만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내부는 썩고 병들어 미국의 압력으로 노후 무기를 사들여야 하고 핵무장 통제는 물론 미사일 협정, 한미 행정 협정 등 각종 불평등 협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군은 이제 당나라 군대로 전략했으며 자주적인 군대가 아닌 미군의 보조군이 되고 말았다.
북미협상에 한국은 배제되고 겨우 중걔 역활만 하는 정도에 그치고 북한 지원에 목을 메는 현 진보 정권은 중국에는 최대한 유약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중국의 각종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있다. 중국과 북한 편들기에 대북제재를 피해 대북지원을 시도하고 있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어 한미동맹에도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북한은 남한 정부를 필요에 의해 이용할 뿐, 타도의 대상이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지도층은 환상에 젖어 젊은 시절 투쟁을 하면서 진보주이자와 책을 통해 물들은 공산주의 사상과 김일성 사상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전경.
5.16 군사혁명으로 제3공화국이 들어서자 군의 줏가는 하늘을 찌를듯 치솟았고 군장교가 결혼 1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박정희의 경제발전은 우리 민족의 5천 년 동안의 가난을 해소시켜주었고 서독, 중동, 월남전 참전 등으로 벌어들인 외화로 경제개발에 투자했다.
70년대 군의 식사는 보리밥에 깍두기나 김치 시래기국이 전부였다. 가축, 채소 등을 키우는 부대 영농으로 부식을 조달하고 간부 식당, PX 운영 등으로 부대 운영비로 충당했다. 지휘관들은 훈련보다 영농과 가축 사육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소득은 대부분 지휘관 주머니로 들어갔다. 부대 각종 주부식은 태반이 간부들이 착복하고 병사들은 보리밥고 사래기국, 깍두기로 연명했다. 또 시설 관리 및 유지비, 장비 유지비, 훈련비 등 대부분의 부대운영비는 지휘관 주머니로 들어갔다.
78년 이전까지 전방 부대는 전기가 없어 호롱불과 촟불로 밤을 지새던 전방 GOP에 78년도에 처음 전기가 인입되었다. 당시 병사들 중에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는 병사가 소대에 10~20% 정도밖에 안되었다. 나머니는 대부분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병사들이었다.
박정희 사후 전두환이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았고 뒤를 이어 노테우 정권이 그 후광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군부의 독재가 지속되었고 국민들의 반발로 노테우 후반기에 민중 혁명 세력의 성공으로 직접 선거를 치루었고 그 선거를 통해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자 하나회 숙청을 시작으로 군의 숙군작업은 김대중 정권까지 이어졌다.
군의 주류를 이루었던 하나회 장교들이 하루 아침에 몰락하자, 주변의 능력도 소신도 없는 장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오늘에 이르면서 군대는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 되고 말았다. 대도시 군부대가 외곽으로 쫓겨나고 군인 아파트를 기피하고 군인들의 민간 아파트 입주를 주민들이 반대했다.
문산, 파주, 덕정, 연천, 포천, 운천, 동송, 지포리, 외수리, 일동, 이동, 사창리, 화천, 양구, 인제, 원통, 고성 등 전방의 중소 도시들은 휴전 이후 지역 주둔 군인들이 뿌리는 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경제발전으로 풍요가 찿아오고 정치적으로 군대에 대한 차별과 무시가 확산되자 주민들도 군부대를 멸시하기 시작했다. 군의 위상이 추락하자 군을 만만하게 생각한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은 무시하게 시작했다. 서울 등 대도시는 물론 지방 중소 도시까지 지역 개발을 앞세워 군부대를 몰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군부 정권 시절에는 군복을 입고 길거리를 누비고 다녔지만 이제는 군복을 입고 길거리를 다니기 부끄럽게 되었다.
군부대들이 도시에서 쫓겨나고 그곳에는 높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군사보호구역을 해제하여 개발을 시도하고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군골프장을 쫓아내고 아파트를 짓는다. 군부대는 도시에서 멀어진 산골 외진 곳으로 옮기고 가족들은 자녀 교육 때문에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왕숙천 가는 길. 신도시 건설로 이곳 대부분이 쫒겨나게 되었다.
파라미트 구조의 군 조직에서 각종 제한 사항으로 진급을 해야만 계속 근무가 가능하다. 요즘은 4년제 사관학교를 나와도 중령으로 진급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장기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어리석은 길을 선택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사관학교 출신은 1차에 진급을 못하면 동기생한테 밀리고 장군은 정권이 바뀌면 어쩌면 달 수 있을 지 몰라도 최고의 계급은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어치피 중도에 전역해야 하는 간부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사회로 나오면 가장 사회 물정을 모르는 천하에 바보가 된다. 무엇을 해도 성공 확률은 낮다. 그래서 가진 재산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연금 해당자나 일부 성공자를 제외하고는 중령 출신이하 대부분은 사업에 실패하고 실업자가 되거나 가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군 출신이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경비, 특수 임무 등 몸으로 떼우는 직종을 제외하고 민간보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자격증이나 학위 등이 딸린다. 대령 이상 고급 장교 출신은 특수 병과인 경우 자신이 근무하던 분야와 관련된 기업체에서 발탁이 가능하지만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게 된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젊은이들은 군에서 장기 근무를 회피하자 저햑력/저수준의 간부들이 양산되자 간부들의 자질은 계속 저하되고 말았다. 모두가 장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보다 높은 전문성을 갖추는 것도 아니다. 국민이 멸시하고 천시하는 군대, 그 출신을 받아들이는 곳도 드물다. 미래도 불투명하고 비젼도 없다. 지도층 자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병역을 면제받거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적당하게 군 근무를 마친다. 그러나 그들이 시회 활동은 멀쩡하다.
신도림 태크노마트 내부. 노트북 가게를 찿아가는데 찿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안내 간판도, 가게, 사무실 호수도, 층수와 호실 번호도 다르다. 3층인데 200번대 번호로 표기되어 있다. 사무실이나 가게 사람들 얼굴이 무표정하고 친절한 모습도 없고 자신과 관계없는 회사나 제품을 물어보면 무조건 모른다고 하거나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아마 비싼 임대료에 장사는 어려운 이유로 그런 것 같다.
신도림 테크노마트는 사람도 뜸하고 역동성이 사라진 모습이다. 한켠에 인천 지역 오피스텔 분양한다고 아줌마들이 휴지 봉투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홍보실로 안내하느라 분주하다. 한 아줌마에 이끌려 홍보실에 갔더니 사기꾼 냄새가 물씬 나는 인간들이 즐비하다. 1인용, 3인용 오피스텔인데 주택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재태크 수단으로 좋단다. ㅎ ㅎ ㅎ
외부 전경
그날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지도층은 군대 근무를 통해 대부분 출세헸다. 명예로운 경력을 거치려면 경제를 알아여 했고 명예로운 경력을 거쳐야 했다. 그 길은 군대를 통해서 출새하고 선거에 출마하여 지도층에 편입되었다. 로마군이 천하무적 강군인 이유는 강인한 훈련을 통해 충성심을 배양하고 25년 만기 전역을 하면 퇴직금이 주어졌다. 그리고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농지를 제공받고 정착할 수 있었다.
속주 사람은 보조병으로 근무하면 만기 전역시 로마 시민권 소유자가 되었다. 전술.전기 연마는 물론 엄정한 군법 시행, 우수한 축성 기술력, 상황에 따른 전술의 유연한 임기 적응력, 지속적인 전략.전술 개발과 다양한 무기 개발 등에 있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군에서 강력한 훈련을 통해 배양되었다. 보초가 잠을 자다가 들키면 바로 사형을 당했다. 10분지 1 체벌은 죽음에 이르게 했다.
국가 지도층이 경제와 군대를 모르면 지도자로 출세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시회 지도층은 군 면제자가 대부분이고 군대를 터부시 한다. 군 골프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고 군사보호구역을 없애고 개발하고 군부대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다.
성냥곽 같은 아파트는 부족하다. 일인 가구 수가 늘어나고 독거노인, 미혼자가 늘어나면서 서울은 물론 수도권은 아파트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울과 수도권은 몰려드는 인구를 수용하느라 아파트 짓기에 급급하다. 수도권 밀집 현상은 국력의 70~80% 이상이 밀집하게 되었고 이런 현상은 전략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장사정포 아래 놓여 있는 서울은 한마디로 한 방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 극히 불리한 모양세다.
그동안 오랫동안 수도권 분산 정책을 시도하지만, 모든 생활의 근거지를 서울이나 수도권에 만들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분산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다. 청와대를 비롯하여 대기업 본사, 정부 기관이 모두 지방으로 이전하지 않는 한 수도권 분산은 불가하다고 생각된다. 수도권에서는 모든 것이 몰려 있어 생활에 편하고 복지나 문화시설이 몰려 있기 때문이고 아무나 무슨 짓을 해도 아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먹고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또 교통 수단이 발달되면 될수록 지방 도시의 인구는 수도권에 직장을 얻을 것이고 지방의 기능은 줄어들 것이고 사람들은 지방에서 잠만 자고 다음날 수도권으로 올라와서 삶의 터전은 수도권에 두어야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농촌의 인구는 물론 지방 도시의 인구도 계속 줄어들고 폐가는 늘어나고 있다. 서울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나라,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왕숙천 가는 길 하늘 모습
군대내에서 사랑의 콜센타가 운영되고 있어 병사들의 애로 사항을 접수하고 처리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별도로 군내에서 많이 통용되고 있는 '마편'은 마음의 편지라고 한다. 국가 인권 위원회나 부모에게 마음의 편지를 보내서 부대, 간부들의 부당, 욕설, 비리 행위를 고발하고, '펜검술'은 펜으로 총검술 하듯이런 글을 쓴다는 말이다. '데스노트'는 간부를 대상으로 비리를 고발하여 처벌받게 하고, '드레곤볼'은 한 간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여러 병사들이 짜고 고발하여 처벌받게 만드는 방법이라 한다.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 현직 군간부들의 약 30% 이상이 각종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 드레곤볼로 날아간 대표적인 사람이 지난번 뉴스를 장식한 4성 장군 0군 사령관이었다.
지금 군에서는 병사들에 대한 처벌 방법이었던 영창 제도, 군기교육대가 없어지고 오직 감봉과 강등뿐이라고 한다. 영창은 복무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군기교육대는 체벌이 심해서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감봉과 강등의 방법으로 처벌한다는 데 병사들이 겁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되지도 않는 봉급이 감봉되고, 계급이 강등되어 봐야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신상에 불리함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부들은 고발당하지 않기 위해 병사들의 눈치를 보며 편안하게 안전을 제일로 관리한다고 한다.
행군시 완전 군장을 꾸리는데 대부분 배낭 안에 빈라면 박스, 패트병, 4각 플라스틱 통 등을 군장에 넣고 행군을 한다고 한다. 대대 병력 500명 중 행군을 할 수 없는 환자가 30~50%, 군장도 완전군장이 아닌 단독군장이 300여 명, 완전군장을 꾸린 100여 명 중에서 대부분 빈플라스틱 통을 넣었고 제대로 꾸린 병사는 20명 정도라고 한다. 병사들이 원하는대로 '했다 치고'를 반복하면서 대략 대략 훈련을 끝내고 편안하게 해주면 부대의 전투력이 우수할 리가 없는 법이다. 보병 사단 특급 전사가 10% 미만이고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킬 수가 없다니 군대도 끝장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떤 부대는 부대 지휘관을 포함하여 전 간부가 병사와 똑같이 군장을 꾸리고 행군이나 구보, 훈련를 하면서 특급전사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목표를 정하고 부대 지휘관이 부하 병사들을 강도 높게 훈련을 시키자, 병사들이 국가 인권 위원회, 군 인권 센타, 부모 등에게 편지, 전화가 빗발쳐 문제가 있었으나 전혀 게의치 않고 강도 높게 훈련시킨 결과 특급전사가 90% 이상 달성했다고 한다. 어느 지휘관이 유사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일부 군인다운 간부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능력하고 안전 제일주의에 빠져 있다. 교육,훈련을 등한시 하고 위만 쳐다보며 세월만 보내고 있다면 유사시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가 아니다. 우리 역대 정부는 해본 적도 없고 할 마음도 없는 국군 포로 송환 노력, 쥐꼬리 만한 국가 보훈 정책, 군을 기피하는 지도층 자녀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 군은 결코 강군이 될 수 없다. 과거 서해 교전에서 숨진 해군 병사들을 김대중 정권이 어떻게 대우했던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국가는 국민들의 피와 땀을 먹고 성장하지만, 군은 사기를 먹고 산다.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미움과 천시를 받는 군대가 과연 적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싸워 이길 수 없는 당나라 군대, 바로 오늘날 우리 한국군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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