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방/안보 현실과 미래 9
세계는 스텔스 기술과 전쟁 중인데......
적에게 포착되지 않은 채 공격을 감행하는 은폐 기술인 스텔스(stealth)는 현대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다. 곡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면체를 이어붙인 듯한 외형을 가진 스텔스 무기들은 현대전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육지와 바다, 하늘을 누비는 최신 무기 대부분이 스텔스 기능을 탑재하고 전쟁터에 모습을 드러내며, 일부는 영화에도 등장할 만큼 대중에게 친숙한 존재다.
스텔스에 대한 개념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분야에서 스텔스 기술이 쓰이고 있다. 레이더 탐지 회피에 중점을 뒀던 기존의 스텔스는 적외선과 가시광선 등에도 포착되지 않는, 말 그대로 ‘투명망토’ 수준의 스텔스 기술을 추구하고 있다.
◆탐지수단에 포착되지 않는 것이 진짜 스텔스
스텔스라고 하면 F-22처럼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기술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레이더는 물론 적외선?음향탐지기 등에 포착되지 않는 것도 스텔스 기술에 속한다.
미국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가 이륙 전 비행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공군 제공 |
항공 분야는 스텔스 기술이 가장 많이 적용되는 분야다. 1960년대 미국 록히드마틴이 개발한 SR-71 블랙버드 정찰기는 스텔스 기술의 시초로 꼽힌다. 30㎞ 상공에서 마하 3.3의 속도로 날아가는 SR-71은 빠른 속도로 적 레이더와 대공미사일 추적을 회피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여기에 전파흡수재를 칠해 레이더 반사면적을 줄였다. 높은 고도에서 음속의 3.3배로 비행하는 SR-71을 요격하기 위해 러시아는 MIG-25 요격기를 투입했지만 현격한 성능차로 번번이 실패했다.
1990년 1차 걸프전에서 이라크군 기지를 정밀폭격한 F-117A는 현대 스텔스 항공기의 원형을 제시했다. 평면체를 이어붙인 삼각형 다면체 모양의 F-117A는 첨단 컴퓨터 시스템을 장착, 목표지점까지 날아가 정밀유도폭탄을 떨어뜨렸다. 스텔스 기술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이라크군은 F-117A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1990년대 이후부터 등장한 F-22, F-35, SU-57, J-20 스텔스 전투기는 F-117A의 특성에 공중전 능력을 강화했다. 적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먼저 공격할 수 있는 스텔스 전투기 시대가 열린 셈이다. 현재는 F-35A의 실전배치가 진행되면서 일부 강대국의 전유물이었던 스텔스 기술이 확산되고 있다.
스텔스 전투기는 F-15를 비롯한 전투기와 달리 다면체 모양으로 표면이 구성되어 있다. 평면은 직각에 가깝게 전파가 닿으면 강한 반사를 일으키나 그 이외의 각도에서는 접근 방향으로 반사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활용한 기술이다. 여기에 전파흡수재를 칠해 적 레이더파를 흡수하고 적외선과 열 방출을 최소화하는 기술이 추가된다. 1980년대 이후에 등장한 해군 함정에도 적 대함미사일과 레이더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항공 분야 스텔스 기능을 적용해 함정을 보호하고 있다.
F-35A가 개발된 이후 한동안 주춤했던 신형 전투기 개발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스텔스 기술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은 지난 7월 6세대 전투기인 템페스트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의 스텔스 기술에 강력한 레이더와 무인기 통제능력, 전자장비 통합, 인공지능 장착 등을 토대로 2035년까지 템페스트 전투기를 개발할 계획이다. 미국은 레이저 무기를 탑재한 스텔스기 개발을 구상하고 있다. 수직꼬리날개를 없애 레이더 포착 확률을 더욱 낮추고, 필요에 따라 무인비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보잉과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루먼 등을 중심으로 추진중이다.
◆스텔스 기술 전방위 확산…한국은 완제품 수입
항공과 해상 무기에 주로 쓰이던 스텔스 기술은 최근 들어 지상무기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는데 따른 대응책으로 적에게 탐지되지 않는 전차를 개발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스텔스 전차 개발이 본격화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거대한 외형을 가진 전차는 엔진에서 소음이 크고 엔진에서 열을 많이 방출해 적에게 쉽게 포착된다. 기존에는 열을 방출하는 가짜 전차를 내세워 적의 눈을 속이는 방식이 주로 쓰였다.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은 모형 전차에 히터를 장착, 다국적군을 혼란시키려 했다.
하지만 정찰기술의 발달로 위장술의 효용이 떨어지자 세계 각국은 전차의 차제를 소형화하면서 레이더에 탐지될 확률을 낮추고 소음 및 열 방출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전차의 생존성을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스텔스 전차의 탄생이다.
가장 많이 시도되고 있는 방법은 열 방출을 낮추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개발된 전차들은 대부분 적외선 탐지장비를 갖추고 있다. 엔진과 배기구에서 방출되는 열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회피할 수 있다면 스텔스 전차 개발에 한걸음 다가서는 결과를 얻게 된다.
록히드마틴을 비롯한 미국 방산업체들은 2022년까지 전기 차량을 만들어 전차의 소음과 열 방출량을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은 최신 전자위장시스템과 차체의 높이는 자유자재로 낮추는 기술을 접목, 레이더와 적외선에 탐지되지 않는 전차를 구상중이다. 러시아는 최신예 T-14 전차에 전파흡수제를 칠하는 한편 적외선 감소 기술을 적용했으며, T-14를 무인화해 크기를 줄여 적에게 탐지될 확률을 낮출 계획이다. 폴란드가 개발한 PL-01 전차는 표면을 주변과 같은 온도로 맞춰 전차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변형, 적의 적외선 탐지기에 포착될 확률을 낮췄다.
전차의 사격 방식에도 변화의 시도가 일고 있다. 전차포를 발사할 때 높은 수준의 소음과 열, 연기가 뿜어져나온다. 이는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같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전차와는 별도로 원격 무인장비를 운용, 실제 사격은 무인장비에서 진행하고 전차는 사격 지시를 내리는 역할만 맡는 기술이 제안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를 전차에 장착해 스텔스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안도 연구중이다.
메타물질을 이용한 투명망토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물질의 원자 배열이나 구조를 살짝 바꾸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메타물질은 빛의 굴절을 바꿔 사람이나 물체를 보이지 않게 한다. 하지만 대형 투명망토를 만들려면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시간이 필요한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망토의 크기가 커져야 전차 표면에 이를 씌워 적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군사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적용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 건조된 충무공 이순신급, 세종대왕급 구축함 등 국산 해군 함정 설계에 스텔스 기술을 반영하는 한편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스텔스 재료 등을 개발한바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스텔스 기술 개발이나 적용은 많이 뒤쳐진 실정이며 군에서도 관련 소요제기가 거의 없다. 한국형전투기(KF-X)가 개발되고 있으나 무장과 전자장비 통합 등에 집중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스텔스 성능을 구현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우리 군이 일선에서 운용 가능한 고성능 스텔스 기술은 F-35A 전투기처럼 외국에서 수입한 완제품 무기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전투기와 전차에 탑재 가능한 스텔스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주변국들이나 유럽 선진국과 비교하면 기술적 격차가 크다. 지금이라도 연구개발과 군 전력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즉각 대응할 무기개발에 치중했던 국방 연구개발(R&D)을 스텔스 기술을 포함한 원천기술 개발로 전환해야 미래 전쟁을 대비할 수 있다는 지적을 군 당국이 흘려 듣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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