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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폭염을 이겨내며......


                         폭염을 이겨내며......





폭염이 계속되다가 장마가 한바탕 지나가고 또 폭염이 지속되더니 이번주가 고비인 것 같다. 또 휴가철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듯하다. 고대 로마 시대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라는 두 영웅의 격돌을 앞두고 잠시 쉬어가면서 깊은 상념에 잠긴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가고 있지만, 들려오는 뉴스는 천국과 지옥을 방불케한다. 휴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삶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삶의 행복을 느끼는 천국같은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여물지 못한 인성을 가진 천민같은 인간들이 저지르는 갖가지 천태만상 사건.사고들에 대한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미친 사람들 때문에 예기치 않게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 가슴을 저미게 한다.



화재가 나서 질식해 죽은 사람,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음주, 졸음운전으로 여러대의 차량을 들이받아 휴가를 가던 사람들이 도로상에서 죽고 다치는 사고, 외제차를 몰며 광란의 질주로 사고를 내 애꿋은 사람들이 죽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미친 차에 당한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된 모자, 끝없이 터지는 각종 성추행.성폭행 사건.사고, 휴가지 바가지 요금으로 폭리를 취하는 미친 상혼 등 가는 곳마다 공중질서는 사라지고 사람들이 미쳐 날뛰고 있는 광란의 현장이 바로 휴가지 모습이다.



즐거움과 행복을 찿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과 행복을 찿아 가다  사고를 당하여 도로상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수많은 불행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행복을 찿아가지만 어쩌면 불행을 찿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길고양이가 도로에서 죽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 떠나지만 그것은 어쩌면 죽음을 향한 향연을 즐기기 위한 휴가인지도 모른다.



차량은 없다가 있게 되면 가까운 거리도 차량으로 가야하고 차량 안은 어쩌면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가장 행복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멋진 차를 타고 음악을 들으며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 휴가를 내어 썬그라스에 흰 스카프를 휘날리며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보면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움이 넘치고 웃음이 넘치는 얼굴로 서로 마주보며 행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또는 친구들과 같이 가거나 친지들과 같이 바다, 산, 강, 계곡 어디를 가도 여름 휴가는 즐겁기 그지없는 것이 사실이다. 들뜨고 가슴이 설레고 만용도 부리고 이성에게 접근도 해보는 등 평소 안하던 짓도 하게 되는 것이 들뜬 휴가지에서 사람들이 저지르는 행동이다.



나는 휴가를 잊은 지 이미 오래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을 싫어하고 번잡한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휴가철 이동하다가 차가 밀려 도로에서 장시간 인내심을 갖고 가는 것이 너무나 싫다. 이런 휴가철에는 가는 곳마다 도로가 막혀 고생도 많이 했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난무하는 쓰레기, 음주 추태, 패싸움, 음주 운전, 폭리, 불친절, 불필요한 낭비가 심한 휴가가 사실 진저리가 난다.



그래도 젊은 시절에는 친구들과 전국을 돌며 베낭 여행도 해 보았고, 40대 초반에는 초보운전하는 상태에서 가족을 태우고 한계령을 넘어 설악 콘도에서 2박하면서 대학원 동기 가족들과 같이 음주가무에 밤을 지세고 취기가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안개낀 새벽, 골프를 친다면서 그곳 6홀 골프장에서 골프도 치고 즐기다가, 3일째부터는가족별로 개별적으로 헤어져 동해안을 내려가면서 해수욕장에 들렀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주차할 곳도 텐트칠 곳도 없어 그냥 지나쳐 내려가다가 소금강 계곡을 답사하고, 백암온천에 들러 사람들이 많아 온천도 않고 구경만 하고 포항에 도착하여 여관에서 1박하고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다시 안강을 경유 고향을 거쳐 국도를 타고 북상, 안동-문경-단양을 경유하여 서울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사실 4박 5일 정도 여정인데 자가운전 여행은 무리였다. 처음하는 초보 운전에 처음가는 여행이라 준비도 소홀했고 숙박지도 예약하기는커녕 생각나는대로 가는 마음대로 여행이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러 휴가지를 경유하다 보면, 마지막 날에는 대부분 파김치가 된다. 밤에 서울로 올라오는데 피로가 쌓여 운전대를 잡았지만 눈꺼풀이 절로 내려왔다. 초등학생인 남매는 지쳐 떨어져 뒷 좌석에 누워 늘부러져 잠만 잤다. 한밤 중 단양-문경 근방 국도로 올라오는데 수많은 시멘트 레미콘 추럭들이 굉음을 내며 쏜쌀같이 지나쳐 가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우리 온가족은 엄청난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치 저승사자가 내 차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듯하였다. 순간의 실수는 온 가족의 불행과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는 눈꺼풀은 잡을 수가 없다. 마누라가 옆에서 걱정스럽게 나를 살피면서 졸지 않도록 노력하고 중간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어가면서 왔지만 피곤이 쌓인 몸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자정이 훨씬 지나서 우리는 천국같은 서초동 집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미친 짓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모두가 겁없이 날뛰던 젊은 시절 한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민족의 대이동 명절에도 고향을 찿다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말았다. 형식적인 효도, 남들이 보니까 가야하고, 남들보다 잘 되고 출세한 모습을 보여야 부모님이 좋아하시기에 겉만 번드러하게 꾸미고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찿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제는 타인지향적인 삶을 탈피할시대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든 것을 용서하자

지금은 새벽 4시를 지나고 주변이 너무나 조용하다. 올림픽 열기로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순간만은 모두가 애국자가 되어 있다. 승자와 패자, 로마 시대 검투사 시합을 보며 즐거워하던 로마인들의 모습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 아름답게 보일 뿐이다. 승자의 기쁨의 눈물도 패자의 슬픔의 눈물도 그 성분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이 광복절이라 태극기를 내걸었지만 아파트 일대에 태극기를 내거는 집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광복은 희미하고 기억에도 없다는 뜻일 것이다.



지난 5월, 28년간 살았던 지옥과 천국의 도시, 서울을 떠나 경기도 남양주 호평동, 이곳으로 이사온 지도 벌써 2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이곳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고 마치 시골 고향에 온 것처럼 한적하다. 주변에는 아파트들이 즐비하지만, 주변 환경은 자연에 파묻힌 평온한 시골 마을 같다.



천마산 고개를 넘어 골짜기를 휘돌아 호평동 우리 아파트로 불어오는 골바람이 불어온다. 삼복더위에도 창가 어린이 놀이터 주변에 높게 자란 나무 그늘에 가려진 우리집은 너무나 시원하기만 하다. 양쪽 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맞바람이 지나가는 거실에서 블로그 글을 작성하면서 삼복더위를 견디고 있다. 



창가 어린이 놀이터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어린이집 꼬마들이 선생님 인술하에 놀이터로 몰려나와 재잘거린다. 윗층의 의자 끄는 소리, 발걸음 소리가 콩콩 자주 울린다. 우리 사회는 이미 남을 위한 배려심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것은 갑작런 풍요가 찿아오자 공공질서에 대한 정신적인 성장 수준이 풍요를 따라오지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민자본주의로 변질되어 내것만 챙기고 남을 배려 못하는 못된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증거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밤중에도 각종 층간 소음을 줄여달라면서 자주 방송이 나오지만 아무래도 헛수고다. 아파트 입구 자전거 보관대에는 펑크나고 망가진체 오랫동안 자전거 거치대에 방치된 듯한 자전거가 여러 대 흉물스러게 보인다. 창가 풀밭에는 윗층 어디선가에서 담배 꽁초를 버리는 놈에, 오물도 버리는 놈이 있다. 직접 관리사무소에 가서 과장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런 일은 다반사란다. ㅎㅎㅎ 인간들이 사는 곳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래도 다소나마 공공의식이 있는 곳은 바르게 자라거나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배운 사람이나 지식인층이 모여사는 동네거나 고급 빌라나 저택들이 즐비한 부자들이 모여사는 곳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아마 관리나 경비 아저씨들이 수고하여 그렇겠지만......, 반면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대부분 질서의식이 없고 골목이 지저분하는 등 공공의식이 부족한 곳이 많다. 아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 불만이 그러한 형태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부자 아파트 사람들이 가난한 아파트 사람들의 통로를 막는 등 세간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만 재산 가치가 떨어진다는 데 그들 만을 탓할 수는 없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이기적이되는 것도 역시 인간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이곳은 차량이 출근 시간대를 제외하고 서울보다 차량이 적어 새벽에는 비교적 한적한 도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벽에 자전거 타기도 좋고 산책하기에도 좋다. 매일 마누라와 산책하면서 아침마다 손주돌봄 때문에 아들집에 데려다 준 다음, 나는 자전거를 탄다. 일주일에 주말이면 한 번씩 가족이 모여 식사도 하고 소주도 한잔씩 한다. 가정마다 우환이 없는 가정이 없는 것처럼 우리도 걱정거리가 있다. 그러나 잘 견디어내면서 극복하려 한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고 무슨 일이던지 긍정적인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파르살로스 회전을 앞두고......

사람은 누구나 사지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쥐처럼 상대가 아무리 센 놈이라도 약한 놈이 목숨을 걸고 센놈에게 달려든다. 아마 고대 로마 시대의 카이사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원로원 최종 권고는 요즘으로 치면 게엄령이나 마찬가지다. 집정관이 반역자로 규정된 사람을 구금은 물론 재판없이 처형이 가능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원로원의 권력이다. 민중파의 기수, 카이사르는 이미 원로원의 기능은 다했고 광활한 로마 국가를 다스리기에 한계가 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제정을 구상하면서 원로원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한하고 집정관의 권력을 강화하려 한 사람이다. 이러한 카이사르의 사상과 태도에 원로원은 불안감을 느끼고 카이사르가 왕이 되려한다면서 성토를 벌이고 그를 무장해제하고 단신으로 수도 로마로 와서 법적인 조사 절차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원로원파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가 원로원의 권고에 따라 순순히 군단을 해산하고 단신으로 수도 로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는 반역자로 처벌될 것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고민 끝에 자신의 군단을 이끌고 국경선인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약자가 함부로 센놈에게 덤벼들다가는 목숨을 잃는 것은 물론 멸문지화를 당하기 마련이다. 카이사르는 8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서 갈리아를 정복했고 로마화를 지향했다. 그동안 전술.전기는 물론 정복 전쟁을 통해서 예하 군단을 최강의 부대로 양성하였는데, 백인대장을 중심으로 충성스런 카이사르 병사로 양성했던 것이다.



그동안 폼페이우스와 겨루기에는 군사력, 즉 힘이 부족했고, 대등한 수준이 될 때까지 그 기간이 갈리아 전쟁 8년이나 걸렸다. 이에 반해 폼페이우스는 술라 시대부터 두각을 나타내었고 해적 소탕을 통해서 로마 제일의 장군으로 우뚝섰다. 또 동방 정벌을 통해서 시리아 등 오리엔트 지역과 이집트를 자신의 세력으로 편입시키고, 에스파냐는 물론 북아프리카까지 자신의 세력 기반으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서로는 에스파냐, 남으로는 북아프리카, 동으로는 시리아, 이집트, 팔레스타인까지 자신의 세력하에 두게 되었고, 본국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최고의 지위에 올라 시민들은 물론 원로원 의원들로부터 존경과 흠모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자 삼두체제가 무너진 이후 원로원파는 폼페이우스를 앞세워 카이사르를 제거하는 정치적 작업에 돌입했는데, 바로 '원로원 최종 권고'를 발동하여 원로원 체제를 붕괴시키고 민중파의 수괴로 왕이 되려고 하는 카이사르를 예하 군단을 해산한 후 맨몸 단신으로 수도 로마로 불러들여 재판을 통해 그를 반역자로 규정하여 처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카이사르는 호민관 쿠리오를 기용하여 법적인 투쟁도 벌이고 안토니우스까지 호민관으로 당선시켜 원로원파의 제출한 자신에 대한 불리한 법률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원로원은 원로원 최종 권고라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카이사르에 대해 단독으로 수도 로마로 들어와서 법적인 절차에 따라 집정관에 출마를 허용하면서 군단을 해체할 것과 북방 속주 총독인 카이사르 후임자까지 임명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폼페이우스와 원로원파의 태도를 지켜본 결과 민중파를 지향하는 카이사르의 사상과 태도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낀 원로원파는 카이사르를 제거하지 않는한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 체제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자신의 군단을 해체하고 단독으로 수도 로마로 들어갈 경우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군단 병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고 자신의 명예를 되찿겠다면서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된 것이다.



루비콘 강을 건너 카이사르는 부대를 쿠리오와 안토니우스에게 군단을 주어 아드리아 해를 따라 내려가면서 염주알처럼 위치하고 있는 도시를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폼페이우스의 세력 기반인 고향을 향해 진군했다. 이탈리아 본국에서 먼저 폼페이우스의 세력 기반을 점령함으로써 내전을 조기에 끝내려는 카이사르의 생각이었다.



수도 로마로 바로 직공하지 않고 아드리아 해를 따라 자신의 세력 기반을 무너뜨리면서 남하하는 카이사르에 대해 폼페이우스는 이탈리아 본국에 아직 자신의 군사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8년 동안 갈리아 정복 전쟁터에서 단련된 카이사르 군사력과 결전을 시도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신속히 수도 로마를 비우고 그리스로 이동하기 위해서 사용 가능한 부대를 모두 브린디시 항으로 집결하게 지시한다.



카이사르가 브린디시 항에 도착했을 때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군단을 1차, 2차로 나누어 카이사르의 강력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브린디시 항을 빠져나가 그리스로 향해 떠나버렸다. 해군력이 없는 카이사르는 육지에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수도 로마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를 소집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호민관을 이용하여 민회와 원로원을 통해 필요한 법을 통과시켜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반역자 신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후 에스파냐 전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폼페이우스파 군사력을 무력화시키 로마로 돌아와 독재관에 취임하게 되고 독재관의 권한으로 절차에 따라 나중에는 집정관에 취임하게 된다. 그리고 개혁을 위한 기본적인 조치를 시행하게 된다.



북아프리카로 파견된 쿠리오 군단은 누미디아 왕의 기만전술에 속아 4개 군단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패전을 하게 되지만  카이사르는 우선 폼페이우스와 그리스에서 결전을 먼저 시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역사에서 비숫한 경우가 있었다. 조선 인조 시대 후금의 침공에 대비하여 서북방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었는데, 당시 반정 성공 후 부사령관으로 파견된 반정 공신 이괄은 정치적 반대파가 점차 목을 조여오자 서북 방어군 1만 5천 명을 이끌고 아무런 준비없이 반란을 일으켜 파죽지세로 내려와 한양을 점령하였다. 인조는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한양을 향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도성 한양을 버리고 신속하게 공주로 도망쳤다. 이괄은 반란군을 뒤따라온 진압군이 한양 근방 안산에 진주하자 무리하게 험한 지형의 관군을 공격하다가 대패하게 된다. 그러나 패배한 반란군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이괄은 경기도 이천까지 도망갔으나, 이미 사태가 기운 것을 안 부하 장수들에 의해 목을 베이고 결국 반란은 실패하였다. 감정을 앞세운 무모한 반란, 준비없는 반란, 전략.전술이 없는 반란, 명분이 없는 반란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반면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는 8년 동안 갈리아 정복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군단을 충복으로 만들었고 폼페이우스와 세력균형을 이룰때까지 꾸준히 준비를 한 셈이다. 고참병으로 선발하여 군단을 편성한 카이사르는 양적으로는 폼페이우스에게 대적할 수 없는 상태였다. 8년 동안 정복 전쟁을 통해서 평정한 북쪽의 가난한 갈리아 지역만 자신의 근거지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술라 시대부터 힘을 길러온 폼페이우스는 완벽한 해적 소탕을 통해서 로마 제일의 장군으로 칭송을 받으면서 성장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미 오랫동안 자신의 세력을 길러온 폼페이우스는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 본국을 중심으로 서쪽의 에스파냐 지역, 남쪽의 북아프리카 지역. 동쪽의 시리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한 삼면에 자신의 강력한 지지 세력을 공고히 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그리스 평원에서 삶과 죽음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있다. 군사력의 절대량이 열세한 카이사르가 어떻게 우세한 폼페이우스에게 승리하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사방이 폼페이우스의 세력권으로 둘러싸인 카이사르가 열세한 병력으로 슬리를 쟁취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주변 강대국에 들러싸여 미래를 알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점도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