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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호국 보훈의 달, 현충일을 생각하며......

 

                호국 보훈의 달, 현충일을 생각하며......

 

 

 

 

지난 시절 현충일을 생각하며 올린 글을 다시 올려본다. 

 

현충일 연휴가 계속되고 있다. 고속도로가 메어터지도록 서울을 벗어나는 차량들로 만원이었다. 연휴를 맞아 야외로 놀러가는 사람들로 경춘국도와 고속도로는 차량들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다. 모두가 먹고 즐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리고 있다.

 

현충일은 그냥 놀러가는 날인가? 우리들에게는 잊혀진 날인가? 아니면 이 땅의 민족과 나라를 위해 젊음의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이름 모를 산하에서, 이국의 월남 땅에서 아리따운 나이에 숨져간 영령들에게 죄송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날을 되새겨 보는 날인가?

 

그러나 이 땅의 젊은이들은 한국 전쟁이 무언지, 6.25 동란이 무언지 잘 알지를 못한다. 교육계에 숨어든" 좌파들에 의해 직적인 역사 왜곡과 역사 지우기에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은 이승만의 북침으로 일어난 전쟁이며 이러한 민족의 비극을 자초한 사람은 자유당 정권이며 미국이다. 월남전에는 미국의 용병으로 한국군이 참전하였으며 수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전쟁이다."라고 교육을 받았다면 또 그러한 이야기 조차 듣지 못했다면 우리는 또 다시 그러한 비극을 당하게 될 운명이 될 것이다. 역사를 잊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치매걸린 사람이거나 기억력을 상실한 장애인과 무엇이 다르랴!

 

우리는 중국의 역사에서 수많은 왕조의 흥망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서 고구려.백제의 말로, 신라의 말로, 고려의 말로와 조선의 망국을 보았다. 한 나라가 일어나 창업과 수성을 거쳐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부와 재화가 넘쳐나고 살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그 다음부터는 타락하고 부패해지는 게 인간들인지라, 그때부터 지도층은 사치와 방탕이 시작되고 금은보화와 주지육림 속에 파묻혀 수십 명씩의 처첩들을 거느리고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원하는게 인간들의 꿈이며 자신의 후손들이 천세 만세 이러한 번영을 누리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 나라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대륙의 동쪽 끝, 좁은 한반도에 안주하면서 나라의 지도층이 그러한 호사스런 생활을 누리는 동안 백성들은 탐관들의 고혈에 시달리며 농토를 빼앗기고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고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정의와 양심이 사라지면 나라는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능력보다는 아부를, 정의 보다는 불의를 선호하게 된다. 가진자는 더욱 갖게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되며 빈익빈 부익부, 부의 편중 현상인 양극화가 극대화되면 갖지 못한 백성들은 고향을 떠나 유랑객이 되어 이 장터 저 장터를 돌아다니다가 거지가 되고 도적이 되고 산적이 되었다.

 

지금 이 나라가 돌아가는 꼴이 마찬가지다. 청년 실업, 결혼, 이혼, 초고령, 저출산, 노예같은 삶, 양극화, 묻지마 폭행과 살인, 직업, 나이, 계층을 불문하고 벌어지고 있는 성추행/성폭행, 개인 파산, 가정 붕괴, 정신분열증 환자,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 권력과 재벌의 야합, 국고 빼먹기, 낙하산, 부패공화국 등등이 우리들 사회가 직면한 개혁되고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다.

  

이러한 과제들이 개선되지 못하고 사회가 지옥처럼 무질서해지면, 그러면 반드시 혹세무민 하는 자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바, "메시아가 나타났다,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 부처님의 환생이다, 천국같은 나라를 건설하자,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이 궐기하자, 나는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성불이다, 난 하느님의 아들이며 예수의 형제이다, 지구가 곧 멸망한다, 대홍수.지진이 나고 점염병이 창궐한다, 망한 나라 왕조를 부흥하자, 민족이여 궐기하라, 다같이 공평하게 토지를 분배받고 평등한 나라를 건설하자, 가진자를 죽이고 부패한 정부를 토벌하자, 탐관오리와 부패한 정치인을 몰아내자, 부패한 정치인과 기업인을 쳐부수자,  자유를 수호하고 공산당을 쳐부수자, 노동자.농민이 정권을 잡는 새 나라를 건설하자, 정부군이 임신부의 태아를 꺼내 죽였다, 부패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권을 수립하자, 나의 기도를 받으면 만병이 치유된다, 지금 목숨을 버리면 너는 반드시 천국을 간다, 하느님,예수,알라, 석가모니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나와 동침하면 하느님의 기를 받을 수 있다, 영생은 생명이니 전재산을 바쳐라, 기도하면 낫는다 기도하라 그래도 낫지 않으면 너의 신앙심이 약하느니"라 등등 별의 별 감언이설과 선전선동으로 우매한 민중을 충동하여 무리를 만들고 반정을 도모하고 기존 권력에 저항하며 권력쟁취를 위해 나서지만 그들이 성공한 이후에는 또다시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 하게 된다. 그러면서 역사는 발전하여 왔고 수많은 나라들이 부침하여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피를 흘렸고 목숨을 버렸다. 이렇게 민중들은 그들에 이용당하였고 나중에는 버림받았다. 용감했던 사람은 죽었고 비굴했던 사람들은 살아 남아 남은 여생을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다. 죽은 용사들의 후손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고 노숙자가 되었고 교육도 받지 못해 등신이 되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 가장이, 아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건만 소외받고 멸시당하며 가난하게 살고 있는 후손들이 어디 한 둘인가! 전쟁 포로나 납치된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호국 영령들이 이 산하에 무수히 묻혀 있건만, 이 땅의 정권들은 송환이나 유골 찿기를 거부했고 잊어 먹은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야 곳곳을 파헤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조국이 알아주지도 않고 찿지를 않으니 누가 목숨을 바칠 것인가? 그들의 가족과 자녀들에게 평생을 잘 살도록 얼마나 배려정책을 세웠던가? 현충일이면 기념사를 읽고 현충탑을 참배하는게 모두가 아니다.

 

중국의 전한 시대 한무제처럼 전쟁 고아들을 대려다가 '우림군'을 만들어 황궁 근위대로 운용하거니, 황제가 직접 운영하는 특별군을 편성하여 평생을 보장해 주었다. 흉노족과 벌인 50년 가까이 수많은 토벌 전쟁에서 팔과 다리를 잃은 상이병사들을 집단촌에 수용하여 집과 농토를 주어 평생을 잘 살도록 해 주었다. 그들의 자녀들은 나라에서 특별우대하여 원하는 직업을 주선해 주었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대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를 위해 묵숨을 버려도 쥐꼬리만한 보훈연금을 주는 것으로 끝이다. 그들의 가족들이 평생을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가지만 나라가 몰라주니 누가 나라를 위해 묵숨을 바칠 것인가? 무공훈장을 받으면 무어할 것인가? 엿장수도 가져가지 않는 무공훈장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자신의 가족들과 자녀들이 국가로부터 평생을 보장받는다면 누가 죽음을 두려워 할 것인가? 이런 보훈 정책으로 이런 대접으로 애국은 헛물이요 애족은 빈말이 아닌가. 

 

 

 

 

 

 

조선의 망국은 민족 비극의 시작

조선은 개국 후 강력한 카리스마의 태종, 유능한 세종, 왕권을 찬탈한 세조 등의 유능한 왕들과 개국공신들과 그 후손들로 구성된 훈구파 세력과 더불어 왕조의 안정과 융성을 200년 가까이 유지하여 왔다. 그러는 동안 훈구 세력들은 부패하기 시작하였고 성종대에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정치.사회의 새로운 질서를 강조하는 사림 세력을 등장시켜자 훈구파와의 갈등은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 등 네 차례에 걸친 사화로 신진 사림 세력은 타격을 받고 정국혼란은 계속되었으며 신분.군역.공납제도는 격심한 문란을 초래함은 물론 민생은 토탄에 빠지고 장부상의 군대만 남는 형상이 되었다.

 

조선이 논쟁과 당쟁에  국력을 낭비하고 목민을 빙자한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등 극도로 병약해진 상태에서 임진년 이후 7년간 왜란으로 전국토가 왜눔의 말발굽에 초토화 되었으며 그 피멍이 채 가시기도 전에 중원 대륙을 통일하기 위해 배후를 안정시키고자 만주의 야만족인 청나라가 정묘년에 조선을 침공하였으나 청군과 같이 동행한 강홍립 장군이 중재하여 군신의 조약을 맺고 물러넜으나 병자년에 다시 침공하였으니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40일간 항쟁하였으나 강.온건파간의 대립으로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항복키로 결정하고  지금의 송파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결과 수많은 백성들과 삼학사가 줄줄이 줄에 묶여 포로로 끌려가 비참한 생을 마감하였고 불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오랜 볼모 생활에서 돌아오자 권력욕에 눈이 먼 아비 인조에 의해 세자비.세손들까지 독살되어 죽고 인조를 뒤이어 봉림대군이 등극하매 효종이더라. 효종은 재임 10년동안 관무재,진영장 제도를 설치하고 군대양성에 힘을 강화하는 등 북벌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하였으나 송시열 등 사림들의 반대가 극심하였다. 효종은 김자점과 인조의 후궁 조씨가 역모를 꾀하는 등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으며 재임 10년째 머리에 난 종기로 침을 맞다가 승하함으로 북벌계획을 채 시행도 하기전에 절명하는 비운을 겪으면서 북벌계획은 무위로 끝난다.

 

계속된 이씨왕조는 사색당파와 권력 투쟁의 암울한 시대를 보내면서 각지에서는 반정/반역이 빈발하였고 왕권유지와 권력 쟁탈,궁중 암투에 부국강병은 커녕 왕조의 핏줄잇기에 급급하던 차, 후사가 없자 유일한 왕족이던 흥선대군 이하응의 아들 고종이 조대비에 의하여 이씨 왕조의 몰락을 재촉하는 임금으로 등극하니 고종이더라. 흥선은 고종의 나이가 어린 관계로 섭정을 하게 되는바, 강경책으로 일관타가 대원군과 며느리인 명성왕후 간에 끝없는 권력에 대한 주도권 갈등이 계속되던 중 서로 일.중.러시아 등 외세를 끌여들인 결과 일제는 조선을 삼키기 위해 청,러시아와 일전을 벌이게 된다.

 

일제는 청.일전쟁, 노.일전쟁의 결과 전승국이 되어 단독으로 조선을 차지하는 우선권이 주어졌다. 일제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고종은 폐위되고 순종이 즉위하나 조선은 결국 친일 5적에 의해 일제에 합방당하는 비운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 

 

 

 

 

 

 

여기에서 함석헌옹이 쓴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한다.

 

 

지친 민족

이때 역사의 요청은 한마디로 깨는 데 있었다. 민족으로 깨고, 세계에 깨고, 시대에 깨야 한다. 역사는 무서운 속도로 급선회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국 중국.왜눔이 문제가 아니라 영국.미국.독일.불란서.러시아.화란 등 얼굴이 다르고 말과 글이 다른 그리고 색깔도 다른 수많은 외국들이 들어 닥치고, 전에 보지도 못하던 총.육혈포.자명종.천리경.인쇄기 등이 들어오니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지 그 누구하나 그들의 문명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강변한 사람은 없었다.

 

일이 급해졌다. 이제까지 바다 가운데서 노략질이나 하던 왜구의 나라 일본이 '명치유신'을 하여 봉건시대의 막부를 집어치우고, 근대식의 나라를 세우고 임금을 천황이라 하고,  나라를 열어 세계 모든 열강과 교통을 하면서 우리더러 나라를 열라고 트집을 해온다. 일찌기 이런 세상은 보지를 못하였다. 우리나라 유신들이 보기에는 '사서삼경'에서도 못보던 것이요, '팔만대장경'에서도 못 보던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김씨고 이씨고 양반이라 자랑하고 있을 수도 없고, 양반이요 상눔이요를 가릴 수도 없다. 노론이요 소론이요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토록 조상 대대로 섬겨오던 대국 중국이 코쟁이 양눔들에게 꼼짝을 못하고 청국군대가 서양군대에 대패를 하고, 그래서 항구를 조차하고, 땅을 빼았기고 ,배상을 물지않나? 이런 경우는 절대로 본적이 없는 조선은 천지가 개벽하고 모든 사상과 사고가 혼돈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이때 유신들이 하는 일이란 제것 챙기고 나라 망하기 전에 더 많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손대에 물려주는 일만 생각하고 백성들 쥐어 짤 궁리만 하고 있었으니 가련한 것은 우리 조선의 선량한 민중들 뿐이라! 이때에 살려거든 우리도 한 민족으로 깨어 말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낡은 생각을 버리고 나날이 발달해 가는 새 지식.새 기술을 배워 여러 나라와 어깨를 겨루고 나갈 결심을 했어야 할 것이었지만 그러지를 못하였다.

 

그것을 하자는 실학이었는데 실학파가 그것을 못하고 낡은 책장만 뒤집다 말았지 민심을 뒤집지 못하였다. 그래서 천주교였는데 천주교는 천당.지옥만 찿다가 말았다. 그후 '홍경래'가 나타나 한번 역사를 뒤집어 보려 하였지만 비만 들다가 조선의 더러운 찌꺼기를 쓸지도 못하고 이슬처럼 사라지고 말았고, 개신교도 바람을 불러 일으켰으나 민중의 힘으로는 중과부적이라 그만 지쳐 수구려들고 말았다.

 

역사에는 그래도 행운.시운이라는게 있는 법이라, 일본이 '페리 제독'의 강권에 못이겨 나라를 열게 된 것은 참 운이 좋다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으나 종내 그저 지나가고 말았다. '하멜' 일행이 십수 년을 제주에 있었건만 서양 소개를 못하였고, '병인양요'에 불란서가 물러간 것은 저희 나라 일 때문이건만 이쪽에서는 우리 세력이 세서 됐거니 생각하여 점점 더 문을 닫게 되었고, 대동강에 '셔먼 호'가 들어온즉 때아닌 홍수에 속아 불타 실패하게 되고, 일이 모두 이런 식이어서 기회는 다시오지 못하였다. 우리에게도 '페리' 같은 강한 함대가 몰려와서 조선 양반눔들 간담을 쓸어내려 왜 강제로라도 열게 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 막

그때 우리나라 꼴은 무엇보다 전주 이씨 집안에 잘 나타나 있다. 하필이면 대원군이요, 민비인가? 이것이 다 마지막 망국극을 하기 위해 준비된 마지막을 선택된 배우들이었다. 당파 싸움을 하다 하다, 외척이 전권 세도를 하다 하다, 끝마무름이 그 궁중의 싸움이었다.  흥선은 영악한 왕족이었다. 안동 김씨 세도천하가 계속되는 동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미친척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철종이 후사가 없으니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다 계산된 임금 만들기를 예견하고 죽임을 피하면서 때를 기다린 사람이었다. 거지처럼,권력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미친척 숨죽이고 있다가 철종이 후사가 없이 갑자기 죽자 왕족의 혈육으로 임금이 된 자신의 아들 열두 살짜리가 고종으로 등극하고, 그리고 섭정을 보게 된 그 아버지 흥선군은  영화를 누리자는 생각이었지, 그 운명이 그 아이의 손에 잡혀 있던 연줄처럼 끓어져 나갈 것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어린 임금의 왕후를 구하는데 고르고 골라 외척들이 말썽이 없을 만한 민씨집 딸을 대려올 때, 그것이 다음날 자기와 세력을 겨루다 집안 망치고 나라를 망칠 싸움의 적수인 민비가 될 줄은 천만 뜻밖이었을 것이다.

 


'마지막황실 대한제국과 덕수궁' 사진전

 

 

정국은 혼란을 거듭하는 가운데, 위로는 임금과 왕후를 포함하여 모든 당상관들은 매관매직에 정신이 없고, 평양감사 자리는 민씨네 집안이 독식하고, 지방의 모든 관리는 부패와 무능이, 매관매직으로 본전 뽑기에 백성 수탈이 판을 치고 백성들은 굶고 지치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유랑민이 되어 도적떼가 되거나 낭인신세가 되어 이 장터, 저 장터를 돌아다니며 시장터 국밥이나 한 그릇 얻어먹는 거지신세가 된지 이미 오래고, 지방곳곳의 향교는 유신들이 진을 치고 백성들을 대려다가 곤장을 치고 관리를 협박하고 향교에 몰려 앉아 양반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수구파요 개화파요, 친일이요 친청이요, 친로요 친미요 하는 파들을 갈라 배치되어 서로 싸우고 물고 뜯고 하고 있는 모습은 그 모양이 늙은 창녀촌 갈보와 같다 아니 할 수 있으랴!

 


전주박물관, 흥선대원군 특별전
 

 

 

제가 스스로  제 운명을 개척하고 사람 노릇을 하자는 생각은 없고 오늘 이눔에게, 내일은 저눔에게 빌붙어 가랑이 벌리고 그때 그때 구차한 안락을 탐하고 돈푼께나 받고 군것질 하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이눔에게도 사랑을 잃고 저눔에게도 미움을 사 몹쓸 병이 들어 자식 하나 없이 단칸방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늙은 창녀처럼 한 몸이 망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부 먼저 깬 사람들이 갑신정변.갑오경장 하는 운동이 없지는 않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싸움의 결과 대원군은 중국에 붙들려 가고, 민비는 일본눔들 손에 죽고, 임금은 자리에서 쫓겨나고 아들이 대신 들어섰다가 그나마도 오래 못가고 1910년 8월 28일에 한일합방이 되어 나라가 아주 망해 버렸다.

 

이 민족의 부끄럼이 이제는 끝에 간 것이다. 고구려 때에는 욕을 먹었는지 모르고, 신라때는 매 맞았는지 모르고, 고려 때에는 넘어졌는지 모르나, 이번에는 아주 거꾸로 쳐박혀 버렸다. 고구려에는 발해가 있고, 신라에는 마의태자.궁예가 있고, 고려에는 최도통.정포은이 있었으나 이조에는 나라 팔아먹는 매국노들 뿐이었다. '이준'이 헤이그에서 붉은 피를 뿌리고, '민충정'이 서울에서 푸른 대를 올렸으나, 그것으로 가리기에는 그 허물이 너무나 컸다.

 

신라가 당나라에 수구렸다 하나 그래도 반도의 땅을 찿는데 힘을 쏟았고, 고려가 몽고에 굴복하였으나 나라는 지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라가 아주 없어지고 남의 한 개 식민지가 되어버렸으니, 5천년 역사에 먼저간 조상들이 바라볼 때 얼마나 한심한 모습이었을까! 수많은 영웅과 충절을 지키던 선조들이 지하에서 땅을치고 통곡을 하였을 것이다. 이순신의 7년 전공 23전 23승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항몽.항청을 통해 수많은 애국 충신들은 무어라 통곡하였을까? 5천년 역사에 나라 팔아먹는 일, 이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일본이냐? 일본은 우리민족이 고대로 부터 바다를 건너가 구주지방에 정착한 민족의 물결이었다. 그들의 신화가 말해주고 석기시대의 유물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들에게 한자와 유교.불교를 전해주었고 대륙의 모든 문물이 우리들이 전해 주었고 그래서 임나도 나온 말이요 왜구도 그래서 긴 세월을 두고 그렇게도 반도 해안을 들락거리며 약탈과 행패를 일삼아온 집나간 자식같은 말성꾸러기 일본이었다.

 

우리가 고구려 이래 전래된 용맹한 기상과 상무정신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힘과 제도를 정비한 힘찬 주권을 가지고 만주를 뒷마당 근거지로 북만주와 한반도를 호령하고 일본 열도를 앞 방파제로 삼아 대국경영을 펼칠 수가 있었다면 역사는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친일.친로.친청 하며 몇십 년을 국제 매음을 하다가 우리가 길러내고 업신 여기던 섬나라 일본한테 나라를 몽땅 빼았겼으니, 이것은 마치 행랑체 머슴한테 그집 주인 아내 주부가 정조를 주고 집문서 내주면서 서방눔은 독살하고 그 머슴눔의 바지가랑이 밑에서 힘찬 밤일 즐기기를 좋아하는 창녀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었다.

 

그래서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많은 민족이 해방되었으나 우리는 빠졌다. 3.1운동의 물결이 일었으나 그것으로는 부족이었다. 세계 2차 대전을 통해 민족의 의식은 실날같이 꺼져가는 촟불같은 신세로 빠져 들고 있었다. 수많은 청년과 처자들이 전선으로 끌러가서 천황눔의 총알받이가 되고, 정선대가 되어 이팔청춘 다 썩히어 썩은 몸이 되었고, 온 반도는 먹는것 입는 것 지하지원 할 것 없이 모두가 수탈의 극을 달했다. 몽고도,중국도, 만주족도 그토록 이 땅에서 고혈을 빨아가지는 않았다. 씨를 말리고 이름을 바꾸고 모든 것을 일본눔들 제도로 바꾸려고 하였다. 36년간의 길고긴 암흑의 시대. 하나님은 이 민족에게 마지막 남은 피 한방울까지 흡혈귀처럼 빨려지게 만들었다. 이제는 빨릴 피마져도 남은게 없는 앙상한 여윈 몰골로 휘청이는 민족, 그것이 피맛이냐 ? 물맛이냐? 고통이 온 반도에 뼈저리도록 사무치게 휘몰아 쳤고, 민족은 짐을 싸서 만주로 간도로 사할린으로 고향을 떠났다.

 


창덕궁 마지막 단풍

 

 

이것으로 우리 고난의 역사 대충 보기는 끝났다. 돌아보면, 아, 아, 삼국시대 이래 그 걸어온 길이 얼마나 잔혹했나? 눈물과 피로 걸었다기보다 기었고, 기었다기보다 굴러왔고 발길에 채어왔다. 그리고 5백 년 수난도 오히려 부족하여 돌아오던 회복의 기운도 사라지고 다시 더 심한 연옥의 바닥으로 거꾸러져 내려가는 뒷모양을 보며, 아니다, 우리 자신이 그것임을 의식하면서, 그러나 그보다도 날이 장차 오면 이것이 다 뜻이 있는 한 구절이 될 줄 믿으면서 이 글을 마친다. 

                                                                                                -함석헌 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