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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겨울 2 : 권력욕과 탐욕의 늪, 배려와 양심이 사라진 사회

 

 

강남의 겨울 2 : 권력욕과 탐욕의 늪, 배려와 양심이 사라진 사회

 

 

                                                                  어느 교회옆 나무, 아마 언젠가 말라죽을 것이다.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도 벌써 반이나 지나가고 있다. 올 한해 동안 보람이 있었든 없었든 세월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속절없이 지나가고 시대의 갈등과 삶의 고난과 피곤은 고대나 지금이나 일반 서민에게는 힘들기는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서울 강남의 새벽 풍경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삶의 풍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벽길을 분주하게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삶의 생동감과 피곤함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희망적이고 행복한 삶의 새벽이 아니라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새벽부터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기에 더더욱 피곤해 보인다. 

 

새벽 6시 전후로 매일 자전거르 타고 강남 고속터미널을 지나가는데, 서울의 새벽을 깨우는 생동감 넘치는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서울 주변 경기권에 사는 직장인들이 각종 버스를 타고 몰려든다. 또 지방으로 가는 직장인, 대학생들이 곳곳에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도 본다. 버스는 물론 택시도 몰려들고 지하철 출입구 주변에는 택시들이 곳곳에 장사진을 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물건을 나르는 봉고차, 식자재를 나르는 탑차, 주부식을 나르는 타이탄 추럭, 중장비가 어디론가 이동하고 공사자재를 가득 실은 화물차가 달린다. 공항을 오가는 공항버스가 수시로 지나가고, 큰 가방을 끌며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이 분주하게 교대하기 위해 걷는다. 택시들은 횡단보도를 막고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데 청소차나 긴 트레일러에 무거운 짐을 실은 대형차가 지나가려도 잘 비키지 않는다. 아무 곳에서 오줌을 누고 굉음을 내며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린다. 자가용차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횡단보도를 반쯤 막고 서 있는 싸가지 없어 보이는 젊은놈이 껌을 씹으며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는 나를 힐끔 쳐다본다. 아마 기분이 좋아보이는 듯, 어젯밤에 무언가 한 건 했는 모양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인간을 무시하고 보행자도 무시한다. 저 편한대로, 저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이고 배타적며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역사를 보아도 귀족이나 가진자, 권력자들은 백성들의 피를 빨아 호의호식하며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들 탐욕의 제물이 되어 목숨을 잃었고 노예처럼 살아왔다. 이러한 인간사회의 상관관계는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천국이나 극락을 간다면서 인간을 현혹시키는 종교나, 백성과 국민을 위한다면서 표를 달라는 위정자들이나, 소비자에게 품질 좋은 제품을 저렴하고 싼 가격에 혜택을 준다면서 마케팅을 펼치는 기업의 상술 등 모두 마찬가지로 인간을 선전, 홍보, 선동, 광고 등으로 속이고 현혹시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는 것은 똑 같다. 

 

서초역 사거리에 우뚝 솟아 있는 사랑의 교회, 강남역 근방의 충현교회, 압구정동의 소망교회, 여의도의 순복음 교회 등 가는 곳 요지마다 종교 시설이 우뚝 솟아 있다. 새벽길에 교회 근방을 지나다 보면 그 새벽에 나이든 노인들이 공터 벤치에 수십 명이 둘러 앉아 있다.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이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것 같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평생을 헌신하고 있는 목회자도 있다.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순기능도 많다. 반면 대부분은 종교를 이용하여 치부를 하고 세습하며 권력화되어 소왕국을 만들어 소수가 천년만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나무나 많다. 

 

정치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 사색당쟁보다 더한 파벌을 나누어 서로 당권을 놓고 싸움질에 여념이 없다. 그래도 조선 시대는 학벌이나 정책을 놓고 파벌이 나누어졌으나 지금은 한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주류, 비주류, 동교동계, 상도동계, 영남, 호남, 친박, 비박 등으로 갈라져 마치 각기 뭉쳐진 조폭처럼 난투극도 마다하지 않는다. 뒤로는 은밀히 정치헌금이라며 뒷돈을 받아 챙기면서 들통이 나면 당연한 것으로 뻔뻔스럽게 이야기한다. 출판회를 열고 책을 팔아 재물을 챙기고 기업이나 각종 단체에 유리한 법안을 만들어 주며 암암리에 비리가 발생한다. 자신들의 세비는 올리고 보좌관 봉급까지 각출한다. 대기업, 공기업, 각종 단체 등에 몰래 압력을 가하여 자식을 취업시키고 자신을 포함 자식까지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서 수단과 밥법을 가리지 않는다. 선거때만 되면 공천받기 위해 줄을 서고 가능성도 없는 헛공약 남발로 유권자를 현혹시킨다. 청와대나 국회, 주요 공직에서 빗자루나 잡을 정도 위치라면 누구나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 혈안이다. 그만큼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만 되면 최고의 권력과 권능을 누리면서 개인은 물론 가족과 인.친척까지 재산을 증식하면서 특권을 누릴 수 있다.

 

해외자원개발, KTX  개발사업, 경전철, 민자고속도로, 조선업 붕괴, 방위사업청 비리, 수출 감소, 폭리, 저출산, 청년실업, 초고령화, 어린이 집 대란, 전세 대란, 학교 급식, 수능, 대학입시, 징병 검사, 보훈 정책, 유통구조, 담배 가격 정책, 노동 정책, 사시폐지 갈등, 묻지마 범죄 등 정치, 사회의 후진성, 대기업의 사회적 역활 부족, 각종 정책의 실패, 각종 시스템과 제도의 부실, 경기 침체, 사회적 신뢰도와 역동성 상실, 부패지수/자살/교통사고  세계 1위 등으로 인해 엄청난 국고와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국가 경쟁력이 점차 상실되어 추월하는 중국과 도망치는 일본, 미국 사이에 끼어 휘청거리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노동 문제, 청년 취업 문제, 극빈층 양산, 저출산, 노인 인구 급증으로 정말 살기 힘든 사회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삶의 질이 저하되고 정부에 대한 신뢰감이 상실되어도 개혁의 의지는 보이지 않고 근시안적인 권력과 탐욕에 눈이 멀어 눈떤 장님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엄청난 국고를 낭비해도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하는 말마다 국민을 우롱하고 속이기 바쁘다. 최근 뉴욕 타임즈 신문 사설에 한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문제 등에 대한 비판 기사가 실리자 정부는 뉴욕 총영사를 통해 반박문을 실어 미국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런 후진적인 생각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는 현정권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요즘 블로그에 로마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카이사르 시대를 기술하고 있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지루하여 대략 읽었는데, 지금 기술하면서 내용을 찬찬히 보니 오늘날 우리가 배울 점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역사는 무슨 역사? 등한시 하고 공부할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역사책을 읽으면서  옛 선인들의 생각이 오늘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지혜는 빛났고 합리적이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정책과 비젼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이다.

 

로마 시대에 공직자 윤리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오늘날 우리 나라의 공직자 윤리법이나 김영란 법과는 차이가 있지만 권력자와 가진자들에 대한 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법이었다. 집정관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가 로마 시민들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후보자들은 선거전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물론 선거에 돈이 필요했고 카이사르는 크라수스한테 돈을 빌렸다. 이 빚으로 카이사르는 회계감사관 시절에는 공공사업을 벌여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고 호화로운 검투사 시합을 열어 인기를 얻었다. 선거를 통해 최고 제사장 자리에 올랐고 법무관에도 당선되어 에스파냐 남부 속주 총독도 지냈다. 에스파냐에서 귀국 후 개선식을 포기하고 집정관 후보에 출마하여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끌어들여 밀약을 맺은 후 집정관에 출마한 막강한 두 후보자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평민 대표인 호민관이 주도하는 민회와 평민집회에서 제정된 법률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정책화되었고 실행되었기에 카이사르는 호민관을 이용하여 각종 개혁 법안을 제정했다. 그 일례로 원로원 토의 내용이 속기사에 의해 가감없이 일보로 작성되어 다음날 아침에 포로 로마노 광장 벽에 공시되었다. 밀폐된 장소에서 토의하던 원로원 의원들이 이제 헛소리를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카이사르가 집정관에 당선되자 공직자 윤리법과 신문의 시초인 이런 일보 작성을 법률로 제정하였던 것이다. 또 속주 총독이 세금을 일방적인 잣대로 거두어들이던 것을 사전 납세자 명단을 작성하여 속주 2개 도시와 수도 로마 포로 로마노 광장 벽에 공시하도록하여 총독들의 뇌물공여 통로를 차단했다. 이처럼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폭압적인 권위와 권력을 하나 둘 제한시키고, 고위 공직자들의 뇌물수수를 차단하여 깨끗한 사회를 만들려고 개혁을 시도했던 것이다. 

 

로마 시대에 많은 빚과 여자 관계가 복잡했던 카이사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후세에 위대하게 평가받는 것은 빚은 많았으나 개인적인 치부를 하지 않았고, 로마 귀족 사회의 태반이나 되는 수많은 여자들과 연인 관계를 맺었으나 누구한테도 원망을 듣지 않았고, 민중의 권익을 위해 원로원의 권력에 맞서서 그들의 비합법적인 권력을 제한시키고 뿌리깊은 비리와 부패고리를 척결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이미 지중해 세계 전체로 확대된 패권국으로써는 그 기능을 다한 원로원 주도의 로마 공화정 체제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구상하였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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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오늘날 우리 국회를 바라보는 한 지식인의 양심의 외침이다.

 

 

로마 로원 수준도 못따라가는 망국

선거철을 앞두고 야심찬 정치 신인들이 대거 여의도 입성을 넘보는 가장 큰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일단 가슴에 금배지를 달게 되면 한껏 거드름 피우면서 놀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라면 적당한 대답이 될지 모르겠다. 그만큼 무책임하고 낯두꺼운 부류가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라는 얘기다.

일부 선량한 의원들에게는 이런 비유 자체가 불쾌하고도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집단적으로는 국회의원들이 한꺼번에 손가락질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이 분명하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지 이미 오래다.

“국회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며 국회 심판론을 제기한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어조에 맞장구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언급이 정치적 노림수를 지닌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국민들의 일반 정서는 오히려 그 이상이다. “민생은 갈수록 쪼들리는데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소리가 하소연 차원을 넘어 비난으로 빗발친다.

비난은 당연하다. 국회를 열어놓고도 의사일정을 미룬 채 빈둥거리다가 막판에 무더기로 안건을 처리하는 습성은 거의 고질병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정작 중요한 법안들은 젖혀놓는 게 그들의 묘한 심보다. 민의를 대변한다고 하면서도 국민들은 안중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제 막을 내린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의 모습도 예외는 아니었다. 쫓기듯이 100건이 넘는 안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하고도 당초 합의했던 경제활성화법 등 핵심 법안은 끝내 누락시키고 말았다. 딴지를 건 새정치민주연합이나 거기에 끌려다닌 새누리당이나 비난을 받아야 하긴 마찬가지다.

 

 

 

청년단체 대표들이 국회 앞에서 ‘국회 장례식’을 치른 마당이다. ‘식물 국회’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어버렸다는 민심의 성토다. “그동안 청년실업 문제를 꼭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렸지만 국회는 끝내 이러한 요구를 외면했다”는 절규가 의사당 허공을 맴돌 뿐이다.

국회가 명분과 이념의 틀에 갇혀 국민의 희망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지적이 그렇게 틀린 얘기가 아니다. 내년 총선의 선거구 획정 문제만 해도 예비후보 등록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처럼 놀고먹기로 따지자면 민간기업 기준으로는 당연히 ‘퇴출 1순위’다. 하지만 놀고 지내는 와중에도 자기들의 세비 인상안은 잽싸게 처리한 그들이다. 뒤늦게 문제가 되자 없던 일로 처리했다지만 손바닥에 놓여진 밥그릇을 가볍게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숨길 수가 없게 돼버렸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그것을 말해준다. 로스쿨 낙제 대상인 아들을 졸업시켜 달라며 특혜 조건을 제시하거나 나랏돈으로 아들을 해외연수 보낸 사람들이다. 신용카드 단말기를 갖다놓고 산하기관에 자신의 시집을 판매한 경우도 없지 않다. 이쯤이면 공기업에 압력을 넣어 자녀를 인턴으로 취업시킨 정도는 약과에 속한다.

국회의원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갑질’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자녀들에게까지 ‘금숫가락’을 물려주겠다는 심산이다. 게걸스럽고 추접하다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이런 식으로 비리를 저질러 의원직을 박탈당한 경우가 이번 19대 국회 들어서만 해도 벌써 22명에 이른다. 위장의 소화능력을 믿고 이것저것 집어 삼키다가 배탈이 난 경우다.

이제 국민들도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을 태세다. 아니, 조용히 물러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패거리 다툼에 공연히 세금만 축내는 구태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움직임에 국회의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응답할 때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