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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봄 13 : 현충일의 의미 1

 

 

 

강남의 봄 13 : 현충일의 의미 1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전북 임실군 강진군에 위치한 국립임실호국원을 찿은 아이들이 고인이 된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수건으로 묘비를 닦고 있다.                    


 

오늘은 제58회 현충일이다. 전국적으로 호국선열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사가 일제히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현충일인 6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앞 광장에서 제58회 현충일 추념식을 거행하고 전국 관공서, 공공기관 등은 조기를 게양할 예정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추념식에는 3부요인, 정당대표, 헌법기관장 등 주요 인사와 국가유공자단체장, 국무위원 등이 참석할 에정이다. 또 전몰군경 유족과 독립유공자 유족, 참전유공자 및 손자녀, 사회 각계대표, 학생, 인터넷으로 신청한 시민 등 1만여명이 자리를 함께 할 예정이다.


추념식 묵념은 정각 10시에 전국적으로 울리는 민방위통제소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1분간 전 국민이 일제히 묵념을 올리고 헌화·분향, 추모영상 상영, 추모헌시 낭송, 나라사랑큰나무 패용, 추념사, 현충의 노래 제창 등 순서로 진행된다.

 

서울 광화문, 세종로, 국회앞 삼거리 등 18개소와 부산, 대구, 광주 등 220여개 주요 도로에서도 묵념하는 1분 동안 차량운행을 일시중지토록 해 묵념 참여 분위기를 조성할 예정이며 교육계에서도 현충일을 맞아 호국선열에 대한 참배 등 행사를 진행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제58주년 현충일을 앞둔 5일 오전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과 학도의용병 현충비를 참배했다. 이날 참배에는 문용린 교육감을 비롯해 지역교육청 교육장, 본청 실·국장 등이 참석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매년 현충일 하루 전날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며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희생된 학생 영령을 위로하는 의미로 자체 참배를 진행해 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현충일 당일 미수습된 6·25전사자와 그 유가족 찾기 행사를 연다. 이번 행사는 60여년 전 이름 모를 산야에 묻힌 13만여 호국용사들의 신원확인에 필요한 유가족 유전자 DNA샘플 확보를 위해 진행된다. 2008년부터 매년 시행된 ‘현충일 6·25전사자 유가족 찾기 행사’는 전사자 유해발굴 사진·유품 전시, 병적기록 조회와 병적상담, 유가족 DNA 시료채취 및 건강검진 서비스로 이루어진다.


올해 행사는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서 동시에 열린다.

 

 

헌충일의 의미

 

현충일(顯忠日)은 국가를 윟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殉國先烈)과 전몰(戰歿) 장병들의 충렬을 기리고 얼을 위로하는 대한민국의 기념일이다. 매년 6월 6일로, 전국 각지에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충절을 추모하는 행사를 거행한다.

 

현충일에는 관공서와 각 가정, 민간 기업, 각종 단체에서 조기(弔旗)를 게양한다. 대통령 이하 3부 요인 등과 국민들은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오전 10시 정각에 전국민이 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비는 묵념을 1분 동안 행한다. 1970년 6월 15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공포하여 공휴일로 정하였다.

 

지정 배경은 1956년 4월 19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 (대통령령 제1145호) 및 "현충 기념일에 관한 건" (국방부령 제27호, 1956년 4월 25일)에서 "현충 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1965년 3월 30일 "국립 묘지령"(대통령령 제2092호) 제17조에 의거 연1회 현충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한강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죽음에 대한 가치

 

수많은 영령들이 진달래가 되고, 개나리가 되고, 철쭉이 되고, 벗꽃이 되고, 장미가 되고, 산비둘기가 되어 다시 이 땅에 말없이 피어나는 듯하다. 우리들의 그들의 혼령과 피와 눈물과 땀을 다시 먹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 땅의 흙은 모두 선조들의 육신들이 썩고 가루가 되어 분토가 되어 거름이 되었으며 그 영양분을 먹고 이 땅의 오곡과 수목들이 자라고 열매가 맺는다. 우리들은 그러한 오곡과 야채를 먹으며 나무로 집을 짓고 불을 떼며 밥을 하고 따뜻한 방안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고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여름을 지낸다. 그 열매와 과실은 모두 그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육신이 썩어 숨어들어간 알맹이들이 아닌가! 우리들 또한 세월이 지나면 한 줌의 재가되어 이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 후손들이 먹고 마시며 살아가게 만들 것이다. 우면산의 진흙과 먼지가 모두 그 분들의 영혼의 뼈가루인지도 모른다.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남다른 지혜가 있다면 이런 기념일에는 반드시 국립묘지를 참배하도록 하는 게 좋다. 현충일이 연휴라고 남들이 간다고 비싼 연료 낭비하며 멀리 여행가서 헛돈 쓰고 올 것이 아니라, 이런 날에 온 가족이 간단히 도시락을 싸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국립묘지에 가서 전체 묘역을 골고루 돌되, 제일 위쪽 국가유공자 전직 대통령 묘역부터 각 비문 뒤에 새겨진 눈물어린 글귀를 모두 적고 소리내어 읽게 만들어 보라! 아마 비문 열 개도 안되어서 모두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의 교육에는 그만큼 유익한 현장교육이 없을 것이다.  기념일에는 동작동, 대전 국립묘지 등에는 방문자들이 많아 많이 밀리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다른 묘역도 돌며 부모들이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일깨워 주는 게 좋을 것이다. 자유를 위해서, 민주화를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잠든 그들의 영령들에게 엄숙한 마음과 자세를 갖도록 자녀교육을 시키는 게 좋을 것이다. 위대하고 훌륭한 자식은 부모들의 지혜로운 가정교육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서울 성벽 숙정문 일대 능선 전경

 

 

                                                                                         

묘역에서 홀로 슬피우는 여인이나 유가족에게 가서 진심으로 위로하고 지나간 진한 슬픈 이야기를 자녀와 같이 들어보라! 어떠한 책보다도 어떠한 산교육보다도 그런 값진 교육은 없을 것이다. 전쟁이란 무엇이며, 왜 인류는 전쟁의 역사를 이루어 왔는지도 설명해주라. 전쟁의 참상도, 전쟁의 비극도 설명해주라. 

 

 

 

현충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

우리의 오늘이 있는 것은 우리들이 잘나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그들의 육신과 혼령이 이 땅에서 흙이 되고 바람이 되고 꽃이 되어 향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고 먹다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전국 각지를 다니며 식도락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식을 반듯하게 키우려면 풍족을 멀리하라. 어렵고 힘든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만이 세상에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배부르게 먹고먹여 비만을 만들지 말고 용돈을 충분히 주어 방탕아를 만들지 말고 노력없이 재물을 남겨주어 풍족하게 살게 만들지 말고 스스로 노력하여 부를 갖도록 교육시키는 부모가 지혜로운 부모이다. 그렇지 않으면 임진왜란시 처럼 원균이나 이일같은 장수를 만들어 나라를 거들내거나 종국에는 나라를 팔아먹는 이완용같은 인물이되거나, 권력형 비리와 부패에 연루된 공직자, 판검사, 경찰, 기업인, 다단계 사기꾼, 성폭력 범죄자, 강도.강간범, 살인자 같은 인물이 되느니라~~ 

 

 

                                                                   서울 성벽 숙정문 바깥 성북동 전경

 

 

얼굴 못 생겼다고, 부모가 능력이 없다고, 가정이 가난하다고, 학벌이 좋지 않다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지 못했다고, 기름진 음식을 못먹는다고, 명품 옷을 못 입는다고, 넓은 집에서 못지낸다고, 외제차를 못 탄다고 그렇게 억울하고 슬퍼냐? 사지와 정신이 멀쩡한 자신이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는 것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운가? 칠성판에 누워 세상을 바로보았는가? 병원 병실에서 몹쓸 병에 걸려 임종을 앞두고 밖을 내다 보았는가?  한강 다리위에서 자살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해 보았는가? 2년도 안되는 군대생활을 견디기에 그렇게 힘들었던가?  전쟁의 고통을 당해보기나 했냐고? 보리밥과 미숫가루와 감자, 고구마로 연명하여 보릿고개를 넘어보았느냐고? 허망한 욕심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녀를 반듯하게 키울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예술의 전당 아침

 

 

 

힘이 지배하는 역사

 

누구도 어떤 나라의 지배 권력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인류의 역사는 반정과 정복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힘이 없는 민족,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민족, 탐욕스런 민족, 역사를 알지 못하는 민족, 포용과 관용이 부족한 민족은 반드시 망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기쁨과 즐거움은 한순간이지만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민족은 강자의 지배를 받으며 고난과 고통의 시간은 길다.

 

고구려를 업한 주몽은 도덕적이고 정통성이 있는가? 아니다. 그는 동부여에서 도망쳐 소서노를 만나 기사회생하였고 고구려를 창업하게 되었으며 온조와 비루를 제치고 먼저 부인의 아들 유리를 찿아 후계자로 만들었다. 배은망덕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소서노는 분노했고 배은망덕한 주몽을 떠나 온조와 비루를 데리고 남쪽으로 배를 타고 산동반도에서 도착하여 대방의 배려로 위례성을 구축하고 머물다 대방의 간섭이 심해지자 새로운 신천지를 찿기 위해 돌째 온조에게 한반도로 가서 나라를 창업할 땅이 있는지 살펴보라 했다.그래서 온조는 선발대를 데리고 한반도 마한 땅으로 가서 마한 왕의 배려로 지금의 잠실 토성 근방 하남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백제의 온조는 정통성이 있는가? 아니다. 그는 어머니 소서노와 형 비루를 제치고 한반도에서 왕권을 차지했다. 산동반도에서 온조를 뒤따라 미추홀(인천 지역)에 도착한 소서노와 비류는 온조가 찿아오거나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나 온조는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소서노는 온조가 만나기를 거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 소서노가 온조를 공격하다가 전사했다. 온조는 과연 정통성이 있고 도덕적인가? 아니다. 그는 어머니를 죽이고 형을 배신한 불한당일 수밖에 없다. 

 

고려의 왕건은 정통성이 있는가? 그는 이유야 어쨌던 창업 군주인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다. 다된 밥에 숫갈과 젓가락만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조를 창업한 이성계는 정통성이 있는가?  아니다. 그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을 내쫓고 최영을 죽이고 정몽주를 죽인 후 고려 잔여 세력을 청소한 다음에 못이기는 척하며 조선의 초대 창업 왕으로 등극하였다. 이성계는 정통성이 있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인가? 아니다. 비록 고려가 오랜 기간 무신정권과 몽고의 간섭으로 조정이 무력해졌으나 고구려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당시 원나라가 망하고 명이 발흥하던 시기라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던 만주 정벌을 시도할 정도로 무능한 조정은 아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조정이 부폐하고 무능해져 내분이 발생하여 국려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토탄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성계는 군주의 명령을 어기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쿠테타를 일으킨 역적이다. 고려의 충신 최영, 정몽주를 죽이고 우왕. 창왕을 허수아비로 옹립하여 왕위에 욕심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다가 신하들의 간청에 의해 할 수 없이 왕위에 등극하였다고 한다.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이승만은 정통성이 있는가? 한마디로 둘다 소련과 미국을 등에 업고 분단된 남북에서 각각 나라를 새운 사람들이다. 둘 다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지구상에서 한마디로 정통성 있는 국가는 아무데도 없다. 힘의 논리에 의해 정권은 창출되고 힘에 의해 무너진다. 강대국의 지원에 기존 정부가 무너지고 강대국이 마음대로 조종이 가능한 정권이 들어선다. 중남미에는 미국의 조종에 의해 수많은 나라들이 정권교체가 반복했고 심지어 미군이 직접 투입되어 지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강대국의 낡은 무기를 팔아먹고 군사기지를 사용하며 다국적 대기업들이 진출하여 국부를 빼가고 그 나라의 석유 등 천연자원을 싹쓸이 해간다. 이것이 바로 국제사회의 힘에 의한 지배논리이다.

 

 

                                                         봄의 전령 벗꽃, 순간의 기쁨처럼 사라져갔

 

 

지치고 고달픈 역사, 그리고 조선의 망국

 

조선은 개국후 강력한 카리스마의 태종, 유능한 세종, 왕권을 찬탈한 세조 등의 유능한 왕들과 개국공신들과 그 후손들로 구성된 훈구파 세력과 더불어 왕조의 안정과 융성을 200년 가까이 유지하여 왔다. 그러는 동안 훈구세력들은 부패하기 시작하였고 성종대에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정치.사회의 새로운 질서를 강조하는 사림세력을 등장시켜자 훈구파와의 갈등은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 등 네 차례에 걸친 사화로 신진 사림세력은 타격을 받고 정국혼란은 계속되었으며 신분.군역.공납제도는 격심한 문란을 초래함은 물론 민생은 토탄에 빠지고 장부상의 군대만 남는 형상이 되었다.

 

조선이 논쟁과 당쟁에  국력을 낭비하고 목민을 빙자한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등 극도로 병약해진 상태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으며 이후 7년간 왜란으로 전국토가 왜놈의 말발굽에 온강산이 초토화 되었으며 그 피멍이 채 가시기도 전에 중원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만주의 야만족인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하여 인조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쟁하였으나 강.온건파간의 대립으로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항복키로 결정하고  지금의 송파 '삼전도'에서 이마에 피나 나도록 땅에 머리를 찍는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궁궐로 돌아가던 인조는 길을 뚫어야 했는데, 서울 도성인 한양은 거리마다 시체들로 발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불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명청전쟁을 직접 보았고 서양 신부 아담샬을 만나 선진 문물에 대해서 눈을 떤 세자가 돌아오니 인조는 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아들이 자신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할 것을 우려하여 독살하고, 부인 강씨는 사약을 내리고 세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를 보냈으나 막내 하나만 살아남고 모두 죽었다. 권력에는 아들도 필요없고 손자도 며느리도 필요없는 것이다.

 

무능한 인조가 죽자 인조를 뒤이어 봉림대군 등극하매 효종이더라. 효종은 재임 10년동안 관무재, 진영장 제도를 설치하고 군대양성에 힘을 강화하는 등 북벌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하였으나 송시열 등 사림들의 반대가 극심하였다. 김자점과 인조의 후궁 조씨가 역모를 꾀하는 등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으며 재임 10년째 머리에 난 종기로 침을 맞다가 승하함으로 북벌계획을 채 시행도 하기전에 절명하는 비운을 겪으면서 북벌계획은 무위로 끝난다.

 

계속된 이씨 왕조는 사색당파와 권력투쟁의 암울한 시대를 보내면서 각지에서는 반정/반역이 빈발하였고 왕권유지와 권력쟁탈, 궁중암투에 부국강병은 커녕 왕조의 핏줄잇기에만 급급하던차, 철종이 후사없이 죽자 유일한 왕족이던 흥선대군 이하응의 아들이 조대비에 의하여 이씨 왕조의 몰락을 재촉하는 임금 고종으로 등극하게된다. 흥선은 고종의 나이가 어린 관계로 섭정을 하게 되는바, 강경책으로 일관타가 대원군과 며느리인 명성왕후 간에 끝없는 권력에 대한 주도권 갈등이 계속되던 중 서로 일.중.러 등 외세를 끌여들인 결과 일제는 조선을 삼키기 위해 청,러시아와 일전을 벌이게 된다. 

 

  

서울의 한강 고수부지 

 

 

일제는 청.일전쟁,노.일전쟁의 결과 전승국이 되어 단독으로 조선을 차지하는 우선권이 주어졌다. 일제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고종은 폐위되고 순종이 즉위하나 조선은 결국 친일 5적에 의해 일제에 합방당하는 비운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일제 강점 36년

 

일제 강점하 36년간 조선은 삼천리 금수강산이 난도질 당하고 산마다 쇠못이요, 젊은 충각.처녀들은 총알받이로 정신대로 전쟁터로 끌려가고, 군수공장. 탄광으로 끌려갔다. 숫가락.젓가락.오강단지까지 공출당하는 수탈의 세월을 당하였다. 철도.광산 개발 미명하에 수목은 모조리 절단되어 목재로, 전국의 평야에서 생산되던 쌀은 모조리 공출되어 인천, 군산, 목포, 부산, 원산 등지에서 일본으로 실려갔다. 수많은 왕릉이 도굴되고 값진 문화재는 몰래 밀반출시킴은 물론 조선 반도의 모든 물자를 모조리 수탈해 가져갔던 일제였다.

 

약삭빠른 조선눔을 일본순사의 앞잡이로 고용하여 권문세가, 사대부 집안, 대부호를 수탈하고  국내잠입 독립투사를 체포.처형하는데 앞장섰다. 친일인사들이 일본 헌병과 경찰에 아부하여 부자들의 농지를 약탈하고 문서를 없애는 등 수없는 범행을 저질렀다. 이에 백성들은 도저히 살 수 없어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간도로 시베리아로 떠났다.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이름도 모르는 곳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끌려가서 황무지에 내버려지고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동사하거나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며, 그래도 조국의 독립을 기원하고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 언젠가는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라는 노래를 불렀다.

 

일제치하 동안 천만이 넘는 남여 젊은이들이 이역땅에서 이슬처럼 사라져 갔으며 안중근의 하얼빈 쾌거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나.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몸부림에 불과하였고 대동아전쟁을 벌인 일제는 눈에 불을 켜고 조선반도에서 수탈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36년간 통한의 세월을 보내면서 친일파는 고려 시대 몽고군에 빌붙어 조정을 능멸하던 놈들처럼 앞잡이가 되어 독립군, 항일지사를 포함하여 앞장서서 체포.구금.고문은 물론 학살까지 자행한 민족반역자들이었다. 우리들의 할아버지가 친일파였고 일본군 오장이었고 일본 순사 밀정이었다. 우리들의 할머니가 정신대였고 일본눔 씨받이가 되었으며 성노리개였다는 이야기다. 우리들의 할아버지가 항일투사였고 독립군이었으며 일본군으로 끌려가 이름모를 동남아 어느 땅에서 전사하였고 사할린을 포함한 여러 탄광으로 끌려갔으며 731부대 시체해부 대상이 되어 이슬처럼 사라져 갔다는 이야기다.

 

친일파들은 일제가 그렇게 빨리 망할 것으로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려 말기 몽고군이 그렇게 허망하게 명의 주원장에게 쫓겨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몽고 앞잡이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일제 앞잡이 노릇이 천년만년 갈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태평양 전쟁은 자원 고갈과 물량 부족에 시달리던 일제가 미군에 점점 밀리면서 나중에는 자폭공격을 감행하는 등 이슬람의 지하드 같은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자행하였으니 태평양 바다 속에서 잠들어 있을 그들이 값없는 허망한 죽음에 얼마나 원통해 하고 있을까? 그들이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할 뿐이다.

 

그래서 일제는 태평양에서 미드웨이 해전 이후 미군에 계속 밀리면서 전세는 역전되어 갔으니 미군의 본토 상륙에 대비하여 끝까지 결사항쟁을 준비하던 중, 일제는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원폭 두 방에 두 도시가 초토화되고 수십만 인명이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지자 결국 무조건 항복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원히 일제의 식민지로 지구상에서 나라가 사라질 뻔 하였던 조선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뜻밖에 감격스런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동호대교 아래 한강

 

 

 

해방

 

우리들의 해방은 어느날 집나간 마누라가 창부를 데리고 오듯이 갑자기 찿아왔다.

 

1945년 8월 15일 민족의 염원이던 독립은 되었으나 38도선을 기준 남북으로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하여 진주한 소련군과 미국에 의해 반도는 절단되고 북에는 김일성, 남에는 이승만이 각각 괴뢰정권을 수립하여 자신들이 조선반도의 대표주자들이라고 나섰다. 

 

당시 미군과 소련군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관동군은 소련이, 기타 대본영 소속 군대와 본토는 미군이 무장해제 하기로 약조되었다. 그런데 북한 지역에 주둔하던 대본영 직속 일본군 17사단이 해방 며칠 전 소련군 진주에 대비하기 위해 17사단을 대본영 소속에서 관동군 소속으로 예속 변경을 하여 버렸고 그 바람에 북한 지역이 소련군의 무장해제 지역에 편입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 이런 안타까운 사건은 우리 민족에게 남북 분단이라는 불행을 잉태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으며 일본놈들은 두고두고 몸서리칠 정도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원수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한편, 김구 선생을 비롯한 상해임시정부 요원들은 이승만과 미군에 의하여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자격으로 귀국하게 되었으며, 모든 정치적인 주도권은 미국에서 활약하던 이승만에게 넘어가고 이승만은 정권창출과 군대양성을 위하여 일제하 친일 인사들을 다시 대거 등용하여 행정체제를 구축함은 물론 국방경비대를 급편하면서 일본군 출신 친일파들을 대거 기용하게 된다.

 

해방 후 5년 동안 남한은 피나는 권력투쟁의 암울한 기간동안 김구 등 수많은 인사들이 저격, 암살, 살해되고 이승만 정권이 자리메김이 점점 가시화 되자, 연일 '북진통일' 외치는 이승만에게 미군은 한국 군대의 편성과 무장에 소극적인 반면, 북의 김일성은 소련 군사고문관 및 군수물자, 장비, 무기 등을 지원 받았고 중국은 국공내전 이후 남아 도는 공산군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고 그래서 북한의 지원 요청에 조선족과 중국 공산군 및 팔로군 출신들을 대거 북한으로 보냈다. 김일성은 그들을 주력으로 편성하여 북한군을 편성하고 소련제 T-34 최신예 탱크 등으로 무장된 북한군을 38도 선 전역에 배치하고 '남조선 해방'이라는 미명하에 1950년 6월25일 새벽 남침을 개시하게 된다.

 

 

 

추락은 자만에 앞서 찿아 온다

 

사회 지도층은 비리와 부패로 썩을 대로 썩었고, 가진자와 가난한 자가 양반과 상놈보다 더한 차별난 사회, 정의와 공정이 사라지고 불법과 탈법이 횡행하는 사회,  경제발전 좀 했다고, 배가 부르다고, 놀고 즐기기 바빠서, 쾌락은 순간이요 고통은 영원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게 아닌지? 배가 불러 다이어트에 고민하고 군대가기 싫어서 갖은 편법을 써서 빠지고, 더럽고 힘든 일은 하기 싫고, 남이 하니 나도 해야되고, 명품이 아니면 쪽 팔리고, 외제차를 타야 대접 받고, 강남 뒷골목 술집에서 친구나 애인과 밤새 술을 마셔야 의리가 있고 사랑하는 줄 착각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

 

진정한 학문과 역사는 커녕 취업에 목이 메어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고, 틈만 나면 게임과 오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난한 부모를 멸시하며 사업자금 안 준다고 칼로 찌르고 폭행하고 불을 지르는 현실, 시험 못 보았다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청소년.소녀들, 술집에서 만난 여자에게 물뽕을 타서 먹이고 성폭행하고 환각제에 빠져 밤을 지새며 쾌락에 헤메고 있는 사람들, 도박과 오락에 빠져 밤을 지새는 백수들, 이 사회가 가고 있는 길이 망국의 지름길로 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아직도 한국전쟁은 물론이고 남침인지 북침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잘 모른다고 한다. 머리에 붉은 사상이 불든 전교조 선생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교육받은 불행한 세대들이다. 자료와 문서를 제대로 찿아서 스스로 올바른 우리들의 역사를 배우지 못하는 우리 후손들의 어리석음이다. 그래서 한국전쟁이 아련하게 기억속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산화한 월남전쟁(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오늘날 전쟁을 겪지 못하고 곱게 행복하게 자란 젊은이들에게 과거를 상기시키고 호국영령들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뜻에서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에 대해서 기술하려 한다.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는 오늘의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경이적인 경제발전과 풍요로운 삶, 세계를 휩쓰는 한류 문화 등은 굶주림과 부족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이 인식해야 할 것은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들이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 남에게 국방을 의지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한꺼번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원리라는 점이다. 

 

강대국의 세력다툼과 격변하는 동북아 정세를 바라볼 때 우리들의 앞날은 풍전등화나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지정학적인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우리들 자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강적을 어차피 이기지 못할 바에는 적의 헛바닥이라도 물고 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가시고기 물고기처럼 이스라엘이나 스위스처럼 주변 위협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들의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우리들의 나라와 민족은 이 지구상에서 언제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