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한국의 역사 919 : 조선은 어떤 사회였는가? 24

 

 

 

한국의 역사 919 : 조선은 어떤 사회였는가? 24

 

 

                   

 

 

 

 

 4. 언제 한번 죽기 살기로 싸워본 적이 있는가?

 

 

어떤 바보라도 막을 수 있었던 병자호란

 

앉은 채로 당할 형세는 아니었는데......

이 바보같은 전쟁도 아닌 전쟁은 임진왜란이나 똑같이 사전에 충분한 경고가 있었다. 1년 전에 청나라에서 황제가 직접 조선을 치겠다고 통고를 해왔다.

 

심지어 명군 부총 백등용이 인조를 직접 만나 지금처럼 강경책만 고집하지 말고 청나라의 동태를 잘 실피라고 충고를 해줬다. 군 지휘관이었으니 청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을 터라 넌지시 조선의 갈 길을 귀뜸해 준 것이다. 왜 주제 파악도 못하고 큰 소리만 치고 있느냐는 그런 충고였을 것이다.

 

명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온 황손무도 그동안 명나라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쓴 소리를 내놨다.

 

"간첩을 보내 청의 내부 사정을 정탐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것. 또 조선은 지독한 문민통제에 빠져 군비를 소홀히 해왔으며 군과 농민의 구분이 없어서 전투력이 너무 조잡하다." 고 조언했다.

 

한마디로 조선은 청나라와 싸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예고한 것이다. 명나라도 이미 청나라에 몰려 패망 직전인데 조선만 그걸 모른체해 왔던 셈이었다.

 

전쟁이 임박했다는 보고도 수차례 있었다. 접반사 이필영은 이미 한 달반 전에 적은 겨울에 침입할 것이라는 보고를 올렸다. 동지경연 이성구는 중국에 다녀온 역관 한 사람의 보고를 인용, 적군이 이미 동원되어 있으니 긴급히 국경수비를 강화하라고 간청했다. 병화를 입을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조정에서는 팔짱만 끼고 있으니 비통하다고 아뢰었지만 인조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런 역관이 뭘 알겠느냐......" 하면서.

 

그다음 날도 국경에서 "적들은 지금 얼음이 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니 우리 군대도 비상령을 내리고 긴급히 탐색 사절을 보내야 한다"는 장계가 올아왔지만 역시 인조는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무시해 버렸다.

 

그나마 한 가지 조치한 것은 화약 4천 근을 강화도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그 화약은 결국 한 방도 써보지 못했다. 청의 도르곤이 지휘하는 청군이 명나라 군에서 빼앗거나 귀순한 배를 동원하여 갑곳을 지나 강화도에 상륙하자 아군이 폭발시켜 자폭하는 정도로 써 버리고 말았다.

 

당시 군사력을 보면 앉은 채로 당할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임진왜란이 끝나자 조총의 위력을 절감한 선조는 은밀히 조총을 구입하기 시작, 상당 규모의 조총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종 총통도 보유하고 있는 등 지휘관이 군사들을 조련만 잘 했다면 대적할 만 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초반부터 조총에 무너졌던 것이다. 조선군의 육상 전투 방식은 중국처럼 기마전법이었다. 말을 타고 돌격해 적진을 붕괴시키는 북방식 전법이었지만 이런 전법은 기본적으로 땅이 넓은 중국에서 쓰는 방식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말이 그리 풍족하게 보유하지도 못했고 산지가 많고 평지는 좁은 곳에서 쓸 만한 방식이 못 되었다. 그래서 조선군은 그런 전법을 구사하다가 일방적으로 패전하였다.

 

기본적으로 청군은 기마부대 위주로 구성된 군대였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의 7,000여 기마대가 당했던 것처럼 일본군의 전술을 원용하지도 못했다. 일본군은 적 기마병이 돌격해 들어가면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전방에서 대기마장애물을 설치하고 정확하게 조준하여 연속사격으로 조선군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군의 전법은 이미 전국시대부터 발전되어온 새로운 전법이었다. 1575년 오다 노부나가의 조총부대는 기마대의 돌격전을 특기로 하는 다케타 군을 전멸시켰다. 조총 전투력은 이미 충분히 검증한 것이었다. 조총과 대기마 장애물의 효과적인 조합과 연속사격이라는 전술로 적을 괴멸 시킨 것이었다.

 

그러면에서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는데, 일본 수군이 갖지 못한 각종 총통 등 화포로 적의 조총 사거리 밖에서 원거리 포격으로 적진을 강타한 다음 접근전으로 적을 격멸시키는 전법, 그리고 지형과 수로, 물때를 이용한 매복, 기습전을 전개하여 23전 23승을 일군 것이다.

 

그래서 만약 당시에도 유능한 장수가 평소 강인한 군사훈련을 통해 이러한 전술을 연마하였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는 점이다. 만약 육상에서 청군과 접전이 붙을 경우 먼저 각종 화포로 원거리 사격을 실시하여 적의 대형을 무너뜨리고 측 후방 및 전방에 다중의 대기마 장애물을 설치하고 좌우에는 기마부대로 편성하여 측.후방 기습을 막으면서 적의 측.후방을 강타하는 전술과 전방에는 대기마장애물을 설치하고 조총부대를 수개열로 편성하여 연속사격을 가했다면 아무리 강한 청군 기마대라는 팔기군도 여지없이 격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이 임진왜란 이후 조총으로 무장했다는 것은 명나라도 알고 잇었다. 1614년 명나라는 후금군과 전투에서 조선의 조총부대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인조에 반기를 든 이괄의 난 당시에도 이괄은 당시 북방에 배치되어 있던 조총부대인 항왜(임진왜란 당시 투항한 왜군)군 1백여 명을 선봉에 세웠다. 조선은 1607년 일본 사행 당시부터 상당한 조총을 구입해 주로 북쪽 주둔군에게 보냈다.

 

인조 시대가 되면서 조선의 군대는 사분오열 상태였다. 광해군을 몰아낸 공로 때문에 반정공신이 된 자들이 군대를 제각기 장악해 사병화했다. 이귀는 여영청, 김류는 훈련도감, 그리고 개성부나 좌우포도청 등은 또 다른 공신이, 그리고 자택에도 친위사병을 수백 명씩 거느린 공신들이 여러 명이었다. 그 목적은 한 번 쿠테타로 정권을 잡았지만 또 다른 역 쿠테타가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친위병들은 각기 호화군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민폐를 일삼았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그런 군사 몇 십 명만 보내달라고 요청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청군이 쳐내려오기 몇 달 전까지는 최명길도 결코 화친파가 아니었고 결전파였다. 그는 전쟁을 치르려면 이대로는 안 되니 평안도에 지휘본부를 설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나라가 한 번은 쳐내려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달 전에도 윤황은 강화도에 배치한 병력을 모두 평안도로 보내고 강화도에 지어놓은 행궁마저 태워버림으로써 결전의 의지를 보여 달라고 인조에게 청원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에 귀를 기울리지 않았다.

 

정온은 윤황보다 더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인조에게 결전을 벌이자고 촉구했다. 그는 도원수를 의주로 보내 압록강을 방어하고, 의주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성을 지키겠다는 용사를 선발하는 과거를 실시하여 결사대를 뽑고, 인조도 개성에 위치하여 군대를 진두지휘하라고 촉구했다.

 

정온은 결전을 위해 구체적인 작전 게획까지 제시했다. 그는 조선군의 사수와 화포병을 천하무적이라고 평가하고 그들을 활용하면 청군 기병의 돌격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투가 벌어질 경우 먼저 진을 칠 장소를 정합니다. 포수 4천 명을 4대로 나누어 2천 명은 앞에 진을 치고 2천 명은 지형을 살펴 좌우에 진을 칩니다. 포수 뒤에는 사수를 , 그 뒤에는 살수는, 그 뒤에는 편곤군과 기사병을 각각 배치합니다.

 

적이 학익진 형태로 공격해오면 아군의 전위대 1천 명이 먼저 조총을 쏘고, 쏜 뒤에는 안장서 화약을 장전하고 후대 1천 명이 다시 쏩니다. 적이 만약 장사진으로 공격해 오면, 좌군이 전대가 했던 것처럼 먼저 쏘고, 적이 40~50보 안에 들어오면 사수들이 포수가 쏘던 방식대로 화살을 발사합니다. 그러면 포성이 그치지 않고 화살은 비옷듯 쏟아질 것이니 비록 저들의 견갑철마라 할지라돟 어찌 궤명되지 않겠습니까?"

 

이 계책은 병자호란 당시 제기된 결전론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고 논리 정연한 것이다. 조총병이 4천 명이나 되었는데 이것도 결국 조정 대신들이 들어먹지 않는 바람에 허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침범이 임박하여 내침 20일 전에도 조정 대신들은 모여 앉아 하잘 것 없는 청 오랑캐 무리가 이제는 오만하게 황제국가를 참칭한다면서 이런 오랑캐들과는 단호히 상관을 끓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얼마 뒤면 왕이 청 황제에게 무릎을 끊고 국궁 3배를 올린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오랑캐 타령만 주고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왕과 조정 대신들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백성 50~60만 명이 청나라로 끌려 갔다. 물론 소현, 봉림대군과 비빈들, 그리고 3학사를 포함한 사람들이 볼모로 끌려간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 노예로 팔려가거나 여성들은 청나라 관리들 성노리개로 전락하여 노예처럼 지내다가 소현 세자빈의 노력으로 돈을 지불하고 몸을 버린채 겨우 풀려나 돌아오니 조선에서는 난리가 났다. 모두가 더렵혀진 버림받은 몸이라 하여 집에서 쫓겨나거나 이혼 당하였다. 그래서 목메 자살하거나 이혼당하고 거지가 되어 이름모를 산하를 헤매다가 병들어 죽거나 굶어 죽었다.

 

왕과 권력자들을 잘 못 만나 불쌍한 백성들만 그런 고초를 겪은 것이다. 국가 지도층들이 목숨이 아까워 죽기 살기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싸울 의지도 자신도 없었던 그런 왕과 조정이 이 의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도층이 국난에 앞장서고 나선다면 백성들이 누가 나서지 않을 것인가?   

     

 

 

오늘의 현실, 막장을 향해 가는 나라......

 

이 나라가 어디 한 곳 성한 곳이 없고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없다.

 

박대통령 방미 기간 중 발생한 윤창중 사건이 세계적 뉴스가 되었고 화제거리다. 국격이 낭떨어지로 떨어진 꼴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지도층의 현실태이기도 하다. 

 

박대통령 방미 기간 중 윤창중 대변인이 부적절한 행동으로 방미 이미지 손상 등 나라 망신에 언론과 청와대, 네티즌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술을 꼭 먹어야 했는지, 왜 그런 여자를 옆에 두고 술을 먹어야 했는지, 그런 중차대한 시간에 그런 여성과 술을 꼭 먹어야 했고 젊은 여성에게 허리던 엉덩이던 손을 댄 자체가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 추락에 앞서 찿아온 자만의 결과일 것이다.

 

우유업계의 대기업인 남양유업이 요즘 공중분해 직전이다. 그동안 방치되어 왔고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던 약자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검찰에서 압수수색을 한다, 공정위에서 조사를 한다 부산을 떨고 있지만 그런 것을 지금까지 방치하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너도나도 앞장서고 있다. 모두가 뒷북을 치는 꼴이다. 사회가 불의와 불공정이 판을 치는데도 모른척하던 사정기관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퇴직 후 여생을 보낼 기업을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단계 업체 조합인 직판 및 특판 조합에 공정위 출신들이 줄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신의 직장이라는 금융권 공기업에 대해서 뉴스에 났지만 년봉이 억대를 넘어간다고 한다. 대기업 연봉 수준을 웃도는 수준이니 그눔들은 모두 국민들의 세금을 곳감 빼먹듯이 하고 있는 파렴치들이지만 사정기관이나 정부 누구도 그런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 특권층을 구성하여 권력의 비호하에 호의호식하는 인간들이 부지기수로 존재하는 한 그 나라가 제대로 굴러간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출들의 관계 진출을 막았듯이 말이다. 

 

지난해 12월 <워싱턴포스트>는 '대한민국, 삼성공화국'이라는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국내총생산의 20%를 담당하며 "한국의 수출, 세입, 고용에 막대한 기여"를 자랑하는 삼성이 정부와 비등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한국사회의 비판적 목소리가 해외에도 전해졌다.

당시 기사에서 "재벌은 싫지만 내 자식은 재벌 기업에서 근무했으면 한다"는 심리가 "한국인들의 이중성"이라고 지적한 전국경제인연합회 간부의 인터뷰가 폐부를 찔렀다. 쏟아지는 비난에도 어째서 삼성이 한국인들에게는 '도덕'이고 '인격'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제 기업 경영의 중심 축은 이제 도덕과 윤리로 옮겨졌고 구성원 개개인의 됨됨이가 경쟁력인 시대가 돼가는 듯하다. 신입사원 선발에서 스펙보다 인성을 중시하는것은 이런 기업 환경변화와 무관치 않다.

수출과 투자, 소비는 병색이 완연하고 인구는 초고령화로 줄기차게 달리고 있는데 출산율은 저조하고 청년실업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인력난으로 외국인을 배정받기 위해 밤샘을 하면서 줄을 선다고 한다. 

 

청소년 탈선과 반항, 자살이 증가하고 있고 썩어가던 교육계는 부패 진보 교육감들이 진입하면서 학생 인권조례 등으로 문제의 심각함을 더욱 부채질을 하고 있다.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들이 진출하였지만 그들의 목적이 교육 개혁이 아니라 정치적인 색체를 띤 순수하지 못하고 편협한 사상에 물들어 있기에 개혁은 시도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교육자들은 부패하고 여성 교사들이 70~80%를 차지하는 오늘날 교육계 현실을 누가 예견하고 문제를 제기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오로지 봉투와 떡고물에 눈들이 어두워 공사, 급식 비리에 공교육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가운데 사교육은 거침없이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학벌, 혈연, 지연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는 졸업장이 우선이고 간판이 우선인 사회다. 그래서 학문 연구보다 졸업장이 우선이다. 그래서 교수들은 학문 연구 본래의 노력보다 각종 심사위원이 되면 뒷돈이나 챙기고 정치권이나 귀웃거리며 논문 빼끼기나 열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또 잘 먹어서 육신은 넘쳐나는 정욕에 틈만 나면 여제자를 성희롱. 성폭행하다 비판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휘발유 가격은 조금씩 내렸다지만 여전히 가게에 엄청난 부담이다. 정부는 유류세 걷기에 열심이다. 차라리 자가용에 대해서 유류세를 대폭 인상하고 유사 석유 판매를 허용하면 어떨까? 정유사들의 배만 불리고 있는 현 유류정책은 재고 되어야 한다. 

 

보험사는 어떤가? 보험 사기도 많지만 실제 사고를 당하였을 때 지급해야할 보험금을 각종 약관을 들먹이며 지급을 거절하는 가운데 보험사들은 매년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본사 건물을 계속 올라가고 있다. 

 

대기업 시장 독점은 계속 확장되고 있고 중소기업이나 재래시장은 파리를 날리고 있다. 계열사들끼리 주고 받으며 내부거래로 성장하고 거액을 빼돌리고 비자금을 만들며 자식에게 상속시킬 궁리에 밤을 지새고 있다. 한국 최고의 기업 삼성의 재산 갈등은 그들이 도덕적이지 못한 집안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상조회사들의 광고는 지질줄을 모른다. 유명 연예인이나 아나운서들이 하루 종일 광고 방송에 반복해서 나오면서 국민들에게 가입을 부추기고 있다. 상조회사 오너들이 어디 한 곳이라도 제대로 운영하는 곳이 있던가? 비자금을 조성하여 돈을 빼돌리고 문어발식 확장으로 경영부실에 빠져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고 있다.

 

 

휴대전화 자급제는 제조사와 이통사가 짜고 정부는 방관하는 가운데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고 가상이동통신 사업은 이통사들의 로비로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이나 지지부진하다.

 

원전은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을 정도로 납품비리로 얼룩져 있고 한수전 퇴직자들이 납품회사를 차려 줄기찬 비리 복마전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불량비품 바꾸치기, 단가 올리기, 지재.인건비 유용, 향응 접대, 차명계좌 입금 등 특수 보안분야로 오랫동안 저질러온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원전이 언제 대형 사고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 이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경정.경륜.경마 등 도박에 멍들고 주식투자에 알거지가 되었고 카지노에서 게임장에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강원 카지노 주변에는 알거지가 되어 몸을 팔며 도박에 미친 여자나 노숙자가 되어 떠도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남의 불륜을 구경거리처럼 퍼나르고 자신의 불륜은 로맨스로 생각하는 사람, 매춘이 주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정자를 암거래하고 씨받이도 유행하고 있으며 혈액을 뽑아 끼니를 떼우며 용돈으로 사용하고 원조교제로 사치를 하고 장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 알바로 생활비를 벌고 공사판에서 식당에서 땀흘리며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비만한 사람이 넘쳐나는 가운데 결식하는 아동이 한 둘이 아니다. 무상 복지에 무상 급식에 넘쳐나는 복지에 나라 곳간은 텅텅 비어가고 있고 정부 빚이나 개인 부채가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북한 인권에는 무관심해도 종북.친북.좌파 동지들은 권력 투쟁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철면피처럼 찟어진 눈으로 독기어린 눈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말바꾸기로 변명하고 있다. 태생이 권력추구이지 국방.민생.복지가 그들의 진정한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좌파들이 활개를 치고 나팔수들이 나팔을 불어대고 나꼼수 저질 무리들이 국민들의 귀를 자극하는 반항아적 기질로 인기를 얻고 있다지만 원천적으로 그들은 한계는 비도덕적이라는 점이다.

  

어제는 석가탄일, 고속도로가 밀려 터미널에서 출발이 지연되자 고객들이 항의하는 등 난리가 났다. 난지도 캠핑장에는 수만 명이 몰려 차량을 댈 장소가 없다고 한다. 연휴라 도로마다 차량이 넘쳐나 정체가 극심하였다고 한다. 내일 당장 죽어도 놀 것은 놀고 즐길 것은 즐겨야 하는 현실......남들아 가니 나도 가야하고 어린이들이 보채니 우리집도 가자는  마음으로 모두 길을 나섰을 것이다. 차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돈을 펑펑 써고 돌아오니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