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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봄 10 : 북악의 봄, 북악 둘레길을 걷다

 

 

강남의 봄 10 : 북악의 봄, 북악 둘레길을 걷다

 

 

                                                                          북악 둘레길에서 바라본 전경

 

 

지난 석가탄일 연휴 북악 돌레길을 다녀온 탐방기를 싣는다.

 

먼저 올레길은 무었이고 둘레길은 무엇인가? 요즘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기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울레길과 둘레길에 대한 개념이 나와 있어 정리한다.

 

먼저 올레길은 제주에 있는 관광코스 중 하나를 일컫는 말로 올레란 단어는 제주도 토속방언으로 순우리말이다.  올레는 제두도 특징적인 가오구조로 생겨난 말로, 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길을 뜻한다고 한다. 제주는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집 주변으로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았는데 이 골목길을 올레길이라고 한다. 

 

둘레길은 높은 산을 넘지 않고 산자락을 딸가는 길을 말하는데 말 그대로 산의 둘레라 하여 길이 산을 넘지 않고 둘러서 가는 길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도 둘레길을 올레길이라 하며 육지의 다른 대부분의 길은 둘레길이라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들이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은 잘못인 듯하다.

 

 

 

 

북악 둘레길 탐방기

 

아래는 북악 스카이 웨이 소개 자료이다. 참고하시길......

 

북악스카이웨이는  서울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인왕산과 북악산을 오르는 길이다. 인왕산과 북악산은 산세가 아름다고 가는 길은 숲이 울창하다. 북악스카이웨이 자전거 코스는  경복궁, 창의문, 서울 성곽 등 서울의 역사 유적을 지난다. 그야말로 600년 고도 서울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길이다.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멋진 곳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서울 도심에 있는 코스 중에서는 단연 최고라고 할만한 곳이다.


이 코스는  두 시간 정도면 전체 코스를 여유있게 돌 수 있다. 산을 두 개나 오르지만 아주 가파른 길은 아니어서 웬만하면 다 오를 수 있다. 산에 오르는 중에 발아래 펼쳐진 서울 도심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밤에도 이 코스를 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출발은 여러 곳에서 할 수가 있다. 내려가는 길도 여러 갈래다. 정릉, 아리랑고개, 성북동, 삼청동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 곳곳에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다. 다만 도심에 있는 코스라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단점이다. 지하철을 이용해 시내까지 갈 수도 있다. 한강을 따라가다 남산을 오른 뒤 다시 북악스카이웨이로 가는 방법도 있다. 한강에서 홍제천을 따라서 세검정 쪽으로 가면 도심을 지나지 않고 혼잡한 도로를 피할 수 있다.




 

 

북악과 인왕

 이 코스의 중심은 바로 북악산과 인왕산이다. 이 두 개의 산을 중심으로 코스가 이어진다. 전체 코스를 다 돌지 않아도 된다.
인왕산을 오르지 않을 때는 경복궁에서 출발하면 된다. 경복궁 담을 따라 가다 청와대, 경복고등학교 앞을 지나 자하문 쪽으로 가는 길이다. 창의문을 지나면 바로 북악스카이웨이가 시작된다. 

 

  인왕산쪽으로 가려면 사직공원과 단군성전을 지나서 인왕산 스카이웨이를 따라 올라가면 된다. 길이 약간 오름막이지만 그리 힘든 곳은 아니다. 인왕산길은 차들이 많지 않은 편이라 달리기가 좋다. 이길은 창의문 부근에서 서울 성곽과 만난 뒤 북악스카이웨이로 이어진다.

북악스카이웨이는 부암동에서 시작된다. 부암동은 아주 특별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서울 도심 속의 전원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이 둘러싸고 있는 이 마을은 옛 마을의 정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요즘에는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카페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북악스카이웨이도 그리 험한 길은 아니다. 오르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싼 북한산을 보면서 오르다보면 금방 고개를 다 올라가고 북악팔각정에 도착한다. 북악 팔각정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 북한산 보현봉의 장관이 펼쳐진다. 팔각정에서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너무 속도를 내면 위험하다. 내리막길은 금방 내려간다. 









산을 내려가면 북악골프연습장이 나오고 여기서 세 갈래로 길이 나뉜다. 정릉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코스가 짧고 가파르다. 이 코스는 고대사대부고 앞에서 끝난다.

 

아리랑고개 쪽으로 내려가면 돈암동 성신여대입구역이 나온다. 아리랑고개쪽으로 내려오다 구민회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큰 길을 따라 내려가면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 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나온다.  

 성북동쪽으로 가는 길도 있다. 이 길이 가장 많이 가는 길이다. 성북동은 대사관저와 고급주택이 자리잡고 있고 국보급 문화재를 많이 소장한 간송미술관이 있다. 성북동에서 바로 내려가면 삼선교다. 주로 성북동을 지나 삼청동으로 간다.  삼청동으로 가려면 삼청터널을 지나면 된다. 삼청터널은 도심과 성북동을 이어주는데 차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삼청터널을 지나면 삼청공원 부근의 울창한 숲속을 내려가는 길이다. 산을 다 내려오면 삼청동이다. 삼청동 거리를 지나 경복궁에 도착하면 전체 코스가 끝난다. 






    





북악스카이웨이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여러 방향에서 출발할 수 있고 도착 지점도 여러 곳이다. 

 

북악 스카이웨이를 가는  가장 좋은 코스는 홍제천을 따라 가는 길이다.  한강 성산대교 부근에서 홍제천을 따라 가면 북악스카이웨이까지는 아주 쉽게 갈 수 있다. 홍제천은 세검정까지 거의 자전거길을 따라 갈 수 있다. 일부 이면 도로와 인도를 따라 가지만  큰 차도로 가지 않아도 된다.  홍은동 사거리 구간과 세검정에서 하림각을 거쳐 북악스카이웨이로 오르는 불과 1km 정도만 차도를 따라 가고 이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자전거길을 따라 북악스카이웨이 시작하는 곳까지 갈 수 있다. 

 

 내려올 때는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내려와 정릉 골프연습장에서 성북동을 지나 삼청 터널로 내려오는 길이 가장 좋은 코스다.

 

 

<정릉 코스 소개>

 

정릉
 정릉은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조선 태조 계비 선덕왕후의 능이다. 정릉의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조선 왕릉 중 하나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내려와서 골프 연습장에서 아리랑 고개쪽으로 내려오다 구민회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바로 정릉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숲속에 왕비의 능이 자리잡고 있다.  
 





 

 

출발점
1코스.: 사직공원 - 단군성전- 인왕스카이웨이-창의문 -북악스카이웨이
2.코스: 경복궁-청와대앞-경복고-창의문-북악스카이웨이
3 코스: 홍제천-상명대앞 세검정 삼거리-하림각-팔각정방향-북악스카이웨이

 

 

도착지점
1코스. 정릉 : 북악스카이웨이-북악골프연습장- 고대사대부고
2코스. 아리랑고개: 북악스카이웨이-북악골프연습장-아리랑고개-성신여대입구역
3코스. 삼선교 : 북악스카이웨이-북악골프연습장-성북동-삼선교
4코스. 삼청동 :북악스카이웨이- 북악골프연습장-성북동-삼청터널-삼청공원앞 -삼청동-경복궁

   

*성북동에서 삼청터널을 지나지 않고 감사원 방향으로 넘어가는 길도 있다. 이 길도 좋다.  감사원을 지나면 바로 삼청터널에서 나오는 길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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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북악 스카이 웨이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나의 탐방길은 시작된다.

 

 

 

 

 

 

                                                       한성대역 6번 출구로 나오니 01번 마을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석가탄일 연휴 토요일 오전 11시쯤, 4호선 지하철을 타고 한성대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01번 마을버스 정류장이었다. 01번 마을버스는 한성대역과 성북구청 구민회관을 오르내리는 버스로 아파트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듯하다. 올라가는 길은 꾸불꾸불하였고 오르막 길이었다.  아파트 동마다 정차하였고 거주민이 꽤 많은 아파트였다. 마을버스 타고 올라가면서 한 컷! 

 

                                             마을버스를 타고 오르막 길을 꾸불꾸불 올라간다. 주변에는 아프트 단지로 고층이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올라가는 길. 사람도 없고 한적한 길이다. 주변의 초목들이 어느 시골길을 가는 듯하다.

 

 

                                                                                구민회관 방향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

 

 

                                                                      올라온 길 뒷편 성북구민회관 앞 아파트 촌. 꽤 큰 아파트 단지다. 

 

                                    길을 올라가다 만난 아줌마는 유기견을 기르고 있다고 했다. 유기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시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길 주변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우리 외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고지대 숲 속에 이런저런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구민회관 뒤를 지나가는 길, 바로 북악스카이 웨이로 진입한다

 

 

                                                             북악스카이 웨이에 진입한 후 뒷쪽을 향해 찍은 사진, 저 건물 옆으로 나온다

 

 

                                   조금가다  하늘한마당에 도착하니 갈림길이 나온다. 전방 갈림길에서 보이는 우측길이 아니라 좌측 길이다

 

 

                                                                        하늘한마당에 도착, 좌측 방향으로 직진한다

 

 

                                                                         하늘한마당에서 안내판을 바로보는 짝쿵

 

 

                                                                                  둘래길 안내도.

 

요도 좌측 상단 하늘한마당 출발점에서 북악길을 따라 계속 가면 골프장, 다모정, 숲속다리가 나오고 좀 더 가면 하늘마루가 나오는데, 바로 요도에서  오른쪽 하단부 지점이다. 그곳에서 북악길을 따라가면 팔각정이 나오고 계속가면 세금정이 나온다. 팔각정에서 숙정문으로 내려오는 길도 있다. 붉은 색 길을 따라 가면 그 길이 바로 성북천 발원지까지가 김신조 루트이다. 요도 상단부에  서울 성곽 그림이 보이고 그 성문이 바로 숙정문이다. 우리는 숙정문으로 가지 않고 바로 와룡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한마디로 어디에서 출발하던지 자신이 편한 곳에서 출발하고 서울 성곽과 북악 스카이 사이를 길상사와 삼청각을 끼고 능선과 계곡을 휘돌아 걷는 코스로 보면 된다. 

 

 

                                                                        길 건너 우측 언덕 위가  곰의 집 뒷편 모습

 

우측 언덕 위가 곰의 집이다. 처음보니 마치 동물을 키우는 축사같아서 우리는 곰을 키우는 곳으로 알았다. 착각도 자유라......

 

 

'곰의 집'

 

인터넷에 '곰의 집'을 검색해보니 음식점이었다. 아래는 곰의 집에 대한 소개 내용이다 참고하시길......

 

                                              

  

                                              

 

북악스카이웨이를 달려 도착한 곰의 집. 8년만에 찾은 북악스카이웨이엔 장미가 한창이었다.

 서울같지 않은 공기를 뿜어내는 장미정원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자 

이제 막 시작된 가을의 산들바람이 따라 들어와 청신하다. 

 

 

                                            

 

통나무로 만든 멋진 산장같은 30년 전통의 스테이크 하우스.

박정희 대통령님의 단골집이었고, 우장춘 박사님께서 사랑하셨다는 유서깊은 곰의 집.

 

                                             

 

30여년전 우장춘 박사께서 선물하셨다는, 이제는 훌쩍 자라 천장을 벗한 떡갈잎 고무나무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킨 채 반겨준다. 변함 없다...는 말이 아릿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실내. 높은 천장과 짙은 원목으로 꾸며진 클래식한 공간에 들어서자

근사하게도, 고풍스런 정복차림의 웨이터 할아버지께서 멋들어진 미소로 맞아주셨다.

할아버지의 보타이 안자락엔 30여년 세월이 담긴 수많은 스토리들이 고이 간작되어 있을 것만 같다. 

이제 내가 앉을 이 자리엔 지나간 시간 속 누가 앉아 맛있는 이야기를 담아갔을까... 

  

 

 

                                            

 

                                           

 

                                            

 

 

                                           

 

                                           

 

 숲향기 짙은, 북악스카이웨이의 낮과 밤

맑아보이는 서울공기가 찍혔다.

강이나 호수 근처에 집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면 또 산이 좋아진다. 

 

 

 

 

 이상 '곰의 집' 소개를 마치고 나의 탐방길은 계속된다.

 

                                                                            북악  스카이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

 

 

                                              북악길에는 차량이 빈번하게 지나간다. 속도도 빠르고 구배와 굴곡도 심하여 조심해야 될 길이다.

                                              서울 도심을 지나지 않고 동서를 연결해주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화제의 '곰의 집' 입구

 

 

                                                                          곰의 집을 지나 가는 길,  차량과 사람이 드문드문 다닌다

 

 

                                                    외국 대사관 입구, 중국, 캐나다, 이일랜드 대사관이 있다.홍익사대부중고 방향

 

                                                                                 외국 대사관 안내판

 

 

                                                                                  외국 대사관 입구을 지나 계속 걷는다

 

 

                                                                         가는 도중 숲 사이로 보이는 성북구 방향 전경

 

 

                                                                           성가정 입양원. 짝쿵 왈, 꽤 유명한 곳이란다

 

 

 

아래는 성가정입양원에 대한 소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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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은 부모가 버린 어린이를 맡아 키우는 곳이다. 인간의 욕정이 무절제하게 분출되어 태어난 어린 생명을 버린다는 것은 사회적 윤리.도덕과 관습 때문일 것이다. 원치 않은 아기를 임신하여 키울 수 없는 사회,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버리는 부모, 자의던 타의던 인간 사회에서는 역사 이래 지금까지이어온 역사이기도 하다.

 

정부와 사회, 종교단체에서 주로 입양을 맡아서 시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종교단체에서 입양기관이 많은데 종교의 긍정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입양된 아기들은 불교 단체는 불자로. 기독교 단체는 기독교인이나 목사로, 카톨릭 단체는 사제나 신부로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많은 어린이들이 외국으로 입양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이 한국 땅에서 자랐다면 주변의 멸시와 손가락질 등 사회적 편견과 냉대로 인해 대부분 불량 청소년으로 자라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 문제아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외국으로 입양한 경우에는 외국인 부모의 극진한 사랑과 사회적 포용력으로 인해 유명 인사, 장.차관, 학자, 예술인 등 유능한 인재로 자라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아직 선진국이 되기에는 이러한 입양에 대한 사고와 정책이 미흡하고 사회적 통념이 달라지지 않는 한 갈 길이 멀다고 생각된다. 미혼모가 낳았던, 장애를 갖고 태어났던 피부와 혈통, 종교, 장애를 가리지 않고 다같이 포용하고 똑같이 대접하는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탐방길은 계속된다.  

 

 

                                                         성가정 입양원을 지나 계속 걷는다. 산책길은 나무바닥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

 

                                 짝쿵의 걷는 모습이 좀 지루한 느낌이다. 지난번 남산길을 걸을 때와는 반대다. 좀 시무룩하고 힘이없어 보인다.

 

                                             아마 서울에서 가장 높은 지역의 아파트인 스카이 아파트 단지 앞, 걷는 길이 우측 길로 바뀌었다

 

 

                                        북악길 옆으로는 각종 건축물들이 남루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마 그린벨트지역이라 건축이 금지된 듯 

 

 

                                                              이제부터는 또 비포장 길이다. 오르고 내리고 꾸불꾸불하고......덥고 지친다

 

 

                                           좀 가다보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 내려가는 길이 골프장 입구다. 길을 건너 계속 직진

 

 

 

                                                      골프장 전경, 아마 서울에서 가장 높은 지역의 골프장일 게다

 

 

 

                                                  북악길과 나란히 계속된 길은 혼자 깊은 상념에 빠져 걷기에 좋겠다. 둘이면 더욱 좋고......

 

 

                                               중간중간에 나무로 만든 길, 길을 내기에 곤란한 지형인 곳에는 이런 나무길을 만들었다

 

 

                                                                            한 아줌마가 열심히 걷고 있다. 혼자 걷기에는 좀 지루한 느낌

 

 

                                                       북악길 북쪽 방향 전경, 멀리 보이는 곳이 한성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가끔 고무패드로 만든 길이 있다. 골프장에서 주로 많이 보았는데, 쿠션이 좋다

 

 

                                                신선한 풀냄새, 꽃향기, 새소리, 바람소리, 초록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길이다

 

 

                                                         걷는 데 좀 힘이드는지 짝쿵은 말없이 앞장서서 걷고 있다.

 

 

                                                       북악길은 구배로 굴곡 등 위험구간이 많다. 차량은 물론 자전거도 위험한 길이다

 

 

                                      한참을 걸었더니 길이 아물거린다. 덥고 힘들고 지루하다, 주변의 경치는 보이지 않고 나무와 숲 뿐이다

 

 

                             평탄한 길이 별로 없고 가다보면 오르막 계단길이 나오고 가다보면 또 내리막길이 나오면 어김없이 또 오르막 계단이다

 

 

                                                         내려가는 길이다. 그러나  좀 가다보면 또 오르막 길이다. 흑~흑~흑~

 

 

 

                                                          비포장 오솔길, 느낌이 좋다. 인간의 육신이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는 때문일까?

 

 

                                                        군데 군데 난간대도 만들어 있고 처음 공사할 때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듯하다

 

 

                                          안전 밧줄 등  다양한 자재로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조경도 좀 신경 쓴 듯하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평탄한 길로만 되어 있다면 걷기에 좋으련만......

 

 

                                                                     바로 또 비포장 오르막 계단길이 나온다

 

 

                                                     드디어 하늘마루에 도착했다. 아담한 정자가 만들어져 있고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도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결정. 김밥과 음료수를 먹으면서 땀을 식혔다. 여기서부터

                                                     김신조 루트와 팔각정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마루란 '하늘' 이라는 순 우리말이다.

 

 

                                이곳은 북악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꼭 쉬어 가는 휴식처인 듯하다. 길림길이라 지나가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간다.

 

 

                                                                                       하늘마루에서 한 컷......

 

 

 

                                  짝쿵이 서 보란다. 그리고 또 한 컷......지난번 남산길 짝쿵 사진을 보고 초상권을 시비걸더니 내 사진만 찍으려 든다.

 

 

 

                                                                제2산책로, 일명 '김신조 루트' 안내판. 가장 나중에 개방된 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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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마루 쉼터에 있는 운동기구들......

 

 

                                                          하늘마루 바로 옆에 북악길 위로 설치된 하늘교, 김신조 루트 초입이다

 

 

 

 

                                                                                         내려가고.....

 

 

 

 

                                                      조금 가다보니 하늘전망대가 나왔다. 잠시 전망을 구경하고......사진도 찍고......

 

 

                                                               하늘 전망대는 나무 재료로 비교적 아담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한  젊은 부부 가족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로 본 전경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 조망대이다

 

 

                                                                         흐린 날씨지만 그런대로 전망이 좋다

 

 

                                                                           중간 능선에 서울 성벽이 길게 보인다

 

                                                                   드디어 호경암에 도착했다. 1.21 사태(김신조 사건) 때 난 총탄 자국 

 

 

1.21 사태(김신조 사건)

 

1·21 사태는 1968년 1월 21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의 군인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려던 사건이다. 당시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일명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은 1958년 1월 31일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124부대 소속  31명이 조선인민군 정찰국장인 김정태로부터 청와대 습격과 요인 암살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 국군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을 무장하고, 1월 17일 자정을 기해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하여 대한민국 수도권에 잠입하였다. 이들은 청운동의 세검정고개의 창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자 CIC대원이라고 우기며 시비가 붙자 종로 경찰서장 최규식이 일단의 병력을 이끌고 달려왔다. 이에 공비들은 최규식 서장을 잡아 끌려고 하는 등 몸싸움이 진행되다가 결국 정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하여 갑자기 수류탄을 던지고 사격을 가하면서 사방으로 도주하였다. 이 과정에서 최규식 서장이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으며 경찰이 사상을 당하고 지나가던 버스에 수류탄이 터지고 민간인이 다치는 등 만행을 저지르며 뿔뿔이 사방으로 도주하였다.  

 

이에 대한민국 군·경은 비상경계태세를 선포하고 현장으로 출동하여 소탕 작전을 벌였으며, 경기도 일원에 걸쳐 군경합동수색전을 1월 31일까지 전개하였다. 아군도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124부대 소속 31명 중에서 최소 28명이 사살되었는데, 김신조는 투항하였으며, 이 중 두 명은 북으로 도주하였는데, 그 중 한 명은 조선인민군 대장이 된 박재경 총정치국 부총국장으로 알려졌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세로 알려져 있다.

 


   
▲ 68.1.21 청와대 기습사건 당시 생포된 김신조의 모습 ⓒ 누리꾼 블로그 캡쳐

 

전개과정

 

68년 1월 13일, 북괴의 특수부대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부대 소속 31명은 조선인민군 정찰국장 김정태로 부터 청와대 습격과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요인에 대한 암살지령을 받고 남파됐다.

 

이들이 임무를 달성할 경우 남한은 큰 혼란에 빠지게 돼 북괴가 남한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흡수통일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북괴 공작원 김신조의 진술에 따르면 124 특수부대는 이 암살지령 수행을 위해 2년 동안 강도높은 특수훈련을 받았으며, 마지막 15일 동안은 청와대 실제 모형에서 목표 제거 예행연습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침투훈련과 탈주훈련, 무기, 지도법, 공수작전 등 혹독한 훈련을 받았으며, 특히 은닉법 훈련은 직접 무덤을 파고 그 안에 매장되어 있는 시신과 함께 잠을 자기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1월 18일 그들은 한국군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1월 18일 자정을 기해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야간을 틈타 수도권까지 잠입했다. 그러나 이들은 청운동의 세검정고개의 창의문을 통과하는 도중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났다. 공비들은 최규식 종로경찰서장 등 검문경찰을 향해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하고 그곳을 지나가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여러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다.

군인·경찰은 즉시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현장으로 출동했으며, 적과의 소탕전에서 5명을 사살하고, 그 과정에서 인왕산까지 달아난 김신조를 생포했다.

군·경은 경기도 일원으로 합동수색작전을 전개해 같은 해 1월 31일까지 28명을 사살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당시 현장에서 비상근무를 지휘하던 종로경찰서 최규식 총경이 공작원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사건이 종결된 후 박정희 대통령은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관계를 이유로 ‘국가안보우선주의’를 선언했다. ‘국가안보우선주의’는 반국가적 행위를 펼치는 노동조합과 민주화운동을 처벌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예비군이 창설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한 ‘김신조 사건’ 이 후 남한도 북괴의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특수부대인 684 부대를 비밀리에 설립하였으나, 얼마 뒤 남북이 화해 분위기로 바뀌어 684부대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실미도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북한은 그해 10월 120여 명이 넘는 울진.삼척 지역에 무장공비를 침투시켜 소탕작전이 벌어졌으며 강원도 일대에서 장기간 작전이 전개되었고 어린 이승복군이 무장공비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다 살해되는 등 민간이도 다수 피해를 입는 등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당시 북괴의 김일성은 1·21 청와대 기습 사건에 대해 자신은 아는 바가 없다며 발뺌하는 식의 주장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투항한 김신조는 북괴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김신조는 사건 직후 1년동안 취조를 받았고 1970년 남한 시민이 됐으며, 북에 있는 김신조의 아버지와 친척들은 처형을 당했다. ㄴ마과 북의 이념의 차이로 인한 민족적 비극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 1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임진강 기슭에서 김신조 목사가 1968년 1월 자신이 임진강을 건넌 과정을 육군 25사단 간부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2012.1.19 <<지방기사 참고, 25사단 제공>> ⓒ 연합뉴스

 

남한에 정착을 한 김신조는 ‘서울침례회신학교’에서 침례교 신학을 전공, 서울성락교회 목사가 되어 2009년까지 재임하였고, 2010년 11월에 한나라당 북한 인권 및 탈북자·납북자 위원회 고문으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나의 슬픈 역사를 말한다’를 발간하며 자신의 힘들었던 26년동안의 한국에서 삶을 고백하기도 했다.

 

 

                                                         총탄 자국을 보면 야간이었다면 비교적 사격을 잘 한 흔적이다.

                               당시 이곳을 책임지고 경비하던 수경사 소속의 정예 병사들이 비교적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짝쿵이 야생화를 보면서 이뻐하고 있다. 꽃을 좋아하는 여인......

 

 

                                                                                                 야생화 

 

 

                                                            여러 곳에 많이 핀 생존력이 강한 꽃이다. 그런데 이름은 몰라

 

 

                                                            계곡과 능선이 계속 연속적으로 나타나기에 오르내리는 길이 대부분이다

 

 

                                                                                        남마루에서 잠깐 구경 좀 하고

 

 

 

                                                              계곡 밑으로는 5월의 신록이 깊어가고 있다, 힌꽃이 눈이 내린 것 같다

 

 

                                                                           옆으로 돌아보니북악길 팔각정이 보인다

 

 

 

                                                             북악에서 숙정문으로 이어지는 능선위 서울 성곽이 보이고

 

소나무, 성곽, 북악 정상이 겹쳐 보인다

 

                                                                         숙정문과 와룡공원 방향이 멀리 보인다

                                                   

 

                                                  서울 성곽을 따라 멀리 북악산 정상이 보인다. 휘어진 소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삼청각, 숙정문이 보이고 서울 성곽이 장엄하게 펼쳐저 있다

 

 

삼청각에 대하여......

 

삼청각(三淸閣)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1972년 건립되어 1970년~1980년 요정정치의 산실로 대표되었다.

 

여야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제4공화국 유신시절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에는 손님이 줄어들어 1990년대 중반 이름을 ‘예향’으로 바꾸고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하였으나, 경영난으로 1999년 12월에 문을 닫았다.

 

1999년 말 건물과 부지를 인수한 화엄건설(주)이 고급빌라를 짓기 위해 관할 성북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였으나 문화재 보존여부에 대한 판단문제로 건축허가 결정이 유보되었다.

 

이후 2000년 5월 22일 서울특별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였으며,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후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

 

새롭게 단장한 삼청각은 공연장, 한식당, 찻집, 객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규모는 대지 5,884평, 연건평 1,331평이다. 6채의 한옥이 있으며, 건물마다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살렸다.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전통공연이 열리고 혼례나 약혼식 장소로도 사용되며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이 맡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어루러진 전경, 멀리 서울 시내 빌딩숲과 서울 성곽이 역사의 흐름을 보여 주는 듯하다 

 

 

                                           동대문, 성북구 방향 전경. 수많은 백성들의 땀과 피가 얼룩진 땅에 수목이 자라고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서울 성곽 밖에는 대부분 천민들이 살았고 허허벌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모두 평등한 시민이 되었다

 

 

 

길상사에 대하여......

 

길상사(吉祥寺)는 대한민국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절이다.

 

본래는 '대원각' 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정이었으나 요정의 주인이었던 고 김영한(1916 ~ 1999, 법명 길상화)이 건물을 시주하여 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995년 6월 13일 법정 스님에 의하여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되었으며 주지로 현문 스님이 취임하였다. 1997년에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재 등록되었고 같은 해 2월 14일에 초대 주지로 청학 스님이 취임하였다.

 

경내에는 극락전, 지장전, 설법전 등의 전각이 있으며 행지실, 청향당, 길상헌 등의 요사가 존재한다. 현재 6대 주지로는 덕현 스님이 취임 중이다.

 

2010년 3월 11일 법정 스님이 길상사에서 78세 (법랍 54세) 로 입적하였다.

 

길상사의 원전인 대원각을 시주한 고 김영한은 근대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알려진 '자야' 와 동일 인물이다.

 

                                          북쪽 미아리 방향, 저 곳을 인민군 전차가 포를 쏘고 불을 뿜으면서 넘어왔던 고개길이다.

                                          수많은 장병들이 적의 총탄 앞에 낙엽처럼 쓰러져 갔고 이 땅의 흙먼지가 되었다.

 

 

 

 

 

 

                                                               계곡마루에는 계곡 뿐이다. 아무 전망도 없고 숲만 보인다

 

 

                                               그래서 계곡마루는 삼무(전파,소음,걱정)가 없고 삼청(산, 하늘, 마음)이 푸르다고 한다.

 

 

 

                                                        숙정문까지 가는 길에는 이런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계속 반복된다. 좀 지친다

 

 

 

                                                    새로 피어난 새닢들이 5월의 신록을 더해주고 있다.가장 순수하고 청초한 모습일 때이다

 

 

 

                                           이런 숲 속에 무장공비가 숨어 있다면 찿을 수가 없다. 김신조 사건 때 이곳은 북악길과 함께 민간인 통제지역이었다.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론 전방 동부전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북악산의 유래 안내판, 경북궁 북쪽에 있으며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했다.

 

 

 

 

 

                                                                                     숲 속의 삼청각

                                                   이 계곡만 지나면 숙정문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힘든 길은 다왔다~~

 

우린 숙정문에서 올라가지 않고 와룡공원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지난번 딸부부와 같이 갔던 길이라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지난번에는 가기에 바빴지만 오늘은 성벽을 찬찬히 보면서 사진도 찍고 주변 경치도 구경하면서 걸었다. 짝쿵도 힘이 드는지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한다.

 

                                 

                                                                    숙정문 관리사무소 앞에서 한 컷

                                                                              멀리 팔각정이 보인다

                              이제부터 숙정문에서 와룡공원으로 성벽을 따라 가는 길이다, 지난번 딸네와 같이 갔던 길이라 자신감이 넘친다.

 

 

                                                           숲과 성벽이 어우러진 모습이 고즈넉한 옛 향기를 맡는 듯하다

 

지난번 갈 때는 성벽을 찬찬히 보지 못했으나 오늘은 구석구석을 음미하면서 걸었다. 잡초도 많이 자랐고 꽃도 피었다. 성벽 틈 사이로 고개만 내밀었던 잡초들이 잎을 길게 늘어뜨리고 보란듯이 성벽 틈 사이에서 자라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내 생각에는 저 풀들이 모두 이곳에서 땀흘리고 피 흘리며 노력 동원되어 고생하던 조선 시대의 백성들 처럼 보인다.

 

조선 시대 내내 서울 성벽이 한 기능은 백성들을 통제하고 궁궐을 보호하는 기능 외에는 제 기능을 발휘한 적이 없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이 성을 버리고 북으로 도망쳤다. 비내리는 저녁 선조의 어가가 한양을 떠나자 백성들이 분노하여 돌팔매질을 날리고 궁궐에 불을 질렀다. 그때 대부분의 궁궐이 불탔다. 

 

                                                                         성벽을 배경으로 폼 잡고, 그런데 배가 좀 나왔다

 

 

                                                                     천연 자연 바위를 이용한 성벽 구축 모습

 

 

                                        돌틈 사이로 피어난 잡초, 세월의 한을 말해주듯, 민초들의 피와 눈물을 말해주듯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런 성벽을 기어 오른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어려웠을까? 위에서는 화살을 쏘고, 돌을 던지고, 뜨거운 물을 쏟아붓고...... 

 

 

                                                   이런 성벽의 방비 시설을 내팽개치고 임금 선조는 북으로 도망을 갔다

 

 

 

                                             서울 성벽의 취약점은 성문 근방에 옹성이 없고, 적을 측방에서 공격할 수 있는 돌출부가 없다

 

 

                                                           또 상벽 앞에 해자가 없어 적이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과연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서울에서 결전을 시도했다면, 과연 견뎌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방어 병력에 비해 일본군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성벽이 길어 어디선가 뚫리는 상황이 예상된다 

 

 

 

                                                                  짝쿵이 한 컷 찍어란다. 꽃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꽃을 앞에 두고 찍었다

 

 

우리는 와룡공원을 지나 내려오다 동대문 쪽으로 가지 않고 대학로 방향으로 내려왔다. 다리도 후들거리고 스마트폰 밧테리도 다 되어 기존의 아이스크림 폰으로 광경을 찍었다. 그런데 라디오 밧테리도 다 되어 음악 듣기도 종료하고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사 마시고 다시 출발, 짝쿵은 대학로를 지나 평화시장까지 걷자고 하는데 다리가 힘들다. 그래서 마침 지나가는 08번 마을 버스를 타자고 했더니 걷자고 했다.

 

마을 비탈길을 지나 성균관 대학교 정문 앞으로 내려왔다. 마을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이곳을 지나가는 08번 마을버스가 종로 5가까지 가는 데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더니 짝쿵은 그냥 걷자고 한다. 그런데 짝쿵은 다리가 아프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난 다리가 힘들다. 우리는 "타고 가자, 타지 말고 걷자" 하면서 언쟁을 하다가 결국 일반버스를 타고 종로 5가에 내렸다.

 

 

 

                                                   대학로 쪽으로 내려왔다. 젊은이들이 북적거리고 생기가 돈다. 성균관대 정문 앞

 

 

대학로에 대하여......

 

대학로(大學路)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역 사거리에서 혜화로터리를 잇는 도로로, 총길이는 1.6Km이다. 과거 이 도로 근처에 서울대학교가 자리잡고 있었기에 이 이름이 붙여졌다.

 

역사는 1984년 11월 7일  종로5가역 기준을 삼아서, 종로5가역 사거리에서 혜화로터리를 대학로로, 동대입구역 사거리에서 종로5가역 사거리 구간을 훈련원로로 분리하였다

 

노선은 종로5가역 사거리 - 효제초등학교 - 이화사거리 - KT 혜화지사 - 서울대병원 - 혜화역 - 동성고등학교 - 혜화로터리까지이다

연결노선은 대학로의 시작점인 종로5가역 사거리에서는 종로훈련원로가 연결되어 있고, 혜화로터리에서는 창경궁로동소문로가 만난다.

 

특징은 아래와 같다.

  • 1975년, 서울대학교관악구 신림동으로 옮겨가면서 그 자리에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되었다.
  • 이 곳에는 야외공연장과 풍류마당 등이 만들어졌으며, 이로 인해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 대학로 마로니에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주의사항은 대학로 전체 구간 중에서 종로5가역 사거리에서 이화사거리는 일방통행구간이다. 즉, 이 구간은 종로5가역 사거리이화사거리로 일방통행구간이다. 만일 이화사거리종로5가역 사거리로 가려면 원남사거리에서 좌회전한 다음에 종로4가 사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해야 종로5가역 사거리가 나온다. 또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로터리 구간은 관할 경찰의 고시에 의해 오후 10시에서 오전 6시 사이에는 이륜차(싸이카 등의 긴급차량은 제외)의 통행이 제한되어 있다.

     

     

    성균관 대학교에 대하여......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 Sungkyunkwan University)는 대한민국사립 대학이다.

     

    1398년 조선유교 건국이념에 따라 숭교방(崇敎坊)에 설립한 국립최고학부 성균관(成均館)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그 후 1895년 고종의 칙령에 따라 성균관에 3년제 경학과(經學科)를 설치하였으며, 이 경학과는 성균관의 고전적 대학에서 근대적 대학으로의 변혁을 상징한다. 경학과는 유교 경전을 중심으로 교육하되 역사학, 지리학, 수학 등의 근대적 학문을 부가하였다. 1911년 일본 제국이 성균관을 폐지하고 기능을 축소하였으며 이름을 경학원(經學院)으로 변경, 1930년에 그 부속으로 ‘명륜학원’이 설치되었다.

     

    이후 1939년에 명륜전문학원으로 승격하였고 1944년 친일 유림 양성소격인 ‘명륜련성소’로 개편되어 민족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1945년 해방 직후 명륜전문학교가 부활하였으며 같은 해 11월에 전국유림대회가 열려 일본 제국이 박탈한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대학 설립을 위한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고 김창숙을 대표로 삼았다. 이후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설립되면서 이듬해인 1946년 9월 25일 문교부로부터 정식으로 인가되었고 김창숙이 초대학장으로 취임하였다.

     

    교훈은 ‘인·의·예·지’이며 1953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 1979년에는 경기도 수원시에 자연과학캠퍼스를 신축하였다. 1996년 11월에 삼성재단이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인수하였고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캠퍼스를 이원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발표 논문수에 의거한 성균관대학교의 순위가 대한민국에서는 3위, 세계에서는 146위로 나타났다고 밝혔으며, 경영전문대학원(MBA) 평가에서는 대한민국에서 3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약칭으로는 성대, 영문이니셜은 SKKU라고 불린다.

                                                          

     

     

                                                           청계천 다리 위에서, 청계천 전경. 휴일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청계천에 대해서......

    청계천(淸溪川)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남산, 북악산 등에서 발원하여 종로구,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을 거치며 중랑천과 합류한 뒤 한강으로 흘러드는 마른 하천이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흐르는 반면에 청계천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본래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청계천"으로 바뀌어 오늘날의 이름이 되었다.

     

    역사

     

     

     

    일제시대의 청계천

     

     

     

    청계천 복원 공사

     

    본래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은 조선 태종때 부터 한양을 서울로 한 조선시대 내내 개거, 준설 등 치수 사업의 대상이었다. 태종은 1406년부터 자연상태에 있었던 하천의 바닥을 쳐내서 넓히고, 양안에 둑을 쌓았으나 큰비가 올 때마다 피해는 계속되었다.

     

    1411년 12월 하천을 정비하기 위한 임시기구로 '개천도감(開渠都監)'를 설치하고, 이듬해 1월 15일부터 2월 15일까지 큰 공사를 실시하였다. 청계천의 양안을 돌로 쌓고,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들었다. '개천(開川)'이라는 말은 '내를 파내다'라는 의미로 자연상태의 하천을 정비하는 토목공사의 이름이었는데, 이 때의 개천 공사를 계기로 지금의 청계천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세종은 청계천의 지천의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종로의 시전행랑(市廛行廊) 뒤편에 도랑을 파서 물길을 하천 하류에 바로 연결시켰는데, 지천의 물이 한꺼번에 개천 상류로 몰려들어 넘쳐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도심의 홍수를 예방할 수 있었다. 세종은 1441년에 마전교 서쪽에 수표를 세워 수위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종 이후로 준설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여 오간수문이 막힐 지경에 이르자, 영조는 1760년 2월 개천을 준설하면서 하천바닥에서 파낸 흙을 한 곳에 모아 가산을 쌓게 한다. 오간수문 안쪽에 있었던 것으로, 하나는 개천 북쪽에, 하나는 개천 남쪽에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도시의 근대화에 따라 사라졌고, 현재는 오간수교 위에 표지석이 있다. 개천의 물 흐름에 관심이 있었던 영조는 1773년 백운동천삼청동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오간수문 근처까지 석축을 쌓았다. 이를 통해 구불구불한 하천이던 개천을 영조가 호안공사를 통해 직선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복개 사업과 1970년대에 완공된 청계고가도로의 환경 오염 및 노후에 따른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다. 결국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청계천을 복원하기로 공약한다. 이에 2003년 7월 1일부터 2005년 9월 30일까지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복개를 걷어내는 복원 사업이 서울특별시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 사업으로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에 이르는 약 5.8 km의 구간이 복원되어 산책로, 녹지 등이 설치되었다. 복원된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청계천 본래 지류가 아닌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의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조달한다. 사업비는 386,739백만원이 들어갔다. 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 172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 복원해 놓은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 등이 시설물로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천 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다.

     

    청계천 통수(通水), 자동차 운행 감소, 고가도로 철거에 따른 바람길 형성 등의 영향으로 청계천변 숭인빌딩 앞의 기온이 평균 3.6도 낮은 것으로 측정됐다.  또한 하수도로 사용되어 BOD가 과도하게 높아졌던 물길에 깨끗한 물을 흐르게 했으며, 서울특별시의 도심인 종로구 한가운데에 녹지를 만들어 휴식공간을 만들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청계천 복원 사업에 대해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도 많다. 일례로 경제학자 우석훈 은 자신의 저서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복원된 청계천을 "인공호수"라며 호되게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청계천의 기존 물은 양이 적어 취수장에서 전기를 이용해 한강물과 지하수를 끌어다 쓰고 있는데, 이때 물을 끌어올리는 데 쓰이는 전기요금이 한해 평균 8억 정도가 쓰이고 있다. 또 끌어다 쓰는 물로 인해 녹조가 반복적으로 생겨 2007 ~ 2009년까지 8000만원을 녹조제거를 위해 쓰였다. 이 외에도 인건비, 청소·경비용역비, 토목·조경시설 유지관리비 등에 2011년에만 80억여원이 소모되었다. 이는 2005년 37억에서 2010년 77억원에 이은 것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1년 6월 조선일보가 건축가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청계천은 최악의 건축물 3위에 뽑혔다. 건축가들은 "청계천은 한국을 상징하는 공공 건축물인데 건축가도 없이 단기간에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자신의 임기 안에 청계천 복원 사업을 무리하게 끝마치기 위해서 유적 복원을 날림으로 진행했다는 평가도 있다. 1773년에 쌓은 현 무교동 사거리에서 시작되며 청계천을 따라 17.1미터의 폭을 두고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청계천 석축은 발굴 후 복원되지 못했다. 복원 당시 발견된 석축은 동아일보사 앞의 좌안석축이 교차로를 기준으로 서쪽 57m, 동쪽 36m 정도, 반대편 우안석축은 9m 정도로 모두 100여 미터나 된다. 수표교는 예산상의 문제라는 표면적 이유로 장충단공원에 남아 있고, 광통교는 원래와 다르게 복원되었다. 발굴된 하랑교와 효경교는 하부 교각만 물길에 심었고, 같이 발굴된 오간수문과 같이 청계천 하류의 펌프장에 쌓여 있다.

     

    청계천 입구에 위치하는 소라탑 또한 일각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스웨덴 출신의 미국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한 작품으로, KT가 34억의 비용을 들여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이다. 높이 20m, 폭 6m, 무게 9t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적인 미가 결여되어 있고, 주변에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비판과 풍수지리학적으로도 좋지 못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평화시장 입구 전경, 짝쿵이 옷을 사러 간 사이 난 청계천 다리 위에서 기다렸다

     

     

     우리는 종로 5가에서 내려 평화시장에 가서 짝쿵 옷을 사고 다시 광장시장 먹자골목에 가서 막걸리와  순대를 먹고 나오니 힘들다. 연휴라 사람들이 지난번 보다 더 많다. 빈대떡 집에도 사람이 만원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순대와 막걸리, 오뎅을 먹고 일어섰다.

     

    그런데 이름없는 막걸리가 별로인 것 같다. 이런 곳 음식이 다 그렇듯이 불량품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속이 터부럭하고 소화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배가 불러오고 취기가 자꾸 오르는 것이 피로한 탓에 막걸리를 마신 탓인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오늘 3~4시간 정도 걸었고 피곤했다. 그때서야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동대문 운동장 근방에서 서초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교대에서 내려 마을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지난번 서울 성곽에 이어 북악 둘레길을 답사한 것에 만족하고 짝쿵을 즐겁게 해 주었다는 데 보람을 찿아야겠다. 지난번에는 딸 부부가 먼저 다녀온 길이라 안내를 받으며 걸었던 것이나 이번 길은 초행길을 둘이서 무턱대고 갔던 것에 더 피곤했던 모양이다. 처음 가는 길은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힘이 더 빠진 것일 게다.  암튼 이것도 조그만한 우리들의 행복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난 샤워를 한 후 밤새 내리는 비소리를 들으며 내일 새벽에는 비가 내려 자전거를 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늦게까지 푹 자기로 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