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카페]
6·25가 57돌을 맞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닫는 나이를 일곱 살로 친다면 전쟁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들은 대부분 환갑을 넘어선 셈이다.
우리 국민들 대부분에게 6·25는 이제 체험이 아닌 관념으로만 존재한다.
6·25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남한에서는 6·25사변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다 요즘은 '한국전쟁'이라는 말로 통일되어가고 있다. 남한의 일부 친북세력은 '통일전쟁'이란 말을 쓴다. 북한의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말과 일맥상통한다.
중국에서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르는데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통하지만 미국정부의 공식용어는 '한국분쟁'(Korean Conflict)이다.
미국에서 전쟁이란 이름이 붙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선전포고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은 선전포고와 의회승인을 걸친 전쟁의 참전이 아니라 국제분쟁해결을 위한 유엔의 경찰행위에 참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에서 통용되는 한국전쟁의 또 다른 이름은 '잊혀진 전쟁'이다. 미국인에게 자랑스러운 전쟁이었던 2차대전과 치욕의 전쟁이었던 베트남 전쟁 사이에 있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승부전쟁이 한국전쟁이었다.
한국과 동아시아가 떠오르면서 오늘날 미국인에게 한국전쟁은 점차 의미 있는 전쟁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대한민국에서는 잊혀지는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전쟁은 한때 미국이 포기하려했던 대만의 장제스 정권이 기사회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가 떠난 베트남에 미국이 개입하는 계기를 만들어 15년 베트남전쟁의 씨를 뿌렸다. 중국은 대만통일의 기회를 잃었고 20년간의 봉쇄를 감내해야 했다.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에 힘입어 1952년에 태평양전쟁 이전의 생산력을 회복하고 경제강국으로 가는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과 싸우던 중국은 외환보유고 1조2000억 달러의 경제적 강자가 되었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 홍콩이 지닌 외환보유고를 다 합치면 3조 달러 가까이 된다. 모두 미국을 딛고 번 돈이다.
베트남도 개방을 통해 중국이 걸었던 길을 가고 있다. 한국전쟁보다 22년 뒤에 종전을 맞은 베트남의 국가수반이 미국을 방문할 정도로 세상은 바뀌었다.
개방을 외면하고 군사노선을 고수하다가 국민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 북한의 현실이 안타깝다.
신우재(언론인) shinwj@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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