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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허공에 주먹질...

 

 

[사설] 6·10항쟁 20주년 날도 허공에 주먹질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6-10 23:18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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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민주항쟁이 20주년을 맞았다. 국민의 힘으로 이룬 민주화는 권위주의 아래에서 한계에 부딪혀 있던 우리 사회가 새롭게 도약하는 발판이 됐고,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사는 삶을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기적적인 산업화와 함께 기적적인 민주화도 2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국민의 자랑스러운 資産자산이다.

지난 20년간 세상은 크게 변했다. 나라가 생존하고 국민이 더 잘살기 위해 가야 할 길의 이정표도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화’의 파도는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까지 사정없이 밀어닥치고 있다. 무역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은 이제 기업과 산업은 물론이고 사고방식 자체를 글로벌 경쟁시대에 맞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그렇게 해서 나라가 세계 일류가 되는 것이야말로 피 흘려 이룩한 민주화의 진정한 완성일 것이다.

이미 국민과 기업은 20세기를 졸업하고 21세기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었다. 세계 일류수준에 오른 기업도 나왔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을 앞장서 이끌어 가야 할 대통령의 시계는 1980년대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어제 노무현 대통령이 한 6·10 기념사도 20~30년 전에 멈춰버린 고장난 레코드를 다시 돌리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요즘 국민과 법이 하지 말라는 것, 하면 안 되는 것만 골라서 하면서 온갖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과 수준은 다음 대통령을 뽑는 데 反面敎師반면교사는 돼야 한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기득권 세력들이 수구언론과 결탁” “안보독재와 부패세력이 본색을 드러내” “개발독재의 후광을 빌려 정권을 잡으려 한다” “군사독재 잔재들이 역사를 되돌리려 한다” “독재권력의 앞잡이던 수구언론들” “반민주 악법 개혁 못해” “지배세력 교체해야”라고 했다. 누가 언제 말한 것인지만 알려주지 않으면 20~30년 전 편향된 재야인사의 쇳소리 기록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민주화 덕에 집권한 세력이 무능으로 국민을 괴롭혔다’는 평가에 “중상모략”이라며 반발한 것이 유일한 새 내용이었다.

‘守舊수구’란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과거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다. 온 세상이 민주화를 넘어 21세기 글로벌 경쟁으로 달려가는데, 대통령과 주변의 몇몇만 20~30년 전 세상을 살고 있으니 수구가 있다면 바로 이들일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버림받은 것도, 오래 전에 용도가 끝난 이념서적 몇 권 수준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때문이다. 열린우리당도 대통령을 따라 허공에 주먹질하다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모두의 꿈은 대한민국을 더 자유롭고 풍요롭고 화합하는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정치 경제 사회도 일류 선진국이 되자는 것이다. 6·10 항쟁 때 거리로 나온 국민의 바람이 바로 이것이었다. 내세울 것이라곤 20~30년 전 쇳소리밖에 없는 대통령이 또다시 등장한다면 그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