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사는 70대 할머니가 남편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돈만 밝힌다는 이유로 이혼을 결심하고 남편을 경찰에 사문서 위조 혐의로 8일 고소했다.
담낭암 말기인 장모(76·여)씨는 지난 3월 남편과 공동명의로 된 아파트를 담보로 1억7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사업 실패로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된 큰아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서는 차마 눈을 감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남편 김모(80)씨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돈에 눈이 먼 남편에게 말해봤자 면박만 당할 게 뻔했다. 형편이 어려운 딸에게 2000만원을 빌려준 걸 남편이 알고서 두고두고 괴롭힌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장씨가 치료받는 병원까지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결국 장씨는 남편을 피해 딸 집으로 가서 ‘별거’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남편은 장씨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5000만원이 든 적금통장을 빼앗기 위해 가짜 차용증까지 만들어 가압류를 신청해 왔다. 젊은 시절부터 벌이가 시원치 않은 남편을 대신해 장씨가 노점상 등 궂은일을 마다 않고 한푼 두푼 어렵게 모은 돈이다.
장씨는 50년 넘게 살아온 남편과 이혼하기로 마음먹고 남편을 서울 구로경찰서에 고소했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돈을 벌기 위해 노점상부터 파출부까지 안 해본 게 없는데 남편은 큰소리를 치면서 늘 때리고 괴롭혔다”며 “남편과 헤어지는 게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돌아가실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오죽하면 남편을 고소했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이태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