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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남한산성' '치욕의 현장', 작가 김훈

 

 

김훈, 독자에 ‘치욕의 현장’을 말하다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5-30 00:05 | 최종수정 2007-05-30 07:35 기사원문보기

70명과 함께 남한산성 답사… 소설 각색한 연극도 관람

370년 전 역사의 무대는 작가의 손길이 닿자 생생한 현실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 남한산성 서문(西門)은 가장 서글픈 문이지요. 인조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면서 ‘치욕의 문’을 나가 삼전도(서울 송파구 소재)로 향했지요. 입구가 너무 낮고 길이 가팔라서 인조는 말을 타지 못하고 걸어서 나갔지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이곳을 찾아 성문의 돌덩어리를 만지면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삶에 대해서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베스트셀러 소설 ‘남한산성’(학고재)의 작가 김훈이 29일 독자 70명과 함께 소설의 무대를 찾았다. 한국관광공사와 인터넷서점 Yes24가 독자들을 초청해 마련한 자리다. 독자들은 작가와 함께 2시간여 성벽을 따라 걸으며 소설(혹은 역사)의 무대에 대해 작가의 설명을 들었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갈 때 들어갔던 남문, 인조와 조정이 머무르며 주전과 주화를 논쟁했던 행궁 등이다.

행궁 앞에선 느닷없이 조선시대 복장을 한 ‘남한산성’의 주인공들이 현실로 튀어나왔다. 주최측에서 배우들을 기용해 소설을 각색한 깜짝 연극을 연출한 것이다. 이 연극에서 김상헌은 “임금이 없으면 백성도 없다”면서 목숨을 버릴 것을 주장한다. 최명길은 “백성이 없으면 임금이 없다”고 반박한다. 대장장이 서날쇠는 말의 성찬이 앞서는 형국을 보면서 “너희들은 손목은 가늘고 혓바닥은 길지”라고 일침한다.

작가 김훈은 “남한산성에 있던 여러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누구의 입장을 편드는 것이 아니지요. 삶의 구체성이 이념이나 관념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지요”라고 했다.

독자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한 독자는 “주전파와 주화파의 공박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허무하게 끝난다”며 결말 부분을 아쉬워했다. 작가는 “서날쇠의 일상으로 소설이 마감되는데, 사실은 마지막에 ‘남한산성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썼다가 지웠다”고 답했다. “주화나 주전 어느 쪽이 희망이라고 쓸 수 없었습니다. 서날쇠 이상의 희망은 가짜 희망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나이의 독자들은 작가와 보낸 하루를 즐거워했다. “12대조 할아버지가 남한산성 인근 전투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이영구(75)씨는 “작가에게 고맙고, 행사를 마련한 주최측에 고맙고, 선조의 흔적을 찾을 만큼 건강한 나 자신에게 고맙다”고 했다. 하루 종일 가랑비가 흩뿌리는 날이었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이 독자 70명과 함게 소설의 무대인 남한산성을 찾았다.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이 남한산성 남문에서 독자들에게 소설 속 무대를 설명하고 있다.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이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 소설의 무대를 설명하고 있다.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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